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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서로를 사랑하고 돌보고 껴안는, 영화와 문학
문학과 영화는 어떻게 만나는가 무엇에서 그것을 보는가 ―이 시대의 문학과 영화 _백지은 사랑을 위한 죽음, 죽음을 극복한 사랑―우리가 이야기를 살아갈 때 _허윤진 그러므로 시인이여, 피를 흘려라―짐 자무시의 「천국보다 낯선」과 장 콕토의 「시인의 피」 _오은 사이코+시네+리테르=정신분석이 문학과 영화에 가르쳐준 것들 오이디푸스 누아르―영화 「올드보이」를 위한 10개의 주석 _신형철 기나긴 fort-da 놀이―이청준의 소설 「남도사람」 연작과 영화 「서편제」, 「천년학」에 대하여 _김형중 정신분석과 환상에 대한 13개의 시퀀스―프로이트와 영화 「거미숲」 _복도훈 사랑+욕망=‘먹다’라는 은유 「스캔들」, 마음의 무늬 혹은 절대 인간의 몰락―소설 『위험한 관계』와 영화 「스캔들」 _권희철 그녀는 요리를 멈추지 않았다―장정일의 「요리사와 단식가」, 박철수의 「301 302」 _정한아 뱀파이어 보디가드―소설 『렛 미 인』과 영화 「렛 미 인」의 호칸 벵손 _신해욱 주체+타자=‘거울’에 비추는/비치는 이는 누구인가 가족들, 거울 앞에 서다―영화 「가족의 탄생」에서의 거울상들 _권혁웅 뒤집힌 음모론―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와 박민규의 소설 _양윤의 선망의 그림자―샘 멘데스의 「레볼루셔너리 로드」_이현승 현실+실재=웰컴 투 ‘리얼’ 월드 키니시즘적 웃음과 2000년대 한국영화 ―우리 시대의 한국영화는 풍자와 아이러니를 어떻게 스크린에 반영하는가 _함돈균 숭고라는 이데올로기―영화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과 몇 편의 시 _이근화 셰익스피어를 짝사랑하기 ‘맥베스’를 스크린 위로 소환하는 두 가지 방법 ―오슨 웰스의 「맥베스」와 구로사와 아키라의 「거미의 성」 _김지미 움직이는 권력의 환영―셰익스피어의 『맥베스』와 영화들 _송승환 |
張錫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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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혹은 현대소설과 극영화는 기실 매우 닮아 있다. 둘 사이의 영향과 반향은 소박한 짐작을 훨씬 넘는다. 문학은‘말’의 예술이지만, 문학을 문학이게 하는 것, 즉 문학을 용인하고 생성하는 요인은 말의 탁월함에만 있는 게 아니다. 아니 말의 탁월함은 이미 말 이상의 것을 포함한다. 말의 탁월함이란 어떤 탁월한 말의 것이 아니라 말이 그렇게 한 것의 탁월함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마음에 이미지와 소리를 창조하는 데 집중한 어떤 말이 이루어낸 성취다. 말로써 이미지를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문학은 시각예술이다. 말로써 음악을 구성한다는 측면에서 문학은 청각예술이다. 즉 문학이 성취하려는 것은 말을 마음으로 보고 듣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예술성은 문학의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영화가 창조하고 확대하려는 것도 이와 전혀 다르지 않다. --- p.14 영화는 기본적으로 시각매체에 기반해 있고, 연속된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시간의 흐름이 있는 장르입니다. 이미지가 재현되고 배열되는 방식을 세심하게 분석하지 않고서 한 편의 영화를 충분히 감상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예컨대〈소설보다 낯선〉에서도 해롤드가 이를 닦을 때 칫솔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숫자들(시각적 효과), 그리고 칫솔질을 할 때마다 숫자를 세듯이 반복되는 소리(청각적 효과)가 주는 희극적 효과는 관객이 영화를 즐기는 데 충분히 큰 도움을 줍니다. 영화가 현대 기술의 요람에서 태어난 예술 장르로서, 인간의 감각을 종합적으로 자극한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요. 최근 활발하게 전개되는 3D, 심지어 4D 영화는 예술이 꿈꿀 수 있는 공감각적 즐거움을 최대한 현실화하려는 기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46 콕토는〈시인의 피〉를 통해 이미지를 언어 삼아 시를 조형하는 실험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공들여 쌓은 탑을 일순간에 무너뜨려버린다. 약 한 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벌어졌던 무수한 일들이 눈 깜박이는 새,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여태 우리가 본 것은 과연 환상에 불과했을까. 