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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 작가 소개 : 7인의 여성작가

1. 백신애 : 꺼래이
2. 이선희 : 계산서
3. 나혜석 : 경희
4. 강경애 : 어머니와 딸
5. 김명순 : 탄실이와 주영이
6. 임순득 : 딸과 어머니와
7. 지하련 : 산길

* 해설 (허윤) : 내게도 선택권이 있다

저자 소개 7

공저백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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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화(朴啓華)

어릴 때 한문을 수학한 후 경북사범학교를 졸업하고 2년 동안 보통학교 교원을 지내다가 잡지사 기자로 전직했다. 1926년 조선여성동우회와 경성여자청년동맹 등에 가담해 비밀리에 여성운동을 한 것이 탄로 나 교사직에서 물러나자 서울로 올라가 본격적으로 여성운동에 뛰어들었다. 1929년 응모한 단편소설 〈나의 어머니〉가 《조선일보》에 당선되며 신춘문예 첫 여성작가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후 고향을 떠나 살길을 찾아 시베리아를 떠도는 조선인의 수난을 그린 〈꺼래이〉(1933)를 발표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38년 만성 위장병으로 고생하다가 32세 때인 1939년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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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저이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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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성장기 대부분을 원산에서 보냈다. 십 대 후반에 서울로 상경하여 이화여자전문학교 문과에서 3년 동안 수학했다. 잡지 『개벽』 『신여성』 『신세기』사에서 기자로 일했고, 『조선일보』 학예사 기자로도 활동했다. 1934년 『개벽』사에서 기자로 1년간 근무하면서 쓴 단편 「불야여인-가등」을 『중앙』 12월호에 발표하며 등단한 뒤, 1936년 『신가정』 6월호에 「오후 11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문단 생활을 시작하였다. 단편 「계산서」, 중편 「처의 설계」, 장편 「여인 명령」 등 열네 편의 소설과 두 편의 콩트, 사십여 편의 수필과 평론 등 많
1911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성장기 대부분을 원산에서 보냈다. 십 대 후반에 서울로 상경하여 이화여자전문학교 문과에서 3년 동안 수학했다. 잡지 『개벽』 『신여성』 『신세기』사에서 기자로 일했고, 『조선일보』 학예사 기자로도 활동했다. 1934년 『개벽』사에서 기자로 1년간 근무하면서 쓴 단편 「불야여인-가등」을 『중앙』 12월호에 발표하며 등단한 뒤, 1936년 『신가정』 6월호에 「오후 11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문단 생활을 시작하였다. 단편 「계산서」, 중편 「처의 설계」, 장편 「여인 명령」 등 열네 편의 소설과 두 편의 콩트, 사십여 편의 수필과 평론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해방 이후 1946년 극작가인 남편 박영호를 따라 월북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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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저나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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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 Hye-seok ,晶月 羅蕙錫

