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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임진록
허균
범우사 2017.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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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이 책을 읽는 분에게 7

홍길동전(洪吉童傳) 11
― (허균)
길동의 출생
천대받는 설움
길동을 없앨 음모
사람을 죽임
집을 떠남
의적이 됨
활빈당의 활약
조정의 걱정
병조 판서가 됨
저도로 감
율도국 왕이 됨

임진록(壬辰錄) 65
― (작자 미상)
최일령(崔一令)
이순신(李舜臣)
정출남(鄭出男)
김덕령(金德齡)
김응서(金應西)
이여송(李如松)
김덕령(金德齡)
김응서·강홍엽
사명당(泗溟堂)

저자 소개 1

許筠, 단보(端甫), 교산(蛟山), 학산(鶴山)

1569년 허엽의 삼남 삼녀 가운데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서울 건천동에서 자랐다. 1579년 아버지가 경상감사가 되어 내려갔는데 다음 해에 아버지가 상주 객관에서 죽었다. 1582년 작은형을 찾아온 시인 이달을 처음 만났고 이달은 나중에 그의 스승이 되었다. 1588년 작은형이 죽고, 1589년에 누이 난설헌이 죽은 후에 난설헌의 시 210편을 정리하여 책으로 엮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시작되자 홀어머니 김씨와 만삭된 아내를 데리고 피난길을 떠나 여기저기를 전전하다가 강릉에 도착했고, 사천 애일당 외가에 머물렀다. 이때부터 애일당이 있는 뒷산의 이름을 따서 교산(蛟山)
1569년 허엽의 삼남 삼녀 가운데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서울 건천동에서 자랐다. 1579년 아버지가 경상감사가 되어 내려갔는데 다음 해에 아버지가 상주 객관에서 죽었다. 1582년 작은형을 찾아온 시인 이달을 처음 만났고 이달은 나중에 그의 스승이 되었다. 1588년 작은형이 죽고, 1589년에 누이 난설헌이 죽은 후에 난설헌의 시 210편을 정리하여 책으로 엮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시작되자 홀어머니 김씨와 만삭된 아내를 데리고 피난길을 떠나 여기저기를 전전하다가 강릉에 도착했고, 사천 애일당 외가에 머물렀다. 이때부터 애일당이 있는 뒷산의 이름을 따서 교산(蛟山)이란 호를 썼다. 1593년에《학산초담》을 지었고, 1596년 강릉부사였던 정구와 함께 《강릉지》를 엮었다.

1598년 중국의 장군과 사신들을 접대하느라고 돌아다녔다. 중국의 종군문인 오명제에게 《조선시선》을 엮어주었으며, 《난설헌집》 초고를 중국에 전파케 했다. 10월 13일, 다시 병조좌랑이 되어 가을에 평안도를 다녀왔다. 1599년 황해도사가 되었는데, 기생을 너무 많이 데리고 다닌다는 이유 때문에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611년 유배지인 전라도 함열에 도착해서 문집 《성소부부고》 64권을 엮었다. 11월에 귀양이 풀려 서울로 돌아왔다. 1612년 8월 9일, 큰형 허성이 죽었고 가장 가까운 벗 권필이 광해군을 풍자하는 시를 지었다가 매맞아 죽었다.

1615년 정2품 가정대부에 올랐다. 동지겸진주부사(冬至兼陳奏副使)가 되어 중국에 갔다. 이때 다녀온 기록을 《을병조천록》으로 남겼다. 1618년 봄, 스승 이달의 시집 《손곡집》을 간행하였다. 윤4월 7일, 남대문에다 백성들을 선동하는 흉서를 붙인 심복 하인준이 잡혀들어갔다. 17일에 허균도 기준격과 함께 옥에 갇혔다. 그의 심복들이 허균을 탈옥시키려고 감옥에 돌을 던지며 시위하였다. 22일에 광해군이 친히 허균의 심복들을 국문하였다. 이이첨은 망설이는 광해군을 협박하여 허균의 처형을 서둘렀다. 허균은 결안도 없이 8월 24일에 그의 심복들과 함께 서시에서 처형당했다.

