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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

책소개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1873년 서문
옛 사람들
공상과 환상
농부 마레이
유럽에 관한 공상
논점의 혼란과 불확실성
역설가
조르주 상드의 죽음
조르주 상드에 관한 몇 마디
국외여행, 기차에서 만난 러시아인들에 대한 몇 마디
땅과 아이들
어떤 돼지에 대한 크릴로프의 오래된 우화
게오크테페, 우리에게 아시아는 무엇인가?
질문과 응답

옮긴이에 대해

저자 소개 1

1954년생. 1979년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를 졸업했다. 1982년 같은 대학 통역대학원 석사학위를 받았고, 1995년 노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7년부터 1년간 러시아 이르쿠츠크대학교 교환교수를 지냈다. 현재 배재대학교 러시아학과 교수이며 한국 시베리아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논문으로 「도스토옙스키의 작가 일기 연구」「도스토옙스키의 민족주의와 반유토피아 사상」 등 도스토옙스키 관련 논문이 다수 있고, 지은 책으로는 『러시아 지역 연구』, 『고급 러시아 강독』, 『러시아, 러시아인』 등이 있다.

이길주의 다른 상품

저자 :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
세계 문학사상 가장 중요한 작가, 철학자, 또는 심리학자. 현 시점에서 문명사회의 위기를 예고한 예언가적 면모로 다시 부각되어야 할 인물이기도 하며, 솔제니친 등 러시아의 후대 문학계뿐만 아니라 카뮈, 카프카,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헤세, 앙드레 지드, 마르케스, 파묵, 루쉰 등 20세기 전 세계 작가와 니체, 프로이트 등 사상계, 심리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에도 큰 영향을 준 작가다. 1821년 모스크바 마린스키 빈민 병원의 군의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도스토옙스키는 가난과 질병에 시달렸고, 혁명 운동에 관여해 사형선고(1849)와 시베리아 유형(1850∼1859)을 체험했다.

그의 문학적 출발은 1846년 발표한 ≪가난한 사람들≫, ≪이중인격≫ 등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소시민, 민중, 지식인에 대한 연민과 희망의 근거에 대해 천착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연구모임인 페트라솁스키 모임에 관여해서 사형선고와 10년간의 시베리아 유형및 강제복무 생활을 경험하며 인간과 민중 문제에 천착하고, 인간 존재의 문제와 함께 ‘신’과 ‘종교’의 문제로 화두를 옮기며 사회적 문제의식을 심리 철학적 수준에서, 그리고 윤리적·종교적 차원에서 성찰하며 창작에 임했다. 그는 1860∼1870년대, 1881년 1월에 사망하기 직전까지 왕성한 창작열로 ≪죽음의 집의 기록≫, ≪죄와 벌≫, ≪악령≫, ≪백치≫, ≪지하생활자의 수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을 발표해 그의 독특한 사상 체계와 소설 미학을 완성했다. 특히 유형 후 철학, 정치, 사회학적 측면에서 그는 러시아 민족주의로 방향을 전환하고 러시아 정교를 신봉하는 보수적 견해로 변신을 표방하며 <작가의 일기>를 통해 새로운 저널리즘 문학을 시도하기도 했다.
역자 : 이길주
현재 배재대학교 러시아학과 교수이며, 배재대 한국 시베리아센터 소장이다. 한국외대에서 <도스토옙스키의 <작가의 일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한양대학교 중소연구소 상임연구원, 외대 통역대학원 강사를 지냈다. 저서로는 ≪도스토옙스키의 유럽 인상기≫, ≪러시아 지역 연구≫, ≪러시아의 역사1≫, ≪러시아, 러시아인≫, ≪실무 러시아어 강독≫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도스토옙스키와 시베리아>, <도스토옙스키의 민족주의와 반유토피아 사상>, <시베리아 연구의 역사>등이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세계와 함께 시베리아와 유라시아의 역사와 정체성 등에 관심을 두고 연구 중이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12월 15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76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62282443

출판사 리뷰

<작가의 일기>는 1873년, 1876∼1877년, 그리고 1880∼1881년 사이에 도스토옙스키가 독자적으로 발간한 월간지입니다. 이 책은 <작가의 일기>에 실린 글 중에서 14편을 발췌해서 실었습니다.

