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1장 - 게을러도 괜찮아
우리는 모두 게으른 계란이다 똥은 일주일에 한 번만 싸도 충분한걸! 압도적 권태주의자 월급 루팡, 저는 아닌데요…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나영 바쁘다는 것 소란하지 않은 평범한 맛 집에 있을 때마다 투명해진다 약속을 미루고 싶은 날 감정맥경화 마이웨이, 저도 100퍼센트 찬성은 합니다만… 2장 - 아니라고 말하는 게 뭐 어때 좋은 아침이 아니네요 내가 거기에 왜 가? 뒷담화를 권장합니다 일찍 일어난 벌레가 일찍 잡아먹힌다 일찍 일어나는 나는 피곤하다 고양이는 저리 비켜 팔로우를 취소하겠습니다 내가 나에게 지는 것쯤은 미안해 솔직하지 못한 내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농담인 듯 농담 아닌 3장 - 노오력하지 마요 꾸역꾸역 안 되는 걸 하려니까 문제야 기대에 부응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불금도 귀찮아, 주말도 귀찮아 제주도, 너나 가세요 나를 위해 하는 건 노력, 남을 위해 하는 건 노오력 옷에 관하여 무럭무럭 휴식력 눈물을 참지 않는 방법 “세상이 요구하는 모성애는 제게 없습니다” 딱 이만큼의 어른 야근하지 않겠습니다 열심히, 그러나 치열하지 않게 4장 - 반짝이는 작은 것들을 위해 나만의 케렌시아 짧은 사진 기록 고독한 혼술가 문구 탐구 생활 어른이를 위한 장난감 미래의 레시피 오늘도 카페를 삽니다 내가 좋아하는 건 문과생의 양자 공부 ‘아이고, 내 팔자야!’ 이토록 멋진 체념이라니 내 일상을 소설로 쓴다면 |
장한라의 다른 상품
임주하의 다른 상품
Grace J
정하나의 다른 상품
구데타마는 2013년 일본에서 데뷔했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최고의 인기를 끌었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의 소리’를 거침없이 표현해준 덕분일 것이다. “난 아무 생각이 없다” “집에 가고 싶어” “아이고 의미없다” “어쩌라고!” 등 격하게 공감이 되는 말들. 귀여운 것도 한몫했겠지만, 나 역시 이토록 구데타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 생각을 고스란히 대신 말해주는 녀석의 사이다 발언 때문이다. 일어나라는 젓가락의 공격에 “NO!”를 외치며 부들부들하는 이모티콘은, 지금도 아침마다 “크아아앙” 공룡처럼 울부짖으며 알람을 거부하는 내 모습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다. 그뿐일까. 미끈한 몸을 베이컨으로 감싸며 춥다고 말할 때는 특히나 겨울날 이불 속에서 누에고치처럼 누워
있던 내 모습과 똑같다. ---「우리는 모두 게으른 계란이다」중에서 ‘이렇게 태평한 마음으로 지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까?’ 그럴 때면 나무늘보를 떠올려보았다. 거북이도 느림의 아이콘이지만, 또 다른 느림의 대명사로 나무늘보를 빼놓을 수 없지. 나무늘보는 지구에 살고 있는 포유류 가운데 가장 느리다. 움직임만 느린 것이 아니라 내장기관도 느리다. 나뭇잎을 먹고 살면서도 나뭇잎을 잘 소화하지 못하는 이들은, 대신에 신진대사를 훅 낮추어 많이 먹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게끔 진화해왔다. 불필요한 움직임일랑 줄여버린 탓에, 잠을 아주 많이 자고, 똥은 일주일에 한 번만 싸도 충분하다. (…) 한 가지 비밀을 더 일러두자면, 나무늘보가 살아남는 것은 때로 그 엄청난 느림 덕분이라는 사실. 워낙 느린 탓에 포식자들의 눈에 잘 띄지 않아 잡아먹히는 일도 적다고 한다. 그러니 지구상에 나무늘보가 자기의 느림 그대로 잘 살고 있는 한, 나도 덩달아 느리게 생활하더라도 사는 데 큰 지장은 없을 것이라 믿어본다. 설령 부지런하지 못해 손에 쥐는 것이 적다면, 손에 잡히는 만큼만 딱 알맞게 먹으며 생활하면 된다. 공연히 내 속도를 바꾸려 들다가는 도리어 수명이 깎일지도 모르니. ---「똥은 일주일에 한 번만 싸도 충분한걸!」중에서 내가 한참 잘못 알았다. 월급 루팡의 뜻은 ‘회사에서 하는 일 없이 월급만 축내는 직원’을 일컫는다 하더라. 내 머릿속에서 월급 루팡의 주체는 온전히 내가 아니었건만. 난 월급 도둑도 아니고, 월급 잉여도 아니었다. 게다가 세련된 도둑의 대명사 ‘루팡’을 갖다 붙이기엔 더없이 초라한 일꾼에 불과했다. 월급은 들어왔다 싶으면 언제 나갔나 싶게, 증발되고 말았다. 영어로 money가 불가산명사인 것만 봐도 물처럼 흘러서 사라지는 성질을 가진 게 분명해 보였다. 