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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주자가 초창기에 지은 습작 성격을 띤 5언 장편고시인 「원유편(遠遊篇)」 등 164수 수록
2권: 주자의 도통시라고 일컬어지며 주자의 대표적인 시의 하나로 꼽히는 「관서유감(觀書有感)」 등 171수 수록 3권: 주자의 벗인 남헌 장식의 시에 화답한 「봉동장경부성남이십영(奉同張敬夫城南二十詠)」 등 134수 수록 4권: 주자의 철학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재거감흥(齋居感興)」 20수 등 79수 수록 5권: 주자가 남헌 장식을 찾아보기에 앞서 애국지사였던 장식의 부친 장위공의 묘를 찾아 참배한 「배장위공묘(拜張魏公墓)」 등 156수 수록 6권: 퇴계의 도산잡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운곡이십육영(雲谷二十六詠)」 등 195수 수록 7권: 주자의 시 가운데 독특한 형식인 기행시로 8구 12수의 연작시인 「산북기행십이장장팔구 (山北紀行十二章章八句)」 등 82수 수록 8권: 주자가 서원운동을 전개한 중심지인 여봉을 읊은 「등여봉이수(登廬峰二首)」 등 66수 수록 9권: 한국의 도학자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 ~9곡을 만들게 한 「순희갑진중춘정사간거희작무이 도가십수정제동유상여일소(淳熙甲辰仲春精舍間居戱作武夷櫂歌十首呈諸同遊相與一笑)」 등 89수 수록 10권: 역시 많이 인용되는 주자의 철리시(哲理詩)인 「수구행주이수(水口行舟二首)」 등 63수 수록 |
朱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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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朱熹: 1130~1200)는 우리에게 본명보다는 주자(朱子)라는 호칭으로 더 친숙하다. 이는 그의 정체성이 문학가로서보다는 철학가로서 더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남송사대가로 꼽히는 양만리(楊萬里)와 육유(陸游), 범성대(范成大), 우무(尤?) 등과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그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담암(澹菴) 호전(胡銓)에 의해 조정에 추천된 10인의 시인에 들 정도로 당시에 시재를 인정받기도 하였다.
주희는 서정이나 서경, 영물시 등 거의 모든 방면의 시를 두루 써내었지만 가장 장기를 발휘한 방면은 설리시(說理詩)라고 할 수 있다. 설리시가 차지하는 비율이 다른 방면의 시들에 비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관서유감(觀書有感)」이나「춘일(春日)」같은 시는 7언절구라는 짧은 시의 형식을 빌려서 이취(理趣)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또한「무이도가(武夷櫂歌)」 같은 시는 조선사회에 일종의 문화적 현상을 일으켰을 정도였다. 퇴계의 도산구곡, 우암(尤庵)의 화양구곡, 한강(寒岡)의 무흘구곡, 훈수(壎?) 지수(??) 형제의 횡계구곡, 회헌(晦軒)의 죽계구곡 등 무이구곡은 이 땅의 선비들이라면 모두 한번은 꿈꿨을 유학의 이상향으로 무의식의 근저에 자리 잡게 되었다. 半畝方塘一鑒開 반 이랑 모난 연못에 거울 하나 열렸는데, 天光雲影共徘徊 하늘 빛 구름 그림자 함께 떠돌아 다니네. 問渠那得淸如許 묻노니 어째서 그렇게 맑을 수 있는가 하니, 爲有源頭活水來 살아 있는 물 흘러나오는 근원 있어서라 하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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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간행된 주희 관련 모든 자료를 검토하여 주희시 전부를 번역하고 역주를 달았다.
우리나라 유교의 특성상 원전의 번역보다는 주석을 다는 데만 주력하여 『주자대전차의』와 기타 주석서를 망라하여 필사한『주자대전차의집보』등 훌륭한 주석서가 많이 나왔다. 그렇지만 주희 시에 대한 연구나, 그 바탕이 되는 역주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이 전집의 역자인 장세후 교수는 오랜 시간을 들여 주희시 전부를 번역하였다. 상세한 역주를 달기 위해 지금까지 간행된 가능한 모든 자료를 모으고 탐구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이 전집이 나오게 되었다. 주희시는 그의 사상을 연구에도 매우 많이 인용되고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주희는『시경』과『초사』를 비롯하여『문선』, 진나라의 도연명(陶淵明), 당나라의 위응물(韋應物) 등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형식적 측면에서는 동시대에 활약한 시인들에 비해 5언시의 비율이 많은 편이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서정이나 서경, 영물시 등 거의 모든 방면의 시를 두루 써내었지만 가장 장기를 발휘한 방면은 설리시(說理詩)라고 할 수 있다. 남송(南宋)대에 이르면 시는 문인들에게 거의 일상생활을 기록하는 일기와 가까운 역할을 겸하게 된다. 이런 경향으로 생애 연구에 시들이 많이 인용되고 있으며, 주희 시의 경우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사상 연구에도 많이 인용되고 있기에 매우 중요하다. 퇴계 이황을 비롯한 우리나라 지식인들에게 주희의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우리나라에는 14세기 중반 안향이 주자학을 도입한 이래 벌써 7백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주자학이 도입된 이래 그 학문의 텍스트가 되는 1차 자료인『주문공집』은 우리나라 지식인들에게 거의 바이블처럼 떠받들어졌으며, 그의 시의 또한 우리나라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주희의「무이도가(武夷櫂歌)」같은 시는 조선사회에 일종의 문화적 신드롬 현상을 일으켰을 정도였다. 퇴계의 도산구곡, 우암(尤庵)의 화양구곡, 한강(寒岡)의 무흘구곡, 훈수(壎?) 지수(??) 형제의 횡계구곡, 회헌(晦軒)의 죽계구곡 등 무이구곡은 이 땅의 선비들이라면 모두 한번은 꿈꿨을 유학의 이상향으로 무의식의 근저에 자리 잡게 되었다. 특히 퇴계 이황은 학문이나 서당 경영 등 모든 방면에서 주희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