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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 신장神將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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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화 만신은 점술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했다.
“자기한테니까 내가 솔직담백하게 털어놓는 건데, 우리 무당들이 사람들한테 상담해주고 이러는 거는 사실 심리 상담, 정신 상담 뭐 그런 거나 다름이 없어요. 가끔 진짜로 뭐에 잘못 씌거나 부정 탄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날 찾는 사람들이야 다 뻔하지. 속 답답하고 푸념할 거 많고. 그런 걸 해결해주는 거지. 그럴 때 말도 안 되는 소리 해가면서 사람들 속이고 돈 뜯고 그러는 거는, 그건 제대로 된 무당이 아니고. 그건 사기꾼이지, 사기꾼. 그런 식으로 돈 모으고 하려고 하면 우리도 신령님한테 벌 받아. 괜히 돈 욕심 냈다가 횡액 맞은 언니들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돈은 어? 각자 될 만큼, 조금씩만 받고, 오늘이 굿도 기주님이 너무 힘들게 살아서 기운 좀 다스려주자고 십시일반 모은 거지, 받은 돈이 이거 준비에 든 만큼도 안 돼. 도와주면서 우리도 도를 닦는 거라니까. 보다시피 무슨 이상한 짓이 아니에요.” --- p.15 설마설마했지만 정말로 이런 집에서 굿을 하는 걸까. ‘그럴 거면 미리 전문 청소업체라도 부르지. 건강에도 나쁠 텐데.’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다시 한번 마스크 콧잔등 부분을 눌렀다. 바깥에서 본 집의 외양에도 위화감을 느꼈지만 내부도 낯설었다. 어두운 현관방 너머로 보이는 넓은 공간은 현대 주택의 거실과도 확연히 달랐다. 심지어 높은 천장에 샹들리에도 달려 있어 작은 호텔 로비 같기도 했다. 창도 생각보다 크게 내어 도저히 투명하다고는 할 수 없는 뿌연 유리를 통해서나마 빛이 들어왔다. 샹들리에가 늘어뜨린 레이스 같은 거미줄을 따라 시선을 내려보니 가늘게 피어오르는 연기 자락이 이어졌다. 시선을 더 내리자 샹들리에 밑에 흰옷을 입은 여자 여러 명이 서 있었다. 가운데에 향은 피우고 있지만 다들 조용히 둘러서 있기만 할 뿐 당장 무슨 굿을 하는 건 아닌 듯했다. 세 명, 아니 네 명. 굿판에서 흔히 보는 빨강, 파랑, 노랑, 강렬한 원색이 하나도 없이 모두 아래위 흰 치마저고리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안내역 비슷한 역할인 젊은 무당도 소복 차림이었다. 무표정한 젊은 무당이 총총히 그쪽으로 다가가서 합류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잠시 목을 움츠렸다. ‘누가 보면 이쪽이 귀신들이라고 하겠네. 제대로 흉가 체험인데?’ --- pp.52-53 그런데 나는 왜 그런 이야기들을, 이제까지 아무에게도 한 적 없는 말들을 하필 무당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사람에게 하고 있는 걸까. 그것도 이런 이상한 지하실에서. 경자는 한마디도 흘려듣지 않겠다는 듯, 주의 깊게 내 말을 듣더니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랬구먼. 그래서 그렇게 미칠까 봐 두려워했어.” 아, 그랬다. 그렇게 간단했다. 경자는 가만히 내 어깨를 쓰다듬었다. “어떤 일은 그냥 일어나지요." “네… 네?” “공부하는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뭔가 아귀가 딱딱 맞게 설명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유난하던데, 민서 씨도 그렇지 않나? 이래서 저렇게 됐고, 그래서 그렇게 됐고. 다들 그렇게 딱딱 떨어진다 생각하고 싶어 하지만 그렇지가 않아. 그렇게 생각하려다간 더 힘들어져. 일은 그냥 일어나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그는 우주의 냉정한 진실을 그렇게 투박한 몇 마디로 요약했다. 물론 이 세상에는 사실 권선징악은커녕 인과 관계도 없다. 우주는 이치에 닿지 않고, 세상은 인간에게 무관심하며, 모든 일은 인과와 상관없이 일어난다. 어디에도 의미 같은 것은 없다. 우리는 하찮은 존재다. 그게 너무 가혹해서 우리 모두가 가장 구석진 곳에 애써 뚜껑을 눌러 닫아 처박아두고 외면하는 현실이다. 하지만 무당이란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는 존재가 아니었나? 종교란 다 그런 게 아닌가. --- pp.103-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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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멀듯한 불꽃의 신을 내게 강림시킬 수 있다면!
