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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문학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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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부 내 봄은 명월관 교자 먹기일세

가재미, 나귀 - 백석 13
유경식보柳京食譜 - 이효석 15
명태 - 채만식 21
애저찜 - 채만식 24
여름의 미각 - 계용묵 27
수박 - 최서해 32
참외 - 우스다 잔운 35
청포도의 사상 - 이효석 37
산채 - 채만식 41
유령의 종로 - 이태준 45
봄을 기다리는 맘 - 김상용 49
애주기 - 김안서 54
점포의 소머리 - 우스다 잔운 59
외국 가서 생각나던 조선 것 - 이정섭 62
국수 - 백석 64
김 - 구본웅 67

제2부 음식, 소설이 되다

산적 - 채만식 71
냉면 - 김랑운 79
갈비 뜯는 개 - 윤백남 99
떡 - 김유정 103
10월에 피는 능금꽃 - 이효석 120
운수 좋은 날 - 현진건 125

제3부 추탕집 머슴으로

추탕 집 머슴으로 : 이틀 동안의 더부살이 - B기자 145
냉면 배달부로 변장한 기자 : 비밀 가정 탐방기 - 야광생 153
조선 요리점의 시조 명월관 165
명월관과 식도원의 요리 전쟁 168
부호의 음식과 극빈자의 음식 175
과자 상점이 인기가 있는 이유 : 남녀 연애 덕 179
빙수 - 방정환 181

제4부 팔도 명물 음식 예찬

진품 중 진품 : 신선로 - 우보생 187
전주 명물 : 탁백이국 - 다가정인 191
충청도 명물 : 진천 메밀묵 - 박찬희 194
영남 진미 : 진주 비빔밥 - 비봉산인 196
괄시 못할 경성 설렁탕 - 우이생 198
천하 진미 : 개성 편수 - 진학포 202
사랑의 떡, 운치의 떡 : 연백 인절미 - 장수산인 204
사철 명물 : 평양 냉면 - 김소저 206
대구의 자랑 : 대구탕반 - 달성인 209
경성 명물 음식 212
경성 명물 채소와 과일 218

음식 찾아보기 221

저자 소개 3

BAEK SEOK,白石,白奭,백기행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가장 토속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모더니스트.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 출생으로 본명 백기행이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신식교육을 받았다. 필명은 백석(白石)과 백석(白奭)이 있었는데 주로 백석(白石)을 많이 사용하였다.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의 시를 좋아하여 그의 이름 중 석을 택해서 썼다. 오산고보 재학 중 백석은 부친을 닮아 성격이 차분했으며 친구가 없었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경성문화 인쇄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찍었다. 윤동주는 백석 시집을 구할 수 없어 노트에 시를 필사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해방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가장 토속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모더니스트.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 출생으로 본명 백기행이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신식교육을 받았다. 필명은 백석(白石)과 백석(白奭)이 있었는데 주로 백석(白石)을 많이 사용하였다.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의 시를 좋아하여 그의 이름 중 석을 택해서 썼다. 오산고보 재학 중 백석은 부친을 닮아 성격이 차분했으며 친구가 없었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경성문화 인쇄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찍었다. 윤동주는 백석 시집을 구할 수 없어 노트에 시를 필사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해방 전 천재 시인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오산소학교, 오산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오산고보 졸업 후, 조선일보가 후원하는 춘해장학회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 학원 영어사범학과에 입학하였다. 김소월을 동경하면서 시인의 꿈을 키웠으며, 1930년 [조선일보] 신년현상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1934년에 귀국하여 8·15 광복이 될 때까지 [조선일보],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영어교사로, [여성사], [왕문사] 등에서 근무하며 시작 활동을 했다. 1935년 [조광] 창간에 참여하였고, 같은 해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시작 활동 외에도 많은 외서들을 번역했다고 전해진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간행하였으며 같은 해 조선일보를 그만두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여고보 영어교사로 부임하였다. 1939년 [여성]지 편집 주간 일을 사직하고 고향인 평북 지역을 여행하였다. 1940년 만주의 신징(지금의 장춘)으로 가서 3월부터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 말단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창씨개명의 압박이 계속되자 6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1942년 만주의 안둥 세관에서 일하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신의주를 거쳐 고향인 정주로 돌아왔다.

