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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계약 1690년
1장 | 2장 | 3장 | 4장 | 5장 | 6장 2부 위반의 아이들 1741년 7장 | 8장 | 9장 | 10장 3부 새로운 땅 1840년 11장 | 12장 | 13장 | 14장 에필로그 작품해설 옮긴이의 글 |
Octavia E. But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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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얀우는 노예제에 대한 생각을 애써 떨치고, 도로가 새로이 던진 문제들, 이를테면 자신의 나이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도로의 말이 맞다. 안얀우는 3백 살 정도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믿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도로는 다른 얘기도 했다. 안얀우의 가장 오랜 기억을 되살려내는 이야기를. 안얀우가 아이였을 때, 속닥거리는 소리를 들었더랬다. 아버지가 자식을 보지 못한다고, 그래서 안얀우는 다른 남자, 지나가던 이방인 남자에게서 얻은 딸이라고들 했다. 어머니에게 물었다가, 처음으로, 그리고 생애 유일하게, 어머니가 안얀우를 때렸다. 그 일이 있고서 안얀우는 그 말을 사실로 여겼다. 하지만 그 이방인 남자에 대해 더 알아낼 기회는 없었다. 어쨌든 안얀우는 상관없었다. 어머니의 남편은 안얀우를 딸로 여겼고 좋은 남자였다. 하지만 늘 그 이방인 종족이 자기와 비슷했는지 어땠을지 궁금했더랬다. --- p.20
세월이 자신의 몸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안얀우는 남편이 늙어가는데 맞춰 자기 몸도 변화시켜가는 법을 실험하고 익혔다. 남들과 너무 다르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재빨리 터득했다. 엄청난 차이는 질투와의심과 공포와 마녀 혐의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첫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은, 미모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 때로 밤에 남편이 오면, 몸을 다시 젊게, 본래 모습으로 바꾸는 일을 아주 쉽고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남편은 평생 젊은 고참 아내를 둘 수 있었던 것이다. --- p.93 지금 도로는 자신이 이따금씩 교배해냈던, 동물에 대해 예민한 감각을 가진 씨족이 하나 있었으면 했다. 감각이 동물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정도까지 확장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동물의 감각과 감정을 전달받는 사람들은 누군가 닭의 목을 비틀거나 말을 거세하거나 돼지를 도살하거나 할 때마다 고통을 당했다. 그들은 그다지 부럽지 못한 삶을, 짧게 살았다. 때로 도로는 그들이 값진 육체를 자살로 낭비하기 전에 죽여주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살아 있는 상태로 이용할 수 있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안얀우에 대한 도로의 통제력은 위험스러울 만큼 제한돼 있었다. --- p.155 안얀우는 고향을 떠난 이후 도로가 살인을 하는 장면을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자주 살인을 했지만, 다른 사람이 없는 곳에서 했다. 새로운 몸으로 휘틀리에 와서 새로운 또 다른 몸으로 바꿔서 갔지만, 공공연하게 하지는 않았고, 또한 바꾸자마자 마을을 떠났다. 마을에 한동안 머무를 때는 이방인의 몸을 하고 머물렀다. 사람들이 도로가 어떤 존재인지 잊지 않도록 했지만, 그것을 일깨우는 방식은 사려 깊고 놀라울 정도로 온화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하고 안얀우는 무덤을 메우면서 생각했다. 지금처럼 자신의 힘을 드러내놓고 과시했다면 가장 믿음직한 숭배자들도 달아났을 것이다. 도로의 살인방식은 누구라도 공포에 질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 p.299 하지만 도로가 돌아가면 늘 여지는 있으리라. 그리고 도로는 늘 안얀우에게로 돌아가리라. 안얀우 때문에, 더 이상 외롭지 않으니까. 안얀우 때문에, 삶이 갑자기 수백 년, 수천 년 만에 더 나은 것이 되었으니까. 안얀우는 도로가 창조해내려고 노력해왔던 종족의 첫 결실과도 같았다. 비록 자신이 직접 창조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리고 다시 창조할 수도 없었지만. 그래서 안얀우는 실현되지 못한 약속이었다. 그래, 언젠가는……. --- p.4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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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과 인류학에 기반을 둔 과학 소설의 걸작
