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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섭 소설 전집

책소개

목차

■ 책머리에

병(病)든 족속
민족(民族)의 수난(受難)

■ 작품 해설 : 조선 말 민족 수난기의 병든 인간들 이야기
■ 주요섭 연보
■ 주요섭 작품 목록

저자 소개10

朱耀燮, 여심

대표작 「사랑방손님과 어머니」로 가장 잘 알려진 작가로 (1902년~1972년) 시인 주요한의 친동생이다. 1902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숭실중학교 3학년 시절 도일하여 도쿄 아오야마학원 중학부에 편입했다. 3,1운동 후에 귀국하여 등사판 자하신문을 발간하다가 발각되어 약 십 개월간 옥고를 치르게된다. 그후 중국으로 망명한 그는 상하이 후장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다시 귀국하여 신동아 주간, 코리아 타임즈 주필, 경희대학교 교수,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위원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그의 작가로서의 경력은 다음과 같다. 1921년
대표작 「사랑방손님과 어머니」로 가장 잘 알려진 작가로 (1902년~1972년) 시인 주요한의 친동생이다. 1902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숭실중학교 3학년 시절 도일하여 도쿄 아오야마학원 중학부에 편입했다. 3,1운동 후에 귀국하여 등사판 자하신문을 발간하다가 발각되어 약 십 개월간 옥고를 치르게된다. 그후 중국으로 망명한 그는 상하이 후장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다시 귀국하여 신동아 주간, 코리아 타임즈 주필, 경희대학교 교수,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위원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그의 작가로서의 경력은 다음과 같다. 1921년 단편 「깨어진 항아리」를 매일신보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사랑 손님과 어머니」「아네모네의 마담」「인력거꾼」등을 꾸준히 발표하였다. 초기에는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리얼리즘, 중기에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추구한 예술적 향취를 풍기는 자연주의적 경향, 다시 말기에는 사회고발적인 현실의식을 짙게 풍기는 작품들을 남겼다.

저로는『추운 밤』『인력거꾼』『구름을 잡으려고』『아네모네의 마담』『추물』『잡초』등이 있다. 8·15광복 후에는 다시 강렬한 현실의식을 반영하는 경향을 보이는 작품으로는 『눈은 눈으로』, 『대학교수와 모리배』, 『잡초』, 『망국노군상』, 『죽고싶어 하는 여인』등이 있다. 그 밖에 『김유신 Kim Yu―Shin』(1947)과 『The Frost of the WhiteRock』(1963) 등의 영문소설도 발표한 바 있다. 1972년 11월 14일 70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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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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退溪 李滉 (1501-1570)

등으로 합격, 32세에 문과 초시 2등으로 합격하고 다음 해인 33세(1533)에 반궁(泮宮)에 유학하며 경상도 향시에 합격한다. 34세에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권지부정자와 예문관검열이 되었고 36세에 선무랑과 성균관전적을 거쳐 9월 호조좌랑에 임명되었다. 37세에 선교랑, 승훈랑, 승의랑에 임명되었으나 어머니 박씨의 상을 당해 관직에서 물러난다. 39세에 3년 상을 마치고 홍문관부수찬을 거쳐 수찬지제교로 승진해 40세에는 사간원정언, 승문원교검, 경연시독관, 춘추관기주관교리에 임명되었고 42세에는 홍문관부교리, 충청도·강원도어사로 순찰했으나, 43세에 병을 이유로 관직을
등으로 합격, 32세에 문과 초시 2등으로 합격하고 다음 해인 33세(1533)에 반궁(泮宮)에 유학하며 경상도 향시에 합격한다. 34세에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권지부정자와 예문관검열이 되었고 36세에 선무랑과 성균관전적을 거쳐 9월 호조좌랑에 임명되었다. 37세에 선교랑, 승훈랑, 승의랑에 임명되었으나 어머니 박씨의 상을 당해 관직에서 물러난다.

