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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 -<귀천(歸天)> 시 전문. ● 집을 나서니 여섯 살짜리 꼬마가 놀고 있다. ‘요놈 요놈 요놈아’라고 했더니 대답이 ‘아무것도 안 사 주면서 뭘’ 한다. 그래서 내가 ‘자 가자 사탕 사 줄께’라고 해서 가게로 가서 사탕을 한 봉지 사 줬더니 좋아한다. 내 미래의 주인을 나는 이렇게 좋아한다. -<요놈 요놈 요놈아!> 시 전문.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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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 근현대시선’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가난의 진실 가난은 천상병 시의 원형질이자 삶의 실체였다. 천상병 시의 내면을 초기부터 말기까지 관통하는 가난이라는 이 물리적 세계는 그에게 가난의 물적 조건을 넘어 존재의 운명론적 지점과 삶의 본성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가난에 의한 절망과 좌절감은 그에게 한탄이나 진부한 타령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가난과의 화해를 통해 삶의 진실과 인간적 본성에 다가간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영영/ 가지”(<소릉조(小陵調)>) 못할 것이라는 페이소스는 바로 가난에 대한 역설과 삶의 진실이 결합되어 생성된 것이다. 가난을 통해 삶의 진실을 만나는 이 시적 과정은 시인에게 물질적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이해 방식을 드러낸다. 새와 하늘의 언어, 자유 가난과 함께 천상병 시의 또 다른 중심은 새와 하늘이다. 새와 하늘로 표상되는 자유 이미지는 천상병 시의 핵심이자 지향이다. 천상병의 여러 시편에 등장하는 새와 그 이미지는 시인의 내면 풍경을 보여 주는 일종의 객관적 상관물이다. <새>에서 시인은 외로운 인생사를 시인의 내면에 살고 있는 새 한 마리를 통해 보여 준다. 시인 자신인 새는 “영혼의 빈터”에서 세상의 아름다움과 사랑하는 일들을 바라보며 외로움과 사랑과 아름다움을 표상하면서 동시에 시인의 내면에 담긴 영혼의 새, 세상을 향해 날아가고픈 존재로 등장한다. <새>에서 천상병의 새는 외로운 인생 속에서 아름답게 사랑스러운 세계를 지향하는 시인의 내면을 보여 주는 시적 표상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날개>는 시인에게 너무나 절실한 부품이다. “어디론지 날 수 있는” 시인의 소망은 구체적으로 날개라는 상승 지향성, 자유 지향성을 시적 표상으로 요구한다. 진정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새의 날개가 필요한 것이다. 착한 아이의 시학 아이 같은 언어와 심상으로 시를 쓸 수 있을까. 천상병의 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치 착한 아이가 친구와 함께 놀고 있는 것 같다. 시에 등장하는 익살과 장난스러운 표현들은 모두 아이들의 눈높이와 감성에서만 가능한 것들이다. 동심의 눈동자로 세상과 만나는 착한 눈빛이 그의 시 속에는 가득하다. <요놈 요놈 요놈아!>, <난 어린애가 좋다> 등의 시편에서 천상병은 아이들과 함께 농담이나 익살, 장난으로 가득한 동심의 세계를 살고 있다. 어린 아이가 자기더러 “요놈 요놈”이라고 말해도 “난 어린애가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시적 자아와 세계가 이미 동일시되었다는 말이다. 결국 아이들과의 소통은 약한 것, 외로운 것, 불쌍한 것을 아끼는 천상병 시인의 순진무구 그 자체를 설명한다. 우리는 이러한 시 세계를 ‘착한 아이의 시학’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