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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
제1장 정복자 1. 움직이는 세계 2. 미군의 진주 3. 침몰하는 남한 4. 미군정의 횡포 5. 대참화극 제2장 폭풍전야 1. 꽃샘추위 2. 6살 아이의 눈물 3. 총파업 4. ‘제2의 모스크바’ 마지막 밤 5. 진군을 기다리는 아들 제3장 포문을 열다 1. 어둠을 찢은 한 발의 총성 2. 불이여, 불길이여 3.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인민공화국 4. 빨갱이 사냥 제4장 불타는 섬 1. 로울러 작전 2. 장밋빛 피의 거리 3. 죽음의 정글 4. 항쟁의 불꽃 5. 그리움 6. 비밀회담 7. 오라리 방화사건 8. 5·10남한단독선거 거부투쟁 9. 토벌대장 암살 10. 바비큐 작전 11. 산으로, 산으로 12. 날개 달린 빨치산 13. 수색에서 지다 저자 후기 |
이산하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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혓바닥을 깨물 통곡 없이는 갈 수 없는 땅
발가락을 자를 분노 없이는 오를 수 없는 산 백두산에서 한라산에서 지리산에서 무등산에서 그리고 피어린 한반도의 산하 곳곳에서 민족해방과 조국통일을 위하여 싸우다 장렬히 산화한 모든 혁명전사들에게 이 시를 바친다. …… 거듭 말하노니 한국현대사 앞에서는 우리는 모두 상주이다. 오늘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 그 아름다운 제주도의 신혼여행지들은 모두 우리가 묵념해야 할 학살의 장소이다. 그곳에 뜬 별들은 여전히 눈부시고 그곳에 핀 유채꽃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나 그 별들과 꽃들은 모두 칼날을 물고 잠들어 있다. ---「서시」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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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주4.3항쟁’의 대량학살과 진실을 폭로한 『한라산』 ‘복원판’ 시집 출간
‘제주4.3항쟁’ 70주년을 맞아 31년 전 4.3의 대량학살과 진실을 최초로 폭로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이산하 시인의 장편서사시 『한라산』이 마침내 나왔다. 1987년 『녹두서평』 창간호에 처음 발표된 장편서사시 『한라산』으로 시인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고, 이 ‘한라산 필화사건’은 김지하 시인의 ‘오적’ 이후 최대의 필화사건으로 평가되었다. 『한라산』이 발표된 당시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온 국민들의 분노와 눈물이 전국으로 번져가고 있을 때였다. 『녹두서평』의 맨 앞에 실린 『한라산』으로 출판사는 독재정권의 ‘공안폭격’을 맞아 ‘초상집’으로 변했고, 시인은 물론 「녹두서평」의 다른 필자들도 대부분 수배되었다. 결국 저자는 오랜 도피생활 끝에 1987년 11월 11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2. ‘복원판’ 『한라산』 거듭 말하노니 한국현대사 앞에서는 우리는 모두 상주이다. 오늘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 그 아름다운 제주도의 신혼여행지들은 모두 우리가 묵념해야 할 학살의 장소이다. 그곳에 뜬 별들은 여전히 눈부시고 그곳에 핀 유채꽃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나 그 별들과 꽃들은 모두 칼날을 물고 잠들어 있다.(『서시』 부분) 이번 시집 『한라산』은 1987년 녹두서평 창간호에 나온 후 31년만에 비로소 ‘온전한’ 복원판으로 출간되었다. 복원판 『한라산』에는 시의 집필배경과 비화, 87년 대선을 앞두고 용공조작을 기획하던 안기부의 음모, 재판과정, ‘복원판’ 『한라산』에 대해 밝힌 후기가 덧붙었다. 이 『한라산』 시집이 ‘복원판’인 까닭은 비록 ‘이데올로기의 마지노선’을 넘은 작품으로 평가되기는 하지만, 1987년 발표 당시 내용이 ‘너무 강하다’는 이유로 인쇄소에서 거부해 불가피하게 삭제하고 완화시킨 것들을 다시 온전하게 ‘복원’시켰기 때문이다. 역으로 결국 한라산조차도 ‘자기검열’의 고개를 넘지 못했던 것이다. 