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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문학의 시집(실천시선)

책소개

목차

제1부
바오밥
오, 아프리카
뉴욕 브롱크스 동물원―오타 벵가를 기리며
메르세데스 소사
마다가스카르
대포 속의 비둘기
까만 오닉스
신경쇠약
신경증을 앓는 나무
소나 닭이나
목줄

제2부
반신욕
탈의실에서
마트로시카
돼지국밥을 먹으며
생선
돼지머리
부의(賻儀)
신도림역
좋겠다
유랑가족
강아지와 점쟁이

제3부
누나
마지막 김치
흙맛
불맛
최무룡
성묘 날, 봉분
아버지의 입김
제삿밥
어머니의 별자리
내 마음의 MP3

제4부
간(間)
간(間) 3
간(間) 5
간(間) 6
간(間) 7
간(間) 11
간(間) 13
간(間) 14
간(間) 16
네싸우왈꼬요틀
방충망에 매달린 물방울
소금쟁이
유리의 바다
그날―나의 하늘을 위해

해설 이성혁
시인의 말

저자 소개 1

1986년 멕시코 문예지 〈마침표El Punto〉와 〈마른 잉크La Tinta Seca〉를 통해 등단했다. 멕시코국립대학 출판부에서 시집 『텅 빈 거울El espejo vacio』을 출판하고 중남미 작가가 되었다. 국내에서는 오월문학상 수상과 함께 〈현대문학〉에 시 「들꽃」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작품으로는 『꽃다지』 『각하, 죽은 듯이 살겠습니다』 『여자 목숨으로 사는 남자』 『뭄Sr. Mum』 『가위주먹』 등의 장편소설과 『슬프다 할 뻔했다』 『불맛』 『나 기꺼이 막차를 놓치리』 등의 국내시집이 있다. 『하늘보다 높은 땅La tierra mas alta q
1986년 멕시코 문예지 〈마침표El Punto〉와 〈마른 잉크La Tinta Seca〉를 통해 등단했다. 멕시코국립대학 출판부에서 시집 『텅 빈 거울El espejo vacio』을 출판하고 중남미 작가가 되었다.
국내에서는 오월문학상 수상과 함께 〈현대문학〉에 시 「들꽃」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작품으로는 『꽃다지』 『각하, 죽은 듯이 살겠습니다』 『여자 목숨으로 사는 남자』 『뭄Sr. Mum』 『가위주먹』 등의 장편소설과 『슬프다 할 뻔했다』 『불맛』 『나 기꺼이 막차를 놓치리』 등의 국내시집이 있다. 『하늘보다 높은 땅La tierra mas alta que el cielo』 『팽팽한 줄 위를 걷기Caminar sobre la cuerda tirante』 『텅 빈 거울El espejo vacio』 등의 스페인어 시집과 기타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 『체의 녹색 노트』 『바람의 아르테미시아』 등 문학 관련 저서 40여 권을 썻다.
UNAM동인상, 멕시코문협특별상, 브라질 ALPAS ⅩⅩⅠ 라틴시인상 등을 수상했다. 2008년과 2009년 연속으로 aBrace 중남미시인상 후보에 올랐다. 저서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이 젊은 비평가들에 의해 ‘2009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된 바 있으며, 2011년 대산번역지원과 2012년 제1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 창작지원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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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12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141쪽 | 250g | 148*210*20mm
ISBN13
9788939221833

책 속으로

바오밥

열대 아프리카의 나무가
온대의 내 가난한 정원에 뿌릴 내릴까 싶다가

신에 의해 최초로 만들어진 나무
수명이 오천 년이나 된다는 나무를 심는 일은
명주실 한 타래를 위해
끊어진 누에고치에 새삼 숨을 불어넣는 일과
깨져버린 꿈을 잇기 위해 삼가 눈을 감는 일
문드러져 사라져버린 지문을 다시 새기고
흐릿해진 손금에 새로이 먹을 먹이는 일

무엇보다 뵌 적 없는 조상에게
엄숙히 제(祭)를 드리는 일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잠자는 이마에 듣는 빗방울처럼 뚝뚝, 떨어져
오늘 그 바오밥나무 씨앗을 묻기에 이른다

