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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기파랑 2011.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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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파랑 에크리 고전 명저 시리즈

기파랑 클래식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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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 남대문역에서 고산으로 * 고산역∼철령관∼장안사 * 영원동∼망군대 * 만폭동
백운대∼선암∼수미암 * 선암 * 수미암 * 비로봉 * 은정령 * 만물초 * 구룡연 * 보광암∼동석동 * 유점사 * 은선대 * 미륵봉∼중내원 * 안무재 * 백탑동

저자 소개 1

李光洙, 춘원春園

호는 춘원(春園). 한국 현대소설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가장 중요한 작가다. 조선왕조의 국운이 기울어가던 구한말에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하여, 일찍 부모를 여의고도 두 차례에 걸친 일본 유학을 통하여 근대사상과 문학에 눈뜨고 이를 한국적 사상 및 문학 전통에 접맥시켜 새로운 문학의 시대를 열어나갔으며, 한국전쟁 와중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붓을 놓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놀라운 창작적 삶을 이어간 작가였다. 14세 때 일진회 유학생으로 도일하여, 메이지 중학부에서 공부하면서 소년회(少年會)를 조직하고 [소년]지를 발행하는 한편 시와 평론 등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와세다대학 철학과에
호는 춘원(春園). 한국 현대소설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가장 중요한 작가다. 조선왕조의 국운이 기울어가던 구한말에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하여, 일찍 부모를 여의고도 두 차례에 걸친 일본 유학을 통하여 근대사상과 문학에 눈뜨고 이를 한국적 사상 및 문학 전통에 접맥시켜 새로운 문학의 시대를 열어나갔으며, 한국전쟁 와중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붓을 놓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놀라운 창작적 삶을 이어간 작가였다. 14세 때 일진회 유학생으로 도일하여, 메이지 중학부에서 공부하면서 소년회(少年會)를 조직하고 [소년]지를 발행하는 한편 시와 평론 등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와세다대학 철학과에 입학, 1917년 1월 1일부터 한국 신문학 사상 최초의 장편인 『무정』을 연재했다.

1919년 도쿄 유학생의 2 ·8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후 상하이로 망명, 임시정부에 참가하여 독립신문사 사장을 역임했다. 1923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편집국장을 지내고, 1933년조선일보 부사장을 거치는 등 언론계에서 활약했고,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보석된 뒤부터 본격적인 친일 행위를 했다.1939년에는 친일어용단체인 조선문인협회 회장이 되었으며 가야마 미쓰로라고 창씨개명을 하였다. 8 ·15광복 후 반민법으로 구속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했으나 6 ·25전쟁 때 납북되었다.

34년 동안 작가로 활동하면서 『개척자』, 『선도자』, 『재생』, 『마의태자』,『단종애사』, 『군상』, 『흙』,『유정』, 『이순신』, 『그 여자의 일생』, 『이차돈의 사』, 『그의 자서전』, 『사랑』, 『원효대사』 등 60여 편의 소설과 시가, 수필, 논문, 평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몽주의 문학을 통하여 브나로드 운동 등 사회개혁 활동을 북돋우기도 하였다. 일제 시대 그의 친일 행각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한국전쟁 당시 납북되었다가 자강도에서 병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문학은 50년이라는 지속성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소설 외에도 시가·평론·수필 등 전영역에 걸친 방대한 규모를 드러냈다. 그러나 주류는 역시 소설이며 더불어 문학사적 가치를 1차적으로 결정해주는 것은 1910년대 계몽주의 소설들이다. 이 시기의 장편 『무정』(1917)은 우선 시제의 정확한 구별과 새롭고 의욕적인 문체 등으로 형식 면에서 근대소설로서의 획기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특히 이전의 신소설과 달리 당대인들의 삶과 성격을 실감나게 그렸고, 사회현실에 대응하는 젊은 지식인의 내면세계를 잘 그려냈다는 점에서 근대성을 획득하고 있다. 또한 시대적 이념이라 할 수 있는 부르주아 계몽주의 입장에서 자유결혼 및 근대적 자아각성의 문제 제기를 통해 전통적 인습·윤리를 반대하고, 신교육·신문명을 통한 자강주의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 작품에 나타난 추상적 계몽주의, 식민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 인식의 결여는 『무정』을 진정한 의미의 근대소설로의 평가를 유보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무정』과 같은 계몽소설의 연장에 놓이는 『흙』은 농촌계몽소설로서, 브나로드 운동 등의 민족적 교화운동의 일환에서 나온 작품이다. 이광수의 농촌현실에 대한 관심은 이보다 앞선 1916년 『매일신보』에 발표한 『농촌계발』이라는 논문에서 발견되는데, 그는 이 글에서 우리 농촌의 결점 중의 하나로 '교육이 없음'을 지적하며 선각자적 지식인이 농촌계발에 앞장서야 함을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정신에서 나온 『흙』은 농민과의 정신적 연대성이 고조되던 당대의 상황을 반영하며 주인공 '허숭'은 자신의 신분(변호사)을 버리고 농촌으로 돌아가는 이상적인 지식인으로 그려진다. 한편 이광수의 작품 중 상당수가 남녀의 애정을 다루고 있는데 『유정』(1933)·『그 여자의 일생』(1934~35)·『사랑』(1938) 등에 나타난 남녀간의 애정은 통속적인 애정소설과는 달리 정신적인 이상주의를 지향하는 특유한 성격을 지닌다.