허균의 다른 상품

주해 : 전규태
국문학자,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연세대학교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전주대, 한양대, 연세대 교수 역임.
하버드대, 호주 국립대 등에서 한국어문학 강의.
제5회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수상.
제9회 현대시인상 수상. 제3회 현대시조시인협회상 수상.
저서로 『문학과 전통』, 『한국고전문학사』, 『현대문학사』, 『매혹의 라틴아메리카』, 『한국인의 멋과 지혜』(영문 저서). 주해서로 『춘향전·심청전』, 『흥부전·조웅전』, 『홍길동전·임진록』 등이 있음.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7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42쪽 | 110*174*20mm
ISBN13
9788908063037

출판사 리뷰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이 책에 실린 두 편의 고대 소설은 누구나 읽어야 할 우리의 고전 문학작품이다.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작품별로 간략하게 언급한다.
「홍길동전」은 원문에는 없는 소제목을 붙여 읽는데 도움을 주고자 했다.

▶ 홍길동전(洪吉童傳)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는 한글로 씌어진 최초의 것으로 국문학사상 큰 의의를 지닌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고대 소설이 작자와 발표 연대가 분명하지 않은 데 비해, 이 작품은 작자(허균)와 시대(광해군)가 분명하다. 또한 대부분의 고대 소설이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 비추어, 「홍길동전」은 우리나라를 무대로 삼고 있으며, 여타의 소설들에서 볼 수 있는 중국의 고사나 한자어를 되도록이면 피하여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씌어졌다.
작자 허균(許筠, 1569~1618)은 조선조 선조·광해군 때 사람으로, 호는 교산(蛟山)이다. 서경덕(徐敬德)의 수제자이기도 했던 허엽(許曄)의 셋째아들로 태어나, 그의 나이 26세 때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고, 삼척 부사·형조 정랑·형조 판서 등을 거쳐 좌참찬에까지 이르렀다.
허균은 서류(庶類 : 벼슬이 없는 여러 부류의 사람. 서민)를 차별 대우하는 당시의 사회 제도에 대해 불만을 품게 되었고, 또한 주로 서류 출신의 문인들과 친교를 맺었다. 그는 당시 조정의 부패상(腐敗相)과 광해군(光海君: 1575~1641년. 선조의 둘째아들로 재위는 1608~1623년)의 폭정(暴政)을 묵과할 수 없어 혁명을 획책하다가 발각되어 죽음을 당하게 된다. 허균이 살았던 불우한 시대는 결국 그를 불운한 반역아(叛逆兒)로 만들고야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유교 질서의 지나친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참다운 인간성 회복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선각자였다.
이 작품은 적자와 서자의 차별 폐지, 무위도식하던 양반과 탐관오리들의 불의를 고발하고 있으며, 가난한 자들을 구출하려는 저항적인 주제가 강하게 드러난 사회 소설이라 할 수 있다.

▶ 임진록(壬辰錄)

이 작품은 임진왜란(壬辰倭亂)으로 말미암아 의기소침해진 겨레의 사기를 북돋아주고 왜군에 대한 민족적인 적개심을 높이기 위해서, 현실적으로는 패배한 싸움을 정신적으로 승리(勝利)한 것처럼 꾸며놓은 것으로, 정신적 승리의 문학이다.
순 한글로 적힌 이 소설은 작가가 알려져 있지 않은 설화 문학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나, 이는 한 작가에 의한 창작 이상의 것으로서 온 겨레의 염원과 몸부림의 집약적 표출(表出)이었던 것이다.
작중 인물도 충무공 이순신과 김덕령 같은 실존 인물을 등장시키고 사명당과 서산대사를 가상 인물로 내세워 초인간적인 수법을 써서 전국 도처에 왜병들을 섬멸시키게 함으로써 겨레의 울분을 풀어보려고 했다. 특히 이 작품 속에 있어서의 사명당의 활약은 통쾌무비(痛快無比)하게 전개되는데, 이 같은 묘사는 겨레의 현실적 빈곤과 굴욕을 정화(淨化)하는 기능을 갖는 것이라 하겠다.
이 「임진록」은 이본(異本)이 꽤 많이 있었다고 하는데, 일제 시대에 일본인들이 대부분 압수하여 불태워버렸다. 현재 남아 있는 것으로는 한글본과 한문본이 있다. 한글본에는 이순신, 사명당, 김응서, 김덕령, 강홍엽 등이 주역이 되어 왜군을 무찌른 것으로 그려져 있음에 반하여, 한문본에는 명나라의 이여송(李如松)이 전쟁의 주역이 되고 조선의 장수들은 부수적인 존재로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당시 귀족층의 외세 의존적 사대사상의 발로라고 하겠다.
― 전규태(전 연세대학교 교수 · 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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