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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
문서고와 증인
새물결 2012.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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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 top100 8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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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s up"

책소개

목차

what's up 총서를 발행하며
서문

01 증인
02 '이슬람교도'
03 부끄러움, 혹은 주체에 관하여
04 문서고와 증언

옮긴이 후기
참고문헌

저자 소개 1

조르조 아감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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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orgio Agamben

프랑스를 시작으로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미학적 시각을 지닌 비평가. 1942년 로마에서 태어나 파리의 국제철학원과 베로나 대학을 거쳐 현재는 베네치아 건축대학 교수이다. 아감벤의 문체가 대단히 신학적이고 철학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히 그가 분석하는 역사 인식이나 세계관이 너무나 참신하기 때문에 지금 세계에서 가장 뜨겁게 논쟁되고 있는 철학자 중의 한 명이다. 스스로 다루고 있는 소재의 내용에서 자신의 내적인 주관성에 관한 표현을 발견하지 못한 채, 그 내용의 부정을 무한히 반복하다가 결국 자기 자신의 내용에 대한 부정에 이르게 된다는, ‘내용 없는
프랑스를 시작으로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미학적 시각을 지닌 비평가. 1942년 로마에서 태어나 파리의 국제철학원과 베로나 대학을 거쳐 현재는 베네치아 건축대학 교수이다. 아감벤의 문체가 대단히 신학적이고 철학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히 그가 분석하는 역사 인식이나 세계관이 너무나 참신하기 때문에 지금 세계에서 가장 뜨겁게 논쟁되고 있는 철학자 중의 한 명이다.

스스로 다루고 있는 소재의 내용에서 자신의 내적인 주관성에 관한 표현을 발견하지 못한 채, 그 내용의 부정을 무한히 반복하다가 결국 자기 자신의 내용에 대한 부정에 이르게 된다는, ‘내용 없는 인간’으로서의 현대 예술가의 운명을 고찰한 미학서인 『내용 없는 인간』( 1970년)을 발표하면서 비평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한 아감벤은, 『스탄체 ; 서양문화의 언어와 이미지』(1977년)와 『유년기와 역사』(1978년), 『사고의 종언』(1982년), 『언어활동과 죽음』(1982년), 그리고 『산문의 이념』(1985년) 등의 저작들을 통하여 그의 미학적 스탠스에서의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1990년에 발표된 정치철학적 선언서인 『도래하는 공동체』에서 제시되고 있는 국가와 민족, 그리고 계급 등을 향한 귀속을 거부하는 ‘주체 없는 주체’에 관한 모델과 매우 닮아 있다.

그밖에도 그의 미학을 둘러싼 이론적 또는 역사적 관심은 발터 벤야민의 이탈리아어판 저작집의 편집 참여와, 1993년 질 들뢰즈와의 공저인 『바틀비 ; 창조의 정식』(1993년)을 통하여 지속되어 왔다. 이후에 아감벤은 구소련 및 동유럽의 사회주의체제의 붕괴를 계기로, 언어활동을 테마로 유럽의 인간적인 조건에 관한 미학적인 고찰에서 정치에 관한 철학적인 고찰로 글쓰기의 이행을 시도한다. 실제로 ‘정체성 없는 단독성’만을 기초로 하는 공동성, 그리고 어느 한 속성으로 인하여 귀속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속성에 대한 무관심을 통하여 각자가 현재의 존재방식인 단독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토대로 공동체 구상을 제시한 『도래하는 공동체』(La comunia che viene, 1990년)를 시작으로, 『목적 없는 수단 ; 정치에 관한 노트』(1995년)에서 제시되고 있는 정치에 관한 현재적 테마들 - 생, 예외상태, 강제수용소, 인민, 인권, 난민, 은어, 스펙터클, 몸짓 등 - 을 통해 아감벤은 정치의 존재론적 지위 회복을 주장하고 있으며, 그 지표가 될 수 있는 개념들을 재고하고 있다. 그 가운데 무엇보다도 주목할 저작으로는 『호모 사케르 ;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1995년), 『예외상태』(2003년), 『아우슈비츠의 남겨진 것』(1998년)의 3부작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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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정문영
전남대학교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인류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코넬대학교 역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귀국하여, 담양에 있는 한정식집 '햇살부르는바람소리'를 운영하고 있다. 역서로 『경제 인류학을 생각한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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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1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63쪽 | 336g | 148*210*20mm
ISBN13
9788955593167

출판사 리뷰

증언(증인)과 역사와 기억을 둘러싼 아감벤의 새로운 논쟁을 통해 지금을 살아가는 호모 사케르들을 바라본다!

아우슈비츠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도’ ‘아우슈비츠 이후에는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게 된 것’도 아니다. 21세기에는 우리 모두가 아우슈비츠에 갇히게 되었다. 누가 역사의 진실을 말하는가?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자는 ‘이슬람교도’가 되고 살아남은 자는 ‘증인’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과연 어떤 진실을 말할 수 있는가?

“근대 이전의 영토 권력이 ‘죽음의 공포’를, 그리고 근대의 생명 정치가 생명의 관리와 통제를 목적으로 했다면 20세기 이후의 생명 정치는 인간 자체를 잉여로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세기 생명 정치의 가장 고유한 특징을 규정하는 이 정식은 더 이상 죽이는 것도 아니고 살리는 것도 아닌, 살아남게 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 생명 권력의 결정적인 활동은 삶의 생산도 아니고 죽음의 생산도 아니다. 차라리 생존을 생산하는 데, 쉽게 변형을 가할 수 있고 또 잠재적으로 무한한 생존을 생산하는 데 있는 것이다.”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시리즈의 비밀을 가장 대중적으로 드러내면서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윤리를 도모하고 있는 논쟁적인 문제작!

