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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뫼비우스의 띠
2. 칼날 3. 우주 여행 4.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5. 육교 위에서 6. 궤도 회전 7. 기계 도시 8.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9.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10. 클라인씨의 병 11.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12. 에필로그 |
趙世熙
조세희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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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의 눈물에 대한 추억
--- 99/12/19 고흥준(coju@hitel.net)
- 당시 책에 근거해 '난장이'는 '난쟁이'로 표기하지 않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먼저 접한 것은 책이 아니라 까까머리 중학생이던 시절에 보았던 영화로부터였습니다. 그때는 '난장이'가 지니고 있는 상징에 대해서가 아니라 당시 잘나가던 여배우 금보라의 목욕 장면이 죽여준다는 무성한 소문에 이끌려 호기심 많은 친구들과 어두컴컴한 3류극장에서 침을 꿀꺽꿀꺽 삼켜가며 금보라의 하얗고 보드라운 등짝과 엉덩이 감상에 열을 올렸던 것이지요. 하지만 지금에도 출연진의 하나였던 안성기 씨의 암울하던 표정이나 난장이가 벽돌공장의 굴뚝에 앉아 종이비행기를 날리던 장면들이 선명히 떠오르는 것을 보면, 비록 시선은 금보라의 엉덩이에 가있었을지라도 영화 속에서 내내 그려지던 무거움만은 어린 마음에도 깊이 각인되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 철부지가 스무살이 되어서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대한 수상한 풍문을 접할 수 있었고, 책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금보라의 엉덩이가 아닌 철거반원들의 망치질과, 그 속에서도 태연하게 식사를 하던 난장이 일가의 모습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잊혀진 추억처럼 돼버렸지만 70년대 우리 문학을 되돌아 볼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작가가 바로 '조세희'입니다. <난장이>라는 폭약을 짊어지고 나타나 한국 문단을 일거에 폭발시켜버렸던 것이지요. 그의 소설은 다분히 감상적으로 나열되던 노동계의 현실을 구체화, 그리고 추상적인 사유의 공간으로 창조해냈습니다. <구체-추상>이란 이질적인 단어의 조합. 그것이 조세희가 말하고 싶은 '뫼비우스의 띠', 그리고 '클라인 氏의 병(甁)'이 지니고 있는 상징성의 정체입니다. 한 번 비틈으로써 안과 밖의 구분이 없어지는 띠, 내부가 없지만 닫힌 공간이 있는 병이 던지고 있는 화두와, 김병익이 지적했듯 똑똑 끊어지는 스타카토식 문체가 주는 명쾌한 경직성은 왜 이 소설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던가를 말해주는 지표입니다. 이 연작 소설은 '난장이일가'와 '은강방직공장'이라는 이원성의 대립에서 출발하여 '신애'라는 중산층 주부의 3자적인 시점으로 이동합니다. 이러한 도식은 애초의 대립상태를 유보, 혹은 객관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주변으로 상징되는 신애라는 인물이 중심으로 이동하며 보이는 '옹호→무관심'의 도표는 결국 이 소설이 말하고자 했던 것이 단순한 사회문제의 고발이 아니라 우리 사고 방식의 순수성이 어떻게 변질되어 가는가에 대한 고찰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난장이가 아니다 ― 단정 ↓ 우리는 또 다른 난장이가 아닐까? ― 의구 ↓ 하지만 아닐지도 모른다 ― 추측 ↓ (미안한 일이지만) 결국 우리는 난장이가 아니다 ― 재단정 이러한 소설 자체의 분열적인 성장은 한 부분에서조차 힘을 잃는 법이 없이 일관되게 우리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단정과 의구, 새로운 추측 그리고 재단정의 상징성은 70년대 한국의 중앙부를 관통한 채 지금까지도 우리 문학의 한 기둥을 이룬 근원적인 힘인 셈이지요. 그러나 문학은 자유라든가 평등으로 치장된 이데올로기를 넘어서야 합니다. 제가 전에 최인훈의 <광장>을 소개하는 편지에서도 잠깐 언급했습니다만 그 이데올로기가 무엇에 근거하고 있든 문학의 주체가 되어버린다면 한껏 미화된 정신적 우월감의 방만한 토로가 있을 뿐, 치졸한 유미성향과 다를 바가 없을것입니다. 우리가 조세희의 소설을 주목하면서 간과하지 않아야 할 부분이 바로 그 점입니다. 다분히 열정적인 의식 개혁으로의 참여만이 목적이었다면 이 소설이 주는 무거움은 노동자가 외치는 목소리보다 나을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작가의 상상력이 현장에서 쌓은 체험과 고통을 우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러나 조세희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단순한 노동계의 억울하고 기막힌 현실을 조정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순수냐, 참여냐 하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궁극적으로 내세웠던 가치는 '우리가 난장이를 이해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진정 난장이가 될 수 있는가'를 역설했던 점입니다. 