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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야기 - 일곱 가로장의 사다리
두 번째 이야기 - 식자우환 세 번째 이야기 - ‘무’의 향기 네 번째 이야기 - ‘무’에의 귀의 다섯 번째 이야기 - 저쪽에서 오는 메시지 |
Osho Bhagwan Shree Rajneesh,본명 : Rajneesh Chandra Mohan J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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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이 지혜의 완성에 관여한 순간, 하나의 부처가 된다. 여러분은 이슬방울이 대해에서 소멸될 때, 더 이상 분리될 수가 없을 때, ‘전체’와의 싸움을 그만둘 때, 자신을 비우고, ‘전체’와 하나가 되고 그 이상 대립하지 않게 될 때 부처가 된다.
만일 여러분이 기쁜 마음으로 좌절할 수 있다면 그것은 좌절이 아니라 자신의 ‘비움’이다. 이것은 패배가 아니다. 하나의 승리다. 여러분은 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다. 대립을 통해서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 기억해주시기 바란다. 신은 여러분과의 싸움에서 이기려 하지 않는다. 여러분의 패배는 자기 발생적인 것이다. 여러분이 지는 것은, 여러분이 싸웠기 때문이다. 지고 싶으면 싸우라. 이기고 싶으면 비우라. 이것은 패러독스다. 꺾일 용기가 있는 자가 승리한다. 진 자만이 이 경기의 승자일 수 있다. 인간은, 그 실존의 내부에 있는 이 절대적인 ‘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 ‘무’가 그의 일면으로 확대되어서야 비로소, 구름 한 점 없는 순수한 하늘이 되어서야 비로소 완전한 인간으로 불릴 수 있다. 이 ‘무’야말로 불타가 ‘무’라고 부르던 바로 그것이다. 불타는 말한다. ‘무’가 지성을 기능하게 한다고. ‘부다buddha'라는 말은 ’부디buddhi'에서 왔다. ‘지성’이라는 뜻이다. 여러분이 ‘무’에 두었을 때, 어떤 것도 여러분을 가두지 않을 때, 어떤 것도 여러분을 한정시키지 않을 때, 어떤 것도 여러분을 싸안지 않을 때, 개방되어 있을 때, 거기에 지성이 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무’일 때 공포가 사라지므로. 그리고 공포가 사라질 때 여러분은 지성적으로 기능할 수 있으므로. 이제야 나는 여러분에 말할 수 있다. 나는 “지혜의 완성에 의지하여”라는 말에 대하여 여러분에게 말할 수 있다. 사람이 딱 한 가지 이루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명상이다. 사람이 딱 한 가지 이루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이 각성이다. 사람이 딱 한 가지 딛고 서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그 사람 자신의 내적인 근원, 내적인 실존이다. 다른 것은 모두 버려야 한다. ‘무’야말로 최대의 만트라다. 여러분이 ‘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그때에는 다른 아무것도 거기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이거야말로《반야바라밀다심경》의 메시지다. ........ 인도 문화권에서 쓰이는 인사말 ‘나마스떼’는 ‘당신에게 깃들어 있는 신께 문안 드립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가만히 음미하다 보면 등짝이 서늘해진다. 인도인들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 안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고대 힌두교의 한 발전적 계승이라고 할 수 있는 불교 역시 깨달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섬긴다. 인도 출신 명상가 오쇼 라즈니쉬의 책《반야심경》의 첫 글월은 다음과 같다. “여러분 안에 깃들어 있는 부처께 문안 드립니다.” 라즈니쉬의 생각에 따르면 우리 안에는 부처가 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뿐, 우리 안에는 부처가 분명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공부를 지음으로써 깨닫는다는 것은 그 부처의 잠을 깨우는 일이라는 것이다. _ 옮긴이 이윤기 역자는, 기독교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다른 종교가 진리라고 주장하는 교의(敎義)를 기웃거려서는 안 된다’는 태도에 동의하지 않는다. 신화나 종교를 보는 눈이 병적인 교조주의, 경직된 흑백 논리에 길이 든 이 ‘진리의 편가르기’ 바람에 동의하지 않는다. 역자는 ‘진리는 하나인데 현자들이 이를 여러 이름으로 언표(言表)한다’는 베다 경(經)의 말을 좇는다. 말하자면, 이념의 종교 정신을 주체롭게 곧추 세우자면 다른 진리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이 역자로 하여금 이 책을 옮기게 했다. _ 역자 후기에서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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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번역으로 읽는 불교 사상의 진수 《반야심경》
누구나 한번쯤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으로 시작하는 스님들의 독송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불교의 핵심적인 이치를 간결하고 명징하게 요약한 불교 경전의 정수인 《반야심경》은 불교도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도 귀에 익지만, 260자에 함축된 그 진리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반야’는 지혜, 깨달음을 의미하는 말로, ‘반야심경’은 ‘큰 지혜로 열반에 이르는 부처님의 진수의 가르침’이라는 의미다. 불교의 사상적 기반을 이루는 ‘공(空)’ 사상을 핵심만 모아놓은 《반야심경》은 그 함축적 문구로 인해 여러 가지 해석이 존재한다. 이번에 출간된 이윤기 번역의 《반야심경》은 20세기 최고의 영적 스승이라고 일컬어지는 라즈니쉬가 강의한 내용을 기록한 책 《반야심경》 가운데 ‘문답’ 부분을 제외한 다섯 개 장을 우리말로 옮긴 것으로, 라즈니쉬의 명강의 중의 하나로 꼽힌다. 오쇼 라즈니쉬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말로 압축될 수 있는 부처의 가르침을 라즈니쉬 특유의 비유와 화법으로 풀이해준다. 그는 불교라고 하는 메시지의 심장인 ‘심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논리를 앞세우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공감하려고 노력하라고 말한다. 논리나 분별을 앞세우지 말고, 있는 대로 그것을 이해하고, 마음을 비우고 이 경문을 보아야만 눈이 밝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대는 참으로 행운아이다. 이 ‘반야심경’을 듣고 또 명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났기 때문에. 붓다의 메시지, 그 정수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났기 때문에. 아니 행운을 넘어서서 그대는 이제 그 자체가 될 것이다. _ 오쇼의 《반야심경》강의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