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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들어가는 말 1.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 사랑 2. 서머나 교회에 보낸 편지: 고난 3. 버가모 교회에 보낸 편지: 진리 4. 두아디라 교회에 보낸 편지: 거룩함 5. 사데 교회에 보낸 편지: 실체 6.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낸 편지: 기회 7.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편지: 전심 맺는 말 |
John Robert Walmsley Sto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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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의 아시아 주는 오늘날 터키의 서해안 지역에 해당한다. 본문에 언급된 일곱 도시를 쭉 이으면 대충 둥그런 모양이 되는데, 편지를 전달하는 일을 맡은 사람이 있었다면 아마 그 도시들을 여기에 나와 있는 순서대로 쭉 돌지 않았을까 싶다. 요한이 유배되어 있던 밧모 섬을 출발하여 뱃길로 먼저 에베소에 도착했을 것이다. 이어 북쪽으로 서머나와 버가모를 거치고 동남쪽으로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를 지나 라오디게아에서 여정을 마쳤을 것이다. 영국의 고고학자 윌리엄 램지William Ramsay 경의 말대로, 그 사람은 “주에서 가장 인구가 밀집하고 부유하고 영향력 있던 중서부 지역을 하나로 잇는 순환대로”만 따라가면 되었다. --- p.17쪽
요한계시록에 담긴 의미가 행여 그 시대에만 국한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고린도와 데살로니가에 보낸 바울의 편지가 고린도와 데살로니가의 교인들에게만 아니라, 런던과 뉴욕과 카이로의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1세기에 요한을 통해 소아시아의 기독교 공동체들에 주신 예수님의 편지들도 영원한 가치와 보편적인 메시지를 지닌다. 주석가들은 소아시아의 교회의 수가 일곱임을 놓치지 않았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숫자가 거의 항상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데, 특히 일곱은 완전과 완성을 뜻하는 수다. 이렇듯 아시아의 일곱 교회는 역사적으로 실존한 교회이면서 동시에 모든 시대, 모든 나라의 지역 교회들을 대표한다. --- p.18쪽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사랑에 반응하지 않으면 여전히 슬퍼하시며, 그분을 흠모하는 우리의 마음이 계속 더 깊어지고 자라기를 애타게 바라신다. 이렇듯 사랑은 살아 있는 참 교회의 첫째 표지이며, 사랑하지 않는 교회는 살아 있는 교회일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본질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랑의 관계다. --- p.44 사도들도 예수님이 가르치신 대로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사역하면서 직접 고난을 체험하고 견뎠다. 바울이 당한 온갖 고난들을 보면 연약한 인간들은 부들부들 떨릴 정도다. 그는 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자기가 탔던 배가 난파되었는가 하면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와 강과 육지를 여행했고 무수한 적들의 야만적인 행위에 노출되었다(고후 11:23-27). 그러니 그가 디모데에게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고 쓰고, 또 빌립보 교인들에게“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빌 1:29)고 쓸 수 있었던 것도 당연하다. 이렇듯 믿음과 고난은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특권의 단짝처럼 서로 맞물려 있다. --- p.67-68 성경은 사랑과 진리를 균형 있게 하나로 묶는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계시된 진리의 신성함을 망각할 정도로 무턱대고 사랑을 최고로 내세운다. 그들은 “우리의 교리적인 차이를 형제 사랑의 바다에 빠뜨리자!” 하고 외친다. 반대로 사랑을 희생하여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것도 오류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은 매정하고 지독하고 사랑이 없을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다. 진리로 보강되지 않는 사랑은 감정에 빠지고, 사랑으로 유화되지 않는 진리는 무정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균형을 지켜야 한다. 성경은 사랑 안에서 진리를 붙들고(엡 4:15), 진리 안에서 사람들을 사랑하며(요삼 1장), 사랑에서만 아니라 분별력에서 자라가라고 말한다(빌 1:9). --- p.88 명성과 실체의 차이, 즉 인간이 보는 것과 하나님이 보시는 것의 차이는 시대와 장소를 떠나 누구에게나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도 책임이 있지만 일차적으로 책임을 다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이다. 우리는 어느 날 그분 앞에 서서 그분께 보고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평가를 너무 높이 쳐서, 비난받을 때 우울해하고 칭찬 앞에서 우쭐해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 p.147 그리스도인의 균형 잡힌 삶은 곧 주고받는 삶이다. 예수님은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셨다. 먼저 우리는 그분이 주시는 것을 감사로 받는다. 그리고 그분이 달라고 하시는 것을 기쁘게 드린다. 그분은 우리 앞에 구원과 섬김이라는 열린 문을 두셨으며, 한 문으로 들어가 구원을 받고 다른 문으로 나가 섬김을 베풀라고 우리에게 명하신다. 먼저 첫째 문을 통과하지 않고는 둘째 문도 통과할 수 없다. 예수님은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 10:9)고 말씀하셨다. --- p.189 일곱 통의 편지 중 21세기 초의 교회에 이보다 더 적절한 편지는 없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에는 이름뿐인 점잖은 신앙, 다분히 감상적이고 피상적인 신앙이 만연되어 있는데, 바로 그런 현실이 이 편지에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우리 기독교는 무기력한 빈혈 증세를 보이고 있으며, 우리는 마치 미지근한 종교로 목욕한 사람들 같다.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는 표현은 아마도 “히에라볼리의 온천을 암시한 것으로, 고원을 넘는 동안 미지근해진 온천물은 그 상태로 라오디게아 맞은편의 절벽으로 흘러내렸다”(스위트). --- p.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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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생각하시는 교회란 과연 어떤 것일까?
