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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플랑드르의 바다 1929년 사막을 간 사람들 황제의 뒤를 좇아 숲속의 신전 검은 폐허 죽은 아이의 초상 조그마한 하얀 집 후기처럼 옮긴이의 말 |
Atsuko Suga,すが あつこ,須賀 敦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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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에 꼭 맞는 신발만 있다면 나는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이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늘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지금껏 완벽한 신발을 만나지 못한 불행을 한탄하며 살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가고 싶은 곳, 가야만 하는 곳 모두에 내가 가지 못한 것은, 또는 가는 걸 포기한 것은, 모두 내 발에 꼭 맞는 신발을 갖지 못한 탓이라고 말이다.
--- p.4 왜 그렇게 서두르는 건가. 당신 인생은 아직 앞날이 창창한데. 프랑스의 입국 허가를 얻기 위해 건강진단을 하러 갔을 때 그리스도교계의 병원 의사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중얼거린 것은 고베를 떠나기 석 달쯤 전의 일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가지 않으면 저도 유럽도 변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대답이 안 되는 내 대답을 듣고 그 자신도 젊었을 때 프랑스의 대학에서 공부했다는 중년의 의사는, 제멋대로인 여동생에게 애를 먹는 오라버니 같은 얼굴을 하더니 난감하군, 하며 웃었다. --- p.86 계속 보고 있으면 너는 늘 그렇더라고. 요즘 뭔가 우울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넌 스스로 깨닫고 있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잠깐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더라고. 그리고 무슨 이유인지 여행을 다녀오면 아주 가벼워져서 돌아오는 거야. 어쩐지 여행지에 묵직한 스웨터라도 벗어 던지고 오는 것 같아. 딱 하루 파리를 떠나는 것만으로도 너는 아주 가벼워져서 돌아오더라고. 공부, 공부 하며 딱딱하게 있지 말고 가끔 여행 좀 해. 아마 너한테는 여행이 맞는 걸 거야. --- p.94-95 로마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날들,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나도 그처럼 최후까지 아무것도 모른 채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 때 만난 사람이 남편이었다. 그 후 남편과 보낸 5년간, 경솔하게도 어깨를 펴고 어둠과 대결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믿어버렸다. 그를 덮친 갑작스러운 죽음. 그것에 이어지는 새로운 어둠을 만나고 나서야 그때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허상과 실체 사이에 가로놓인 도랑의 깊이를 나는 배웠다. --- p.125 어휘 선택, 구문의 정확성, 문장의 품위와 사고의 강인함. 이것들로 독자를 매료시키는 것이 유르스나르에게는 영혼의 밑바닥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기쁨이고, 그것 없이는 살아 있다는 기분이 들지 않을 만큼 강한 욕구였을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여주지 않는 미국의 토양은, 그녀에게는 피리를 불어도 아무도 춤추지 않는 황야였다. 설령 프랑스어를 이해하는 그레이스가 곁에 있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 p.130 1934년부터 1937년까지 유르스나르는 다시 몇 차례나 초고를 정리해보지만 이것도 버리고 만다. 자료를 수집하고 이거라면, 하고 쓰기 시작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너무 젊다. 마흔 살이 되기 전에 도전해서는 안 되는 책이 있는 것이다.” 시기가 무르익을 때까지 유르스나르는 아직 10년이나 더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 p.134 썼다가는 지우고 지웠다가는 다시 쓴다. 안개가 짙은 날,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신호등 때문에 쉬이 나아가지 못하는 장거리 열차처럼 불안하게 나아가는 것 외에 글을 쓰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나이지만, 유르스나르의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왠지 깊은 위로를 받는다. 나의 무력감 앞에서 초조함을 느껴 좋을 리가 없는데도 왜 위로를 받는 걸까. 아마도 당시 그녀들의 나이이기도 했던 마흔다섯 살부터 2, 3년간, 나 나름대로 가질 수 있었던 열에 들뜬 것 같은, 광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의 속도와 체력과 집중력으로 일할 수 있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 p.1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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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르스나르의 구두, 스가 아쓰코의 구두