띠롱띠롱. 월급 날짜에 맞춰 자동이체를 해둔 것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휴대전화가 맑고 고운 알람 소리를 낸다. 불안한 미래에 투자하는 예금과 보험료, 휴대전화 요금, 주택청약, 각종 공과금과 집이 멀어 슬픈 후불 교통비. 의무적으로 떠나보내야 할 돈들이 통장을 나가고 나면 남는 건 얼마 없다. 사라지는 루팡의 망토 끝자락을 허탈하게 바라만 볼 뿐. ---「월급 루팡, 저는 아닌데요…」중에서 누구나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 마음에도 메이크업을 하지 않을까. 마음에 화장을 하거나 가면을 쓰는 건 여자나 남자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사회의 행동 규범이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가면을 쓴 인격 페르소나를 가진다. 솔직하고 털털하기로 소문난 사람이라도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겉과 속이 백 퍼센트 일치할 수는 없는 법. 학교에 가도, 회사에 가도, 친구를 만나도 어김없이 적당한 언행으로 자신을 숨기고, 상대에게 미움받지 않기 위해 가식적인 모습을 연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 빈말을 잘 못하는 나는 늘 직장생활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런 나조차 8년 차 직장인이 되고 보니 적당히 본심을 감출 수 있게 되었다. 아이유의 [스물셋] 노랫말 몇 마디만 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느 쪽이게? / 얼굴만 보면 몰라 / 속마음과 다른 표정을 짓는 일 / 아주 간단하거든” ---「집에 있을 때마다 투명해진다」중에서 사람들은 무리생활의 스트레스를 풀어낼 방법을 고안해냈는데, 그것이 바로 그루밍이었다고 한다. [동물의 왕국]에 등장하는 원숭이들처럼 하나둘 들러붙어 앉아 서로의 이를 잡아주는 것, 혹은 어미 개가 새끼 강아지의 털을 핥아서 골라주는 것 같은 일들. 허나 요즘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머릿니를 잡아주며 스트레스를 풀기란 영 여의치 않을 것이다. 달갑게도 그러한 그루밍의 현대적 버전이 있는데, 바로 뒷담화라는 것. 나를 힘들게 하는 다른 사람의 흉을 보는 일은 그루밍과 같은 효과를 낸단다. 뒷담화가 사실은 사회생활의 고단함을 덜어주는 필수적인 생존 전략이라니. 그래서 사람에 치여 고달플 때면 가까운 누군가를 붙잡고 뭐라도 하소연하고 싶었던 걸까? 하긴, 어느 연구에서는 어린아이들조 차도 유치원에 가는 것이 스트레스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한다. ---「뒷담화를 권장합니다」중에서 궁극의 귀차니즘이 응축되어 있다가 활화산처럼 터져 흐르면 금세 생활 곳곳으로 스며든다. 한번 발동한 귀차니즘은 불금도 주말도 의미 없게 만든다. 소파에 나른하게 누워서 TV를 보다 잠드는 내게 동생은 이런 진단을 내렸다. “또 이따이따병에 걸리셨구만.” 이따이따병을 앓으면 ‘지금 당장’이라는 마음은 사라지고 ‘귀찮아’만 내뱉으며 시간을 흘려보낸다. 내가 생각하는 귀차니즘의 포인트는, 귀찮은 시간들을 즐기겠다는 당당함을 잃지 않는 것이다. 부지런히 지낸 나에게 주는 나른한 상인 셈이다. 게으르게 시간을 맘껏 누린 후에는 그만큼 쌓인 에너지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활력이 생긴다. ---「불금도 귀찮아, 주말도 귀찮아」중에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내일만을 대비하는 거, 난 어렸을 때부터 싫었다. 고3 때도 꾸깃꾸깃 구겨진 표정으로 온종일 공부하는 친구가 신기했다. 아니, 그렇게까지 열심히 공부만 했는데 19살에 죽어버리면 너무 억울하지 않겠냐고 뇌까렸다. 언제나 반만 열심히 살았고, 반은 신나게 놀았다.” 이건 서른네 살이 된 지금도 바뀌지 않은 나의 신념 같은 거다. 우리는 늘 어른들에게서 “열심히, 성실히,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들어왔지만, 나는 그렇게 살기 싫다. 살아보니 아등바등한다고 꼭 잘 사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놀면서 공부한다고 대학 못 가는 것도 아니었다. 직장에서도 굳이 월급루팡이 될 필요는 없지만, 혼신의 에너지를 전부 일에 쏟아붓는 워커홀릭이 될 필요는 더더욱 없다. 반만 ‘열심히’ 하면 좋겠다. 세상 그 무슨 일이든 말이다. 뭐 가끔은 최선을 다해야 할 일도 있겠지만, 매 순간 무리하면서 오늘을 놓치는 일,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 이 순간을 희생하는 일은 조금 어리석은 짓 같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 지금 사는 삶이 처음인데, 누구의 말이 정답일 리도 없지 않은가. ---「열심히, 그러나 치열하지 않게」중에서 |
