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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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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잠쥐가 슬며시 그것 가까이 가보려고 하는데
다람쥐 한 마리가 쪼르르 나무에서 내려와 그것을 물고 올라갔습니다. “조심해! 이번엔 널 잡아먹을지도 몰라.” 겁이 난 겨울잠쥐는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다람쥐는 초록 방울 두 개를 번갈아 물어뜯더니 그것을 땅으로 내동댕이쳤습니다. “휴, 다람쥐가 이겼구나.” --- p.11 그때 너구리가 두리번거리며 이쪽으로 걸어왔습니다. “이게 뭐지” 너구리가 그것을 발에 껴 보았습니다. “폭신폭신하네. 추울 때 털신 하면 좋겠다. 하지만 내 발은 넷, 하나는 소용없어.” 너구리는 그것을 발로 툭 차고 가버렸습니다. ‘폭신폭신하다고? 저게 뭐지’ --- p.14 “엄마, 엄마. 이게 오솔길에 있었어요.” 아기 곰이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아이들이 추운 겨울에 손에 끼는 털장갑이구나. 장갑은 두 짝이 꼭 붙어 있어야 하는데 누가 한 짝을 떨어뜨리고 갔나 보다. 우리는 폭신폭신하고 따뜻한 털이 있으니 이런 건 소용없어.” 엄마 곰이 말했습니다. 아기 곰은 장갑을 버리고 엄마 곰을 따라 숲 저쪽으로 걸어갔습니다. --- p.19 한참 만에 겨울잠쥐는 폭신폭신하고 따뜻한 장갑모자를 벗었습니다. 그러고는 그루터기 앞에 서 있는 키 작은 굴참나무로 올라가 잘 보이는 나뭇가지 끝에 장갑을 걸었습니다. --- p.24 봄이 무르익은 어느 화창한 날, 아이들이 소풍을 왔습니다. 한 아이가 굴참나무 가지에서 장갑을 발견했습니다. 아이들이 장갑 한 짝이 걸려 있는 나무를 빙 둘러쌌습니다. 겨울잠쥐는 그런 줄도 모르고 쿨쿨 잠만 잤습니다. --- p.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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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을 걷다보면 크고 작은 동물들의 흔적이며 기묘한 위치에 놓인 열매 나뭇잎 돌멩이가 말을 걸어온다. 일상 너머 자연의 시공간에서 일어날 법한 온갖 일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동물들은 어떨까?
그림책에는 동물들이 나 같은 산책자들이 떨어트린 물건들에 마음을 주며 매혹되고 즐긴다는 얘기가 적지 않다. 이를 테면 우크라이나 민담으로 만든 에우게니 M. 라초프의 걸작 그림책 『장갑』은 ‘겨울 숲속에 떨어진 장갑 한 짝’이라는 매력적인 모티프로 거듭 재화되고 변개되어 『털장갑』(잰 브렛), 『빨간 장갑』(짐 아일스워스 글, 바바라 매클린 톡 그림)을 낳았다. 이 책 또한 ‘겨울 숲속에 떨어진 장갑 한 짝’이라는 모티프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겨울을 주된 배경으로 삼은 이전의 걸작 그림책들과 달리 빨간 색 장갑 한 짝이 점을 찍은 연초록 봄 숲 정경이 주를 이룬다. 겁 많고 소심한 주인공 겨울잠쥐가 막 겨울잠에서 깨어난 눈으로 발견한 빨간 장갑은 까딱하면 잡아먹힐 무서운 적으로 여겨지지만, 곧 개구리며 고슴도치며 다람쥐며 토끼 너구리 곰에 의해 몸에 쓰거나 끼는 물건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간절히 갖고 싶은 것이 된다. 어미 곰에 의해 두 짝이 있어야 제구실을 한다는 정확한 정보와 함께 비로소 제 몫이 된 장갑모자를 쓰고 행복해 하는 겨울잠쥐! (야행성인 이 동물이 대낮에 나와 있는 이유는 빨간 장갑에 매혹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 이상희 (그림책 작가,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