스가 아쓰코는 유르스나르의 어릴 적 사진을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한다. “평생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은, 그 이외의 신발을 신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었을 거라고. 반면에 자신의 신발에 대해서는 한탄조로 말한다. “발에 꼭 맞는 신발만 있다면 나는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이다. 가고 싶은 곳, 가야만 하는 곳 모두에 내가 가지 못한 것은, 또는 가는 걸 포기한 것은, 모두 내 발에 꼭 맞는 신발을 갖지 못한 탓”이라고. 『유르스나르의 구두』는 동경하는 작가의 발자취를 따라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찾아 헤매는 스가 아쓰코의 여행기이기도 하다. 그 노정에서 초등학교 동창생, 유학생 시절의 기숙사 친구, 짧은 생을 살았던 남편 등이 소환되어 옛 기억을 들려준다. 유르스나르의 작품과 인생, 여행지에 자신의 이야기를 겹쳐놓고 솜씨 좋게 엮어나간 끝에 이르러, 스가 아쓰코는 신발을 찾는 여정을 계속하려는 뜻을 내비친다. “좀 더 나이가 들어 드디어 다리가 약해지면 대체 어떤 신발을 신어야 할까. 그 나이가 되어도 아직 신발을 맞출 만한 일을 할 수 있다면 나도 유르스나르처럼 옆에서 똑딱 하고 단추를 잠그는, 초등학생의 신발 같은 부드러운 가죽 신발을 신고 싶다.” 그러나 옮긴이의 말마따나 스가 아쓰코가 이미 꼭 맞는 신발을 찾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유르스나르의 발에 꼭 맞는 구두 못지않게 스가 아쓰코의 신발이 얼마나 그녀에게 잘 어울리고 완벽한 것이었는지 알게 된다.” 작가가 작가에게 바치는 최고의 찬사 스가 아쓰코는 친구의 권유로 유르스나르의 작품을 접한 뒤 이내 매료된다. 그리고 작가의 궤적을 좇아 파리, 로마, 아테네, 마운트데저트섬 등을 돌아보며 작품과 작가의 삶을 더듬는다. 작가가 작가에게 찬사를 보내는 방식은 여럿이 있을 테지만, 작가의 발걸음을 따라가며 또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시킨 『유르스나르의 구두』야말로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 이 작품에는 작가로서, 세상의 흐름에 거스르는 삶을 살며 문장을 닦아온 한 여성 작가를 향한 공감, 그리고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이 정밀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 강인한 지성으로 떠받쳐지고 누르고 누른 고전적인 향기를 발하는 유르스나르의 문체와, 그것을 기워 깊은 지하수처럼 흐르는 삶에 대한 정념을 넣어 짠 섬세하고 때로는 환상의 세계에서 헤매며 노는 그녀의 작풍에 수년 전부터 나는 매료되었다. 유르스나르의 뒤를 따라 걷는 듯한 글을 쓰고 싶다, 하는 의식이 조금씩 내 안에서 싹트고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녀가 살았던 궤적과 나의 그것을 글 안에서 교차시켜 하나의 직물처럼 떠오르게 할 수 있다면, 하는 연기 같은 희망이 이 책을 쓰게 했다.(작가 후기)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 유르스나르 유르스나르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설립 약 350년 만에 최초로 여성 회원이 된 소설가다.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프랑스어를 빛낸 작가와 학자들로 구성되는데, 그 회원이 된다는 것은 최고의 지성임을 뜻한다. 유르스나르는 『알렉시 혹은 공허한 투쟁에 관하여』로 인상적인 데뷔를 하고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는다. 이 두 작품은 주인공이 동성애자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유르스나르 자신이 여성을 사랑한 여성이었으며 그녀가 사랑했던 남성들은 모두 동성애자였다. 이 “평범하지 않은 타고난 성향”을 빼놓고는 유르스나르를 이야기할 수 없다. 유르스나르의 어머니는 그녀를 낳고 며칠 만에 세상을 떠났는데, 유르스나르는 문학을 사랑하고 방랑벽이 있던 아버지를 따라 여행하는 삶 속에서 읽고 쓰는 것을 익히게 된다. 비행기가 아닌 기차와 배로 여행을 하던 시절, 유르스나르는 쉼 없이 여행하며 “견고함과 우아함을 겸비한” 글을 남겼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 사랑하는 그레이스 프릭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프랑스어와 괴리된 그곳에서 프랑스어 작품을 쓰다가 여든넷에 삶을 마쳤다. 오랜 세월 숙성시킨 글의 힘 유르스나르는 스물한 살 때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을 구상하기 시작했으나 완성한 것은 사반세기가 지나서였다. 자료를 모으고 쓰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어쨌든 나는 너무 젊다. 마흔 살이 되기 전에 도전해서는 안 되는 책이 있”다고 적었다. 한편 스가 아쓰코는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을 묵히며 숙성시킨 추억을 재료로 삼아 글을 써 예순이 넘어 발표하기 시작했다. ‘예순이 되기 전에 도전해서는 안 되는 책’이었을까. 오랜 세월 묵히며 곱씹어온 생각이 담긴 글은 각별한 감동을 전한다. 그러면서도 어제의 일기장인가 싶을 정도로 또렷한 기억이 튀어나와 독자를 놀래기도 한다. 긴 시간 정제를 거친 기억과 생각의 정리, 그것이 스가 아쓰코의 글이 과거에 박제되지 않고 세월을 뛰어넘어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