발랄한 목소리로 건네는 위로
어릴 적 우리가 상상했던 어른의 모습은 어떤 걸까? 믿음직하고, 제 앞가림을 잘하며, 세상 물정에 능통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막상 어른이 되어 보니, 딱히 이뤄낸 것은 없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막막하다. 그런 와중에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들은 늘어만 가니, 목적지를 모르면서도 숨이 차도록 달려 나간다. 이 책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어른 생활의 고충을 조곤조곤 풀어낸다. 그리고 너무 노오력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모든 일을 척척 해내는 만능 어른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다정하고 발랄한 위로의 메시지를 보낸다. “게을러도 괜찮아, 진짜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지! 불편한 건 불편하다고 말해야지! ‘남들은 다 좋다고 하는데, 왜 너만 그렇게 불평이 많니?’ ‘뭘 그런 걸로 예민하게 굴어? 윗사람이 그 정도 부탁쯤은 할 수도 있는 거 아냐?’ 회사에서, 학교에서, 사람들 속에서 마주치는 어떤 얘기들은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이 불편함을 쉽사리 털어놓기조차 어렵다.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그러려니 하며 넘길 줄 아는 것이 사회생활 하는 법’이라며 핀잔을 듣기 십상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점잖은 충고를 거절한다. 불편한 것이 있으면 왜 불편한지 조목조목 따져야 직성이 풀린다. 지속 가능한 사회생활을 위해서 역설적이게도 뒷담화를 권유하며, 아홉 번 퇴사했어도 열 번째 퇴사에 머뭇거림이 없다. 차마 하지 못했던 말과 행동들을 속 시원하게 실행에 옮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칠 수 있는 대나무 숲을 책 속에서 만난 기분이다. 치열한 세상에서 유연하게 살기 세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은 마치 한 사람의 글처럼 흐름이 매끄럽다. 셋이 호흡을 맞춘 덕도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세 사람이건 열 사람이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의식으로 탄탄히 묶여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 주제란 바로 ‘치열한 세상에서 유연하게 살기’다. 유연하게 사는 일에는 성인군자와 같은 깨달음이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인간은 어리석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자신만의 속도를 따라 사는 건 멋진 태도지만, 내 방식대로 살겠다는 굳은 다짐은 내일이면 쉽게 무너질지도 모른다. 이를 잘 알고 또 겪어 온 저자들은, 기껏 다잡은 마음이 흔들리는 일은 자연스럽고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 얘기한다. 뭐든 너무 엄격할 필요는 없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같은 큰일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가는, 일상 속의 소소한 행복을 챙기는 걸 까먹을 수도 있고 말이다!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며, 매일매일의 작지만 확실한 기쁨을 누리는 일. 그것이 이 책이 권하는 유연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