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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필경사, 혹은 창조에 관하여
II. 정식, 혹은 잠재성에 관하여 III. 실험, 혹은 탈창조에 관하여 옮긴이 해제 찾아보기 |
Giorgio Agamb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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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소행성대帶처럼 카프카의 법정에 나오는 이름 없는 서기관들이 있다. 그러나 바틀비의 철학적 성좌도 존재하는바, 이 성좌만이 다른 별자리[문학적 별자리]가 단지 윤곽만 그리고 있는 인물의 핵심을 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 p.12 서양철학 전통의 중요 인물을 필경사라는 볼품없는 신분으로 소개하고, 사유를 그에 못지않게 색다른 글쓰기 활동으로 소개하는 이 정의는 도대체 어디서 유래하는 것일까? --- p.14 민감한 밀랍층이 필경사의 첨필로 갑자기 긁히게 되듯이, 사유의 능력은, 그 자체로는 어떤 것이 아니지만, 지성의 활동이 일어날 수 있게 한다. --- p.19 이것이 필경사 바틀비가 속하는 철학적 성좌이다. 쓰기를 멈춘 필경사 바틀비는 모든 창조가 그로부터 나오는 무의 극단적 형상이며, 동시에 순수하고 절대적인 잠재성[능력]인 이 무에 대한 가장 집요한 주장이다. --- p.49 의지가 능력[잠재성]에 대해 힘을 갖는다고 믿는 것, 활동〔현실성〕으로의 이행이 능력의 양의성(그것은 늘 할 수 있는 능력과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다)을 종식시키는 결단의 결과라고 믿는 것―이것이 바로 도덕이 품고 있는 영원한 환상이다. --- p.51 바틀비는 바로 의지가 능력[잠재성]보다 우위에 있다는 이런 생각을 의문에 부친다. 신이 (적어도 규정된 능력에 의해서는) 그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진정으로 할 수 있다면, 바틀비는 [그 자신이] 원하지 않고서만 할 수 있다. --- p.52 바틀비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거부하지도 않는다. 영웅적인 부정의 파토스만큼 그에게서 낯선 것도 없다. 서구 문화사에서 긍정과 부정 사이, 수락과 거부 사이, 넣기와 빼기 사이에서 이토록 단호하게 평형상태를 유지하는 정식은 하나밖에 없다. --- p.57 바틀비가 제 집으로 삼는 금욕적인 낙원에서는 모든 이유에서 완전히 해방된 오히려 더(piuttosto)만 있다. 그것은 선호와 잠재성 같은 것으로서, 더는 무에 대한 존재의 우위를 보증하는 데 쓰이지 않고, 존재와 무의 무차별 속에서 이유 없이 존재한다. --- p.68 진리와의 관계, 혹은 사물 상태의 존속이나 비존속과의 관계를 모조리 끊어버린 실험에서만, 바틀비의 “하지 않는 편이 더 좋겠는데요”는 그것의 완전한 의미(혹은 그것의 무의미)를 획득한다. --- p.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