시인은 “타협해서는 안 될 문제를 타협해서라도 풀겠다는 마음의 틈새를 스스로에게 들켜” 마음이 편치 않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삭제했거나 완화된 부분의 복원뿐만 아니라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사실을 확인해 수정했으며, 어색하고 생경한 대목들도 시인이 직접 손질해 시적 완성도를 더욱 높였다. 복원된 ‘서시’는 미국을 비롯한 유럽제국주의가 약소국과 한반도 역사를 침탈하고 유린한 과정이 서술되어 있다. 특히 미군정과 이승만정권, 그들의 권력을 등에 업은 친일파와 서북청년단 등 반공단체의 잔인한 만행들이 적나라하게 폭로되어 있다. 27살의 청춘을 바쳐 쓴 이 시로 인해, 시인은 30년 동안 ‘언제나 진실만 말해야하는 멍에’에 짓눌렸고, “시인은 마땅히 세상의 모든 고통에 책임을 져야 하고 오래오래 슬퍼해야 한다”며 그것은 자신의 이마에 찍힌 천형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박종철 열사의 부산 혜광고 선배이기도 한 시인은 고문치사 3개월 전에 만난 후배의 부음을 들었던 기억을 비롯해 3년의 수배생활, 민주화운동 시절, 서사시를 쓰게 된 창작배경 등을 ‘후기’에 자세히 밝혀놓았다. 또 『한라산』을 1987년도 대선국면 전환용 ‘용공조작사건’으로 만들기 위해 시인을 ‘간첩의 지령으로 시를 쓴 빨갱이’로 몬 안기부의 공작과 구속 이후 법정투쟁 당시 변호사의 수임거절, 문인들의 법정증인 거절, 사건 담당검사였던 황교안 전 총리와의 악연 등에 대한 슬픈 에피소드들도 담겨있다. 이산하 시인은 황교안 공안검사에 맞서 쓴 『항소이유서』 때문에 추가범죄 등 재조사를 받는 고초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펜클럽 회장이자 『타인의 고통』의 저자인 수전 손택 여사가 1988년, 한국을 방문해 시인을 투옥한 노태우정권에게 강력히 항의하며 석방을 촉구하는 등의 적극적인 국제구명운동에 의해 그해 말 특사로 석방되었다. 시인은 ‘제주4.3항쟁’을 “인간이 얼마만큼 인간이기를 포기할 수 있는지를 처절하게 보여준 인간포기 실험장”이었다며, 이후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마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고 고백했다. 이산하 시인의 한 마디 올해로 ‘제주4.3항쟁’ 70주년이고 장시 ‘한라산’ 31주년이다. 4.3항쟁 70주년을 맞아 개정판 시집으로 내는 감회가 깊다. 오래 전에 나온 시집을 다시 쓰다듬고 다듬는 손길이 떨린다. 시 ‘한라산’은 내 긴 비명이자 통곡이었다. 걷잡을 수 없이 추억의 급물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내 27살 청춘의 암약. 돌아보면 참으로 아득한 세월의 강물이요, 참으로 그윽하게 젖어보는 역류의 강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비록 가슴에 폭탄 같은 시를 장착하고 불 속으로 뛰어들었던 그 분노와 노여움은 사라졌지만, 그러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천둥 같은 그리움만은 여전히 삼엄하고 여전히 장렬하다. ‘한라산’ 이후 내 삶은 죽은 자가 산 자를 운구하는 것 같은 삶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진실만 말해야 한다는 멍에가 나를 30년이나 압박했다. 앞으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이마에 찍힌 지울 수 없는 천형이었다. 방식이 다를 뿐 시인은 마땅히 세상의 모든 고통에 책임을 져야 하고 오래오래 슬퍼해야 한다. 이제 길 끝이 보인다. 여울 같은 좁은 길. 짤게 슬플 시간도 없지만 길게 아프지 않을 이유도 없다. 장편서사시 『한라산』은 1987년 3월, 사회과학 무크인 『녹두서평』 창간호에 발표되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당시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온 국민들의 분노와 눈물이 전국으로 번져갈 때였다. 박종철은 고교 후배였고 나와 만난 지 3개월 후에 시신으로 변했다. 돌아보니, 벌써 31년이나 흘렀고 내 나이 27살 때였다. 세상도 변했고 사람도 변했고 나 역시 변했다. 변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있다면 질긴 ‘기억의 고집’과 같은 것이리라. 『한라산』의 최종 원고인 ‘서시’를 고교 동기인 신형식 『녹두서평』 편집장한테 넘기며 서로 농담처럼 주고받았던 얘기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야, 이거 내 모가지 걸고 쓴 거니 잘 지켜라.” “야, 내 모가지도 우찌 될지 모르구마. 그라고….” “그라고… 뭐?” “종철이도 죽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