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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팡세》에 대하여 / 6
포르 르와이알판 머리말 / 9 제1장 정신과 문체에 관한 고찰 / 32 제2장 인간에 대한 인식 / 55 제3장 불신자(不信者)들을 공박함 / 123 제4장 신앙의 방법에 대하여 / 159 제5장 법률 / 180 제6장 철학자들 / 201 제7장 도덕과 교의(敎義) / 230 제8장 기독교의 기초 / 301 제9장 영속성 / 319 제10장 표징(表徵) / 348 제11장 예언 / 377 제12장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증거 / 413 제13장 기적 / 439 제14장 논쟁적 단장(斷章) / 471 파스칼의 생애와 사상 / 500 연보 / 507 |
Blaise Pas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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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은 중세적 신앙과 근세적 이성의 대치 속에서 탄생한 사상가이다. 그의 시대를 지배한 사상은 스토아철학과 자유사상이다. 이 사상가들 중 그에게 큰 영향을 준 것은 에픽테토스와 몽테뉴이다. 에픽테토스는 인간의 위대성은 잘 알고 있었으나 인간의 비참함을 알지 못하여 쾌락주의를 낳게 하였으며, 몽테뉴는 인간의 비참함을 잘 알고 있었으나 인간의 위대성을 알지 못하여 염세주의에 빠지게 했다. 파스칼은 이 두 사상의 대치 속에서 고뇌하며 살았고, 결국 이 두 사상의 입장을 종합하였다. 파스칼은 과학적 정확성을 도입한 새로운 방법으로 철학을 설명하려 했다는 점에서 위대하다. 즉 그는 인간을 연구하되 그 본질을 연구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상황을 연구했다. 파스칼의 사상은 인간 및 인간의 조건에 대한 직접적인 관찰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공허한 이론을 전개하는 것을 싫어하고 구체적인 것을 존중한다. 철학적 사고라는 것도 파스칼에게서는 현실의 관찰 및 분석으로 나타난다. 파스칼은 자신의 개인적 생활과 경험을 통해서 진리를 자각하고, 실감하고, 직관한 프랑스가 낳은 위대한 사상가이다.
『팡세』에 대하여 파스칼(Blaise Pascal)이 『팡세(Pensees)』를 이루는 단장(斷章)들을 기록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성형(聖荊)의 기적’이라고 전해진다. 파스칼의 누님인 질베르트 페리에 부인이 『블레즈 파스칼의 생애』에서 밝힌 『팡세』의 집필 동기는 이러하다. “1656년 3월 24일 내 딸 마르그리트 페리에(Marguerite Perier. 파스칼의 생질녀)에게 기적이 일어난 거예요. 3년 반 동안이나 앓아오던 누낭염(淚囊炎)이 더욱 악화되어 실명(失明)의 위기에까지 갔고, 눈뿐만이 아니라 코와 입에서까지 고름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 눈병은 지독한 악성 질환으로서 파리의 일류 외과의사와 그 밖의 어느 누구도 치료를 해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아이의 눈이 성형(聖荊─그리스도가 썼던 가시 면류관의 유물이라 일컬어짐)에 닿는 순간 말끔히 나아 버린 거예요. 이 기적은 세상 사람들이 시인하는 바이며, 프랑스의 유명한 의사들이 입증하는 것으로 교회들도 엄숙히 인정했습니다. 동생(파스칼)은 그 기적을 목격한 순간 그리스도의 권능에 숙연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성형의 기적’은 당시 예수회와 종교논쟁을 하고 있던 포르 르와이알 쪽의 입장을 아주 유리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기적은 그때까지 종교에 무관심하던 불신자(不信者)들 까지도 기독교를 개종시키는데 큰 힘이 되었다. 파스칼은 이 사건에 깊이 감동하여 포르 르와이알의 편에서 기독교를 변호하기로 결심했다. 파스칼이 『팡세』의 단장(斷章)들을 기록한 것은 한 권의 책으로서의 짜임새 있는 체계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과 연관된 단상들을 기독교적 신앙을 바탕삼아 노트 형식으로 쓴 것이다. 따라서 어떤 단장들은 우리가 그 의미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팡세』의 초판은 파스칼이 죽은 지 7년만인 1669년에 발행된 포르 르와이알판이다. 그의 유족들은 유고(遺稿)가 발견될 때마다 그것을 복사해 두고는 원본은 포르 르와이알로 넘겨주었다. 그런데 이 초판이 발행될 무렵 장세니스트와 예수회 사이의 논쟁은 교황의 명령으로 금지되었다. 그래서 그 단장들 가운데 예수회를 공격하는 내용의 단장과 장세니스트를 옹호하는 단장들은 초판본에서 빠질 수밖에 없었다. 초판본인 포르 르와이알판은 파스칼의 생질(甥姪)인 에티엔느 페리에(Etienne Perier)가 쓴 서문을 붙여 『종교 및 기타 문제에 관한 파스칼씨의 제사상(諸思想)』이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그 후에 나온 판(版)들은 이 제목 가운데서 “제사상”만을 취하여 『팡세(Pensees─사상 · 사색 · 명상)』라고 했다. 그 후 1776년에 초판에 빠져 있던 단장들을 보충하여 발행한 것이 콩도르세(Condorcet)판(版)이다. 또 1779년에는 보슈(Bossut)판이 나왔으며, 1842년 빅토르 쿠쟁(Victor Cousin)은 종전의 『팡세』는 원고에서 삭제되었거나 가필(加筆)된 부분이 있으니 새로이 엮어 출판할 것을 프랑스 학술원에 제의했다. 그리하여 1844년에 포제르(Faugere)판이 나왔는데, 이 책이 파스칼의 초고(草稿)에 가장 충실한 판이라고 일컬어진다. 그 후 1897년에 브랑슈비크(Brunschvicg)판이 나왔는데, 이 판은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내용을 분류해서 편집했기 때문에 오늘날, 가장 널리 읽혀지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 문호 총서의 『파스칼 전집』에도 브랑슈비크판을 넣고 있다. 또 1925년에는 슈발리에판이, 1951년에는 라푸마(Lafuma)판이 출간되었으며, 그 후에도 파스칼 연구가들에 의해 각기 특색 있는 다른 판들이 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