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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영황제를 찾아서--------진이( 怡) 1, 상해
2. 동양의 헐리웃 상해-------전한(田漢), 상해 3. 아버지의 이상촌----------김로(金路), 북경 4. 무성영화의 여왕----------심적(沈寂), 상해 5. 첫 아내-----------------왕인미(王人美), 북경 6. 노구교를 보위하라--------우람(于藍), 북경 7. 김염의 아내-------------진이 2, 상해 8. 대후방에서의 항일연극----두선(杜宣), 상해 9. 또 한 사람의 전영황제----유경, 상해 10. 조선의 용군------------김학철(金學鐵), 연변 11. 비운의 여배우----------오조광(吳祖光), 북경 12. 상해의 꿈-------------진이 3, 상해 |
李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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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독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 책이 한국에서 출판되어 나와 참 기쁩니다. 1930년대의 상해 영화는 중국영화사의 황금시대였습니다. 이 세대에 톱스타가 된 조선인 김염은 중국영화사상에 빛나는 위대한 배우였습니다. 30년대의 중국대륙에서 조선 독립운동을 위해 싸운 김산과 김학철 등은 '상해 영화황제 김염'의 존재를 민족의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김염을 이야기하면서 그와 동시대 중국인들의 사랑과 우정을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30년대 상해 영화계의 동료들-전한, 손유, 완영옥, 왕인미, 여리리, 유경, 오영강, 전방 등 상해의 영화 동료들이 김염의 재능을 개화시켰던 것입니다. 중국인들의 따뜻한 마음씨가 김염에게 살아가는 힘을 주었던 것입니다. -----------생략----------- ---p.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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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의 상해는 중국영화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하며 '동양의 헐리우드'라고 불리고 있었다. 오늘의 홍콩, 상해, 북경, 대만 영화는 모두 그 뿌리를 30년대 상해영화에 두고 있다. 그 상해영화계에 혜성과 같이 등장하여 약관의 나이에 톱스타의 자리에 오른 한 조선인 청년이 있었다. 김염(金焰)이라는 생소한 이름이 그 주인공이다.
최근 중국에서는 중국영화의 전시기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영화인 1백 명을 선정하는 작업이 있었다. 그 1백 명 가운데 최선두를 다툰 것은 중국영화사상의 전설적 여배우로 알려진 완영옥(阮玲玉)과 김염이었다고 한다.(KBS 일요스페셜 김광필 PD 자료 소지) 김염은 시인 감독으로 칭송받은 거장 손유 감독에게 발탁되어 영화 [野草寒花]에서 인기절정의 완영옥과 공연하며 새로운 숨결의 배우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으며, 1932년 상해의 영화신문 {電聲}에서 실시한 독자 인기투표에서 '영화황제(電瑛皇帝) 칭호를 부여받았다. 김염은 특히 지식인들과 청년들의 높은 호응을 얻었으며,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대로](大路)는 중국영화사상에 큰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김염이 상해 영화계에 진출하게 된 배경에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라는 객관적 조건과 여기에 맞섰던 그의 남다른 가족사가 놓여 있다. 그의 아버지 김필순은 세브란스병원 의사로서 신민회 활동에 참여하였다가 만주로 망명해 이상촌을 건설하려 했던 선각자였으며, 유명한 독립운동가 김규식이 고모부, 그리고 2.8동경유학생 독립선언의 주역이었던 김마리아와는 사촌 사이였다. {아리랑의 노래} 주인공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김산(金山)이나 {격정시대}의 김학철 등도 김염의 존재를 민족의 자랑으로 여겼다고 한다. 이 책은 김염의 삶이라는 창을 통해 당시 중국영화 톱스타들의 내밀한 부분까지를 덤으로 엿보게 한다. 완영옥 이후의 톱배우였던 첫 아내 왕인미(王人美)의 초지일관한 김염에의 애정, 주은래로 하여금 김염을 '중국의 부마'라고 일컫게 한 중경시대 이래의 톱스타 진이(秦怡)와의 결혼생활.....그리고 그를 둘러싼 중국 영화인들과의 우정의 끈을 통해 한국과 중국 현대사의 흥미로운 부분을 비춰주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