이광수는 『단종애사』(1928~29)를 포함한 다수의 역사소설을 발표해 역사소설가로서의 면모를 충분히 발휘했다. 그가 역사소설을 본격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한 시기는 1920년대 후반이며, 일제에 대한 직접적인 대항이 어려워지자 현실적인 소재보다 역사소설의 비유적 기능을 빌려 현실을 비판하고 이에 항의하려는 역사소설을 쓴 것으로 보인다. 대표작인 『이순신』(1931~32)·『이차돈의 사』(1935~36)·『공민왕』(1937) 등은 옛 것을 재현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역사를 대중화한 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복고주의에 흘러 당대 현실에 대응한 실현적 관심을 제기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이광수의 대표적 평론은 초기의 『문학의 가치』(1910)· 『문학이란 하(何)오』(1916) 등을 들 수 있다. 이는 한국 최초의 본격적 평론이라 할 수 있으나 명확한 문학관에 입각하여 하나의 문학적 주의를 이론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서구 문학의 여러 주의를 체계 없이 나열한 한계를 드러낸다. 초기의 잡다한 주의들은 그후 톨스토이 예술론의 영향 아래 공리주의 내지 계몽주의에 뿌리를 내렸고 이후의 문학론들은 대개가 '인생을 위한 예술' 및 '도덕과 예술의 일치'를 강조하는 것으로 모아졌다. 그래서 그의 논설은 항상 주목이 되었고 당시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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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 문형렬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영남대 사회학과와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했다.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와 소설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장편소설 『바다로 가는 자전거』 『눈먼 사랑』 『아득한 사랑』, 소설집 『언제나 갈 수 있는 곳』 『슬픔의 마술사』 등이 있으며, 시집 『꿈에 보는 폭설』을 발표했다.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을 해제하여 출간하기도 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12월 2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406g | 148*210*20mm
ISBN13
9788965239499

출판사 리뷰

90년 만에 다시 선보이는 춘원의 기행문

춘원 이광수(春園 李光洙)는 일제 식민지 하이던 1921년과 1923년 여름, 두 차례에 걸쳐 금강산을 유람한다. 한반도 최고의 경승(景勝)을 돌아본 천재 작가는 1922년 3월부터 8월까지 잡지 「신생활」에 첫 번째 금강산 기행문을 연재했다. 그리고 두 번째 금강산 유람에 대하여 쓴 글을 합쳐 1924년 출판사 시문사에서 이 책『금강산 유기(遊記)』를 출간했다.

그로부터 근 90년 세월이 지난 이 시점에서 ‘기행문의 백미로 삼을 만큼 보기 드문 명문’을 다시 한 번 감상하기로 했다. 다만 한문과 한자식 어투가 많아 가능하면 당시의 표현과 문법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오늘의 어법에 맞도록 쉽게 고쳤다. 해제를 맡은 작가 문형렬은 “문장이 유려하면서도 섬세하고 사실적이다. … 금강의 아름다움을 그린 그의 글을 따라 읽으면 함께 금강산 구경을 다니는 느낌이 들 만큼 절승(絶勝)을 묘사한 솜씨가 뛰어나면서도 구체적이라 가슴을 울렁울렁하게까지 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철마다 다른 흥취, 이름마저 다양한 금강산

잘 알다시피 금강산은 철마다 이름이 다르다. 봄에는 금강산, 여름에는 봉래산, 가을에는 풍악산, 겨울에는 개골산으로 불리는 것이다. 하필 두 번 다 여름철에 구경 간 춘원은 이렇게 썼다.

