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제1부
빈 병|달팽이 화분|낯선 망자|대낮의 경제학 강의|매 맞는 나무|쓰레기종량제 봉투|자동세차장|만우절|물 위의 부처님|나는 논개다|식인상어|반지, 연금술사의 나비|인동꽃 제2부 수종사(水鐘寺) 은행나무|절두산 해바라기|고귀한 관계|건빵|면접장에서|두릅|사람 새|단풍을 위한 변명|얼치|섬개개비|벙어리 뻐꾸기|액자|연(緣)|눅눅한 사랑|옛사랑에게|저녁 기도|디지털 카메라|봄밤 꽃길|봄비|조춘(早春)|물끄러미|귀향|격포 등대 제3부 유세장에서|팔당댐 하류에서|권력을 휠체어를 타고|가락동 봄 편지|겨울 급류|박토에서|겨울 비행|촛불 바다|가면극|밀애|갈등|성냥|추억에서|새벽|번지 점프 제4부 편지|오줌발 신앙|배려|슬픈 매복(埋伏)|그대 보내고|단오|소담길 마을|미아의 바다|돼지풀|개똥참외|신록에서 낙엽까지|명자꽃 슬픈 봄날|첫눈|늪과 장미|귀[耳]가 순해지는 날 해설|시간과 자아, 그리고 연금술적 상상력 |
|
반지, 연금술사의 나비
언약이 굴러간다 영원한 눈빛이 끝없이 굴러간다 굴러가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부활의 굴렁쇠 무거운 시간 속에서도 칠보 푸른 눈썹을 뜨고 옷고름에 매달린, 헤어진 반쪽의 귀속을 꿈꾸던 꽃봉오리 같은 날갯짓 날개를 오므리고 소용돌이치는 파도 위로 내린 멈추어 선 시간의 형상, 인연을 벗어버리면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까 첫눈 저 발가벗은 수컷을 보아 수컷이 암컷을 업고 내리는 암컷이 수컷에 업혀 내리는 서로가 서로를 껴안고 내려오는 저 뜨거운 숨소릴 들어 봐 내려서는 금세 부끄러운 흔적을 지워버리거나 짐짓 앵돌아져 남남이듯 등 동리고 토닥거리며 귀천을 서두르는 몸짓 다시 하늘로 돌아가면 서로 더 이상 몸 섞지 말자고 함께 사랑하며 내리지 말자고 외롭더라고 함께 내리지 말자고. --- 본문 중에서 |
|
시간과 공간, 존재와 부재 앞에서 예리한 더듬이로 세상과 교신하며
아름다운 비상을 꿈꾸는 이근호의 신작 시집! 새로운 감각과 뛰어난 직관력으로 무한과 유한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세계를 보여준 『현미경으로 보는 하늘』(세계사시인선 75, 1997년) 이후 14년 만에 선보이는 이근호의 신작 시집. 그동안 문예지에 발표한 시들과 미발표작을 더해 총 66편을 실었다. 이근호 시인은 『연금술사의 나비』에서 현실과 기억 속에 존재하는 것들의 본질과 형상을 예리하게 살펴내어 열정 가득한 시들을 뽑아내고 있다. 마치 봄꽃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나비의 날갯짓과도 같이 자유롭고 거리낌 없다. 그 원천은 시를 향한 시인의 순수 열정이다. 삶과 죽음, 일상과 비일상, 존재와 부재, 기쁨과 슬픔, 좌절과 희망……. 시인은 이렇게 구획된 현실과 내면의 세계에서 벗어나 고적하고 새로운 시의 길로 나아가려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낯섦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유로운 상상력과, 대립보다는 역동적이고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연금술은 필수적일 것이다. 시인은 연금술사로서 하늘과 땅, 자(自)와 타(他)가 단절되지 않기 위해 지속적인 교신을 주고받으며 하나이기를 꿈꾼다. 질기고 새로운 동아줄을 던지며 사랑과 영혼의 부활을 꿈꾼다. 문득, 물끄러미 다가온 깨우침과 지혜 누구에게나 삶은, 그리고 현실은 즐거움과 상처, 그리고 공허함으로 가득하다. 뒤를 돌아보면 살아온 날들이 아득하고 앞을 내다보면 살아갈 날들이 막막하다. 결코 한 자리에 멈추지 않는 시간. 그 끊임없는 흐름 속에서 시인은 세상과 교신하려 한다. 그 더듬이가 바로 이 책에 담긴 66편의 시다. 이근호 시인은 몸이 걷고 마음이 걷는 것만이 길인 줄 알던 때가 있었다며 “길은 본래 없는 것을, / 길 위에서 / 길을 찾고 있었”(「귀[耳]가 순해진 날」)다고 회상한다. 「인동초」라는 시에서는 “인동초 여린 잎눈들”과 “두 팔 벌리고 뛰어오는 어머니 얼굴”의 강렬한 대비를 통해 우리 역사의 아픔과 상처를 보여주면서 이 시대와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범주를 더욱 넓혀놓았다. 이외에도 시인의 풍부한 감성 위에 삶의 통찰력과 깨우침이라는 무늬를 또렷이 새겨놓은, 연금술적 상상력이 도드라지는 작품들이 곳곳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연금술사의 나비』에서 이근호 시인은 과거 또는 현재의 사건과 현상, 그리고 사물 앞에서 그럴듯해 보이는 언어적 유희와 현란한 표현보다는 단순하지만 뜨거운 가슴으로 다가서려 한다. 그러다 보니 그 본질의 밑바닥까지 내려갈 수밖에 없다. 그곳에서 시인은 세상과 좀 더 따뜻하고 깊이 있게, 에돌지 않고 편안하게 통(通)하려 하고 있다. 그의 예리한 더듬이에 세상은 과연 어떤 답신을 보내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