<작가의 일기>는 1873년, 1876∼1877년, 그리고 1880∼1881년 사이에 도스토옙스키가 독자적으로 발간한 월간지다. 이것은 독특한 형식의 1인 집필 잡지다. 이를 통해 작가는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적 저널리즘 양식으로 자신의 미학적, 철학적 견해를 밝혔다. 그는 <작가의 일기>에서 러시아 신문에 거론되는 다양한 시사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즉 당대의 주요 사건과 시사 문제에 대해서 심오한 철학과 사상을 바탕으로 해설하고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특히 그의 관심은 조국 러시아의 시대상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당대의 주요 관심사였던 러시아와 유럽의 문제를 포함해서 다양한 주제에 대한 자신의 시각과 견해를 직설 화법으로 표현해 독자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작가의 일기>는 1인 집필 잡지 속에 콩트, 사회·정치 평론, 수기, 소설 등을 혼합한, 장르와 문체의 실험을 통해 작가의 궁극적 사상과 사회의식 그리고 미학을 보여주는 결정판으로, 한 사람이 쓴 다양한 장르의 여러 가지 글을 모아 월간지 형식으로 발간한 세계 문화사에서 희귀한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 작가는 어느 소설에서보다 작가 자신의 통합적·예지적 담론과 관념의 깊이와 다양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는 당대 주요 사건과 시사 문제에 대한 언급에서 생경한 정치적·사회학적 강변과 주장(쇼비니즘적·반유대주의적·전투적 담화)으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작가의 일기>는 도스토옙스키의 사상과 미학을 논하는 갖가지 논문과 비평에 반드시 언급·인용되는 작품이며, 그를 러시아 역사에서 최고의 문학사상가이자 예언가로 자리매김케 한 작품이다.
도스토옙스키는 당대의 사회문제와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작가적 혜안으로 그 이면의 의미를 탐구해 나갔다. 혼란스러운 현실의 진부한 단면들은 결국 그의 탁월한 상상력과 창조력에 힘입어 그 이면을 드러내고,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가십조차 그의 손을 거치면 극적인 성격으로 두드러지기도 한다.

어머니들도 마시고 아이들도 마신다. 교회는 비고, 아버지들은 강도질한다. 이반 수사닌 동상의 청동 팔 하나를 잘라서 술집에 가져가면 술집에선 그것을 받아준다. 아무 의사에게 물어보시라. 이런 취한에게서 어떠한 신세대가 태어날 수 있는지.

이것은 1873년 <작가의 일기>에 실린 시평 <공상과 환상> 속에 들어 있는 작가의 격렬한 토로다. <작가의 일기>를 통해 도스토옙스키는 폭로자와 선동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글은 추악하고 무서운 현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비극적 상황 속에서 도탄에 빠진 민중을 돕자고 인텔리겐치아(지식층)에 호소하며, 교육계 현실을 규탄하고 궁핍한 생활 때문에 미국으로 떠난다는 망명자들을 강렬하게 비판한다. 한낱 짧은 시평 <공상과 환상> 속에 러시아의 정치, 사회, 경제, 교육 등 현실의 문제들이 모두 거론되고 있다. 그리고 마치 작가의 무력감과 소원감에 의해 폭로와 선동의 목소리는 더욱 절규의 색채를 띠는 듯하다. 조소와 풍자적인 어조를 섞은 이 절규의 목소리는 <작가의 일기> 1876년 2월 호에 실린 <크로네베르크(Кронеберг) 사건에 대해>에서는 분노의 어조로 바뀐다. 일곱 살짜리 딸을 학대한 혐의로 체포된 아버지가 재판 받는 과정을 도스토옙스키는 폭로하고 있다.
폭로하는 분노의 어조는 특히 아동 학대 문제에서 더 높아진다. 그는 무엇보다 아동에게 고통을 가하는 자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했으며, 아동 학대자를 변호하는 변호사를 경멸했다. 도스토옙스키의 휴머니즘은 깊고도 본능적인 연민과 슬픔의 감정으로 나타나고 아동 학대에 대해 분노의 목소리를 발한다.

“남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한구석에 숨어, 손을 쥐어짜고, 작은 주먹으로 자기의 가슴을 치며 우는 아이를 보았는가?”

