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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말 | 자기가 연구하는 동물이 아름다워 보일 때
머리말 1. 거위들의 시냇가에서 2. 왜 야생거위인가 3. 봄은 짝짓기의 계절 4. 둥지 찾기 5. 어미 거위의 알 품기 6. 여름 - 둥지를 떠나서 7. 새끼 거위의 세상살이 8. 최초의 ‘각인’ 9. 알름 호수로 떠난 소풍 10. 야생 거위와 보낸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 1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장가 |
Konrad Zacharias Lore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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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때때로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것만이 학문적일 수 있다’는 오해가 만연되어 있음을 발견하곤 합니다. 참으로 딱한 일입니다. 저는 묻고 싶습니다. 위대한 업적을 이룬 생물학자들 가운데 연구 대상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지 않았던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요? (……) 우리를 매혹하는 것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 속에 존재하는 조화입니다. 이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더 이상 학문이기를 포기한 억지입니다. 어떤 동물이나 식물을 객관적으로 묘사함에 있어 그 생물의 아름다움을 재현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진실에서 빗나간 묘사 밖에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14쪽, 머리말)
이 책에 실린 사진들 가운데 책을 출판하기 위한 목적으로 촬영된 것은 한 장도 없습니다. 그러나 알름 계곡의 긴긴 겨울 밤, 우리는 학문적인 목적으로 찍은 이 사진들이 담고 있는 예상하지 못한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 그것을 찍던 아름다운 시간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사진 한 장 한 장마다 추억이 서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비교행동학자가 아닌 일반인에게도 이 사진들이 아름답고 흥미롭게 여겨지리라는 생각이 우리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16쪽, 머리말) 사람들은 내게 다른 동물이 아닌 야생 거위를 그렇게 오랫동안 연구하는 이유가 뭐냐고 자주 묻는다. 내가 야생 거위를 연구하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것은 야생 거위가 사람과 비슷한 가정생활을 영위한다는 점 때문이다. (32쪽, 왜 야생 거위인가) 거위 부부를 이어 주는 가장 강력한 끈은 자식에 대한 사랑이다. 자식들은 부모와 강하게 결속되어 있다. 그래서 만약 거위 부부가 알을 품는 기간에 알을 잃어버리거나 알에서 나온 새끼를 잃어버리면 독립했던 다른 자식 거위들은 아직 ‘약혼’을 하지 않은 이상 부모 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배우자를 잃은 경우에도 부모에게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지낸다. 이처럼 거위의 가정 및 사회생활은 신기할 정도로 사람과 닮은 구석이 많다. (33쪽, 왜 야생 거위인가) 거위들의 경우 슬픔은 사회적으로도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친다. 슬픔을 당한 거위는 방어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 거위가 집단에서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있었다면 그가 방어력을 잃었다는 사실은 서열상 밑에 있던 거위들에게 재빨리 감지되고 이용당한다. 슬픔을 당한 거위는 다른 거위들, 심지어 무리에서 가장 나약하고 용기가 부족한 거위한테도 해코지를 당한다. 그리하여 서열의 가장 아래 단계로 추락한다. 동물사회학자들의 말을 빌자면 ‘오메가omega’ 즉, 최하위 동물이 되는 것이다. (……) 아도의 경우가 그랬다. 더욱이 아도는 인간에게 길들여진 것이 아니라서, 전에는 먹이도 보모들의 손에서 받아먹지 않았다. 그런데도 1976년 여름, 수잔네가 죽자 고집스럽게 나를 따라다니며 내게 정을 붙이고자 노력했다. 난 처음에는 아도가 나를 따라다닌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가 어느 순간, 슬픔을 당한 아도를 괴롭혔던 거위 무리로부터 내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을 때면 언제나 어도가 수줍고 슬픈 듯한 태도로 내 뒤를 살금살금 따라와 어슬렁거린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51쪽, 봄은 짝짓기의 계절)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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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계적인 노학자의 소박하고 사실적인 거위 관찰기