모든 의미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혼돈과 광기의 굿판 “나에게는, 미친 여자가 된다는 것이 언제나 죽기보다 공포스러운 일이었다.” 학위를 따기 위해 굿판을 쫓아다니지만 세상에 어떤 불가사의나 신비가 있다고 믿지 않는 민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정신을 놓은 어머니를 치료한답시고 굿판이 벌어졌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기는 하지만, 그는 굿은 물론이거니와 종교도, 신도, 당연히 초능력 따위도 믿지 않았다. 굿판 자체는 박력 넘치는 공연 예술이기에 매력적이었으나, 무당들은 자기 잇속도 잘 챙기는 영리한 사람들이었고 연구자가 오면 그들이 원하는 게 뭔지 알아차리고는 맞춰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민서에게 흥미로운 제안이 들어온다. 진짜배기 무당을 보고 싶지 않느냐는 것. 연구자 만나는 것도, 홍보해주는 것도 싫어하는 진짜 무당이 있다는 것이다. 논리와 이성을 무엇보다 중요시하고 자신이 ‘믿지 않는’ 사람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민서. 그러나 그와 동시에 어딘가 진짜가 있을지 모른다는 열망도 함께 품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나사 풀린 아저씨이자 아마추어 연구자인 황 선생의 제안으로 그는 ‘금단의 집’에 들어선다. 백 년 전부터 기이한 죽음이 끊임없이 일어났다는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적산가옥이다. 안으로 들어가자 높은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가 레이스처럼 거미줄을 늘어뜨렸고, 무당들은 빨갛고 파란 원색이 하나도 없는 흰 소복차림으로 둘러서 있다. 이곳에서 민서는 기이한 체험으로 만신 경자를 마주친다. 짧은 환각과도 같은 순간이었지만 그날은 사전 연습이었을 뿐, 아직 본 굿판은 아직 열리지도 않았는데. 어슐러 르 귄, 조지 R. R. 마틴, 옥타비아 버틀러의 작품 등 굵직한 SF, 판타지를 백여 권 옮긴 역자이자, 인류학을 전공하며 굿판을 돌아다니고 무속 연구를 해온 이수현 작가가 크툴루와 한국의 만신이 공포의 대결을 펼치는 소설을 펴냈다. 작가는 “러브크래프트의 공포와 광기가 거의 ‘외부’를 향해 있었기에, 뒤집어서 ‘내부’의 공포를 다루보고”자 했다. 이야기는 광기의 굿판과 음산한 가옥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정말로 공포스러운 일은 논리와 이성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검열하는 젊은 연구자 민서의 내면에서 일어난다. 깊은 밤 금단의 집 지하실에서 신을 맞이할 시간을 기다리며, 노만신 경자는 문득 한마디 말로 민서의 깊은 속에 도사리는 두려움의 실체를 건드리고 풀어준다. “어떤 일은 그냥 일어나지요.” 이 우주는 이치에 닿지 않고 세상은 인간에 무관심하다는 진실. 그것은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는 러브크래프트식 절망적 공포이지만, 경자는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리고 이어지는 혼돈과 광기의 마지막 굿판. 민서는 ‘금단의 집’ 저 깊은 곳에서 놀라운 공간을 맞닥뜨리는데. 이 모든 공포는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FoP 시리즈의 새로운 프로젝트 LC.RC 2020년 5월 30일 도서 8종 (그래픽노블 1종 포함) 완간 1차 출간 | 2020년 4월 30일 『악의와 공포의 용은 익히 아는 자여라』 홍지운 『별들의 노래』 김성일 『우모리 하늘신발』 송경아 『뿌리 없는 별들』 은림, 박성환 2차 출간 | 2020년 5월 30일 『역병의 바다』 김보영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 이서영 『친구의 부름』(그래픽노블) 최재훈 『외계 신장』 이수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