연기 부연 잿더미 속에서 하트 에이스를 발견하는 것은 가능한가. ‘참다운 시인은 죽은 사람과 같아 산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듯’, 그의 영화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참다운 시인과 마찬가지로, 그의 영화에서 의미는 ‘적극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별 모양의 상처 부위에서 흐르던 피들을, 그 속에서 꿈틀거리던 영혼 알갱이들을, 하트 에이스에서 심장처럼 굳은 핏자국을. 그러므로 시인이여, 피를 흘려라. --- p.66 영화〈위험한 관계〉는 라클로의 소설을 충실히 재현한 품격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원작‘소설’을 충실히 재현한 영화라는 것이 ‘영화’로서 뛰어난 작품인가 하는 점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반복한다는 것은, 반복의 대상이 이전에 도전했지만 미처 도달하지 못한 그 무엇을 이번에는 성취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포함된 것이 아니었던가요? 영화〈위험한 관계〉가 다만 원작 소설에 대한 충실한 재현이라면, 그것은 훌륭한 리메이크 영화가 반드시 원작에 대해 표해야 할 존경이 결여된것입니다. 진정한 존경은 원작이 원작 그대로의 자리에 머물러 있도록 놓아두는 것이 아니라, 원작이 품고 있었지만 잘 보이지 않았던 그것을 끄집어내서 강조하고, 겉보기엔 원작을 비틀고 변경을 가한 것처럼 보이는 데 있는 것이니까요.--- p.154 장정일의 시는 어디까지나 지독한 외로움에 관한 우화였지만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은 자기의 논리를 섞어 넣으면서 동시에 장정일의 무의식까지 반영한 것 같다. 301과 302의 합일에서 남은 것은 어머니-아버지-자식으로 이루어진 3항의 오이디푸스 트라이앵글, 혹은 정-반-합 세 개의 테제가 아니라 ‘301 302’라는 하나의 항으로 표지할 수밖에 없는 화학적인 변종이다. 여기에는 아버지가 없고 (영화 전체를 통틀어 301과 302의 친부는 전혀 출현하지 않는다) 무심하거나 고통을 방관하는 어머니들만 있으며 주인공인 딸들은 남자에게 과잉된 리비도를 투자하거나 전혀 투자하지 않는다. (…) 이들의 합일은 일종의 단성생식이다. 그런데 이 생식은 개체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줄여버린다. 이것이 장정일이 1980년대 시인들의 충혈된 부권 찬탈의 욕망에 대해 느꼈던 염증과 관련된다면, 과도한 해석일까? 301과 302의 욕망은 ‘실제로 실현’되었으며 이제 한 개체 안에 행복하게 공존하고 있다. 단, 이 금기 위반이 비밀에 부쳐지는 한에서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원작 시가 그런 것처럼 예술이 하나의 위대한 ‘거짓말’이라는 점을 실증한다. --- p.178 봉준호는 ‘살인의 시대’를 추억하되, 자신의 영화가 이창동의〈박하사탕〉과 같은 비극적인 정통 시대물로 가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그는 시대에 대한 관객의 비감적 몰입을 막고, 오히려 관객이 그 시대를 냉정하게 조망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가 이 영화에서 차용한 희화적 영화 이미지들은 너무나 아둔해서 폭력적일 수밖에 없었던 그 시대를‘거리 두기’를 통해 조망하는 한 방식이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의 백미가 수많은 기자들과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루어진 백광호의 우스꽝스러운 살인 사건 재현 장면에 있다고 말한 평자들의 지적은 타당하다. 롱 숏과 롱 테이크로 진행되는 이 시퀀스는 카메라 워크 자체로 당대 풍경 전체를 카메라의 은유로 포섭하려는 의도를 보여주며, 아수라장이 된 재현 현장을 슬로 무비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그 희화적 강도를 극단적으로 고양시킨다. --- p.2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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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서 영화를 보고
영화에서 문학을 보았다 「올드보이」 「살인의 추억」 「스캔들」 「거미숲」 「가족의 탄생」 … 그리고 「시」 「천국보다 낯선」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 「렛 미 인」까지 문학으로 비추는, 문학을 비추는 영화의 재해석! 스크린으로 소환된 이청준과 장정일, 셰익스피어, 영화보다 영화 같은 박민규의 소설들! 영화는 가장 ‘감각화된’ 예술 장르이고 문학은 가장 ‘감각화하는’ 예술 장르다. 영화는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영향력 있는 예술 장르이지만 그것의 이理는 확실히 문학이며(그래서 영화의 모든 기법들이 문학용어로 설명되는 것이다), 문학은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오래된 예술 장르이지만 그것의 기氣는 확실히 예술이다(그래서 문학의 모든 상상들이 영화로 표현되는 것이다). 