39세에 3년 상을 마치고 홍문관부수찬을 거쳐 수찬지제교로 승진해 40세에는 사간원정언, 승문원교검, 경연시독관, 춘추관기주관교리에 임명되었고 42세에는 홍문관부교리, 충청도·강원도어사로 순찰했으나, 43세에 병을 이유로 관직을 사임했다. 이후 종친부전첨, 세자시강원필선, 사간원사간, 성균관사성 등에 여러 차례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44세 10월에 상경한 후 중종이 승하하자 부고와 시장을 집필했다. 47세 7월에 안동부사에 제수되었으나 사임했다. 홍문관응교에 제수되어 상경해 사퇴하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48세에 외직을 자청해 단양군수로 취임했다. 10월에 풍기군수로 전임했다. 49세에 소수 서원을 개칭해 사액 서원의 효시가 되었다. 9월에 신병으로 사임해 귀향했다. 그러나 신병을 이유로 세 번이나 사직원을 제출한 후 회답을 기다리지 않고 퇴계로 돌아와 임소를 이탈했다는 죄목으로 직첩을 박탈당했다. 50세에 예안 하명동에 한서암(寒棲庵)을 짓고 학문에 전념한다. 53세 4월에 성균관대사성에 제수되었으나 사퇴한다.

54세에 형조·병조참의, 첨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고 경복궁에 새로 지은 여러 전각의 편액을 썼으나 이듬해 병으로 모든 관직을 사임하고 귀향한다. 56세에 도산에서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를 편찬 완성하고 다음 해인 57세에 도산 서당을 지을 터를 마련하고 『계몽전의(啓蒙傳疑)』를 저술했다. 58세에 대사성에 임명되자 사직을 청했으나 허락받지 못하고 공조참판에 임명되었다. 59세에 휴가를 얻어 귀향한 후 관직을 사임하고 『송계원명리학통록(宋季元明理學通錄)』을 저술했다.

60세에 고봉 기대승(奇大升)과 편지로 사단칠정론(四端七情)을 변론했다. 도산서당(陶山書院)이 완공된다. 61세에 「도산기(陶山記)」를 저술했다. 64세 2월에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의 발문을 썼으며 65세에 『경현록(景賢錄)』, 『역학계몽(易學啓蒙)』, 『명당실어(名堂室語)』 등을 저술했다. 66세에 공조판서와 홍문관·예문관대제학에 제수되었고, 다음 해인 67세에 다시 예조판서, 경연춘추관사로 임명되었으나 사의를 표명하고 8월에 귀향, 역동 서원(易東書院)을 새로 건축했다.

68세에 선조 원년 의정부우찬성과 판중추부사에 제수되자 6월에 소명을 어기지 못해 상경해 양관의 대제학을 겸임했다. 재임 중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저술했다. 69세(1569)에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사의를 표명하고 귀향했다. 70세 7월 역동 서원에 가서 『심경(心經)』을 강의하고, 8월 역동 서원의 낙성식에 참여했다. 11월 격물치지설(格物致知說)을 개정하다 병이 심상치 않자 12월 봉화현감으로 재직 중이던 큰아들을 사직, 귀가하게 해 장례 준비를 갖추도록 했다.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는 명문(銘文)과 자명(自銘)을 몸소 짓고, 임종 직적 매화분에 물을 주라는 말과 함께 한서암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영의정에 추서되었다. 저서로는 『계몽전의』, 『송계원명이학통론』, 『퇴계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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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正浩, 정세문

호 소무아(笑舞兒) 1947년 서울 출생, 인천중, 제물포고 졸업 서울대 영어교육과 졸업 및 대학원 영어영문학과 석박사 과정 수료 미국 위스컨신대(밀워키) 영문학 박사(Ph.D.) 영국 리즈대학, 호주 그리피스대학에서 각각 1년간 연구교수 한국영어영문학회장, 한국비교문학회장, 비평과이론학회장 문학과환경학회장, 한국18세기학회장, 한국번역학회 부회장 한국문화연구학회장, 국제PEN한국본부 전무이사 전국사립대학교수협의회연합회 수석부회장, 사랑의교회 교수선교회장 제1회 아시아인문학자대회 준비위원장(2008, 서울) 제19차 국제비교문학대회 조직위원장(2010, 서울
호 소무아(笑舞兒)
1947년 서울 출생, 인천중, 제물포고 졸업
서울대 영어교육과 졸업 및 대학원 영어영문학과 석박사 과정 수료
미국 위스컨신대(밀워키) 영문학 박사(Ph.D.)
영국 리즈대학, 호주 그리피스대학에서 각각 1년간 연구교수

한국영어영문학회장, 한국비교문학회장, 비평과이론학회장
문학과환경학회장, 한국18세기학회장, 한국번역학회 부회장
한국문화연구학회장, 국제PEN한국본부 전무이사
전국사립대학교수협의회연합회 수석부회장, 사랑의교회 교수선교회장
제1회 아시아인문학자대회 준비위원장(2008, 서울)
제19차 국제비교문학대회 조직위원장(2010, 서울)
제2회 세계한글작가대회 집행위원장(2016, 경주)

