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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불로 빚어낸 보물, 도자기
도자기는 도기와 자기를 합친 말이다. 질흙을 빚어 500~1,100도 사이의 불에서 구운 그릇을 도기라 하는데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 토기부터 삼국 시대의 토기가 도기에 속한다. 도기는 표면이 거친데다 물이 잘 스며들고 깨지기 쉬웠다. 사람들은 물이 스며들지 않고 쉽게 깨지지 않는 단단한 그릇을 원했다. 돌처럼 단단해질 수 있는 질흙으로 빚어 유약을 입히고, 1,200도가 넘는 불에서 구운 자기는 사람들의 이런 바람에서 동양에서 먼저 탄생했다. 도기만 있던 서양과 달리 동양에서는 도기와 자기를 함께 사용하면서 질흙으로 빚어 구운 물건을 모두 도자기라 부르게 되었다. 시대의 정신을 담은 도자기 천년의 역사 사람들의 오랜 꿈과 노력 속에서 태어난 도자기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그 모습이 달라져 왔다. 고려 시대에는 독특한 비색 청자와 다채로운 무늬의 상감청자가 귀족들의 사랑을 받았다. 화려한 생활을 즐겼던 고려 왕족과 귀족들은 생활 속 어디에서나 청자를 사용했다. 음식을 담는 그릇은 물론 베개와 의자도 청자로 만들었으며, 청자로 기와를 올리고 담벽을 장식했다. 절에서도 청자로 만든 불교 의식 용품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고려가 무너지고 조선이 건국되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가는 사람들의 기대와 활기는 자유분방한 표현 기법과 해학의 미가 돋보이는 분청사기를 탄생시켰다. 분청사기의 자리를 이어받은 것은 백자였다. 화려했던 고려의 귀족들과 달리 소박한 생활을 했던 조선의 선비들은 꾸밈없는 달항아리처럼 담백하고 순수한 백자를 사랑했다. 때로는 백자를 도화지 삼아 사군자를 그려 군자의 지조와 절개를 표현하기도 했다. 조선의 선비들은 도자기를 마음을 비추는 그릇으로 생각했다. 그릇이 거칠면 그것을 쓰는 사람의 마음도 함께 거칠어진다고 여겼다. 시대를 닮은 도자기의 변천사를 살펴보면 그때를 살아간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긴 가치와 생활사를 읽을 수 있다. 시대의 정신을 담은 도자기 천년의 역사 사람들의 오랜 꿈과 노력 속에서 태어난 도자기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그 모습이 달라져 왔다. 고려 시대에는 독특한 비색 청자와 다채로운 무늬의 상감청자가 귀족들의 사랑을 받았다. 화려한 생활을 즐겼던 고려 왕족과 귀족들은 생활 속 어디에서나 청자를 사용했다. 음식을 담는 그릇은 물론 베개와 의자도 청자로 만들었으며, 청자로 기와를 올리고 담벽을 장식했다. 절에서도 청자로 만든 불교 의식 용품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고려가 무너지고 조선이 건국되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가는 사람들의 기대와 활기는 자유분방한 표현 기법과 해학의 미가 돋보이는 분청사기를 탄생시켰다. 분청사기의 자리를 이어받은 것은 백자였다. 화려했던 고려의 귀족들과 달리 소박한 생활을 했던 조선의 선비들은 꾸밈없는 달항아리처럼 담백하고 순수한 백자를 사랑했다. 때로는 백자를 도화지 삼아 사군자를 그려 군자의 지조와 절개를 표현하기도 했다. 조선의 선비들은 도자기를 마음을 비추는 그릇으로 생각했다. 그릇이 거칠면 그것을 쓰는 사람의 마음도 함께 거칠어진다고 여겼다. 시대를 닮은 도자기의 변천사를 살펴보면 그때를 살아간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긴 가치와 생활사를 읽을 수 있다. 역사를 새로 쓴 우리 도자기 기술 뛰어난 우리 조상의 도자기 기술은 이웃 나라에서도 탐을 냈다. 임진왜란 때는 많은 도자기 장인이 일본으로 붙잡혀 갔다. 일본에 끌려간 도자기 장인의 우두머리였던 이삼평은 아리타 지역에서 일본 최초의 백자를 만들어 일본 도자기의 시조가 되었고, 훗날 아리타 도자기는 유럽으로 수출되어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한편 조선에서는 오랜 전쟁을 겪으며 나라 살림이 어려워져 도자기 기술도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점차 나라가 안정되고 다시 경제가 발달하자 도자기 기술도 옛 실력을 되찾아갔다. 아름다운 백자의 시대는 다시 활짝 꽃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