모든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교회의 역할과 본질을 생각한다! 1세기, 소아시아 지역에는 하나님을 성실히 섬겼으나 곤경에 처한 교회들이 있었다. 밖으로는 로마 제국의 박해에 짓눌렸고, 안으로는 죄와 거짓과 무기력에 시달렸으며, 사방에서 거짓 선지자들이 나와 이단으로 미혹했고, 교회의 도덕적인 타락을 부추겼다. 교회의 실상을 완벽하게 아시는 예수님은 그들의 어려움을 지나치지 않으셨다. 일곱 교회에 보내는 일곱 통의 편지를 통해 각 교회의 잘잘못을 판단하셔서 엄한 책망과 따뜻한 칭찬으로 그들이 붙들어야 할 참 교회의 진리를 계시하셨다. 요한계시록 2-3장에 기록된 내용이 바로 그것으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에 각각 사랑, 고난, 진리, 거룩함, 실체, 기회, 전심과 같은 지표를 내리셨다. 과거 국내에서도 《그리스도가 보는 교회》(생명의말씀사, 1980) 《예수님이 이끄시는 교회》(두란노, 2004)로 거듭 출간되며 많은 사랑을 받은 이 책에서 존 스토트는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기독교 역사를 꿰뚫는 통찰력, 분명한 주제, 간결하지만 명쾌한 논리를 바탕으로 성경 주해의 모범을 보여준다. 2천 년 전 요한에게 보이신 계시에 나타난 참 교회의 표지가 지금 우리 시대의 교회에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 오늘의 교회가 반드시 회복해야 할 표지 일곱 교회가 있던 시대로부터 2천 년이 지난 지금, 건물은 더 화려하고 사역자들은 바쁘고 교인들은 더 많이 모일지 모르지만, 사실상 많은 교회가 죽어 있다. 교회 내부의 죄와 오류, 거짓 선지자의 꼬임은 그것을 분간해 낼 수 없을 정도로 만연하고, ‘개독교’로 대표되는 외부의 비난은 단어의 무게만큼 절망스럽다.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 이 시대에 예수님이 계시하신 참 교회의 진리보다 절실한 것은 없다. 예수님은 교회를 향해, 그분을 향한 변함없는 사랑과 고난을 마다하지 않는 태도가 있어야 하고,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지켜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말씀대로 나아가고 있는가? 내가 섬기는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있는가? 교회가 본질을 회복하길 바라는 성도라면 두고 두고 읽어도 좋을 책이다. ◎ 소아시아 성지순례 전에 읽어야 할 필독서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일곱 교회는 실존했던 곳이다. 로마 제국의 영향권 안에 있던 소아시아 지역으로 오늘날 터키의 서해안 지역에 해당한다. 일곱 교회는 당시 상업적?정치적 거점에 있던 기독교 공동체로, 영국의 고고학자 윌리엄 램지 경의 말처럼 “주에서 가장 인구가 밀집하고 부유하고 영향력 있던 중서부 지역을 하나로 잇는 순환대로”를 따라가면 쉽게 닿을 수 있는 일곱 도시에 있었다. 일곱 편지가 전달된 여정은 요한이 유배되어 있던 밧모 섬을 출발하여 먼저 에베소에 도착한 후, 북쪽으로 서머나와 버가모를 거치고 동남쪽으로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를 지나 라오디게아에서 여정을 마쳤으리라 추측하는데, 지금도 이 경로를 따라 많은 기독교인들이 성지순례에 나서고 있다. 따라서 성지순례를 계획한 크리스천에게 일곱 교회 하나하나에 대한 역사적?신학적 설명이 담긴 《내가 사랑하는 교회에게》야 말로 뜻깊은 동반자가 될 것이다. 또한 53컷의 소아시아 주요 유적을 담은 컬러 화보를 수록하여 현장감을 더했다. ◎ 존 스토트를 추억하는 독자를 위한 특별한 선물 존 스토트는 20세기 복음주의의 방향 설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독보적인 존재이다. 평생을 ‘하나님의 진리를 맡은 청지기’로 열심히 살아온 그가 하나님의 품으로 간 지 일 년이 되었고, 이제 우리는 그가 남긴 저작을 통해서만 그를 만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사랑하는 교회에게》는 존 스토트를 기억하는 독자에게 특별한 선물이 될 것이다.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예수님의 교회의 승리에 환호하고 이에 동참하게 될 때, 우리는 존 스토트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