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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1부_ 내 생애의 밑줄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내 식의 귀향 유년의 뜰 흐르는 강가에서 나는 다만 바퀴 없는 이들의 편이다 아아, 남대문 식사의 기쁨 노인, 최신 영화를 보러 가다 친절한 나르시시스트들 빈집에서 생긴 일 내 생애의 밑줄 야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 구형예찬 2부_ 책들의 오솔길 꿈이지만 현실, 진실이지만 거짓인 세계―존 코널리 『잃어버린 것들의 책』 누군가를 기다리는 밥상이 덜 쓸쓸한 법이지―문태준 시집 『그늘의 발달』 증손자 볼 나이… 난, 지금도 엄마가 필요해―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사람을 부르고 동행을 부추기는 제주도 흙길―서명숙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 걷기 여행』 지도 밖의 땅… 그들은 왜 봉천으로 갔는가―김연수 『밤은 노래한다』 돈만 아는 세상, 괴짜 기인들을 만나다―정민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 겸손한 서향이 가슴에 번지네―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을 때―『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애송시 100편』 맛있고 몸에 좋은 것만 찾는 세상 얄밉다―공선옥 『행복한 만찬』 그는 담 밖 세상을 눈뜨게 해준 스승―이청준 『별을 보여드립니다』 지루한 여름날을 넘기는 법―조나 레러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 죽기 전, 완벽하게 정직한 삶 살고 싶다―박경리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반 고흐의 손이기도 했다. 감자를 먹는 저 손… 정직한 노동을 한 저 손은―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 3부_ 그리움을 위하여 천진한 얼굴 가지신 아담한 노신사 신원의 문학 보석처럼 빛나던 나무와 여인 |
朴婉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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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몇 년이나 더 글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작가로서의 나의 새로운 다짐이 있다면 남의 책에 밑줄을 절대로 안 치는 버릇부터 고쳐볼 생각이다. 내 정신상태 내지는 지적 수준을 남이 넘겨짚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도 일종의 잘난 척, 치사한 허영심,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폐증이라고 생각되자, 그런 내가 정떨어진다. 자신이 싫어하는 나를 누가 좋아해주겠는가. 나를 스쳐 간 시간 속에 치유의 효능도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이 나를 솎아낼 때까지는 이승에서 사랑받고 싶고, 필요한 사람이고 싶고, 좋은 글도 쓰고 싶으니 계속해서 정신의 탄력만은 유지하고 싶다.
그나저나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가지. 고통의 기억뿐 아니라 기쁨의 기억까지 신속하게 지우면서. 나 좀 살려줘, 비명을 지르며 뛰어내리고 싶게 시간은 잘도 가는구나. --- 〈내 생애의 밑줄〉 중에서 시를 읽는다. 단어 하나를 꿔오기 위해, 또는 슬쩍 베끼기 위해. 시집은 이렇듯 나에게 좋은 말의 보고다. 심심하고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위로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시를 읽는다. 꽃 피고 낙엽 지는 걸 되풀이해서 봐온 햇수를 생각하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년에 뿌릴 꽃씨를 받는 내가 측은해서 시를 읽는다. ---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을 때〉 중에서 그 많은 사건과 인생들이 생생히 살아 움직이면서 비천한 것들이 존엄해지기도 하고 잘난 것들이 본색을 드러내면서 비천해지고 하는 게, 마치 지류의 맑고 탁함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인 큰 강이 도도히 흐르면서 그 안에 온갖 생명들을 생육하는 것과 같은 장관입니다. 이 작은 나라에서 그런 큰 강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건 문학이니까 가능한 축복이요 기적입니다. --- 〈신원의 문학〉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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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40년, 세대를 뛰어넘는 ‘시대의 이야기꾼’ 박완서