--- p.11 중에서


아버지의 입김

아버진, 도장밥 없이도 인감을 자알 찍으셨다
훅 부는 입김에 지난날 인주 찌꺼기가 살살 녹아
당신의 이름 석 자 요술처럼 그려지면
마치 실험에 성공한 연금술사처럼 흡족한
웃음을 지으셨다
열 마지기 정구지밭을 팔 때도 그랬고
살던 집에 신작로가 날 때도 그랬다
도무지 붉은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뿔도장도
이 방 저 방 막 굴러다니던 새까만 나무도장도
후후,
아버지의 입김 앞에선 모두 다 생피를 흘렸었다

--- p.78 중에서


유리의 바다

1
반송 우편처럼 돌아온 해변, 편지봉투 위의 스탬프 자국 같은 발자국들을 세본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아니 한 사람이 수없이 지나갔다 발자국들이 자살을 위해 벗어놓은 신발들처럼 가지런하다

--- p.110 중에서


간(間) 13

다리가 길어
머리가 하늘에 닿는 새.
큰곰자리, 작은곰자리, 기린자리
발을 멈추면 쿵쿵쿵,
별자리와 충돌할 새.
날 필요 없지만
긴 다릴 접기 위해
날개가 필요한 새.
부리로 삼킨 별똥별이
발등의 각질이 되기까지
천 년이 더 걸릴 새.

--- p.98 중에서


간(間) 14

파슈파티나트(Pashupatinath) 사원을 끼고 도는 바그마티 강, 그 다리 옆 화장터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산 자의 행렬, 앞의 주검을 태우던 장작이 강 위를 부유하면 뒤의 산 자는 자신의 몸을 태우기 위해 타다 만 젖은 장작을 건져내니,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는 마른 장작과 젖은 장작 반 개비 차이일 뿐.

--- p.100 중에서

출판사 리뷰

구광렬 시인은 국내에서뿐 아니라 스페인어 문화권에서도 시작활동을 펼쳐온 독특한 시력(詩歷)의 소유자이다. 멕시코 문협 특별상·브라질 ALPAS XXI 등 스페인어권 시단의 권위 있는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그가 한국에서 여섯 번째 시집을 발간했다. 시인은 신작 시집 『불맛』에서 낯설고도 인상적인 조감도를 그려낸다. “깨져버린 꿈”과 “문드러져 사라져버린 지문”으로 표상되는 참담한 지구 현실에서 그는 우리 가슴속에 “가난한 정원”의 기억과 “신에 의해 최초로 만들어진 나무”(「바오밥」)의 씨앗을 심는다.

