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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슬픔을 쓰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1장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으면 기다릴게요 2장 내 잠꼬대라고 생각해도 괜찮아요 3장 우리가 아니면 또 누굴 만나시겠습니까? 4장 적은 꿈속에서 파멸시키고 벚꽃은 침대 옆에 흐드러지게 피었네 추천사 |
王定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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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서운 침묵은 어디서 왔을까? 내가 기억하는 짧은 유년기를 가득 채운 건 수없이 다녔던 이사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 여덟 번이다. 매번 도망치듯 떠나 완전히 낯선 곳으로 옮겼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자다가 한밤중에 잠이 깨면 깊이 잠드는 게 무서워 차가운 바닥으로 옮기곤 했다.
나중에야 그것들이 모두 슬픔이라는 것을 알았다. 슬픔에는 정해진 형식이 없다. 꼭 눈물을 흘리며 울어야만 슬픔인 것은 아니다. 슬픔이 침묵의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 오랫동안 나를 가두고 있던 고집, 두려움, 외로움이 군대에서 한꺼번에 나를 놓아주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겐 아직 슬픔이 남아 있다. 털어놓지 않은 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 p.10 사람의 일생에 몇 번의 연애가 허락된다 해도 나는 단 한 번으로 끝날 수 있기를 바란다. 방금 전 그 길이 첫 번째 길이었다고 해도 그다음은 영영 오지 않으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이런 확고한 생각이 조금 황당할 수도 있지만 사랑이라는 길 위에서 어떤 구간이 가장 옳은지 누가 알 수 있을까? 사랑도 원래 영감처럼 아슴아슴 떠다녀 붙잡기 힘든 것이다. 영감이 찾아오지 않으면 머릿속은 죽은 바다나 다름없다. 그 바다에 거센 파도가 몰아쳐야만 외로운 세상도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파도가 계속 밀려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단 한 번뿐이라도 파도가 치는 그 순간을 담아둘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큰 파도가 지나가면 그 여파가 오랫동안 맴돌게 내버려두고 뭍으로 올라가야 할 때 배를 잘 묶어두기만 하면 된다. --- p.99 내가 너의 순수함을 사랑하는 건 운명이야. 네가 예뻐서도 아니고, 남자의 본능 때문도 아니야. 내가 사랑하는 건 비가 쏟아지던 그날 오후 처음 본 내게 손짓을 했던 너야. 특별할 것 없는 그 동작이 내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어. 넌 나를 가족처럼 생각했던 거야. 너 자신도 몰랐겠지만. 구부러진 작은 손가락. 천사 만 명이 하나씩 떨어뜨린 만 개의 깃털 중에 유일하게 바람에 날아가지 않은 깃털 하나가 그 순간 내 인생 속으로 날아 들어왔어 --- p.122 군고구마 두 개를 먹었다. 탄 껍질을 벗겨내지 않아 텁텁하고 씁쓸했다. 아버지와 이웃의 논에서 고구마를 구워먹은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지푸라기를 줍고 나는 흙을 쌓았다. 흙을 봉긋하게 쌓아올린 뒤 지푸라기에 불을 붙여 그 속에 집어넣었다. 흙무더기가 불에 충분히 달궈지길 기다렸다가 구멍을 내고 그 안에 고구마를 넣었다. 고구마를 다 넣고 난 뒤 아버지는 담배를 피워 물며 나와 함께 논두렁에 걸터앉아 기다렸다. 아버지의 짧은 인생에서 내가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 위로 쓸쓸한 석양이 내려앉았다. 그 후 반년도 안 되어 아버지는 연못으로 들어갔다. (…) 나의 모든 과거 일은 처음부터 그다음까지 다 얘기해주기에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아버지와 논에서 나올 때 해가 저물어 어두컴컴했고 집에는 우리가 돌아와 불을 켜주길 기다리는 어머니가 있었다. 그다음엔 하늘이 칠흑처럼 깜깜해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내 머릿속을 영원히 침식해버릴 만큼. --- p.210~212 머리를 얼마나 오래 길러야 그 불행의 그림자를 온전히 가릴 수 있을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울컥 울음이 터졌다. --- p.2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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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게 갠 하늘도 언젠가는 구름이 피고,