1946년 북조선예술총동맹이 결성된 후 1947년 문학예술총동맹 외국문학 분과위원이 되었다. 이때부터 러시아 문학 번역에 매진했다. 1949년 조선작가동맹 기관지 [문학신문]의 편집위원으로 위촉되었고 [아동문학]과 [조쏘문화] 편집위원을 맡으며 안정적인 창작활동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57년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간행하였으나 1958년 ‘붉은 편지 사건’ 이후 격렬한 비판을 받게 되면서 이후 창작과 번역 등 대부분의 문학적 활동을 중단했다. 1959년 양강도 삼수군 관평리의 국영협동조합 축산반에서 양을 치는 일을 맡으면서 청소년들에게 시 창작을 지도하고 농촌 체험을 담은 시들을 발표했으나, 1962년 북한 문화계에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창작 활동을 접었다. 1996년까지 삼수군 관평리에서 농사를 짓다가 사망했다는 내용이 드러났지만 정확한 정보는 알려져 있지 않다.

방언을 즐겨 쓰면서도 모더니즘을 수용하여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백석은 일제 강점기에도 모국어를 지키고자 하였다. 시집으로 『사슴』(1936)이 있으며, 대표 작품으로 「여우난골족」,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국수」, 「흰 바람벽이 있어」 등이 있다. 북한에서 나즘 히크메트의 시 외에도 푸슈킨, 레르몬토프, 이사콥스키, 니콜라이 티호노프, 드미트리 굴리아 등의 시를 옮겼다. 1936년에 펴낸 시집 『사슴』에 그의 시 대부분이 실려 있으며 수록된 시 「통영」, 「적막강산」, 「북방」 등 백석의 대표작들은 실향 의식을 바탕으로 서민들의 삶을 토속적인 언어로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한국의 대표 모더니즘 시인으로 평가받는 백석의 시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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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孝石, 가산

한국 단편문학의 수작으로 손꼽히는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 성(性) 본능과 개방을 추구한 새로운 작품경향으로 주목을 끌기도 했던 1920년대 대표적인 단편소설 작가였다. 강원도 평창 출생으로 경성 제1고보(현재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현재의 서울대학교) 법문학부 영문과를 졸업하고 1928년 [조선지광]에 단편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면서 동반작가로 데뷔하였다. 『행진곡』 『기우』 등을 발표하면서 동반작가를 청산하고 구인희(九人會)에 참여, 『돈』『수탉』 등 향토색이 짙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1934년 평양 숭실전문 교수가 된 후 『산』『들』 등 자연
한국 단편문학의 수작으로 손꼽히는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 성(性) 본능과 개방을 추구한 새로운 작품경향으로 주목을 끌기도 했던 1920년대 대표적인 단편소설 작가였다. 강원도 평창 출생으로 경성 제1고보(현재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현재의 서울대학교) 법문학부 영문과를 졸업하고 1928년 [조선지광]에 단편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면서 동반작가로 데뷔하였다.

『행진곡』 『기우』 등을 발표하면서 동반작가를 청산하고 구인희(九人會)에 참여, 『돈』『수탉』 등 향토색이 짙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1934년 평양 숭실전문 교수가 된 후 『산』『들』 등 자연과의 교감을 수필적인 필체로 유려하게 묘사한 작품들을 발표했고, 1936년에는 한국 단편문학의 전형적인 수작이라고 할 수 있는 『메밀꽃 필 무렵』을 발표하였다.

그의 문체는 세련된 언어, 풍부한 어휘, 시적인 분위기로 요약할 수 있으며, 시적인 정서로 소설(산문문학)의 예술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1942년 평양에서 결핵성 뇌막염으로 3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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蔡萬植, 백릉白菱, 채옹采翁

호는 백릉(白菱), 채옹(采翁). 1902년 전라북도 옥구에서 출생하여 임피보통학교,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와세다대학 부속 제일와세다고등학원을 중퇴했다. 조선일보사·동아일보사·개벽사 등의 기자로 재직했으며, 1936년 이후로는 창작에 전념하며 풍자성이 농후한 작품을 발표하였다. 1945년 낙향하여 1950년 이리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1924년 단편「새길로」(『조선문단』)로 등단 후 290여 편에 이르는 장편·단편 소설과 희곡·평론·수필 등을 썼다. 장편 「인형의 집을 나와서」(1933)·「탁류濁流」(1937)·「천하태평춘」(1938)· 「금(金)의 정열
호는 백릉(白菱), 채옹(采翁). 1902년 전라북도 옥구에서 출생하여 임피보통학교,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와세다대학 부속 제일와세다고등학원을 중퇴했다. 조선일보사·동아일보사·개벽사 등의 기자로 재직했으며, 1936년 이후로는 창작에 전념하며 풍자성이 농후한 작품을 발표하였다. 1945년 낙향하여 1950년 이리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1924년 단편「새길로」(『조선문단』)로 등단 후 290여 편에 이르는 장편·단편 소설과 희곡·평론·수필 등을 썼다.

