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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페르시아 전쟁 | BC 500~559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전쟁 | BC 336~323 로마-카르타고 전쟁 | BC 264~146 갈리아 전쟁 | BC 58~50 제1차 유대-로마 전쟁 | BC 66~AD 73 여러 민족의 유럽 침략 | 376~553 무슬림의 정복 | 632~732 레콘키스타 | 722~1492 노르만 족의 정복 | 1066~1071 십자군 원정 | 1095~1291 몽골 족의 정복 | 1206~1281 백 년 전쟁 |1337~1453 에스파냐의 멕시코 정복 | 1519~1521 네덜란드 독립 전쟁 | 1566~1648 잉글랜드-에스파냐 전쟁 | 1585~1604 임진왜란 | 1592~1598 30년 전쟁 | 1618~1648 만주족의 중국 정복 | 1618~1650 오스만-합스부르크 전쟁 | 1663~1718 대북방 전쟁 | 1700~1721 7년 전쟁 |1756~1763 미국 독립 전쟁 | 1775~1783 |
Joseph Cumm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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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 인의 훈련법은 대단히 독특했다. 기형인 남자아이는 누구든 언덕에 내버려둬서 죽이거나 절벽에서 던져 버렸다. 다른 아이들은 대부분 일곱 살에 부모와 떼어내 큰 막사에서 키웠다. 아이들에게는 음식을 거의 주지 않아 직접 식량을 구하거나 훔치는 법을 익히게 했다. 그러나 훔치다가 들키면 심하게 두드려 맞았는데, 때로는 죽기도 했다.---p.27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알레시아에서 패배한 베르킨게토릭스는 성 안에 함께 남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희생해서 그들의 목숨을 구해 주겠다고 말했다. “나를 죽이는 것이 득이 된다면 그렇게 하라. 또는 나를 로마에 넘기는 것이 낫다면 그렇게 하라.” 사람들이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하자 베르킨게토릭스는 말을 타고 천천히 카이사르의 진영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카이사르와 장교들 주위를 여섯 번 돈 다음 칼과 창을 바닥에 던지고 로마 인 지휘관 앞에 무릎을 꿇었다.---p.82 ‘갈리아 전쟁’ 기원후 1세기, 열심당은 유다 왕국을 점령한 로마군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으로 100만 명이 넘는 유대 인이 목숨을 잃었으며, 노예나 도망자 신세가 된 유대 인도 100만 명이 넘는다. 바로 유대 인의 ‘디아스포라’가 시작된 것이다. 디아스포라는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팔레스타인을 떠나 온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 인을 이르는 말이다. 단어의 뜻 그대로, 이후 유대 인은 계속된 전쟁과 반란의 실패로 몇 세기 동안 고향을 등져야 했다. 특히, 예루살렘 함락과 마사다 포위로 유명한 유대-로마 전쟁은 유대 역사에서 가장 전설적인 사건이다. 이 전쟁은 역경을 겪는 유대 인 후손에게 용기를 고취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집단 염원을 불러일으켜 시오니즘 운동의 핵심이 되었다. 그리하여 20세기 중반에 지금의 이스라엘을 건국하는 기반이 되었다.---p.88 ‘제1차 유대-로마 전쟁’ 정오경, 대포 소리가 들렸다. 미끼 역할을 한 판옥선들 뒤로 일본 함대가 바싹 붙어 따라왔다. 이순신은 일본군이 덫에 완전히 걸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신호기를 이용해 미끼 판옥선들에 명령을 내렸다. “적을 향해 돌아서라! 기함을 먼저 공격하라!”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미끼 판옥선들이 돌아서서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탄 일본군 기함을 찾아 돌격했다. 이들은 불화살을 날리는 동시에 천자총통, 지자총통, 현자총통, 승자총통 등 각기 다른 4종류의 대포로 포격을 가했다. 일본군이 채 멈추기도 전에 학의 날개가 닫혔다. 조선군은 일본 함대를 포위한 다음 치명적인 교차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정교한 포사격 때문에 일본 전함은 갑판전을 벌일 만큼 조선의 함선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 거북선이 선두에서 조선 함대의 공격로를 열면서 충각으로 적함을 들이받아 혼란을 유도했다. 포성 사이로 일본군의 고통과 죽음의 단말마가 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들이 불타면서 검은 연기가 치솟기 시작했다.---p.284 ‘임진왜란’ 7년 전쟁은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프로이센이 독일의 맹주로 자리 잡으면서 그 전성기가 다음 세기까지 이어졌으며, 승전국이 된 영국은 북아메리카와 인도 전체의 지배권을 차지했다. 이후 영국은 전쟁으로 허비한 국고를 채우고자 북아메리카 식민지에 과도한 세금을 부과했다. 이는 미국 독립 전쟁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로써 영국은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북아메리카 식민지를 상당 부분 잃고 말았다. 한편, 영국에 패배한 프랑스는 식민지를 잃는 바람에 재정 수입이 대폭 줄어들었다. 프랑스는 이를 해결하느라 자국민에게 과중한 세금을 부과했고, 이로 말미암은 국민의 분노와 원성은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p.362 ‘7년 전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