<작가의 일기>의 시사평론의 특성은 신랄한 폭로와 비극적 풍자성이다. 1873년의 <공상과 환상>에 나타난 도스토옙스키의 의도는 비극적 풍자이며, 악마적 이미지에 대한 폭로와 고발이었다. 도스토옙스키의 휴머니즘은 이후의 <작가의 일기> 전편을 통해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에 대한 폭로와 고발이 전제되어서 이루어지고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그의 소설 속에서 이미 박애주의자, 냉혹한 인간 탐구가, 또는 새로운 기독교의 예언자 등 수없이 많은 면모를 지닌 인격체로 자신을 드러냈었다. 그래서 특히 실존주의자, 심리학자, 종교적 신비주의자들에 의해 저마다 다른 목적으로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이 활용되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작가의 일기>는 광범위한 범주를 넘?들며 복잡한 양상을 띤 주제와 형식으로 독자 대부분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문제는 <작가의 일기>에 펼쳐진 그의 사상이 때로 극단적인 모순을 동시다발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이해의 방향을 잡기가 수월치 않다는 점이다. 모호함, 이중성, 모순, 대립, 갈등, 그리고 호전성까지 보이는 <작가의 일기>의 문맥은 그 어떤 평범한 해석도 거부하고 있다. 그것은 동질성이 붕괴되고 이질적인 요소들이 혼재되어 충돌·대립한 당대 러시아 역사와 무관치 않은 것이며, “만일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용납될 것이다”라고 한 ≪악령≫의 키릴로프로 표상되는, 세기말의 무신론적 종말에 대한 작가의 비극적 예감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일기>는 도스토옙스키가 실험적인 저널리즘 양식을 통해 자신의 미학적·철학적 견해를 밝히고자 한 특수한 장르 실험이었다. 특히 그는 당대 러시아 민중의 삶의 문제와 함께, 지식층의 주요 관심사였던 러시아와 유럽의 문제를 포함해서 정치 문제에 많은 장을 할애했다. 그는 자본주의 문명의 위악적·인위적 본질과 함께, 사회주의의 비인간적인 면모와 잔인성을 갈파했다. 사회주의의 러시아 전파로 말미암은 사회의 분열과 인간성 파괴에 대한 위기감을 강조하여 예언자적 면모를 드러낸 셈이다. 그러나 <작가의 일기> 속의 많은 사회 평론에서 도스토옙스키의 발언은 흔히 생경할 정도로 노골적인 어투를 보여준다.
특히 당대 유행을 좇아 유럽을 여행하고, 유럽을 동경하는 각계 귀족, 지식층 러시아인들의 심리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과 함께, 허영과 위선에 가득 찬 러시아 상류층에 대한 자괴감이 바탕을 이룬다. 특히 그의 관심은 늘 조국의 문제에 수렴되며, 러시아 지식층에 밀려드는 유럽 문명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견지한다. 작가는 이기적 특질이 만연한 유럽 사회는 분열되고 계층 상호 간에 호전성을 보이는 등 불안한 미래가 열려 있음을 끊임없이 지적하며, 이러한 질병의 러시아 침투를 경계한다. 그리고 로마 가톨릭 신앙과 사회주의 사상의 비극적 충돌까지 예견하고 있다. 19세기 후반 급격한 산업화·서구화 과정 속의 러시아 사회의 분열과 지나친 배금주의를 경계하는 한편, 그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꿈꾸는 혁명가들이 일으키는 갈등의 원인과 진행 과정, 그리고 그 비극적 전망까지 예언하고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미 ≪악령≫에서 당대 사회 문제를 다루며 극단적 무신론자들 혹은 사회주의를 꿈꾸는 급진주의자들의 비극적 형상과 그 몰락을 그려내었고 이로써 역사(러시아사와 세계사)에 대한 예지를 발휘했다. 그 결과 20세기에 태동한 소련 체제는 이 작품을 금서로 취급하기까지 하고 작가의 잔인한 천재성을 기우 어린 눈길로 터부시하기까지 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작가의 관념이 반사회주의, 반유물론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부정적 현실에 대한 도스토옙스키의 대안은 결국 선량한 러시아 민중이며 러시아 정교다. 그는 궁극적으로 러시아 민중과 정교에 기초한 새로운 유토피아 건설을 꿈꾼다. 물론 그것은 끊임없이 회의와 모순을 겪으며 도달해야 할 천국으로, 가난한 러시아에서 구현되어야 하며 그것은 그리스도의 뜻이기도 하다. 도스토옙스키는 그 근거를 가장 밑바닥 범죄자들을 포함하는 민중 속에서 찾고자 한다. 도스토옙스키는 그 범죄자들 이면의 심리와 그들 속에 숨겨진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려고 한다.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그는 시베리아 유형 중 만난 온갖 잡범(대부분 하층 계급 출신) 속에서 선량함, 신앙심 또는 긍정적 능력을 발견한 뒤 이를 힘 있는 필치로 이른바 “러시아 나로드(민중)”의 실상을 밝혀내고, 1876년 2월호 <작가의 일기>의 <농부 마레이> 이야기에서 민중을 통해 자신의 근원적 신뢰를 다시 확인하고 있다.
그들 러시아 민중은 거칠고 때로 방탕하지만 허위와 위선, 기만으로 점철된 관료 집단과 귀족 사회를 증오하고 부르주아 문화를 비웃고, 대신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동물까지 사랑하는 진정한 인류애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러시아 민중과 정교에 기초한 도스토옙스키의 새로운 유토피아 건설의 희망이 <작가의 일기>의 화자와 ‘역설가’의 직접·간접 화법으로 수없이 표명되고 있다. 그리고 그 희망은 현실적으로 ‘가난한 우리 러시아에, 황량한 우리 국토에’ 어떻게 이 ‘새로운 말을 할 사명을’ 줄 수 있는가의 의문에서 출발하고 곧 그것은 러시아는 ‘구유’ 속에서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가 돌아다닌 곳이기에 가능할 뿐, 경제적 영광과 칼, 그리고 과학의 힘으로는 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다.
시베리아 유형 생활을 통한 그의 ‘가난한 러시아’ 민중의 발견은 1860년대 이래 작가의 소설과 평론 속에 자신이 속한 지식층의 허위를 벗기는 기제가 되고, <작가의 일기>의 일관된 주요 테마가 된다. 간간이 등장하는 화자와 ‘역설가’의 논쟁을 비롯해 지식인과 민중에 대한 담화들의 근저에 도스토옙스키의 두 계층에 대한 부정과 긍정의 사유 체계와 사회학적 관점이 드러난 것이다.