1913년 진명여자보통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유화를 공부했다. 일본에서 여성 유학생 모임을 조직하고 기관지 《여자계》를 펴냈으며, 귀국 후 3·1운동에 참여하고 여자 야학과 미술 학사를 세웠다. 작가로서는 새 시대 여성의 권리를 다룬 평론 〈이상적 부인〉과 최초로 여성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경희〉를 집필했다. 결혼 후 〈모(母) 된 감상기〉로 모성 본능이 편견임을 지적했으며, 〈이혼 고백서〉에서는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정조 관념을 비판했다. 이후 대중의 싸늘한 반응에 유랑의 길에 올랐다가 1948년 서울시립자제원 무연고자 병동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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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저강경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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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송화군에서 태어나 평양 숭의여학교와 서울 동덕여학교에서 공부했다. 1931년 단편 〈파금〉과 장편 《어머니와 딸들》을 발표하고, 이후 고향과 만주 간도 등지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작품들을 집필했다. 특히 장편 《인간문제》는 농민들의 힘겨운 삶과 도시 노동자들의 현실을 고발한 문제작으로 꼽힌다. 1931년 결혼과 함께 북간도 용정으로 이주해, 이곳에서의 삶을 바탕으로 〈지하촌〉 등의 사실적인 작품을 발표했다. 1939년에 조선일보 간도 지국장을 역임했으나 풍토병과 과로로 건강이 나빠지면서 1942년 간도에서 귀국해 황해도 장연에서 요양하다가 1944년 4월 26일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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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저김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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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근대 소설가로 평론가, 극작가, 기자, 배우로도 활동했다. 1912년 진명여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에서 유학했지만 1915년 강간당한 사회적 오명으로 인해 졸업생 명부에서 삭제되었다. 이후 귀국해서 숙명여자보통고등학교와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를 다녔다. 21세 때인 1917년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가 《청춘》의 현상 공모에 당선된 후 1930년대 후반까지 170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지만, 첩의 자식이라는 출신성분, 성폭력 피해 경험, 혼전 동거, 영화배우로의 전향, 일본 망명 등으로 인해 제대로 된 문학적 평가를 받지 못한 채 도쿄에서 외로운 말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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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저임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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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났다. 1937년 [조선문학]에 단편 「일요일」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여성해방문학을 주장하는 평론을 꾸준히 발표했으며, 해방 후 함경남도 원산에서 살다가 1947년 무렵 평양으로 이사했다. 소설 「일요일」, 「이름 짓기」, 「들국화」, 「딸과 어머니와」 등을 비롯해 수필, 평론, 콩트 등 여러 작품을 남겼으나 1959년 [인민조선]에 발표한 「금 목걸이」를 끝으로 이후에 발표한 글들은 아직 찾을 수 없다. 북한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한 남편과 함께 축출되어 기계 운전기사로 일하면서도 단칸방에서 글을 썼고, 남편이 죽은 뒤로는 사회보장으로 살았다고
1915년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났다. 1937년 [조선문학]에 단편 「일요일」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여성해방문학을 주장하는 평론을 꾸준히 발표했으며, 해방 후 함경남도 원산에서 살다가 1947년 무렵 평양으로 이사했다. 소설 「일요일」, 「이름 짓기」, 「들국화」, 「딸과 어머니와」 등을 비롯해 수필, 평론, 콩트 등 여러 작품을 남겼으나 1959년 [인민조선]에 발표한 「금 목걸이」를 끝으로 이후에 발표한 글들은 아직 찾을 수 없다. 북한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한 남편과 함께 축출되어 기계 운전기사로 일하면서도 단칸방에서 글을 썼고, 남편이 죽은 뒤로는 사회보장으로 살았다고 전해진다. 일제 말기의 파시즘 속에서도 성, 계급, 민족을 아우르는 여성해방론을 외친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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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저지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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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욱李現郁

본명 이숙희(李淑姬). 필명 이현욱(李現郁), 지하련. 1912년 7월 11일 경남 거창 태생. 일본 소화고등여학교를 졸업하고 동경여자경제전문학교를 중퇴했다. 1935년 카프의 지도자인 임화와 결혼하였고, 1940년 소설 「결별」이 백철의 추천을 받아 『문장』에 발표되면서 등단했다. 광복 직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여 1947년 임화와 함께 월북할 때까지 작가로 활동하였다. 1953년에 임화가 사형에 처해지고, 만주에서 뒤늦게 그 소식을 들은 지하련은 실성한 채 헤매 다녔다고 하며, 1960년 초에 평북 희천 근처의 교화소에 격리 수용되었다가 병사했다는 설이 있다. 주요 작품으로
본명 이숙희(李淑姬). 필명 이현욱(李現郁), 지하련. 1912년 7월 11일 경남 거창 태생. 일본 소화고등여학교를 졸업하고 동경여자경제전문학교를 중퇴했다. 1935년 카프의 지도자인 임화와 결혼하였고, 1940년 소설 「결별」이 백철의 추천을 받아 『문장』에 발표되면서 등단했다. 광복 직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여 1947년 임화와 함께 월북할 때까지 작가로 활동하였다. 1953년에 임화가 사형에 처해지고, 만주에서 뒤늦게 그 소식을 들은 지하련은 실성한 채 헤매 다녔다고 하며, 1960년 초에 평북 희천 근처의 교화소에 격리 수용되었다가 병사했다는 설이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소설 「결별」 「체향초」 「가을」 「산길」 「종매」 「양」 「도정」 등이 있으며, 소설집 『도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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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2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368쪽 | 324g | 115*180*30mm
ISBN13
9791196425685

