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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비디오 예술로 세계 정상에 오른 백남준
백남준 백남준의 재능 지도 만화로 보는 백남준 1부 유소년기 어깨 너머로 배운 피아노 신재덕 선생님 마르크스주의자 아르놀트 쇤베르크 2부 청년기 도쿄 대학 미학과 존 케이지의 영향 플럭서스 퍼포먼스 3부 성년기 비디오 예술의 탄생 샬럿 무어맨과의 만남 TV 부처 4부 노년기 굿모닝 미스터 오웰! 호랑이는 살아 있다 구겐하임 전시회 백남준 따라 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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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예술의 창시자 백남준
피아노 소리에 반한 소년, 비디오 예술을 개척하다 1930년대는 한국에서 피아노라는 악기를 구경조차 하기 힘든 시기였다. 그러나 백남준의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사업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고, 덕분에 백남준과 가족들은 많은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특히 백남준은 큰누나가 치는 피아노 소리에 반해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사업가가 되기를 원했고, 음악은 여자들이나 하는 것이라며 반대했다. 중학생이 된 소년은 아버지 몰래 누나의 친구인 신재덕 선생님으로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백남준의 음악적 재능과 열정에 깜짝 놀란 선생님은 백남준이 예술가의 길을 걷도록 북돋워 준다. 일본에서 대학을 마친 뒤 백남준은 다시 독일로 건너가 작곡을 배우는 한편 존 케이지를 만나 ‘플럭서스 예술’을 선보인다. 콘서트에서 피아노를 도끼로 부수고,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연주하다 괴성을 지르고, 갑자기 관객의 넥타이를 가위로 싹둑 자르는 등 백남준의 예술행위는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백남준을 ‘동양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라고 불렀다. 새로운 것, 이전에 없던 것을 하겠다 무대를 미국으로 옮긴 백남준은 ‘나만 할 수 있는 예술’을 찾다가 텔레비전과 비디오 카메라에 주목한다. 여태껏 예술가들에게 주목 받지 못했지만 이미 대중의 생활 속으로 파고든 미디어를 이용해 최초로 비디오 예술을 시도했다. ‘TV부처’, ‘TV첼로’, ‘프렉탈 거북선’, ‘야곱의 사다리’와 같은 비디오 설치 작품과 ‘굿모닝 미스터 오웰’과 같은 위성 TV쇼를 통해 그는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전혀 접하지 못한 새로운 예술을 선보였다. 백남준은 2006년 미국 땅에서 숨을 거두지만, 이미 세계적인 예술가로 인정을 받았다. 1996년 독일 〈포쿠스〉지가 선정한 ‘올해의 100대 예술가’에 뽑혔고, 1997년 독일 〈카피탈〉이 선정한 ‘세계의 작가 100인’에 올랐으며, 2000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는 백남준 회고전이 열렸다. 동양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가 현대미술의 거장이 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