장편 「인형의 집을 나와서」(1933)·「탁류濁流」(1937)·「천하태평춘」(1938)· 「금(金)의 정열」(1939) 등과 단편「레디메이드 인생」(1934)·「치숙」(1938)·「패배자의 무덤」(1939)·「맹순사」(1946)·「미스터 방(方)」(1946) 등이 대표작이다. 1942년 조선문인협회가 주관한 순국 영령 방문 행사와 1943∼1944년에 국민총력조선연맹이 주관하는 예술 부문 관계자 연성회, 보도특별정신대 등 친일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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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24쪽 | 258g | 148*200*20mm
ISBN13
9791187949121

책 속으로

명천明川 태가太哥가 비로소 잡아 팔았대서 왈 명태明太요, 본명은 북어北魚요, 혹 입이 험한 사람은 원산元山말뚝이라고도 칭한다. 빼빼 마르고 기다란 몸瘦軀長身, 피골이 상접, 한 3년 벽곡?穀이라도 하고 온 친구의 형용이다. 배를 따고 내장을 싹싹 긁어내어 싸리로 목줄띠를 꿰어 쇳소리가 나도록 바싹 말랐다. 눈을 모조리 빼었다. 천하에 이에서 더한 악형惡刑도 있을까. 모름지기 명태 신세는 되지 말 일이다. --- p.21

겨우 젖이 떨어졌을까 말까 한 도야지 새끼를 속만 그러내고 통으로 푹신 고아 육개장 하듯이 괴어서 국물에 먹는데,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도 입을 대기는 비로소 처음이고, 처음이라 그런지 좀 애색했다. --- p.24

두어 고팽이 ‘복도’를 지나 으슥한 뒷방으로 들어서거든, 썩 들어서자 첫눈에 뜨인 것이 신선로. 신선로에선 김이 무엿무엿 나는데, 신선로를 둘러 접시, 쟁반, 탕기 등 크고 작은 그릇들이 각기 진미를 받들고 옹위해 선 것이 아니라, 앉았단 말일세. 이것은 소위 교자라. 에헴, ‘안석’을 등지고 ‘베개’을 괴고, 무엇을 먹을고 우선 총검열을 하겄다. 다 그럴 듯한데, 급할수록 모름지기 여유가 필요하니 서서히 차려보자. ‘달걀저냐’를 하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고, 다음으로 어회魚膾, 또 다음으로 김치, 이러다 보니, ‘게장’과 ‘어리굴젓’이 빠졌구나. --- p.49

근 십년 전 조선 내에서 요리라 하는 이름을 알지 못하던 때, 소위 별별 약주가藥酒家 외에 전골 집, 냉면 집, 장국밥 집, 설 렁탕 집, 비빔밥 집, 강정 집, 숙수 집 등속만 있어, 먼지가 수북한 망가진 식탁 위에 전라도 대죽을 잘게 자른 긴 젓가락, 세 척하지 아니하여 자연 흑칠이 된 아현阿峴 놋쇠 숟가락, 순舜 임금 때도 모양이 찌그러져 사용할 수 없던 길고, 크고, 둥글고, 모나고, 깊고, 얕고, 흑색, 갈색, 천태만상의 질그릇에, 먹기 어려운 고기, 생선, 채소, 과일 등을 신사, 노동자, 노소남녀가 한 식탁에 늘어서거나 혹은 섞여 앉아서 먹고, 마시고, 먹고, 게워내고 할 때에, 한 신식 파천황적 청결하고 완전한 요리점이 황토현黃土峴에 탄생하니, 즉 조선 요리점의 비조 명월관이 이것이다. --- p.165

구수한 냄새와 푸근한 더운 김이 쏟아져 나오는 목로 안으로 들어서 개다리상 같은 걸상에 걸어앉는다. 먼저 틉틉한 탁백이 한 잔을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탁백이국 그놈 한 주발에 밥 한
술을 넣어 훌훌 마신다. 산해진미와도 바꿀 수 없는 구수한 맛에 속이 후련하다. 더구나 그 전날 밤에 한 잔 톡톡히 먹고 속이 몹시 쓰린 판에는 이 탁백이국을 덮어 먹을 것이 없다. 그런데 그것이 기가 막히게 헐해서 탁백이 한 잔, 국 한 주발, 밥 한 덩이, 세 가지를 합해서 일금 5전이다.

