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_ 우리나라가 러시아와 우호조약을 맺은 지 십여 년 되었건만 아직 사신을 보내지 못했는데, 마침 5월 26일에 러시아 새 황제가 대관식을 하고 즉위하게 되었다. 오대주 각 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서로 축하하니, 우리나라도 역시 사신을 파견하기로 하였다. 건양 원년(1896) 3월 11일에 궁내부 특진관 종1품 민영환을 특명전권공사로, 학부 협판 윤치호를 수행원으로, 3품 김득련을 2등참서관으로, 외부 주사 김도일을 3등참서관으로 삼아 러시아 수도에 가게 하였다. 나는 본래 부족하고 학문이 없는 사람이어서 이 직책에 어울리지 않는데다, 어머니께서 몇 년 동안 중풍으로 누워 계셔 자식 된 도리로 그 곁을 떠나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그래서 여러 차례 사양했지만 결국 허락받지 못했다. 4월 1일에 길을 떠나며 당에 올라 절하노라니 가슴이 막혀 말할 수 없기에, 시를 지어 회포를 서술한다
_ 소명을 받고 입대하여 하직인사를 드리고 잘 다녀오라는 말씀을 삼가 받들었다. 너무도 영광스럽고 황공한 나머지 공손히 술회하여 기록한다 _ 친서 한 통과 국서 한 통을 공경히 받들고 길을 떠나 마포나루에 도착했더니 내부대신 박정양, 외부대신 이완용, 내각총서 이상재, 외부협판 고영희, 탁지부협판 이재정, 농상공부 협판 이채연, 군부협판 백성기, 중추원의관 윤웅렬, 학부참서관 이경직, 경무관 백명기가 함께 모여 기다리고 있었다. 농상공부대신 조병직이 뒤이어 도착하자, 외부와 탁지부에서 잔치를 베풀어 사행을 전송하였다. 이는 사신의 임무를 중시하고 먼 길 떠남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 _ 갈림길에서 읊어 우정 협판에게 바치다 _ 인천항에서 기선을 타고 곧바로 상해로 향하다 _ 상해에 배를 대고 _ 양식을 먹으면서 장난삼아 짓다 _ 나가사키항에 이르러 _ 시모노세키를 지나면서 _ 고베에 잠시 배를 대고서 _ 요코하마에 들리다 _ 화륜차를 타고 도쿄에 들어가다 _ 우리 공사관에 머물러 하룻밤을 자며 서기 유찬에게 지어 보이다 _ 태평양에서 일출을 보다 _ 밤새도록 북풍이 크게 불어 배가 더욱 심하게 흔들리기에 저절로 나그네 시름이 일어나다 _ 뱅쿠버 항구에 상륙하다 _ 카나다에서 기차를 타고 동쪽으로 구천 리를 가면서 _ 큰 들판을 지나며 _ 슈피리어 큰 호수를 지나며 _ 뉴욕의 부유하고 번화함이 입으로 형언할 수 없고 붓으로도 기술할 수 없다 _ 뉴욕 전기박람회에 가서 보니 세상의 많은 물건들이 모두 전기 기계로 만들어졌다. 관현은 저절로 연주되고, 차와 떡도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그 가운데 가장 기이한 것은 오백 리 밖에 있는 큰 폭포의 소리를 끌어와 물그릇 속에 담아 놓은 것이다. 귀를 기울여 들으면 사람을 오싹하게 한다 _ 대서양 배 안에서 _ 대서양을 험난하다고 하는데 뱃길 구천 리를 지금 무사히 건너 리버풀 항구에 닿았다 _ 영국 수도 런던에 들어가며 _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삼백여 리를 가서 새벽에 화륜선을 타고 아침에 플나싱 항구에 정박했으니 네덜란드 동쪽 국경이다 _ 독일 서울 베를린을 지나며 _ 폴란드의 옛서울 _ 러시아 국경에 이르자 무관 한 명과 외부 관리 한 명이 와서 맞이하였다 _ 모스크바에 도착하여 러시아 황제의 행차를 구경하다 _ 러시아 궁궐에 들어가 친서와 예물을 바치다 _ 오월 이십육일은 러시아 황제의 경사스런 예식인 대관식 날이라, 각국 사신들이 축하하는 반렬에 들어가 참석하였다 _ 도성에 가득 사흘 밤 동안 등불을 켜다 _ 황궁에서 밤에 연극을 보다 _ 만민 잔치 _ 모스크바 공관에서 꿈을 꾸다 _ 모스크바 공관에서 _ 서양 미인가 _ 모스크바 공관에서 달밤에 한양 친구들을 그리워하다 _ 열병식을 보고 돌아와 장구를 쓰다 _ 황촌의 여름 행궁 _ 예배당 _ 네바강 _ 네거리에 조성된 공원 _ 엘라긴섬 _ 큰 식물원 _ 동물원 _ 서커스장 _ 영화관 _ 철로 마차 _ 자전거 _ 러시아 역대 황제 무덤이 모두 한 예배당에 있다 _ 표트르 대제가 수도를 개척할 때에 살던 집 _ 분수관 _ 수돗물 _ 양조장 _ 농무박물관 _ 성 밖의 우유 짜는 목장 _ 전화통 _ 전등 _ 감옥서 _ 면포 직조소 _ 제지소 _ 조폐소 _ 황제가 타는 화륜선 _ 정수장 _ 해구의 포대 _ 조선소 _ 도서관 _ 각급 