영화와 문학의 독자성을 인정하면서도 둘의 상호습합을 설명하기 위해서 ‘시네리테르Cineliter’라는 제목으로 이 책을 펴낸다. ?서문 중에서 ‘문학적’으로 영화를 읽어내고 ‘영화적’으로 문학을 읽어내는 방식을 ‘장르화’한 16편의 글을 엮은 『시네리테르?영화하는 문학 ? 문학하는 영화』가 출간되었다. ‘시네리테르’라는 말은 얼핏 ‘영화문학’, ‘영상문학’이라는 말과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이 용어들과는 근본적으로 의미가 다르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수용하거나 제한하는 방식이 아니라, 영화와 문학이 각자의 독자적인 영역과 특질을 인정하고 공유하는 교집합을 설명해나가면서 영화를 보다 문학적으로, 문학을 보다 영화적으로 보고 읽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 책을 위해 참여한 필자들(권혁웅 외 15인)은 한국문학의 현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연구자들이다. 이들은 문학에서 확립된 텍스트 분석 방법(서사, 이미지, 구성, 구조, 문체, 율격, 몽타주 등)을 영화 텍스트의 분석에 활용하거나 두 분야를 통섭하고 횡단하는 주제의식을 도출하며, 그간 영화와 문학의 오랜 동행에서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긴 작품들을 면밀하게 분석해냈다. 하나, 영화와 문학의 이종교배 혹은 동질이상 이 책을 여는 총론 ‘문학과 영화는 어떻게 만나는가’에서는 문학과 영화가 함께 걸어온 길을 짚어보며 서로의 교차점, 상호 밀접한 협업에 대해 살펴본다. 문학평론가 백지은은 「무엇에서 그것을 보는가」에서 문학의 영화적 기법, 영화의 문학적 주체에 대해 탐구하며 박민규의 소설과 이창동의 최근작 「시」를 다룬다. 문학평론가 허윤진은 소설 창작자와 소설 속 주인공의 운명이 한 편의 영화 속에서 서사의 경계를 뛰어넘어 서사를 구축하는 과정을 영화 「소설보다 낯선(Stranger Than Fiction)」을 통해 흥미롭게 짚어낸다. 시인 오은은 짐 자무시의 「천국보다 낯선」과 장 콕토의 「시인의 피」를 텍스트 삼아 영화와 시가 맞닿는 지점을 탐색한다. 둘, ‘문학적’으로 영화 읽기 문학 텍스트를 분석하는 여러 기법들을 영화에 적용해 살펴볼 때, 영화 속에 깃들어 있던 새로운 수수께끼들과 그것을 푸는 열쇠들이 드러난다. 정신분석은 주인공의 내면심리와 행동을 따라가면서 그것이 작품 전반에 어떠한 상징으로 드러나는가를 보여준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오대수는 오(이)디(푸)스다’라는 명제에서 출발하여 영화 「올드보이」를 정신분석으로 재해석하고, 문학평론가 김형중은 이청준의 「남도사람」 연작과 영화 「서편제」, 「천년학」을 비교하며 각각에서 두드러지는/두드러지게 만든 주인공의 심리를 짚어낸다. 문학평론가 복도훈은 영화 「거미숲」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환상과 현실의 내러티브로 풀어본다. ‘거울상’을 영화 속에 대입해보면 주체와 타자를 비추고/비치는 양상들이 흥미롭게 드러나는데, 문학평론가 권혁웅은 영화 「가족의 탄생」을 통해, 문학평론가 양윤의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를 통해, 시인 이현승은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통해 인물들의 관계와 자기 인식, 세계 인식을 재조직해본다. 또 「살인의 추억」 「그때 그 사람들」 「지구를 지켜라」 등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2000년대 영화들이 ‘풍자와 아이러니’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함돈균, 「키니시즘적 웃음과 2000년대 한국영화」, 영화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을 통해 이란 영화의 리얼리티가 환기하는 실존적 두려움, 숭고의 미학을 조명한다(이근화, 「숭고라는 이데올로기」). 셋, ‘영화적’으로 문학 읽기 영화와 문학을 아울러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문학과 그것을 바탕으로 태어난 영화의 이란성쌍둥이 같은 관계이다. 문학평론가 권희철은 한국영화 「스캔들」을 다루면서 원작소설 『위험한 관계』와 영화 「위험한 관계」 그꺸고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을 비교하며 「스캔들」이 지닌 고유의 정서와 미학을 분석한다. 시인 정한아는 장정일의 「요리사와 단식가」를 모티프로 제작된 영화 「301 302」에 드러난 ‘먹다’라는 은유에 대해 탐구하고, 시인 신해욱은 소설 『렛 미 인』과 영화 「렛 미 인」에 등장하는 호칸 벵손이라는 인물을 비교분석하며 금지된 욕망을 지닌 비극적 인물상에 주목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원작으로 한 영화들을 살펴본다. 영화평론가 김지미는 오슨 웰스의 영화 「맥베스」와 구로사와 아키라의 「거미의 성」을 인물 분석과 장면 연출의 측면에서, 문학평론가 송승환은 원 텍스트 분석을 기반으로 영화로 재탄생한 세 가지 ‘맥베스’를 비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