--- p.192

출판사 리뷰

요즘 텔레비전을 켜면 온통 요리 프로그램이다. 한동안 ‘먹방’이 유행하더니 어느 틈에 요섹남 셰프테이너들이 나와 요리 솜씨를 뽐내는 ‘쿡방’으로 진화했다. 그만큼 요리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었다는 말이겠다.

100년 전만 해도 서울 사람들은 냉면을 몰랐다

오늘의 음식 문화의 뿌리는 언제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것일까? 냉정하게 말하면 그것은 채 백 년이 되지 않는다. 그 전에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빼고는 사는 마을을 벗어날 일이 없었다. 식사는 으레 집에서 하는 것이었으며, 여행자도 외식문화도 없으니 음식점이 존재할 턱이 없었다.
근대적인 의미의 음식문화가 태동한 것은 20세기 들어서였다. 최초의 요릿집이 문을 연 것은 우리가 국권을 상실하기 직전이었지만, 그로부터 십여 년이 흐른 뒤에도 큰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1920년대가 되자 상황이 일변하였다. 음식 문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때를 기점으로 전통 음식 문화와 근대 음식 문화의 경계선이 확연히 아로새겨진다.
우후죽순 음식점과 선술집이 생겨났다. 때를 같이하여 냉면, 설렁탕, 추어탕, 군고기, 떡국, 만두… 민초들의 사랑을 받은 대중요리가 등장하였다. 관북지방에서나 즐기던 냉면은 1910년대에 이르러 비로소 평양에 냉면집이 생기고, 1920년대가 다 되어서야 경성에 상륙했다. 100년 전만 해도 서울 사람들은 냉면을 몰랐다는 이야기다. 고기를 음식점에서 구워 먹는 문화도 1920년대 중반 서울 전동의 대구탕집에서 시작된 것이 빠른 속도로 전국으로 퍼졌다. 음식 배달부도 등장한다.

100년 전으로 떠나는 음식 문학 기행

문화혁명과도 같았을 이 격랑의 양상은 어땠을까?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현대, 보수와 개혁이 충돌하고 일합을 겨루던 그 다채롭고 생동감 넘치던 현장은 요리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문학이 있다. 이때는 마찬가지로 근대문학이 여명기에서 중흥기로 들어서는 참이었다. 숱한 문인, 문사 들이 이 드라마틱한 장면을 소설로, 산문으로, 르포르타주로, 기사로 담아냈다. 우리 문학이 이 시기 음식 문화의 혁명적 변화를 얼마나 생생하게 포착해 냈는지 이 책은 보여준다.

명태 창난젓에 고추무거리에 막칼질한 무이를 비벼 익힌 것을 이 투박한 북관北關을 한없이 끼밀고 있노라면 쓸쓸하니 무릎은 꿇어진다
시큼한 배척한 퀴퀴한 이 내음새 속에 나는 가느슥히 여진女眞의 살내음새를 맡는다
얼근한 비릿한 구릿한 이 맛 속에선 까마득히 신라 백성의 향수도 맛본다

백석의 시 「북관」北關 전문이다. 이 짧은 시는 음식이 우리에게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허기를 면하기 위해, 사지육신을 움직일 힘을 얻기 위해 섭취하는 음식 속에는 그 음식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정신과 영혼을 이어주는 내밀한 또다른 무엇이 있는 법이다.
창난젓 하나에서 수백 년 또는 천여 년을 거슬러올라 이 땅을 살아간 사람들의 체취를 맡기도 할진대, 오늘의 음식문화의 맹아萌芽가 돋아난 백여 년 전의 우리 삶을 돌아보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고도 충분하다. 한 마디로 이 책은 문학으로 말하는 우리 음식사라고 할 수 있다.

총알 배송을 연상케 하는 음식 배달부

오늘의 총알 배송을 연상케 하는 음식 배달부의 모습, 1920년대 선술집 풍경, 사람이 거꾸로 매달려 국수를 뽑는 그림, 닭과 돼지를 키우던 소설가 현진건의 캐리커처 … 이 책에 더불어 수록된 이미지 자료들이다. 구본웅, 안석영, 나혜석 등의 귀한 그림은 역사적 가치도 높거니와 백 마디 말보다 더 사실적으로 당시의 음식 문화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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