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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사·5
수행자를 닮은 아이 11 출가 결심 27 1만 배의 힘 53 용성 선사의 법상좌가 되어 79 문수보살의 서상수계 107 용성 선사의 유훈 125 3년간의 율장 필사 133 해방, 한국불교의 본래면목을 찾아라 147 부처님 법대로 살자 159 수만 권의 율서 보급 187 팔만대장경을 지켜라 205 용악혜견의 후신 219 불교정화운동의 중심에 서서 237 염불과 기도의 삶 275 견문을 넓히는 것도 큰 수행 281 대동염불회와 만선염불원 293 이부승 제도와 단일계단 정착 303 부처님 회상에서 다시 만나자 313 저자 후기·329 자운 대율사의 행장·3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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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舟 太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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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불교 계율의 중흥조!
1939년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에서 매일 20시간씩 용맹정진으로 문수기도를 봉행하던 중, 99일째 되는 날에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계척과 “견지금계堅持禁戒 불법재흥佛法再興”의 감응을 받았다. 그리하여 1940년부터 2년여 동안 매일 국립중앙도서관을 오가며 卍속장경에 들어 있는 오부율장과 그 주석서들을 모두 필사하고 연구하였다. 1948년 봉암사 결사에서 처음으로 보살계 수계법회를 봉행한 이후 1991년 조계종단 단일계단 수계법회까지, 출·재가 10만 불자에게 수계를 주었으며, 조계종의 계단을 확립하였다. 한편 스님은 『비구계본』, 『비구니계본』, 『사미율의』, 『사미니율의』, 『범망경』 등 많은 율서를 우리말로 번역, 지속적으로 펴내고 보급하였다. 참선 수행에도 혼신을 다한 선사! 1929년 범어사 선원에서의 안거를 시작으로 순천 선암사, 해인사, 표훈사, 울진 불영사, 문경 김룡사, 통도사, 울산 학성선원, 금강산 마하연 등에서 수선안거하였다. 특히 불영사에서는 3년 동안 장좌불와로 결사하였으며, 1938년 도봉산 망월사에서 용성 선사에게 오도송을 읊고 전법게와 의발을 전해 받았다. 해방 후에는 봉암사 결사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성철, 향곡, 청담 스님 등과 함께 한국불교에 새로운 기풍을 불러일으켰다. 평생 염불과 예참을 실천한 염불 수행자! 스님은 1957년부터 계율과 정토수행이 둘이 아니라는 계정일치戒淨一致 수행을 제창하였으며, 『무량수경』, 『아미타경』, 『십육관경』, 『정토심요』, 『자비도량참법』 등 정토와 관련된 다양한 경서를 펴내고 유통시켰다. 그 실천으로 해인사에서 염불만일회, 서울 보국사에서 대동염불회를 결사하여 정토수행을 진작시켰으며, 스스로를 상참괴승常慙愧僧, 즉 항상 참회하는 부끄러운 중이라고 칭하였다. 스님은 열반할 때까지 매일 10만 번의 ‘아미타불’ 고성염불과 『아미타경』 48편 독송, 미타예경 1,080배, 염불진언과 일종식 등을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실천하였으니, 가히 정토 수행자로서의 전범을 보여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