표트르 대제가 서구화를 시도한 이래 소외되고 왜곡된 러시아 지식인들의 관념적 형상은 도스토옙스키에 의하면 철저히 부정되고 전환되어야 할 대상이다. 그 대신 러시아의 긍정적 본질을 간직한 민중에 의해서 이들 지식인과 전체 러시아는 희망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대립하는 이 두 계층이 화해와 중재를 통한 새로운 테제(These)를 구축하는 것이다. <작가의 일기> 1876년 2월호의 <민중에 대한 사랑에 대해, 민중과의 불가피한 제휴(О любви к народу, Необходимый контракт с народом)>에서 보여주는 민중에 대한 작가의 관념은 이중성을 띤다. 지식인이 먼저 민중 앞에 겸손과 참회의 태도를 보여야 하지만, 도스토옙스키는 민중에게도 개선을 요구한다. 그것은 도스토옙스키의 상대주의와 유보의 원칙이기도 하다.
도스토옙스키는 아직 민중과 인텔리겐치아의 제휴 가능성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그가 <작가의 일기> 속에 표명하는 ‘급진파와 보수파 또는 슬라브파와 서구파의 통일과 화해에 대한 열망,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은 대개 유보적이기도 하다. 소설가로서 그가 극화하고 과장하는 것은 19세기 러시아의 비극적 현실에 대한 철저한 작가적 인식의 소산일 뿐이다. 그는 베르댜예프의 말대로 니체나 키르케고르와 나란히 19세기에 존재한 비극의 계시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가 믿고 설파하고 싶었던 것은 비극적 현실이 극복될 것이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관념의 문제로 돌아가서 유토피아를 논하고, 범슬라브주의적인 새로운 러시아에 대한 희망을 피력하게 된다.

