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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 4 5 . . . 23 옮긴이의 말 |
Nick Sharra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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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와 칼은 어릴 때부터 한동네에서 자란 단짝이다. 다른 아이들이 시끌벅적하게 몰려다닐 때 실비와 칼은 집이나 학교에서 단둘이 소곤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실비와 칼은 또래 아이들과는 사뭇 다르다. 실비는 초등학생으로 보일 만큼 발육이 늦고 열다섯 살이 되도록 아직 초경도 맞지 않았다. 칼은 유리 공예품을 모으는 남다른 취미를 가지고 있고 소년 합창단을 연상시킬 만큼 곱상한 얼굴을 하고 있다. 실비와 칼은 실비아나 여왕과 카를로 왕이 나오는 ‘유리 세계 연대기’라는 판타지를 몇 해째 함께 쓰고 있고, 새 이야기를 지으며 역할 놀이도 한다. 다른 아이들이 유치한 괴짜라고 비웃어도 둘은 상관하지 않는다. 둘이 함께할 수만 있다면 늘 행복하기만 할 테니까.
하지만 실비와 칼이 다른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실비는 칼이 없는 학교가 지겹기만 한데, 칼은 새 학교와 새 친구들에게 꽤 적응을 잘하는 눈치다. 게다가 칼은 실비가 학교 이야기를 물을 때마다 귀찮은 티를 내기 일쑤고, 유리 세계 연대기에도 예전만큼 열의를 보이지 않는다. 내심 칼과 결혼하리라 철석같이 믿어 왔던 실비로서는 칼의 변화가 여간 섭섭하지 않다. 실비는 여전히 칼 때문에 일희일비하면서도 새 친구 미란다와 친해진다. 자신과는 달리 몸도 마음도 놀라울 만큼 조숙한 미란다의 대담한 매력에 저도 몰래 이끌린 것이다. 그런데 미란다는 실비가 아니라 칼에게 더 관심이 있는 모양인지 틈만 나면 실비를 부추겨서 칼을 불러내려고 든다. 칼의 태도도 심상찮다. 딱히 미란다에게 관심이 있지도 않으면서 같이 놀자고 할 때마다 기꺼이 따라나선다. 게다가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학교 축구 선수 폴을 옆에 달고서. 넷이 유리 공예품 전시회장에 간 날, 기묘한 사각 관계의 진실이 마침내 밝혀진다. 칼이 사랑한 것은 실비도 미란다도 아니라 폴이었던 것이다. 칼은 전시회장 구석에서 폴과 키스를 나누지만, 이내 곧 폴이 불같이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가 버린다. 게다가 다음 날 학교에 갔더니 폴이 아이들이 바글거리는 자리에서 ‘칼이 유혹하려고 했다’는 둥 ‘역겹다’는 둥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댄다. 아이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온 칼은 폴과 닮은 소년상을 비롯해 애지중지하던 유리 공예품을 부수다가 피투성이가 된다. 다음 날 칼은 손에 붕대를 감은 채 학교로 향한다. 실비와 미란다는 아이들에게 조롱당할 칼이 걱정되어 하교 시간에 맞춰서 칼의 학교로 간다. 아니나 다를까 칼 뒤에서 아이들이 욕을 퍼부으며 따라오고 폴도 그 무리에 끼어 있다. 미란다는 자기가 칼의 여자 친구라고 소리치며 보란 듯이 칼에게 키스를 퍼붓는다. 무리 중 하나가 실비는 누구냐고 묻자 이번엔 칼이 대답한다. 실비도 자기 여자 친구라고. 말문이 막힌 아이들을 뒤로 한 채, 실비와 칼, 미란다는 손을 잡고 교문을 나선다. 집으로 돌아온 실비와 칼은 산산조각 난 칼의 수집품을 정리하러 유리 오두막으로 향한다. 실비가 말한다. 이제 자기 둘은 그럴 수 없지만 카를로 왕과 실비아나 여왕만큼은 영원히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 거라고. 그러자 칼이 영원히 사랑하겠다며 실비 입술에 키스한다. 실비는 그토록 바랐던 사랑의 키스는 아니지만 이것 또한 두 번째로 좋은 키스라고 속으로 되뇐다. 첫사랑은 그렇게 산산조각이 났지만, 이제 사랑 대신 우정이 새롭게 시작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