『야생종』은 수천 년을 이어가는 긴 이야기, ‘도안을 만드는 사람’ 시리즈의 프리퀄로서 옥타비아 버틀러의 소설 중에서도 충성도 높은 독자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SF 소설하면 떠올려지는 로봇, 외계인, 우주선, 미래사회 대신 『야생종』은 다른 이의 몸을 이용하여 4천 년을 살아온 불사(不死)의 존재 도로와 스스로의 몸을 완벽히 변형시키며 300년을 살아온 안얀우가 엮어가는 사건들을 통해 선택 교배에 따른 돌연변이종의 진화, 유전자 조작의 윤리 문제, 공동체의 발전과 와해 등을 이야기한다. 또한 비범한 능력(염력, 독심력, 초근력, 변신, 장수, 초재생력)을 가진다는 것의 의미, 그리고 주변 인물들이 드러내는 경외, 수용, 애정, 공포, 분노, 질투, 미움 등의 다양한 감정들에 대해 들려준다. 소설은 도로와 안얀우가 처음 만나는 17세기 말 아프리카에서 시작해 19세기 중반 남북전쟁 전 미국에서 끝을 맺는다. 그 기간이 아프리카인들의 고난과 이주 및 유랑의 역사 드라마가 펼쳐진 시기라는 점을 감안해본다면 이 작품을 비사실주의 소설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야생종』의 또 다른 매력은 안얀우의 고향 아프리카에 대한 작가의 생생하고 구체적인 묘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작가가 펼쳐놓은 제국주의 시대 이전의 아프리카 대륙에 존재했던 다양한 공동체의 문화·관습·전통·신화·신앙을 접한 독자들은 서아프리카의 촌락 모습(물물교환 경제, 장사하는 시장통 여인들, 농사 방식, 종교 관습, 얌?훈제생선?채소 등의 음식 문화)을 현실처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동시에 작가는 17세기의 아프리카가 엄청난 노예무역의 횡행으로 완전히 파괴되어버리는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아프리카인들의 유산은 인간의 목숨이 돈으로 거래되었던 홀로코스트와 디아스포라의 충격에 맞서 정신적인 것으로 변모했다. 그러나 『야생종』은 이러한 비극의 역사에 대해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어쩜 그것이 옥타비아 버틀러의 소설이 다른 아프리카계 미국 문학의 고전들과 구별되는 점일 것이다. 그럼에도 옥타비아 버틀러의 간략하고 절제된 방식을 통해서 독자들은 아프리카에서 납치되어 아메리카로 팔려간 사람들이 그 과정에서 겪었던 고난을 느끼고 숙연해지고 만다. 미국 노예제를 전면으로 다루는 대신 옥타비아 버틀러는 도로의 위협에서 벗어나려는 안얀우의 자유에 대한 갈망과 도망이라는 주제를 과학소설다운 설정과 결합시킨다. 안얀우는 마음대로 신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 다른 인간 모습뿐 아니라 동물로도 변할 수 있어 자신을 쫓는 도로를 피해 자신만의 공동체를 건설한다. 그곳에서 공동체 일원들은 세상으로부터도 보호받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로로부터 보호받는다. 아마도 『야생종』이 여타 ‘노예문학’과 겹쳐지는 가장 강력한 지점은 바로 안얀우의 ‘금기’에 대한 고집, 나름의 도덕 관습을 지키려는 고집으로 표현되는 노예 역시 다른 어떤 문명화된 인류와 마찬가지로 ‘인간’이라는 주장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 노예제에 대한 이 모든 직·간접적인 묘사와 언급에도, 『야생종』의 핵심 쟁점은 그것이 아니다. 언제나 그래왔듯 옥타비아 버틀러의 주요 관심사는 인간은 권력·능력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그리고 인간은 어디까지 변화하고 적응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대적할 자 없는 엄청난 파괴적(이면서도 생산적) 능력을 지닌 도로를, 충동적이고 집요하고 외곬수이며 스스로 신과 같은 위치에 올라선 존재로 묘사한다. 이는 권력 방정식의 어두운 측면이지만, 여기에 안얀우를 대적시키고 도로가 어떠한 긴장과 부담에도 그녀와 지속적인 관계를 추구하도록 만들면서, 그러한 권력도 약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정말, 모든 것은 변하게 마련이고 인간의 정신에는 이러한 구원의 힘이, 내어주고 희생하고 사랑하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사랑의 힘이야말로 『야생종』에서 간과될 수 없는 소재다. 무엇보다 안얀우와 도로의 이야기 자체가 시간과 공간을 거듭하며 전개되는 팽팽한 러브 스토리이다. 애초에 이 이야기는 뒤이은 작품들이 출간된 이후 그 작품들의 토대를 다지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쓰였지만, 단순히 ‘도안을 만드는 사람’ 시리즈의 효과적인 서장으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다양한 독자층에 풍부하고 혁신적이고 훌륭하고 재미있고 강력한, 하나의 꽉 짜인 이야기를 선사하고 있다. 또한 『야생종』에 은밀히 직조돼 있는 훌륭한 서사 전략은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준다. 더함도 덜함도 없이 엄격하게 꽉 짜인 구성과 속도감 있게 읽히는 문장의 힘은 오슨 스콧 카드 같은 작가가 쓴 소설작법서(국내 번역 제목 『당신도 해리 포터를 쓸 수 있다』)에서 ‘최상급 소설’이라는 칭송을 받는다. 특히 옥타비아 버틀러는 기존의 리얼리즘적 페미니즘 소설로는 한계가 있는 ‘성공적 여성주인공’의 창조로 다나 헤러웨이(「사이보그 선언문」) 등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