아우슈비츠는 브레히트에게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떠올리게 했으며,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 시(즉 문학)는 가능한가’라고 묻는 등 아우슈비츠는 유독 문학에서 곧잘 사유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것은 20세기에 일어난 이 인류 최대의 사건이 너무나 비극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객관화되기 보다는 쉽게 주관화되어 ‘나치와 유대인 사이에 벌어진 특수한, 일회적 비극’으로 치부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최근의 『쇼아』라는 영화를 둘러싼 논쟁이 잘 보여주듯이 ‘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유대인 학살이 실제로 있었느냐’는 역사적 사실 논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감벤의 이 책의 제목은 지극히 도발적이고 자극적이다. 즉 ‘아우슈비츠의 살아남은 자들’을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이다. 아우슈비츠 밖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아니라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자들을 대상으로 이 역사학과 인문학의 핵심적인 쟁점들, 즉 증언, 기억, 진리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제기하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아감벤은 아우슈비츠를 둘러싼 수많은 풍설과 풍문과 오해를 바로잡는데, 그것은 곧장 역사학을 비롯한 수많은 인접 분야에서 수많은 논쟁을 촉발했다. 예를 들어 역사의 증인은 무엇을 증언할 수 있는가 하는 단도직입적인 질문이 그러하다. 아우슈비츠의 비극을 증언할 수 있는 자들은 막상 죽어서 말이 없는데 살아남은 자들은 과연 증언자로서의 자격이 있는가? 그들은 무엇을 증언하는가? 과연 누가 역사의 진실을 말할 수 있는가? 왜 가해자들은 항상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증언하는가?

물론 이 책에서 아감벤은 이것을 넘어서 아우슈비츠가 단순히 하나의 역사적 비극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문명의 어떤 감추어진 비밀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즉 지금까지의 생명정치가 주로 영토와 자원을 또 국민과 인구를 대상으로 살리거나 죽이는 것을 목표로 해왔다면 20세기 이후의 생명정치는 인간을 잉여로, 쓰레기로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대인으로 상징되는 인간을 ‘쓰레기’로 취급해 높은 굴뚝 위로, 공장제 방식으로 태워버리는 이 비극적 사건은 21세기의 생명정치의 패러다임을 선구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동안 아감벤을 둘러싸고는 지나치게 ‘비관적’이라는 평이 있었으나 아감벤은 이 책을 ‘윤리에’에 대한 탐색이라고 부르고 있다. 즉 인간이 잉여로, 즉 쓰레기로 대량 생산되는 시대에 생명정치의 이러한 전략을 철저하게 인식할 때만이 비로소 인간됨에 대한 증언과 새로운 윤리의 모색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이슬람교도들’―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처럼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없는 자들’로 넘쳐나는 우리 시대에 말할 수 없는 자들에 대해 말할 권리를 돌려주는 것이 우리 시대의 새로운 윤리이다.

그러나 아감벤이 그리는 아우슈비츠의 풍경은 비극과 슬픔으로만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도 다시 구분이 있는데, 이 비인간의 수용소에서도 다시 인간 이하의 생명들이 있다. ‘이슬람교도’로 불리는 자들이 그들이다. 정확히 말해 짐승과 인간의 경계에 있는 이들은 말과, 인간으로서의 어떤 존엄도 없이 그저 살아남아 있을 뿐이다. 이들에게는 어떠한 슬픔도, 언어도, 시도 해당되지 않는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예외적이지만 사실은 이들이야말로 수용소의 진실, 즉 죽음 앞에서의 공포를, 죽음 앞에서 인간이 그저 살아 있는 생명으로 전락하게 됨을 보여주는 ‘수용소의 진정한 증인’이다. 하지만 이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말이 없고, 인간으로서의 모든 증거가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이슬람교도인 것이다. 하지만 죽음의 수용소의 진실은 이들만이 알고 있다. 이것이 죽음의 수용소의 아포리아이며, 20세기의 모든 역사적 비극과 인간적 진실의 비극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슬람교도는 단지 나치의 죽음의 수용소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오늘날 생명 유지 장치에 매달려 사는 혼수 상태의 사람이나 식물인간들에서 일종의 이슬람교도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니 그러한 생명 유지 장치를 일종의 임금으로 바꾸어보면 우리는 길거리에서 수많은 ‘비정규직’과 ‘불법 노동자’를 발견할 수 있다. 즉 실업자/노동자라는 이원론적 대립을 벗어나 ‘비정규’와 ‘불법’이라는 현대의 ‘이슬람교도’들이 점점 더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저 1980년대의 삼청교육대 식의 폭력이나 범죄와의 전쟁 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 사회의 권력과 폭력의 양상 또한 과거의 폭력/민주의 틀을 넘어 생명정치 쪽으로 가파르게 달려가고 있는 느낌이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증언과 진정한 말의 회복을 새로운 윤리의 단초로 제시하는 아감벤의 혜안을 우리 시대의 새로운 윤리로서 새삼 주목을 요한다. 즉 이슬람교도가 기본적으로 ‘말을 잃은’ 생명이라고 할 때, 그리고 그들의 진실은 결코 ‘증언’된다고 할 때 이처럼 가공한할 만한 생명정치에 대한 투쟁은 올바른 말의 회복과 증언에서 출발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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