학교 _ 온궁 박물관 _ 유리 제조소 _ 천문대 _ 러시아 서울에 불망화라는 꽃이 있어 여인들이 머리 가득 장식으로 꽂는다 _ 단오절 _ 낙조를 보다 _ 페테르부르크 공관 유감 _ 네바강 만조 _ 음력 유월 오일에 우편으로 사월 십일일 집에서 보낸 편지를 받아 보다 _ 계정 공사가 율시 한 수를 지어 주기에 원운에 차운해서 바치다 _ 계정 공사의 소상자찬에 삼가 화운하다 _ 골삐노 천문대에 가서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산에 올라 짓? _ 양력 칠월 칠일 _ 비서랑 소석 민경식과 참서관 월산 주석면이 유람신사로 남로를 따라 이르렀는데, 사행이 머지않아 돌아갈 것이므로 이 시를 읊어 회포를 서술하다 _ 계정 공사를 따라 차를 타고 엘라긴 섬에 가서 바람을 쐬며 소석 월산과 함께 생각나는 대로 읊다 _ 동물원에 놀러갔는데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동물들이 있기에 각각 시 한 수를 붙이다 _ 사자 _ 악어 _ 재주부리는 코끼리 _ 검은 꿩과 흰 꿩 _ 객사에서 우연히 쓰다 _ 사행의 돌아갈 날짜가 팔월 십구일로 정해졌는데 소석과 월산이 이곳에 떨어져 있게 되었으므로 시를 지어 이별을 기록하다 _ 소석에게 주다 _ 월산에게 주다 _ 러시아 해군 장관에게 지어 주다 _ 염오 수행원이 불어를 배우기 위해 지금 파리로 가니, 이제 타국에서 객을 전송하며 남북으로 길이 나뉘게 되어 슬픔을 달래기 어렵다 _ 염오의 증별시에 차운하다 _ 페테르부르크를 떠나면서 _ 모스크바를 다시 지나다 _ 박람회를 보기 위해 하신주에 머물다 _ 박람회를 관람하다 _ 가벼운 기구에 타다 _ 볼가강에서 화륜선을 타고 동남쪽으로 밤에 떠나다 _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 길로 들어서다 _ 음력 칠월 이십육일은 큰어머니 소상인데 타국에 있어 제사에 참석할 수 없으니 안타까운 마음 더욱 견딜 수 없다 _ 느낀 바를 써서 우정 협판에게 올리다 _ 양력 구월 구일 시베리아 산길에서 짓다 _ 시베리아 철도가 끊어져 마차를 타고 가다 _ 몽골 국경을 지나는데 몽골의 사람으로 러시아 국적에 편입한 자가 몹시 많다. 변발에 긴 도포 차림을 여전히 바꾸지 않고 천막을 치고 들에서 살며 유목할 뿐이다 _ 이르쿠츠크 서시베리아총독부에 도착하다 _ 바이칼 호를 건너다 _ 흑룡강에 와서 화륜선으로 갈아타고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하노라니 오늘 몹시 고단하다 _ 하바롭스크 총독부에 도착하다 _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장백산 위에 큰 못이 있는데 그 둘레가 팔십 리이다. 이 물이 나뉘어 흐르며 세 강이 되니, 남으로 압록강, 동으로 토문강, 북으로 흑룡강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직접 그곳에 가서 지형을 자세히 살펴보지 못한 채, 단지 전해오는 말만 듣고 대충 말하는 것이다. 이제 지도를 살펴보면 러시아와 몽골 두 나라의 경계에 새안산이 있다. 여기서 북으로 새올가강으로 빠져나가 러시아 경계가 되고, 남으로 알군강으로 빠져나가 몽골의 경계가 된다. 동으로 몇백 리를 흐르다가 합류하여 흑룡강이 되고, 다시 오천 리를 흘러 동해로 들어간다. 흑룡강의 남쪽 언덕에서 만주의 경계가 시작된다. 장백산은 흑룡강의 동남에 있는데 북으로 흐르는 물이 숭가리강이 되어 흑룡강에 합류하니, 실은 흑룡강의 근원이 장백산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옛날 숙종 때에 청나라에서 오랄총관 목극등을 파견하여 (우리나라의) 북쪽 경계를 조사하여 정하게 하였다. 그때 나의 선조 광천공 부자께서 이 일에 참예하여 무산에서 팔백 리를 거쳐 토문강의 근원을 거슬러 장백산 정상에 올라 큰 못을 두루 살펴보고 그 경계를 상세히 정하셨다. 물이 나뉘는 곳에 비석을 세우고 지형을 그림으로 그려, 돌아와 조정에 바치셨다. 숙종께서 어제시를 지어“그림으로 보아도 장관인데, 산에 오르면 그 기운 어떠할까? 그동안 경계를 다투던 시름이 이제부터 모두 사라지리라.”하시고는 아울러 은혜로운 상까지 내려주셨다. 지금 내가 강 동쪽을 따라 내려오니 장백산이 손으로 가리킬 만한 곳에 있지만, 길이 먼 데다 내 마음대로 올라가 선조의 자취를 찾아볼 수도 없기에 부끄럽고 아쉬움을 견딜 수 없다 _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하다 _ 신문을 보고 비로소 당질 세형이 요즘 원산항 우체사장에 임명된 것을 알았다. 