책 속으로

“다른 건 다 이겨도 그분을 사랑하는 것만은 나한테 이기지 마세요, 여기까지 지게 되면 나는 스스로 타락할 길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그분은 누구보다도 자기 생활의 질서를 소중히 아는 사람입니다. 설사 당신에 비해 나를 더 훨씬 사랑하는 경우라도 결코 현실에서 이것을 표현하지는 않을 겁니다.” ---「산길, 지하련」중에서

“내 딸이 어디가 어쨌단 말인가. 다 세상 따라 남의 총중에 나가서 안 빠지고 일도 하겠다…….” 이렇게 어머니는 당신 딸에게 한하여서 자신만만하고 더욱이 지극히 소박한 진보적인 사상을 가져 일체의 인습도 뛰어넘게 되는 것이었다. “얘야, 더러 혁명운동 한 사람들 중에는 늦게 초혼 자리도 있다더구나. 혹 마음 쏠리는 데라도 없니?” 어머니는 은근히 딸의 의향을 떠보며 재혼을 권하는 것이었다. ---「딸과 어머니와, 임순득」중에서

경희도 사람이다. 그다음에는 여자다. 그러면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 또 조선사회의 여자보다 먼저 우주 안 전 인류의 여성이다. 이철원 김 부인의 딸보다 먼저 하나님의 딸이다. 여하튼 두말할 것 없이 사람의 형상이다. 그 형상은 잠깐 들씌운 가죽뿐 아니라 내장의 구조도 확실히 금수가 아니라 사람이다. ---「경희, 나혜석」중에서

황량한 시베리아 벌판, 그 냉혹한 찬바람에 시달리며 세 사람은 추방의 길에 올랐습니다. 벌판을 지나 산등도 넘고 얼음길도 건너며 눈구덩이도 휘어가며 두 군인의 말굽소리를 가슴 위로 들으며 걷고 걸었습니다. 쫓겨가는 가엾은 무리들의 걸어간 자취 위에 다시 발을 옮겨 디딜 때 자국마다 피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꺼래이, 백신애」중에서

나는 내 남편이 자동차에 치이거나 혹여 뜀박질하는 말발굽에 채여서라도 다리 하나가 없어지기를 바랐다. 그 이유란 지금으로부터 일곱 달 전에 나는 다리 하나를 잃고 훌륭히 절름발이란 이름을 가지고 들어앉게 된 까닭이다. 나는 다리가 하나인데 만일 내 남편은 다리가 둘이 되면 필경 우리 사이에 균형은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 균형을 잃은 것은 언제든지 완전한 것이 아니다. ---「계산서, 이선희」중에서

탄실의 작은 가슴은 처음으로 사나운 인정에 속았다. 그렇다고 탄실은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산월을 ‘어머니, 어머니’ 하기는 얼른 싫었다. 그는 산월이를 무엇인지 어머니라고 부르기가 꺼렸다. 허나 탄실은 결코 그 모친을 진심으로 싫어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첩의 딸’, ‘기생의 딸’이란 말이 듣기 싫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명예심 많은 처녀였다. ---「탄실이와 주영이, 김명순」중에서

나는 어떠한 길을 걸었나? 아니, 나도 사람인가? 밥을 먹고 옷을 입을 줄 아니 사람이랄까, 울고 웃을 줄 아니 사람이랄까? 응! 아니다! 울었다면 나를 위하여 울었더냐? 웃었다면 진정한 나의 웃음이었더냐? 모두가 봉준을 위하였음이었다. 두루뭉수리 삶이었다! 이러한 삶을 계속시키려고 안타깝게 울었던 것이었다.

---「어머니와 딸, 강경애」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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