저서 : 『피천득 평전』(2017), 『문학의 타작 : 한국문학, 영미문학, 비교문학,
세계문학』(2022) 외
역서 : 『포스트모더니즘론』(1985), 『사랑의 철학 : 셸리의 시와 시론』(2022) 외
편서 : 『피천득 문학전집』(전7권)(2022), 『주요섭 소설전집』(전8권)(2023) 외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 7회,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1회, 교양도서추천 1회
독서문화운동본부 추천도서 1회, 아르코 문학나눔 1회 선정됨]

수상 : 중앙대 학술상, 김기림문학상(평론), 펜번역문학상, 박남수문학상(시),
한국문학비평가협회상

현재 : 문학비평가, 국제PEN한국본부 번역원장, 금아피천득선생기념사업회장,
한국펄벅연구회장,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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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5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28쪽 | 153*224*30mm
ISBN13
9791130814360

책 속으로

“학생들, 우리 국가를 제창합시다.” 하고 교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음악 선생이 강단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풍금이 내다 놓여 있어야 할 자리에 풍금이 보이지 않았다.
“자, 시작.” 하고 교장이 말했다.
“하아님이 우우리 임군을 도우우사…….” 하고 시작하던 교장은 교단 위에 쓸어지고 말았다.
학생들의 제창도 중단되고 말았다. 어느 선생 하나 교단으로 올라가서 쓸어진 교장을 일으켜주는 이 없었다.
음악 선생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이것이 우리가 부를 수 있는 마즈막 국가였오. 우리나라는 왜놈에게 그만…….”하다가 그도 쓸어지고 말았다.
교장이 비슬비슬 몸을 일으키면서
“학생들 다 집으로 가시오.” 하고 말했다.
학생들은 와글와글 끓기 시작했다.
상급생들은 소리 내 울기 시작했으나 창덕이 또래는 곡절을 몰라서 두리번두리번하기만 했다.
고개를 억지로 꼿꼿이 세우고 두 주먹을 불끈 쥔 교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다들 집으로 가서 태극기를 감추시오. 학교 태극기는 그냥 띠어두겠오. 참아 내 손으로는…….”
체조 선생이 날쌔게 교단 위로 뛰어 올라갔다‘. 호랑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 선생이었다.
“차렷!” 하고 그는 쨍쨍 울리는 목소리로 호령하였다.
웅성웅성하면서 흩어지던 학생들은 제각기 제 위치에서 차렷자세를 취하였다.
“국기에 향하여 경롓!” 하고 체조 선생은 소리 질렀다. 국기에 향하여 경례하던 체조 선생, 교장, 선생들, 그리고 성인이 다 된 상급생들은 중간에 쓸어지고 말았다. 그들은 가슴을 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통곡했다. 슬그머니 겁이 난 창덕이와 그 또래들은 교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거리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학교 교장과 선생들과 상급생들은 통곡을 하고, 학교 개학한 지 며칠 안 되어 갑자기 방학이 되고, 태극기를 감추어야 되고, 국가를 마즈막 부르는 이런 중대한 일이 생겼건만도 거리에 부산나게 나다니는 대중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분주히 왔다 갔다 하기만 했다.
돈버리에만 눈이 벌개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하기는 나라야 망하건 흥하건 그건 왕과 대신들 노름일 따름이지, 일반 민중에게는 나라보다도 조반석죽이 조죽석미음으로 격하되지 않을가 하는 염려에 전 정신과 노력이 집중될 따름 여렴이 없었다.
一千二백만 명에 달하는 한민족은 그들이 아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동안 일본의 식민지 백성이 되고 만 것이었다.
--- p.140~141


