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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줘! 제발 도와줘!”
또다시 그 목소리가 들렸어요. 깜짝 놀란 유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요. 체육관에서 들었던 목소리와 똑같았어요. 그런데 그때보다 지금은 훨씬 또렷이 들렸어요. 귓가에서가 아니라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였어요. 유키는 베란다로 나가 보았어요. 유키는 아파트 15층에 살고 있어요. 그래서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보여요. 바로 밑에 보이는 학교는 벌써 저녁 어둠에 싸여 깜깜했어요.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이 환하게 밝아졌어요. 학교 건물이 금빛으로 반짝이는 거예요. 따스하고 기분 좋은 빛이었어요. 그러고는 학교 건물이 부르르 떨었어요. 목욕을 하고 난 강아지가 물기를 터는 것처럼 말이에요. 하지만 금방 멈췄어요. 빛도 사라지더니 학교는 다시 깜깜해졌어요. 학교 건물도 확실히 보이지 않고 학교가 마치 울창한 산속에 둘러싸여 있는 것 같았어요. “도와줘!” 또다시 목소리가 들렸어요. --- pp.9~10 “학교도 마찬가지야. 이 학교에는 항상 몇 백 명의 학생이 있어.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어.” 그렇게 말하면서 미와는 유키를 말끄러미 쳐다보았어요. “아까 그 아이는 유령이 아니야. 체육관에서 놀던 아이들도 유령이 아니라고. 아마 밤이 되면 학교가 옛날 일들을 생각하는 걸 거야. 아까 그 아이들은 이 학교가 옛 생각을 하거나, 꿈을 꿔서 나타난 거야.” 유키는 미와가 자기를 놀리는 것인가 생각했지만 미와는 아주 진지한 얼굴이었어요. “학교가 꿈을 꾸다니 말도 안 돼.” “그럼 유령이라면 말이 된다는 거야?” “그건 아니지만. 유령 같은 건 없다고 엄마가 늘 말씀하셨어!” 갑자기 미와가 깔깔거리며 웃었어요. “웃어서 미안해. 그런데 너무 이상해서.” 유키는 처음에 미와가 왜 웃는지 몰랐어요. 하지만 금방 깨달았어요. 엄마는 유령은 없다고 하고, 학교가 꿈을 꾸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하지만 유키는 자기 눈으로 확실히 보았어요. “그럼 아까 그 아이들은…….” “실은 나도 잘 몰라.” --- pp.30~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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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학교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
학교는 아이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 중 하나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우고 뛰어놀고 꿈을 키워 나가며 성장하고, 또한 이곳에서 좌절하거나 상처입고 눈물 흘리기도 한다. 수많은 아이들의 슬픔과 기쁨, 좌절과 환희가 교차하는 공간인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이야기는 처음에는 마치 스릴러처럼 흥미진진하게 시작되다가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따뜻한 감동을 안겨 주는 서정적인 모험담이다. 어느 여름날 밤, 3학년 유키는 도와 달라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다. 학교 쪽에서 들리는 게 분명한 이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유키는 한밤중에 학교로 달려간다. 한밤중, 그것도 여름방학이 시작된 학교라면 텅 비어 있는 게 당연할 텐데 어쩐 일인지 학교는 아이들로 와글와글하다. 학교가 유령으로 가득 찼다고 생각해 공포로 얼어붙은 유키 앞에 ‘미와’라는 여자아이가 나타난다. 학교가 꾸는 꿈속에 갇힌 소년 미와는 학교에 있는 아이들이 유령이 아니라 옛날 이 학교를 다녔던 아이들이며, 학교가 ‘옛 추억’을 꿈꾸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즉, 미와와 유키는 학교가 꾸는 꿈속에 갇힌 것이며, 그 꿈속에서 빠져나가려면 학교에서 아이들이 겪은 슬픈 기억들을 달래어 줘야 한다는 것이다. 미와의 말처럼 학교 곳곳에 슬프고 힘든 기억을 가진 아이들의 환영이 있다. 이어달리기에서 배턴을 놓쳐 지고 만 아이, 아무도 웃어 주지 않는 썰렁한 농담 때문에 속상한 아이, 이름 때문에 놀림 받고 상처 받은 아이……. 얼핏 보면 사소한 일들이지만, 아이들이 느꼈던 슬픔과 괴로움은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도 아직도 남아 학교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유키와 미와는 그런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함께 울고 웃으며 아이들의 아픈 기억을 달래 주고 그 기억 하나하나를 빛나는 보석으로 바꾼다. 그리고 그 보석을 교장실에 있는 커다란 시계의 일그러진 숫자판에 끼운다. 보석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시계의 숫자판은 점점 본모습을 되찾고 유키와 미와가 집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높아져 가는 듯하다. 하지만 학교는 머나먼 우주를 떠돌기 시작하고 유키는 집에 영영 돌아가지 못하는 게 아닐까 불안에 휩싸인다. 아직 유키에게 도와 달라고 말했던 누군가를 만나 그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눈물과 웃음이 함께 배어 있는 공간, 학교 처음에 유키를 학교로 부른 것은 누굴까? 도와 달라는 여자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유키는 학교로 달려왔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미와가 아니었다. 그것은 미와보다도 더 어린 ‘와카’라는 여자아이였다. 와카와 미와, 어딘가 닮은 듯하면서도 다른 두 아이는 유키와 함께 학교 곳곳에 남아 있는 아이들의 아픈 기억을 달래 준다. 하지만 뜻밖의 복병을 만났으니, 바로 늦은 시간까지 학교에 남은 교장 선생님이다. 교장 선생님에게 들키면 영영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미와의 말에 겁을 먹은 유키는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교장 선생님은 마치 유키와 다른 시공간에 있는 듯 유키를 보고도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교장 선생님은 어째서 이런 늦은 시간에 학교에 있는 걸까? 게다가 늘 엄격하고 빈틈없던 교장 선생님이 어쩐지 꿈 많고 발랄한 어린 소녀 미와와 자꾸 겹쳐 보이기 시작한다. 혹시 미와는 어린 시절 교장 선생님이 아닐까? 교장 선생님은 도대체 어떤 안타까운 기억이 있기에 학교의 꿈속에 남은 걸까? 수많은 아이들의 눈물과 웃음이 배어 있는 학교는 이 이야기처럼 그 자체로 이미 살아 숨 쉬는 공간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학교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따뜻한 공감을, 또 학교를 떠난 어른들에게도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서정적인 이야기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