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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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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는 거지?”
그것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렸다. 나도 모르게 부르르 떨고 말았다. “잘 생각했어.” 웃음기 묻은 목소리였다. “돌아오지 마. 내가 허락하기 전에는.” 그것의 손길이 이마에 닿았다. “이건, 선물이야.” 나는 더욱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보였다. 아무리 감아도 보였다. 처음엔 시커먼 그림자가 벽에서 일어났다. 두 개의 팔이, 네 개로 늘어났다. 네 개가 여덟 개로, 여덟 개가 무수한 팔로. 그것들은 촉수처럼 너울거리며 나를 향해 뻗어왔다. 화등잔 같은 눈알, 피 묻은 송곳니, 산발한 긴 머리, 눈에서 흘러내리는 피고름, 녹슨 작두 칼날. 귀신들, 살해당한 시체들, 살인자들, 미친 놈, 아이의 목을 조르는 어머니, 아버지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치는 아들. 침낭 속으로 파고드는 뱀, 강간당하는 여자, 아무리 달려도 멀어져만 가는 집, 아무리 잠가도 흘러나오는 수돗물, 끝없이 추락하는 무저갱. --- p.51 “바리공주가 어떤 분인지는 아십니까?” “아,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거 아닌가요.” “옛날이야기라.” 최교수는 팔짱을 끼고, 한쪽 입술 꼬리를 올려 웃었다. “옛이야기라면 옛이야기고, 서사무가라면 서사무가이며, 종교로서 보자면 무조신격이고, 문학으로 보면 무속신화의 주인공입니다. 딸만 여섯 있던 오구대왕의 일곱째 공주로 태어나셨고, 나자마자 버려졌기에 버린 아이라는 뜻으로 바리라 불렸습니다. 자신을 버린 부모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온갖 고난을 감수하며 서천 서역국으로 가서 선약을 구해와 죽은 부모를 되살리고, 끝내는 신이 되었습니다. 어떤 신이 되었을 것 같습니까?” 가슴 밑바닥에서 어떤 대답이 연기처럼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것을 누르고, 나는 말했다. “글쎄요?” --- p.172 “내는, 여섯 살에 신이 내렸더래요.” 그렇게, 애기씨의 강신 내력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딱 보니 이쪽 사람이 아니더래요. 아, 이게 귀신이구나. 이게 내 몸에 들어오려던 거구나. 그러니 울매나 역정이 나던지. 다 죽어가던 게 벌떡 인나서 고년 머리끄댕이를 잡고 막 흔들어댔더래요. 야, 이년아. 죽었으면 곱게 서천극락이나 갈 것이지 왜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 나도 학교 가고 싶다. 나도 연지 곤지 찍고 싶다. 왜 네가 나를 탐내서 이 모양 이 꼴로 만드느냐, 하고는 아주 지랄을 해버렸더래요. 했더니, 그 애기귀신이 어쨌는지 알겠어요?” 애기씨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혼자 피식 웃더니 말을 이었다. “울더래요. 펑펑 울더래요. 그래 서럽게 울더래요. 그래서 내도 울었더래요. 밤새 같이 얼싸안고 펑펑 울었더래요. 병도 낫고, 아바이도 더 못 말렸더래요. 그게 내림이었드래요. 그 애기가 내 몸주님이더래요.” “……그게, 끝입니까?” “신 내리는 게 뭔지, 인차 알아먹었대요?” “몰라요, 모르겠습니다.” “봐주는 거래요.” 말문이 막혔다. “내 몸 아프게 하고, 내 맘 아프게 해도, 어쩔 수 없는 거래요. 봐주는 거래요. 용서해주는 거래요. 그래야 안 아프대요. 그래야 도망치지 않는 거래요.” --- p.1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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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인’ 일상을 침범하는 ‘괴이’!
완벽한 달걀 완숙을 만들기 위해 스톱워치로 8분 30초를 재는, 지극히 성실하고 합리적인 대학원생 진영. 그에게 있어서 세상이란 귀신도 요정도 마녀도 없고, 어떤 기도도 하늘에 닿을 리 없는 ‘현실적인’ 곳일 뿐이다. 그러나 세상에 단 한 명, 그를 비이성적인 공포로 몰아넣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어릴 적 아버지가 주워 온 ‘인간이 아닌’ 여동생 수영이다. 묘한 언동을 하고, 사람에겐 있을 수 없는 ‘그림자’들을 달고 다니는 여동생. 진영은 전설 속 구미호 누이를 두려워한 막내 오빠처럼 그녀에게서 도망쳐 서울로 상경한다. 그러나 10년 후, 고향으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에 잊고 있던 악몽들이 되살아나고……. ‘인간이 아닌’ 여동생, 수영의 정체는 무엇인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이타카 新괴담문학 프로젝트 첫 번째 이야기 한국 정통 괴담문학과 신감각 엔터테인먼트의 절묘한 만남! 장르소설 전문 브랜드 이타카가 야심차게 준비한 新괴담문학 시리즈, 『바리전쟁』은 그 첫 번째 작품이다. 작가 진산은 무협과 로맨스 장르에서 열광적인 팬을 얻었으며, 동화와 에세이 등 장르와 형식을 넘나드는 능수능란한 솜씨를 가진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이번에 도전한 장르는 ‘괴담문학’. 우리나라 고유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반영된, ‘괴이’를 다루는 정통 문학 장르의 한 갈래이다. 작가는 우리에게 친숙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바리데기 설화’를 최신 엔터테인먼트 서사로 풀어내며, 이제껏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참신한 이야기를 선보인다. 백 년에 한 번 벌어지는 무당들의 싸움 현대에 부활하는 바리공주 신화! 오랜 옛적부터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이 세계’ 저편의 ‘저 세계’를 믿어 왔다. ‘이 세계’란 일상과 상식의 세계이다. 이 세계의 눈으로만 본다면 ‘저 세계’는 한갓 미신에 다름 아니나, 믿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기도하면 이루어지고 공경하면 보답 받는 느낄 수 있는 힘의 세계이다. 그리고 ‘저 세계’와 접촉하여 힘을 갖는 자들이 바로 무당들이다. 무당의 ‘巫’는 하늘과 땅을 잇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바리전쟁』에서는 무당들이 백 년에 한 번, 저 세계와 통할 권한을 두고 열리는 싸움이 그려진다. 그 싸움의 결정권을 쥔 자는, 사람의 몸으로 저승에 내려가 생명의 물을 갖고 돌아온 여신 ‘바리공주’, 그리고 저승의 신 ‘무장신선(巫長神仙)’ 이다. 그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누가 어떻게 백 년 동안 하늘과 땅을 잇는 권한을 행사할 것인가? ‘이게’와 ‘저게’는 어떻게 만나야 할까?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세계를 상상한 적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이런 질문을 해본 적도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다른 세계와 만날 수 있을까? 만날 수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만나야 할까? 믿고 싶고, 만나고 싶어하는 우리들은 『바리전쟁』의 세계에서 그 답을 찾게 될 것이다. 꿈속에서도 『바리전쟁』의 세계 속에 있었습니다. 일상을 잊을 정도로 푹 빠지는 작품입니다! - Daum 문학속세상 연재 독자 우렁각시 님 ‘괴담’이면서도 재미있고 놀랍고 감탄스럽고 가슴이 뭉클한 감동을 맛보았습니다. 진산 작가님, 감사합니다! - Daum 문학속세상 연재 독자 첼 님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바리전쟁』에 등장하는 한국 무속에 대해 찾아볼 정도였습니다. 강력 추천합니다! - Daum 문학속세상 연재 독자 zxx2002 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