이미 부임했을 텐데, 귀국하는 배가 곧장 부산으로 향하기에 원산항에 들리지 않으니 만나기 어려운 형편이라 몹시 서운하다 _ 우리나라 유민들의 도소에 지어주다 _ 새벽에 부산에 정박하다 _ 인천항에 와서 정박하다 _ 시월 이십일일 서울에 들어와 복명하고 러시아 황제의 회답 친서를 바쳤다. 신들이 입대하여 우러러 뵈니 성체가 강녕하시고 세자 저하도 안녕하시어 기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먼 길을 다녀 온 노고를 물어보시며 은총과 관심이 극진하셨는데, 신들은 티끌만큼도 보답할 수 없어 몹시 황공했다. 서궁에도 복명하고 회답서를 올렸다. 우러러 천안을 뵈오며 입대하니“아! 너희들의 이번 사행 길은 일곱 달이나 걸린 먼 노정이었는데 고생이 얼마나 많았느냐”하셨다. 조정에서 물러나 집으로 돌아와 뵈니 아버지의 건강은 그런대로 평안하셨지만 어머니의 풍이 여태 회복이 더디어 자식 된 마음에 몹시 안타까웠다 ㆍ162 _ 친척과 벗들이 내가 집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일제히 모여 환영하였다. 촛불 심지를 자르며 즐겁게 이야기하니, 시금동과 육교의 풍월이 다시 예전의 인연을 이었다. 이번 사행은 일곱 달 동안 여덟 나라를 거치며 모두 육만 팔천삼백 육십오 리를 다녔다 부록 _ 해설 : 1896년 어느 조선인의 세계 일주/ 이효정 |
|
양식을 먹으면서 장난삼아 짓다
喫洋餐戱題 상보 깔린 긴 식탁엔 메뉴판 펼쳐 있고 우유와 빵이 눈앞에 쌓여 있네. 스프, 고기, 생선, 샐러드 차례로 나오고 나이프, 포크, 스푼, 접시 번갈아 사용하네 때아닌 진귀한 과일 유리그릇에 올라오고 각종 향기로운 술이 유리잔에 가득하네. 디저트로 커피 나와 마신 다음에 긴 회랑을 산보하며 담배 피우네. 鋪巾長卓食單開. 牛?麵包當面堆. 羹肉魚蔬供次第, 刀叉匙?換輪回. 不時珍果登?架, 各樣香?滿瑪杯. 終到??茶進後, 長廊散步吸烟來. 대서양 배 안에서 大西洋舟中 집 떠난 지 석 달인데 사만리 길이 어찌 이리도 먼지. 풍속이 다른 여러 나라를 보며 기이한 옷차림으로 큰 바다를 건너네. 어버이 그리울 때마다 자주 꿈을 꾸고 대궐을 바라보며 늘 편지를 봉하네. 사신의 임무를 언제나 마치려는지 하늘가에서 쉴 겨를이 없구나. 離家三閱月, 四萬路何長. 殊俗觀諸國, 畸裝涉大洋. 思親頻托夢, 望闕每封章. 使事何時竣, 天涯處未遑. --- 본문 중에서 |
|
『환구음초』는 대한민국 최초의 세계일주에 대한 한시집이다.
1896년에 러시아황제 니콜라이 2세가 대관식을 거행하게 되자 친노파 조정에서 민영환을 특명전권공사로 파견했는데, 그는 윤치호와 김득련을 수행원으로 추천하였다. 윤치호는 영어를 잘한 유학생이니 서양에 가서 통역할 자격을 지녔지만, 김득련은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한어(漢語) 역관이었으니 사실상 꼭 필요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고종에게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민영환에게는 한어 역관도 필요해, 김득련을 데려갔다. 김득련은 산문 기행문인 『환구일록』과는 별도로 한시집 『환구음초』를 일본에서 출판하였다. 연행사나 통신사 일행이 기행문과 별도로 한시를 지어 외국의 풍물과 자신의 감정을 기록하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인데, 민영환은 김득련의 『환구일록』을 1인칭 시점의 기술로 고쳐 『해천추범(海天秋帆)』이라는 기행문으로 정리했다. 김득련의 시에는 칠언절구가 많은데, 특히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풍물을 칠언절구 36수로 읊은 연작시는 외국죽지사의 관습을 이어받은 것이기도 하다. 김득련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외국인들을 만날 때에 상당히 답답해했는데, 그런 순간에도 한시를 지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였다. 『환구음초』에는 이전의 한시에서 볼 수 없었던 생경한 표현이 많은데, 새로운 문물을 전통적인 한시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그가 얼마나 고심했을는지 실감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