‘흥, 저런 데 감쳤다구 내가 못 찾을라구.’
그는 배를 뒤지 위에 대고 손을 내밀어 그 보 한구퉁이 속으로 들이밀었다.
손에 잡히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말랑말랑하지가 않았다. 딴딴한 나무때기 같은 감촉이었다.
그는 보재기를 쳐들고 들여다보았다. 달빛이 거기까지 및이지가 않아서 잘 보이지는 않으나 하여튼 떡은 아니었다. 손으로 만져보니 가느다랗고 탄탄한 대 같은 것도 잡히고 종이 같은 감촉도 느끼었다. 대같이 생각되는 물건을 집어 치어들었더니 종이가 짝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는 당황했다. 그냥 내버려두고 나갈가 보다 하는 생각이 났으나 호기심이 그것을 허락치 않았다. 그는 조심조심 그 대를 들어 올리었다. 그것은 손에 들 수 있는 자그마한 기 한 포기이었다. 얼른 달빛이 비치는 데까지 나가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것은
아!
그것은 소학교 시절에 지하실에서 그려보고는 번번히 불태워버리군 하던 태극기이었다.
그의 가슴은 활랑활랑하였다.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독립!”
“독립!”
“독립!”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다.
평양 구시가에 있는 각 급 학교 교문으로는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든 학생들이 줄지어 나오면서 만세 만세를 불렀다. 각 교회에서도 남녀 신도들이 모두 태극기를 휘둘면서 만세를 부르면서 문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골목마다 남녀 학생들이 드나들면서 집집마다에 태극기를 돌려주어 띠우게 하였다. 어떤 집에서는 九년이라는 긴 세월을 장농 밑에 숨겨 고이 간직했던 큰 태극기를 꺼내다가 문에 띠웠다.
장터에 모였던 시골 농군들도 남녀 학생에게로부터 태극기를 얻어 쥐었다.
장터도 비고, 상점도 비고, 여염집도 비고, 학교 교실도 비고, 사람이라는 사람은 모두 다 거리에 나서서 기를 휘둘으면서 만세를 불렀다.
三월 초하룻날 오후 일이었다.
하도 갑자기 사방에서 일시에 봉기했기 때문에 그 기민하기로 유명했었던 일본 경찰관들도 어리벙벙하여 멍하니 바라다보고만 있었다. 조선인 순사들은 길에서 순사 모자를 벗어 내던지고, 긴 칼을 풀어 내버리고 만세 행진에 가담하였다.

--- p.234~236

출판사 리뷰

장편소설 『일억오천만 대 일』은 조선 말기부터 3·1만세운동에 이르기까지 식민지 시대 평안도 중심의 조선 인민들의 삶을 다룬 역사대하소설 제1부이다. 이 소설은 한반도 조선 최근 역사의 다양한 사건들과 장면들을 복합적으로 재현한다. 작가는 민족의 수난 시대였던 이 시기에 ‘불구자’, ‘병든 족속’과 같았던 조선인들의 삶과 그들이 겪는 사건들을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따라서 이 책은 어떤 역사, 지리서보다도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 조선 식민지 착취와 근대화의 궁핍하고 비루한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 진실에 가까운 사실주의 소설이다. 또한 당시의 시대 상황을 파노라마적이고 다큐멘터리와 같이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역사 사료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2019년, 3·1독립선언과 만세운동 그리고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이 시점에 장편소설 『일억오천만 대 일』이 어느 때보다 가치 있게 읽히기를 기대하며 저자의 자전적 요소가 깊게 배어 있는 미간행 작품인 만큼 작가 주요섭에 대한 논의도 한층 폭넓게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추천평

주요섭은 진폭이 큰 작가이다. 이 ‘큰 작가’를 대표작의 울타리에서 풀어주어야 한다. 이는 문학을 다루는 이들의 책무이다. 주요섭은 「사랑 손님과 어머니」라는 대표작의 울타리에 갇혀 있다. 「인력거꾼」 「살인」 등 단편도 대표작의 또 다른 울타리이다. 작가를 대표작의 울타리에서 풀어주기 위해서는‘ 전집’을 기획해야 한다. 전집은 어느 작가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의욕과 문학적 사명을 반영한다. 현실여건을 넘어서는 출판의 사명감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번에 내는 장편소설 선집은 작가 주요섭을 전체적으로 다루는 계기가 될 것이다.
‘큰 작가’는 한두 마디로 규정되기를 스스로 거부한다. 주요섭은 지극한 섬세성과 광대한 전망을 동시에 포괄하는 작가정신을 실천한 작가이다. 전체성에 대한 욕구 그 자체가 소설의 본령이다. 주요섭은 단편을 통해 인간 심성을 섬세하게 드러냈고, 『구름을 잡으려고』, 『일억오천만 대 일』, 『망국노 군상』, 『길』 등 장편소설을 통해서는 시대의 풍정과 전망을 리얼하게 그려냈다.
이 책이 주요섭 이해와 연구의 바탕이 될 것은 물론, 작가의 소설사적 위상을 드높이는 도약대가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우한용 (소설가,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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