“단순성의 의미심장함”,
이중국어의 세계를 종횡무진 횡단하는 자유인의 독특한 시세계

구광렬 시인은 모국어인 한국어 외에 스페인어로도 글을 쓰는 이중 언어 글쓰기를 해왔다. 스페인어 문화권에서 여러 차례 문학상을 수상하고, 남미 가수의 노랫말이 될 정도로 현지 문단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그의 시는 한국에서는 그리 큰 관심을 얻지 못했다.
이에 관해 해설을 쓴 이성혁 문학평론가는 근래의 한국시에서 보기 어려운 “단순성의 의미심장함”을 들어 구광렬 시를 낯설게 느끼도록 하는 주 요인으로 추론한다. 그리고 이번 시집에서 그러한 낯선 느낌은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고 말한다.
『불맛』은 비판적 현실에 대한 날 선 감성과 두 언어 사이를 자유롭게 횡단하는 시인의 독특한 사유가 빚어낸 낯선 시집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불맛』의 시들은 오히려 가장 보편적인 체험의 현실에서 출발하고 있다. 「오, 아프리카」에서 신문으로 보는 세상은 한국의 역사가 건너온 시간이고, 「탈의실에서」에서 TV로 목격하는 악다구니의 현장은 바로 탈의실을 벗어나면 살아가게 될 세상이다. 때로는 보편성을 넘어 모든 인간 정신의 심층에 근접하는 원형적 세계관에 기반한 사유를 만나게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마다가스카르’나 ‘메르세데스 소사’는 전형적인 남미의 소재들처럼 보이지만 이 이름들을 제목으로 삼은 구광렬의 시들은 세상의 한 단면에 대한 통시적이고 의미심장한 성찰을 담고 있는 동시에 ‘단순성’을 살린 시구들-“구석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건만 세상은 구석을 향해 닫혀 있다는 걸”(「메르세데스 소사」), “인류 최초의 음악은 비명이었다”(「마다가스카르」), “하늘에도 땅에도 천국이 없음을 눈치 챈 새”(「간(間) 13」)-로 거듭나 감성적 충격을 불러온다.
특히 이 시집을 여는 서시 격의 「바오밥」에서 그려낸 거대한 ‘세계수(世界樹)’의 형상은 시인의 신화적인 상상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예로 볼 수 있을 듯하다. 세계수는 세계 유사 신화에서 거대하고도 풍요한 생명원리를 품은 ‘우주의 나무’로 존재해왔다. 이 신화적인 모티프는 구광렬의 언어를 통해 비로소 일상의 언어로 성화하고 있는데, 신화의 나무들이 공통적으로 평면의 도화지에 그린 그림처럼 수직적이고 수평적인 위계질서를 함축하고 있었다면, 구광렬 시인이 입체적으로 그려낸 바오밥나무는 우애로운 교감의 원리를 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북반구와 남반구가 대립적이고 이질적인 세계가 아닌 다정한 이웃으로 그려진 시 속에서 “가지보다 더 가지 닮은 나무의 뿌리는/지구별의 한복판을 뚫고 불쑥 반대편 이웃 정원의 나뭇가지로 솟아/남반구 북반구 대척점 사람들/모두 한나무에서 움튼 열매를” 나누어 먹고 “한나무 한가족”을 이룬다.

파타고니아의 목동을 꿈꾸는 시인의 눈에 비친 세계의 작고 여린 ‘씨앗’들
한편, 시인의 시적 상상력은 인간들만의 세상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시심 한켠에는 늘 인간 아닌 존재들이 뿌리내리고 있다. “동물을 유난히 좋아해 일찍이 파타고니아에서 목동생활” 꿈꾸었던 저자 약력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가 관심을 갖는 대상은 인간과 함께 공존하는 동물에까지 확장된다. “독수리 등 맹금류로부터 보호받기 위한 일종의 보험계약”을 체결하여 “위장된 평화”(「소나 닭이나」)를 보장받는 가축들의 이야기나 “왜, 이리 미안할까 술에 전 내 창자를 풀기 위해 네 창자를 씹는 일이”(「돼지국밥을 먹으며」)라고 고백할 때 우리는 이 시인이 인간 중심의 사유방식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여, 구광렬 시의 “혼종성(이질적 문화의 혼합 및 자연과 인간의 혼합)과 모더니즘적인 날카로움”의 결합은 근래 한국시의 주류를 이루어온 분열적 시작(詩作)과는 궤를 달리한다. 더불어 평범하고 단순한 구문은 독자들이 근래 시에서 느끼는 시 자체의 난해함, 시인과의 단절감을 일부 해소시켜줄 수 있을 만하다. 물론, 구광렬의 모든 시가 난해성을 띄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구광렬 시에서 느껴지는 난해함은 오히려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한국의 정서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중남미의 정서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시인의 세계는 독자를 더 넓은 세상으로 인도한다.

추천평

얼음이 녹는다. 물이 언다. 이 반복을 견뎌내는 것이 언어다. 구광렬의 언어는 궁녀의 춤이 아니다. 누구의 투창이다. ‘인류 최초의 음악은 비명이다’의 이쪽에서 비명이 음악으로 돌변한다. 구광렬의 언어는 하나 둘 셋으로 계산된 언어가 아니다. 결연한 추락이다. 구광렬의 언어는 짜 맞춘 내재율의 언어가 아니다. 던져진 날것이 스스로 의미를 내보인다. 구광렬의 언어는 언어관습을 넘어선 경계 탈출이다. 심지어 가족 서사도 민속적이기보다 인류적이다. 현대는 고대의 결핍이 아니다. 끝내 구광렬은 화자를 과장하지 않는다. 자유는 윤리일까?
고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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