<작가의 일기>는 모순과 갈등이 첨예화된 사회적 분위기와 도스토옙스키 자신의 유형 후 사상적 전환점에서 쓰였다. 기존 모럴과 이념에 대한 회의와 부정이 팽배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 1870년대 러시아의 새로운 신세대 인텔리겐치아들은 기존 모럴과 이념의 전통 속에 존재하던 집단적, 추상적 요소들을 거부하고 새로운 개인적 관계와 사회 조직의 공식으로 대체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보수화의 길을 선택한 도스토옙스키에 의하면 인간의 본성과 역사 발전 법칙에도 어울리지 않는 지극히 부자연스런 현상이었다. 그는 이제 페트라솁스키 당원으로서 자신이 꿈꾸었던 ‘새로운’ 사회적 이상에 대해서 회의와 증오까지 서슴지 않는 견해를 밝힌다. 그는 모든 사람을 만족하게 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인위적인 이상적 사회 조직에 의한 유토피아도 ‘개미집(Муравейник)’에 불과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도스토옙스키에 의하면 인간은 개미나 벌이 될 수 없는 것이며, 신을 부정한 인간에 의한 인위적 사회 조직의 공식에 바탕을 둔 그 어떠한 유토피아 또는 수정궁의 철학도 부정되어야 한다. 특히 유럽과 러시아는 가톨릭, 프로테스탄티즘, 정교라는 3가지 이념이 바야흐로 서로 충돌하는 위기와 혼란의 시대를 맞고 있었다.

그러면 유럽은 어떤가? 그곳도 마찬가지 아닌가? 우리가 그렇게도 믿어왔던 이 모든 결합력이 비참한 신기루로 바뀌지 않았던가? 그곳의 분해와 분열은 러시아 이상으로 심각하지 않은가? 이것이 러시아인이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진정한 러시아인치고 유럽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작가의 일기> 중에서 <유럽의 미래는 불안하다>」

그는 이미 ≪겨울에 쓴 여름 인상기≫에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영국을 여행하며 얻은 인상을 담은 여행기를 진술했다. 그것은 <작가의 일기> 속 유럽 담론의 배경으로 특히 파리와 런던이 중심이 된, 풍경 묘사보다는 사회 비평적 글로서 유럽에 대한 환멸, 파리 시민들의 비속함, 런던의 자본주의, 부르주아에 대한 환멸과 창녀, 노동자들의 유흥에 대한 몰입 등 유럽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서술한 작품이다. 러시아 민족주의(슬라브주의)에 기대하는 작가의 사상적 근거가 마련된 글이다. ≪악령≫에서 보여준 작가의 정치적 보수성과 러시아 민족주의적 지향은 그의 시베리아 유형이나 유럽 체험과 관련된다.
이러한 작가의 이념적 변신의 이유는 1873년 창간호 <작가의 일기> 속에서 <옛 사람들>로 해명된다. 작가는 저널리즘을 시작하며 그의 젊은 시절에 이념적 스승이었으며, ≪가난한 사람들≫로 그를 등단시켰던 서구주의자 벨린스키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듯하다. 벨린스키의 가르침으로 서구 혁명사상을 학습하다 사형선고와 시베리아 유형을 겪은 도스토옙스키는 유형 후 자신의 과거 신념에 대한 착잡한 심정과 변신의 과정을 토로할 필요성을 절감한 듯하다. 과거의 공상적 이념의 분위기는 유형 후의 도스토옙스키에게 후회와 오욕이 섞인 굴욕적인 기분을 들게 하는 것이 되었다. ?는 이제 벨린스키를 극복하고 자신만의 리얼리즘과 휴머니즘을 러시아 민중에 기초한 그의 새로운 유토피아 미학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도스토옙스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절대적 관심의 대상은 독일 프로테스탄티즘보다는 가톨릭의 이념이다. 가톨릭의 대표적 국가는 프랑스이며 이 나라는 18세기 이래 러시아 정신의 문화 전반에 집중적으로 영향을 미친 나라이기도 하다. 도스토옙스키의 세계관 속에서, 사회주의 이념 또한 프랑스의 가톨릭 이념에 대한 반작용일 뿐이다. 도스토옙스키는 가톨릭과 사회주의라는 두 가지 부정적 유토피아를 비판하고 이것을 극복하는 길을 제3의 이념인 러시아 정교에서 찾아야 한다는 신념을 주장한다. 여기서 가톨릭과 사회주의는 부정되어야 할 유럽의 형이상학의 근본이며 러시아 정교가 그 대안이기 때문이다.
도스토옙스키는 그의 이념을 진전시키는 데 있어 미리 예정된 궁극적 상태의 조화를 구현하기 위한 갈등과 모순을 관통해 나아간다. 그는 자신의 유토피아를 제시하고자 <작가의 일기>에서 혁명적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과 민중으로부터 소외된 지식인들과 유럽의 가톨릭에 대해 비판한다. 그는 자신의 이상이야말로 당시 사회 해방을 위한 투쟁에 대한 대답으로, 이것이 인간의 정신적 요구와 함께 물질적 욕구까지 만족시켜 줄 것으로 생각했다.
도스토옙스키의 민족주의는 그 이념의 실천에서 주요 매개물은 러시아 민중과 그 반대 개념인 유럽의 존재다. 러시아에 대해 경멸과 은혜를 베푸는 듯한 유럽의 태도를 비난한 후, 그는 러시아의 대지와 민중에 기반을 둔 잠재적 가능성을 강조한다. 나아가 유럽보다 뒤처진 러시아의 민족의식 형성과 문화 덕분에, 러시아가 오히려 유럽보다 더 높은 형태의 정체성?정치와 이기주의를 극복하는?을 이룩할 수 있다고 강변(强辯)한다.