대립적인 관계에서 머리로 쌓은 화해와 이해는 결코 영구적일 수 없으며 그것이 문학의 애교섞인 시도로써 깨어질 수 없음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한 친구가 최근 절필하고 있는 그를 일러 '조세희는 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쓰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친구의 옹호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는 정말로 쓰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만일 그렇다면 '난장이의 소외성'를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천박한 일반, 그리고 중심부를 향한 고질적인 갈망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겠지요. 현실에 바탕을 둔 암울한 상상력의 한계는 결국 순진한 계몽주의가 더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임을 알아버린 한 지식인의 좌절과 맞닿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좌절을 삭일 수 있는 방법은 웅변이 아니라 침묵임을, 그 침묵의 끝자락 어디쯤에 새로운 열변이 자리잡고 있음을 그 또한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언젠가는 그가 다시 붓을 잡고 난장이가 아닌 진정한 거인의 시대를 열어갈 날도 있으려니, 기대해 봅니다. 난장이가 꿈꾸던 이상향의 한 귀퉁이에 여러분의 마음이 가 닿는다면 그의 눈물과 끝없던 추락에로의 열망들이 그제서야 잠들 수 있겠지요. 그 날에 대한 준비로, 그리고 '난장이의 눈물에 대한 추억'을 앞세워 이 책을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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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아버지를 불러 죽은 계집애네 부모에게 상당한 액수의 돈을 지불하라고 일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평생을 두고 되뇌인 말은 '희생'이었는데, 그의 이 말은 그의 생애와 하나도 상관이 없었다. 형들이 집을 떠나 있는 동안 나는 아버지의 인정을 받아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었다.
--- p.2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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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십대 공원이라는 주제를 놓고 삼십 분 동안이나 이야기를 했습니다. 모르면서 아는 것처럼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십대 공원에 대해 죄스러운 마음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행복동에 살 때 어느 분의 소개로 난장이 아저씨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평생 동안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의 아들과 딸이 공장 지대에 가 일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복잡하고 힘든 일을 합니다. 그들의 어린 동료들은 자기 자신을 표현할 줄도 모르고, 인간적인 대우를 어떻게 해야 받는지도 모릅니다. 현장 일이 그들의 성장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위에서는 날마다 무지한 생산 계획을 세웁니다. 공원들은 기계를 돌려 일합니다. 어린 공원들은 생활의 리듬을 기계에 맞춥니다. 생각이나 감정을 기계에 빼앗깁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 생각나죠? 그들은 낙하하는 물체가 갖는 힘, 감겨진 태엽 따위가 갖는 힘과 같은 기계적 에너지로 사용됩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처럼 십대 공원이야기를 하며 노동이라는 말, 의무라는 말, 자연적인 권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처럼 그들을 돕자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갖는 감상은 그들에게 아무 도움을 못 줍니다. 난장이 아저씨의 아들딸과 그 어린 동료들이 겪는 일을 보고 느낀 것이 있습니다. 197X년, 한국은 죄인들로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죄인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 p.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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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하늘이 환해지며 불꽃이 하늘로 치솟으면 내가 우주인과 함께 혹성으로 떠난 것으로 믿어달라. 긴 설명은 있을 수가 없다. 내가 아직 알수 없는 것은 떠나는 순간에 무엇을 대하게 될까 하는 것 뿐이다. 무엇일까? 공동묘지와 같은 침묵일까? 아닐까? 외치는 것은 언제나 죽은 사람들 뿐인가? 시간이 다 되었다. 지구에 살든, 혹성에 살든, 우리의 정신은 언제나 자유이다. 모두들 좋은 성적으로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기를 빈다. 다른 인사말은 서로 생략하기로 하자.