4년 만에 출간된 2010년 최신작! “쓰는 일은 어려울 때마다 엄습하는 자폐自閉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구하고,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켜주었다.” 박완서 신작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가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작가는 “청탁에 밀려 막 쓴 글이 아니고 그동안 공들여 쓴 것들이어서 흐뭇하고 애착이 간다.”는 말과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서 행복하다.”는 말로 신작에 대한 자부와 출간에 대한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로 등단 40주년과 팔순을 동시에 맞는, ‘한국 문단의 살아 있는 거목’이자 ‘영원한 현역’으로 평가되는 작가에게도 못 가본 길이 있었을까? 무엇보다 먼저 독자들을 궁금하게 만드는 이 질문에 대한 박완서의 대답은 간단하다. “돌아보면 내가 살아낸 세상은 연륜으로도, 머리도도, 사랑으로도, 상식으로도 이해 못할 것 천지였다.” 이번 산문집이 노작가만의 연륜과 성찰이 돋보이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는 사람과 자연을 한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건져 올린 기쁨과 경탄, 감사와 애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여 “내 소유가 아니어도 욕심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음과 “살아 있는 것들만이 낼 수 있는 기척”을 감지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작가의 마음을 독자들 또한 내 마음처럼 느낄 수 있다. 노년의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도 세상과 자연에 감동받을 수 있는 삶과 단지 남아 있는 시간이 아닌 늘 새롭고 경이로운 시간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는 또한 죽음과 가까워진 생에 대한 노작가만의 성찰도 담겨 있다. 꿈틀대는 생명력의 경이로움 속으로 “내 몸이 스밀 생각을 하면 죽음조차 무섭지 않아진다.”는 작가의 말에선 죽음을 초월한 사람의 여유마저 느껴진다. 이러한 여유는 먼저 가신 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털어놓는 이 산문집의 또 다른 부분에선 가슴 찡한 삶에의 애정으로 바뀌기도 한다. 작가는 누구에게나 그랬듯 자신에게도 자상하고 따뜻한 품이 되어준 김수환 추기경, 작가가 자신 안에 칩거해 세상을 등지고 있을 때 세상 속으로 이끌어준 박경리 선생, 더는 전락할 수 없을 만큼 전락해버린 불행감에 도취되어 있을 때 그 어리석음을 깨닫게 해준 박수근 화백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삶에 보석처럼 빛나는 이들을 떠올리며 그들이 다 주고 가지 못한 사랑을 애달파 한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유독 맑고 아름다운 삶을 살다간 이들에 대해 “나를 스쳐 간 시간 속에 치유의 효능도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을 보듬고 다독여준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한편 이 책을 통해 노작가는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도 아끼지 않는다. “경제제일주의가 길들인 황폐한 인간성”으로 인해 무너져 내린 남대문에 대한 비판과 천안함 침몰 사건이 담고 있다는 “뻔뻔스러운 정의감”, “비겁한 평화주의”에 대한 비판에선 단순한 한 개인의 비판을 넘어 한국현대사를 온몸으로 견뎌온 역사의 증인으로서의 작가만의 상처와 반성과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산문집에는 또한, 2008년 한 해 동안 ‘친절한 책읽기’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연재했던 글도 함께 실었는데, 박완서 자신은 ‘쉬엄쉬엄 쉬어갈 수 있는 책’을 골라 ‘오솔길로 새버린 이야기’들이라고는 했지만, 책 한 권 한 권마다 깊은 삶의 자국들을 새겨놓은 글이어서 ‘박완서가 읽은 책’만의 재미와 깊이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글들이다. ‘영원한 현역’이라는 별명을 가진 작가답게 박완서는 여전히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작가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겐 “기력이 있을 때까지는 계속 글을 쓸 것”이라는 그의 다짐이 더없이 반가울 것이고, “나이가 들면서 예전처럼 빨리 쓰지는 않지만 좋은 문장을 남기고 싶어서 공들여 쓴다. 지금도 머릿속으로 작품 생각을 하면 뿌듯하고 기쁘다”는 그의 의지가 고마울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불손’하게도 독자만을 위한 다짐과 의지가 아니다. 이는 노작가 자신을 위한 ‘젊은’ 다짐과 의지이기도 한 것이다. “등단 40주년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항상 책을 낼 때면 부끄럽다”는 말이 단지 말이 아닌 다짐과 의지로 느껴지는 것이 이 때문이며, 이 산문집이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켜” 준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현재를 읽는 즐거움은 물론 미래를 읽는 설렘까지 가져다주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