“위대한 민족이라면 누구나 그들이 오래도록 영속하려면 오로지 자기들에 의해, 자신을 통해서만 이 세계의 구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또한 믿어야 할 것이다. 또한 여러 민족에 앞장서서 조화의 코러스로 이들 민족을 자기와 일치시키고, 각자에게 주어진 궁극의 목표를 향해 이들을 인도하는 삶을 영위해야 함을 믿어야 할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민족주의는 곧 러시아 메시아니즘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메시아니즘 또한 당대의 모순과 갈등, 그리고 광기의 실천적 담화이기도 하며 그의 실험정신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는 모든 민족에게는 무엇보다 메시아니즘 경향이 있는 까닭에 민족의 정체성과 생명력을 유지하게 된다고 파악한다. 특히 그는 이러한 논리에 의해 서구주의자들까지 설득하려고 시도한다. 그는 ‘당신들’ 서구주의자들이 갖고 있는 코즈모폴리터니즘적 성향과 신념이 세계의 인류가 조화 속에 살게 할 근원이 될 것임을 인정하고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유럽이 러시아에 굴복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러시아가 유럽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변하기도 했다. 그 이유는 러시아가 유럽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에 의하면 러시아는 특수한 정체성과 역사 발전의 과정에 의해 세계사적 역할까지 맡고 있다. 러시아의 미래의 임무는 러시아 내부의 인텔리겐치아와 민중을 화해시키고, 나아가 유럽의 일원으로서 부패하고 분열된 유럽을 새로운 이상과 범세계적 형제애를 갖는 유럽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이른바 ‘전 인류적 성격’을 보유한 러시아의 세계사적 역할에 대한 과장된 그의 주장은 유럽의 운명에 대한 러시아의 결정권을 확보하게 한다.
그러나 곧바로 도스토옙스키는 유럽에 대해 상반된 태도를 동시에 보여주곤 한다. 그는 흔히 러시아인들이 그 누구보다 유럽을 사랑한다고 주장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조르주 상드의 죽음에 부쳐 <작가의 일기> 속에 장문의 추도문을 썼다. 그는 여기서 상드를 긍정적인 유럽인으로 칭송하고 있다. 그녀는 도스토옙스키에 의하면 러시아인들이 고향으로까지 여겨야 할 참된 유럽의 모범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유럽을 구해야 할 이유는 도스토옙스키의 관념 속에서 러시아인들은 슬라브주의자들까지 유럽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유럽을 안티테제로 놓고 그들의 유토피아 전반에 대한 모순과 갈등을 해석하는 데서 출발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유럽과 서구 사상, 문화를 극복하는 데 푸시킨을 긍정적인 기제로, 톨스토이를 비판적 기제로 활용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작가의 일기> 1880년 8월 호 2장 <푸시킨>에서 러시아가 유럽의 모순을 치유하고 결합시키는 역할을 할 것임을 역설한다. 러시아가 지난 ‘2세기 동안 유럽에 봉사한 것’은 정치가들이 무능했던 데에 그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러시아인들이 유럽의 여러 민족을 그토록 사랑했던 것이 이유라고 강변한다. 결국, 러시아가 세계 모든 민족을 그리스도의 복음에 따라 ‘완전한 형제적 합의’로 이끌어내고 말 것임을 확인한다. 청중들의 열광적인 환호와 히스테리를 불러일으킨 이 푸시킨 동상 제막식 연설은 러시아의 유럽에 대한 열등감을 일거에 해소하는 듯했고, 특히 제막식에 참여한 투르게네프와 악사코프로 대표되는 서구파와 슬라브파의 일시적 화해 분위기를 연출했다.