흐드러지게 핀 벚꽃도 시드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적의 벚꽃』도 그렇다. 우리는 저항할 힘도 없이 묵묵히 이 소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왕딩궈는 인물의 감정을 직접 묘사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핵심을 파고들지 않고 인물의 주변을 묘사하여 그 감정과 분위기를 전달한다. 때로는 아무 관련도 없는 플롯을 넣어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미로 속으로 독자들을 빠뜨리는 것 같지만 종점에 다다르고 나면 그제야 눈앞에 탁 트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독자에게 넓은 상상의 여지를 만들어줌으로써 끝까지 호기심을 유지하며 읽어내려가게끔 하다가 마지막에 무릎을 치며 경탄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왕딩궈는 글을 황금처럼 아낀다. 마침표 하나, 쉼표 하나에도 미묘한 의미가 담겨 있다. 만신창이가 된 인생에서 가장 이성적으로 깨닫기 힘든 것이 바로 사랑이다. 왕딩궈의 예리함은 우리에게 익숙한 사랑과 미움을 처리하는 데서 빛을 발한다. 그는 사랑과 미움을 낯선 모습으로 만들어 진부한 이야기를 재탄생시킨다. 왕딩궈는 문단에 복귀하고 단편소설집 두 권 발표한 후 첫 장편소설로 『적의 벚꽃』을 선보였다. 아내를 잃은 한 남자의 이야기, 혹은 순결을 빼앗긴 한 여자의 이야기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발굴해낼 수 없을 만큼 소설은 물론 수많은 예술 장르에서 숱하게 다루어진 소재다. 하지만 왕딩궈는 이 진부한 소재를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켰다. 소설의 시작이 바로 결말이고 그 뒤에 이어진 모든 서술은 인생의 슬픔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해석이다. 쉼표 하나, 마침표 하나에도 의미가 담겨 있다. - 판밍(문학평론가) 그의 펜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상의 사물을 넘어서 일상의 한 찰나를 신비롭고 위대한 순간으로 바꾸어놓는다. - 저우펀링(작가)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왕딩궈의 언어 속 행간에 스며들어 있는 그 고귀함이다. 그건 이 세상에 대한 의로운 정(情)이자 품격이며 절개이자 지조다. - 천례(작가) 이 이야기의 가장 큰 매력은 뤄이밍와 아내 추쯔가 한 번도 실제로 등장하지 않고 주인공 나와 뤄바이슈의 대화를 통해서만 나온다는 점이다. 왕딩궈는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나간다. 그는 인물의 심리를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다른 사물이나 묘사에 스며내는 방식으로 묘사했다. ‘나’는 바이슈에게 “비극이 희열 속에서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이 말은 사람의 운명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어떤 슬픔이든 비극이든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며 누구도 쉽게 보호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왕딩궈가 구사하는 서정적인 언어에는 닦아내기 힘든 슬픔이 끈끈하게 들러붙어 있다. 그가 사용한 단어들은 독자들의 마음을 곤경에 빠뜨리듯 구석으로 밀어 넣고 헤어나지 못하게 한다. 그는 이 소설에서 완전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고 언제나 중요한 지점에서 흔적만 남겨놓은 채 독자들 스스로 더듬어 찾도록 하였다. 1장에서 이미 이런 암시가 등장한다. “물론 우리가 처음 뤄이밍의 집과 해변으로 가던 길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곳으로 향하는 길이 갈림길이었다면 그건 그저 예상치 못하게 불쑥 나타난 갈림길이었다. 그 길이 어두운 숲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게다가 그 길을 따라 눈부시게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졌고, 우리는 그 길을 달리며 충만한 희열을 느꼈다.” 행운과 불행은 이처럼 함께 찾아오고 운명은 이처럼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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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하나, 마침표 하나에도 의미가 담겨 있다.
- 천팡밍 (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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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펜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상의 사물을 넘어서 일상의 한 찰나를 신비롭고 위대한 순간으로 바꾸어놓는다. - 저우펀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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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왕딩궈의 언어 속 행간에 스며들어 있는 그 고귀함이다. 그건 이 세상에 대한 의로운 정(情)이자 품격이며 절개이자 지조다. - 천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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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딩궈의 펜 끝에서 오랫동안 대만소설이 조롱받던 두 가지 요소가 누명을 벗었다. 하나는 ‘리얼리즘’이고 다른 하나는 ‘비정(悲情)’이다. - 양자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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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딩궈의 글은 한 발은 천국을 딛고 다른 한 발을 지옥을 딛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언제나 차가움과 뜨거움 사이를 오간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놀라울 만큼 속물적이지만 또 변치 않는 것에 집착한다. - M'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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