“단풍철에 석양이 천봉만만(千峯萬巒=천개의 봉우리와 만개의 산, 무수한 산과 봉우리)을 비추는 경치는 참 아름답다 합니다. 그래서 금강의 진면목은 단풍철에 있고 단풍철의 진면목은 석양에 있다 합니다. 나는 불행히 여름철에 왔기 때문에 이 단풍과 석양의 금강을 보지 못함이 한이거니와, 그렇다고 금강의 아름다움이 반드시 단풍철에만 한할 것은 아니외다. 겨울철에 허옇게 흰 눈이 내린 금강과 봄날 차가운 노을이 가득한 금강도 좋은 것이요, 지금 내가 목전에 대하고 있는 여름철 안개의 금강, 구름의 금강, 비오는 금강, 넘치는 햇빛 속의 금강, 물소리의 금강도 아름다움을 버릴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그 변화의 다양함은 여름철이 제일일 것입니다.”

그야 어쨌든 금강산 길이 막혀 있는 지금, 우리는 이제 언제가 될지 모르는 기행을 기약하며 춘원을 따라 상상의 나래를 펴기로 한다.

“안개가 봉우리의 허리를 두르니 봉은 창천에 달린 듯하고, 봉의 머리를 싸니 봉은 머리 없는 봉이 됩니다. 다시 그 안개가 봉을 머리에서 배까지 가르니 문득 하나의 봉우리가 쌍봉이 되고, 그 안개가 소나무와 잣나무 속에 스러지니 쌍봉이 일봉이 됩니다. 다시 안개가 송백 속에서 나와 엉키니 문득 흰 바위가 되고, 엉키었다 새로 흐르니 문득 폭포가 되고, 폭포가 되었다가 마침내 흩어지니 한 무리 면양(綿羊)이 되고, 스러져 하늘로 오르니 신선이 차를 달이는 연기가 됩니다.”

슬행, 수행, 지행, 복행?

난코스로 알려진 수미암 가는 길의 어려움을 표현한 글을 읽노라면 왠지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둔행칠리(臀行七里), 내려오려면 엉덩이를 대고 걷는 데가 7리나 된다는 뜻이외다. 과연 암자에서 몇 십 걸음을 못 가서부터 풀뿌리를 더위잡으며 바위 뿌다귀에 손가락을 걸고 매어달릴 데가 옵니다. 무릎을 발삼아 쓰니 슬행(膝行)이요, 손을 앞발 삼아 쓰니 수행(手行)이외다. 게다가 일전에 비가 와서 미끄럽기가 한이 없습니다. 약한 풀뿌리를 더위잡아 가며 몸의 탄력을 이용하여 뛰어오르니, 우뚝 서기만 하면 미끄러질 데가 있습니다. 손가락을 바위 조금 턱진 데다가 걸고 한 손가락씩 발발 떨며 옮겨 놓아, 그 힘에 몸이 한 치씩 두 치씩 배밀이를 하여 올라가는 데가 있으니 이는 복행(服行)이요, 지행(指行)이외다.”

아쉬움 한 보따리, 안타까움 한 보따리

기행을 마치며 춘원은 “백탑동 구경으로 다시 금강에 든 목적도 다 달하였습니다. 아직도 남은 것이 비로봉의 일출과 월출을 보는 것과, 발연의 달님 목욕을 하는 것과, 성문동에 들어가는 것이거니와, 이보다도 금강의 봄 풍경과 가을철 단풍과 겨울철 구름 풍경을 봄이니…”라며 잔뜩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군데군데 낙서로 더럽혀진 광경을 목도하고는 이렇게 한탄하기도 했다.

“참말 금강산 바윗돌은 행복이외다. 석수(石手)가 들어와 때려낼 근심도 없고, 천공(天公)이 만들어놓은 그대로 오직 맑은 물과 맑은 바람에 천공의 자애로운 조탁(彫琢)을 받아 날로날로 모양을 변하며, 날로날로 아름다워지면서 천국에 임하기를 기다릴 뿐이외다. 오직 사람의 발이 갈 수 있는 바위가 수없는 추한 자들 이름자에 더럽혀진 것이 한이외다.”

그가 만약 북한의 온갖 구호로 범벅이 된 오늘의 금강산을 보면 가슴을 치면서 눈물을 뿌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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