도스토옙스키의 새로운 유토피아의 근거가 되는 민족주의는 그의 다른 주요 관념과 마찬가지로 모순을 내재하고 있다. 그가 <작가의 일기> 속에서 전 세계의 화합과 조화를 주장하면서도 러시아의 메시아니즘에 의해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의 아시아계 타민족과 그 국가의 병합까지 주장하는 전투적 쇼비니즘으로까지 치닫는 부분에서 그 모순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의 모든 모순이 그렇듯이 그것은 작가 자신이 경험하는 긍정을 위한 부정의 단계에서 표상된 역설적 신념의 과잉 노출 또는 다성악적 발언이기도 하다.
<작가의 일기>는 첫 출간 이후 회를 거듭할수록 주로 사회적 이슈의 숨겨진 의미에 대한 해석을 제공하는 주요 매체가 되어 작가를 시대의 선지자 또는 예언자로 만들었으며, 작가 자신에게 자신감을 불러일으켜 목소리의 톤을 높이게 했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대화적 기법에 의한 ≪우스운 인간의 꿈≫, ≪보보크≫, ≪온순한 여자≫와 같은 순문학 작품을 이 <작가의 일기> 속에 포함시키는가 하면, 정치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한 평론 속에 심오한 통찰과 강변을 구사했다. 그리하여 수많은 독자에게서 존경과 찬사, 때로는 격렬한 반발과 비판이 담긴 편지를 받고, 이에 대한 답변과 논쟁을 다시 이 <작가의 일기>에 게재해서 독자와 대화의 장을 열어갔다. 도스토옙스키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 나아가 시대를 이끌고자 한 것이며, 선구적 소설 미학과 함께 자신의 주요 이데올로기와 형이상학적 사유 체계를 저널리즘 속에서 특이한 문체로 형상화하고 그것을 전파하는 데도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예술 미학, 정치, 역사, 사회, 교육 등 주요 담론별 주요 작품, 또는 평론, 소품 등을 초기(1873)와 중기(1876∼1877), 후기(1881) 작품 중심으로 가장 중요한 그의 이념과 미학, 문제가 되는 평론, 그리고 현대적 감각에 맞는 글을 꼭지별로 발췌했다.

<작가의 일기>는 원래 1873년 <그라즈다닌(시민)>지에 발표한 16개 평론 또는 시론들, 1876∼1877년에 간행한 월간 <작가의 일기>, 1880년과 1881년 한 번씩 발간한 <작가의 일기>를 미망인 안나 도스토옙스카야가 모아 혁명 전판 전집에 포함시킨 것이다.

본 번역의 원전은 페테르부르크의 구소련 과학아카데미에서 1972∼1990년간에 발간한 ≪도스토옙스키 전집 (Ф. М. Достоевский, Полное собрание сочинений)≫에 포함되어 있으며, 이 전집 속의 <작가의 일기> 부분은 1980년부터 1984년까지 4년간 출판되었다. <작가의 일기>는 이 전집의 21권부터 27권까지에 실려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작가의 일기> 원문과 해설 속의 도스토옙스키 저술의 원문은 위의 ≪도스토옙스키 전집 총 30권≫에서 발췌한 것이며, 옮긴이의 ≪도스토옙스키의 유럽 인상기≫(서울, 푸른숲, 1999)와 이종진 번역의 ≪신과 인간의 비극≫(서울, 문학세계사, 1982)을 일부 참조했다. 영문 번역본은 ≪Dostoievsky, F.M., The Diary of a Writer≫(trans. Boris Brasol, Santa Barbara and Salt Lake City: Peregrine Smith, Inc., 1979)를 참조했다.

끝으로 많은 도움을 준 가족과 배재대 제자들과 지만지 팀에게 감사를 드린다. 특히 인내력이 대단한 지만지 정경아 편집장님에게 존경을 표하며, 돌아가신 이철 교수님 영전에 이 책을 바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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