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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열며
시간의 주름 창덕궁은 생각한다 살구꽃 그림자 초경 전서구(傳書鳩) 황로 상추밭 시간의 그늘 눈눈눈 서출지 김개동 씨 돌젖 퐁당퐁당, 탱탱한 미래 낙산 새 세상 가만히 불러 보는 미륵사지 산목련 나는 누구의 돌멩이에 끼워진 속눈썹이었나 건듯건듯 혜화동 성묘 가는 길 그믐 설미재 정배 분교 중독 기우뚱 원서헌에서 신화를 낚다 엄지의 우울 연분 하관 곡우 우물 승천 사람만이 희망인가 76 78 82 86 92 96 100 106 110 116 120 122 124 128 132 134 138 142 대밭 수덕사 연등 문턱 겨울 지하도 모정 임실역 붉은 땅 폐가 봄비 청령포 석류 정우영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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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은 생각한다
내일을 향해 나는 낡아 간다. 틀림없다, 미래를 향해 손 벌릴수록 나는 하염없이 낡아 간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어김없이 낡는다. 새 생각일수록 흐려지는 것이다. 온전한 생각은 언제나 내 뒤에 있다. 뒤로 뒤로 더 멀리 갈수록 새롭다. 과거에 붙잡힌 내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라. 얼마나 발랄하고 아름다운가. 과거로 흘러가는 내 생각은, 참을 수 없이 활발한 원색으로 빛난다. 미래에는 오지 않는 미끈한 즐거움들이 머릿속을 신들린 듯 뛰어다닌다. 생각을 내일의 척후병으로 내보내지 마라. 좌절과 절망에 붙잡히고 만다. 차라리 내일에서 생각을 떼 내 버려라. 단언컨대 희망은 등 뒤에 있고 사라진 기억들이 나를 이끌어 간다. 그러니 오늘 여기를 사는 나는, 어제의 나보다 얼마나 부질없는가. 시집을 열며 사각거리는 펜촉의 움직임 속에 고이는 고요를 오랜만에 맛본다. 심심하지만 깊다. 이 맛,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 고요의 이 맛으로 내 설익은 시편들을 감추고 싶다. 정우영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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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만드는지식 큰글씨책>은 약시나 노안으로 독서에 어려움을 겪는 독자들을 위해 만든 책입니다. 지식을만드는지식의 모든 책은 큰글씨책으로 제작됩니다.
새로운 시의 시대를 연다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한국 대표 시인의 육필시집을 출간합니다. 한국 대표 시인의 육필시집은 시인이 손으로 직접 써서 만든 시집입니다. 시인이 자신의 대표작을 엄선해 만든 시집입니다. 시인과 독자가 시심을 주고받으며 공유하는 시집입니다. 한국 대표 시인의 육필시집은 현재 한국 시단의 움직임을 주도하는, 한국의 대표적 시인들이 자신의 대표시를 손수 골라 펜으로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눌러 쓴 시집들입니다. 그 가운데는 이미 작고하셔서 유필이 된 김춘수, 김영태, 정공채, 박명용 시인의 시집도 있습니다. 시인들조차 대부분이 원고를 컴퓨터로 작성하는 현실에서 시인들의 글씨를 통해 시를 보여 주려고 하는 것은, 시인들의 영혼이 담긴 글씨에서 시를 쓰는 과정에서의 시인의 고뇌, 땀과 노력을 더 또렷하게 느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한국 대표 시인의 육필시집은 생활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시를 다시 생활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에서 기획한 것입니다. 시는 어렵고 고상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쉽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것으로 느끼게 함으로써 “시의 시대는 갔다”는 비관론을 떨치고 새로운 ‘시의 시대’를 열고자 합니다. 시인이 직접 골라 손으로 쓴 시 한국 대표 시인의 육필시집은 시인들이 지금까지 쓴 자신의 시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시들을 골라 A4용지에 손으로 직접 썼습니다. 말하자면 시인의 시선집입니다. 어떤 시인은 만년필로, 어떤 시인은 볼펜으로, 어떤 시인은 붓으로, 또 어떤 시인은 연필로 썼습니다. 시에 그림을 그려 넣기도 했습니다. 시인들의 글씨는 천차만별입니다. 또박또박한 글씨, 삐뚤빼뚤한 글씨, 기러기가 날아가듯 흘린 글씨, 동글동글한 글씨, 길쭉길쭉한 글씨, 깨알 같은 글씨… 온갖 글씨들이 다 있습니다. 그 글씨에는 멋있고 잘 쓴 글씨, 못나고 보기 싫은 글씨라는 구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인들의 혼이고 마음이고 시심이고 일생입니다. 시인들은 육필시집을 출간하는 소회를 책머리에 역시 육필로 적었습니다. 육필시집을 마치 자신의 분신처럼 생각하는 시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한국 대표 시인의 육필시집은 시인이 쓴 육필을 최대한 살린다는 것을 디자인 콘셉트로 삼았습니다. 시인의 육필 이외에 그 어떤 장식도 없습니다. 틀리게 쓴 글씨를 고친 흔적도 그대로 두었습니다. 간혹 알아보기 힘든 글씨들이 있는데, 독자들이 이를 찾아볼 수 있도록 맞은편 페이지에 활자를 함께 넣어 주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