--- p.2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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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도새다. '
지섭이 말했는데, 윤호는 이렇게 근사한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형, 도도새는 어떤 새지?' '십칠세기말까지 인도양 모리티우스섬에 살았던 새다. 그 새는 날개를 사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날개가 퇴화했다. 나중엔 날 수가 없게 되어 모조리 잡혀 멸종당했다. ' --- p.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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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집은 부자였다. 지금 자기가 하는 일은 작은 훈련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에게도 말했었다. 그는 아버지 회사로 들어가 더 큰 일을 해야 할 사람이었다. 밤에 아파트로 돌아오면 집으로 전화를 하고는 했다. 그 전화선 저쪽 끝에 그의 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자기가 한 일을 보고하고 자문도 구했다. 그는 거의 차렷자세로 아버제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끝나면 그의 고용인들이 정리한 대장을 하나하나 실토했다. 그는 우리 동네에서 사온 아파트 입주권을 사십오만 원에 팔았다.
그 이하로는 팔지 않았다.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나는 미리 사두었다가 일이만 원 정도 더 받고 넘기겠지 했었다. 그가 거실에 앉아 일을 하는 동안 가정부는 음식을 차려놓고 그가 식탁 앞에 앉기를 기다렸다. 그는 어머니가 보내 준 가정부였다. 그는 그 가정부에게 별도의 돈을 주었다. 집식구들에게 나에 관한 일을 보고하면 안 된다는 조처였다ㅣ 가정부는 내가 온 다음부터 잠을 나가서 잤다. 나는처음 약속대로 '안 돼요'라는 말을 그에게 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에게 '안 돼요'라고 말하지 못했다. 나는 전혀 다른 세상 사람과 생활하고 있었다. 우리는 출생부터 달랐다. 나의 첫 호흡이 지옥의 불길처럼 뜨거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모태에서 충분한 영양을 보급받지 못했다. 그의 출생은 따뜻한 것이었다. 나의 첫 호흡은 상처난 곳에 산을 흘려넣는 아픔이었지만, 그의 헛 호흡은 편안하고 달콤한 것이었다. 성장 기반도 달랐다. 그에게는 선택할 것이 많았따. 나난 두 오빠는 주어지는 것 이외의 것을 가져본 경험이 없다. 어머니는 주머니가 없는 옷을 우리들에게 입혔다. 그는 자라면서 더욱 강해졌지만 우리는 자라면서 반대로 약해졌다. 그가 나를 원했다. 그는 원하고 또 원했다. 나는 밤마다 알몸으로 잠을 잤다. 나는 밤마다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오빠들은 다른 공장에 취직이 되어 일을 나갔다.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달을 왕복했다. 잠이 든 듯 만 듯한 상테에서 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는 했다. --- p.112-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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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경애는 아무 말이 없었다. 윤호가 경애를 들여다 보았다. 경애가 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경애는 얼굴을 돌려 먹은것들을 토해냈다. 윤호가 손수건을 꺼내 옆 얼굴에 대어주고 보이지 않는 내게의 말뚝에서 경애를 풀었다. 아이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 p.1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