이 책은 로렌츠 박사가 막스 플랑크 연구소를 정년퇴임한 후 알름 호수에 서식지를 조성하고 야생 거위를 기르기 시작한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일흔을 넘겼고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는 학자였습니다. 이 책은 그런 학자가 여전히 자연에 대한 왕성한 탐구심과 사랑을 잃지 않은 채 관찰과 사색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로렌츠와 그의 연구팀은 야생 거위들 하나하나에 각각 이름을 붙이고 함께 먹고 자며 짝짓기에서 산란, 새끼 돌보기 등 어미들의 행동은 물론 새끼들의 부화하고 나오는 모습, 새끼들 간에 벌어지는 서열 다툼 등을 상세하게 보고합니다. 2. 사람과 동물이 함께 있는 풍경 사람과 동물이 함께 먹고 자고 사랑하는 풍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감동으로 이끕니다. 절로 미소 짓게 합니다. 로렌츠의 말마따다 오늘날 사람들은 야생 동물의 앞모습을 보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볼 수 있는 건 놀라서 달아나는 뒷모습뿐입니다. 그 조차도 멸종 등의 이유로 해마다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로렌츠는 저 먼 데서부터 ‘그를 알아보고’ 거위들이 날아올 때면 매번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낀다고 고백합니다. 그것이 수없이 반복되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로렌츠의 이 책은 사람이 자연을 지배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소외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뭇 생명들과의 따스한 유대를 잃어버린 인간의 삶이 얼마나 외롭고 앙상해져 버렸는지를 알려줍니다. 3. 객관적인 진실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이 책은 감동을 통해 자연과 교감하는 감성을 회복시킵니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로렌츠가 택하는 ‘손쉬운 의인화’가 아닙니다. 사실적인 관찰입니다. 그의 필치는 이 책의 사진이 그런 것처럼, 섣부른 감상이나 의인화를 외면하며 사실적인 관찰을 향해 나아갑니다. 독자들을 앞질러 가는 감상 따위는 어림도 없습니다. 담백하다 못해 뻣뻣한 통밀빵 같습니다. 로렌츠의 글은 그가 사진에 대해 했던 말 그대로 ‘객관적인 진실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드물게 만나는, 조미료 없는 글맛이 상쾌합니다. 3. ‘각인 행동’의 매카니즘을 밝힌 기념비적인 책 로렌츠 박사의 책은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어 있으며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로렌츠 박사의 핵심적인 연구 업적을 다루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야생 거위 연구는 그가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가장 애정을 기울인 연구이기 때문입니다. 노벨상의 수상한 것도 야생 거위를 관찰하며 ‘각인’ 행동의 매카니즘을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었습니다. 이 책은 로렌츠의 최대 업적이라고 할 만한 이 ‘각인’ 행동을 발견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사실적이면서도 재미있게 담겨 있어 그의 책 가운데서도 의의가 큽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새끼 야생 거위들이 로렌츠에게 각인되어 그를 엄마로 알고 졸졸 따라다니는 사진은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4. 꼼꼼한 감수를 거친 유려한 우리말 번역 과학책이긴 하지만 문학적인 감성이 많이 깃들어 있는 책이기에 어떤 분에게 번역을 부탁드리면 좋을까 고심이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 책을 번역하신 유영미 선생님은 독일 문학을 전공한 전문 번역가로, 오랫동안 과학 분야에 애정을 가지고 번역해 오셨습니다. 과학에 대한 해박한 이해와 문학 전공자 특유의 감성이 잘 조화된 유려한 번역을 보여주시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2001년에는 <스파게티에서 발견한 수학의 세계>로 과학기술부 인증 우수과학도서 번역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과연 기대에 어긋남 없는 훌륭한 번역을 보여주셨지만, 저희는 꾸준히 독자들의 관심을 받게 될 책이니만큼 좀더 공을 들이기로 했습니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에 계신 최재천 선생님이라면 전공도 전공이려니와 로렌츠 박사에 대한 존경도 언급하신 적이 있어 애정을 갖고 이 책을 감수해주시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이 책이라면 시간을 내어서라도 하고 싶다“고 승낙해 주셨고 몇몇 용어와 표현을 바로잡아서 이 책의 완성도를 높여주셨습니다. 교양과학서로서도 충분한 정확성을 갖추었다고 자부합니다. 5. 문학과 과학, 학문과 예술의 경계에서 로렌츠는 이 책에서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것만이 학문적일 수 있다’는 오해가 만연해있다는 사실은 개탄합니다. 그러면서 비교행동학자들 가운데 자신이 연구하는 대상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자신 있게 단언합니다. 그의 말을 들으면 관찰과 연구는 아름다움에 대한 매혹을 그 연료로 삼는 것 같습니다. 학문이 예술 행위와 무엇이 다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가 쓴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느낌도 그렇습니다. 과학책인가 하고 보면 그 문학성에 놀라게 되고, 문학책인가 하고 보면 그 엄정한 객관성과 사실적인 기술에 놀라게 됩니다. 그래서 독자의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깨우고 만족시킵니다. 진선미眞善美가 궁극적으로 하나이듯, 그 궁극의 자리에서 문학과 과학, 학문과 예술은 경계가 사라지기 때문인가 봅니다. 이 책의 글과 사진은 사실적이고 정직한 동시에 어느 예술가의 그것에 못지않게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