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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의 시간
해이수
자음과모음 2020.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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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탑의 둥근 내부
길이 어긋나는 방향
강의 깊은 중심
별이 휘어지는 속도
몸의 환한 통로

발문 ‘탑의 시간을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일 뻔했던 글 _한은형
작가의 말

저자 소개 1

2000년 [현대문학] 중편 부문으로 등단하여 소설집 『캥거루가 있는 사막』과 『젤리피쉬』, 장편소설 『눈의 경전』과 『십번기(十番棋)』가 있다. 심훈문학상, 한무숙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수상했다.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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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2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00쪽 | 310g | 138*203*20mm
ISBN13
9788954445559

책 속으로

그의 죽음은 연이 깊이 묻어둔 기억 하나를 불러냈다. 연은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수납장 맨 아래 있는 상자에서 편지 한 통을 찾아냈다. 이십 년 전 그가 바간에서 보낸 것이었다. 그녀는 답신을 보내지 않았으므로 결과적으로 그 편지는 그와의 마지막 교신이었다. (……) 연이 조문 장소로 택한 곳은 병원의 장례식장이 아니라 미얀마의 바간이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동시에 자신의 쉰 번째 생일을 기념하는 여행지로 다른 곳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바간에 남겨둔 선물을 찾아와야 했다.
--- p.15~16

“정말 누군가를 그리워하기에 딱 좋은 장소네요.” 일몰에 따라서 하늘과 평원과 숲과 탑과 강이 묘한 빛깔과 윤곽으로 일어섰다 기울어지고 합쳐졌다 흩어졌다. 왠지 초연해지고 그 무엇이라도 한껏 받아들일 수 있는 은밀한 장소였다. 이제껏 꽉 움켜쥐고 살던 것들을 허허롭게 놓아버릴 수 있는 곳. 지금 이 온도, 이 햇빛, 이 바람, 이 감정, 이 상태로 생이 끝나도 그리 아쉬울 게 없을 것 같았다.
--- p.21~22

인생은 예기치 못한 이유로 틈이 벌어지고 그 균열로 구조물 전체가 깨질 수도 있는데, 왕은 대체 무슨 꿈을 꾼 것인지……. 그러나 곧 희는 벽돌 사이에 바늘 하나 꽂을 틈 없이 완벽함을 지향한 그의 의지만은 대단하다고 여겼다. (……) 희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불완전한 인간의 완전한 꿈 그리고 가장 거대한 미완…….” 희는 ‘꿈’을 ‘사랑’으로 바꾸어 중얼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 p.86~87

탑 위에서 명은 에야와디강을 건너다보며 생각했다. 사랑은 쌓이는 것이라고. 기쁨과 미움, 슬픔과 환희를 층층이 쌓으면서 견고한 구조물로 남는 것이라고. 무엇보다 함께 쌓는 것이라고. 우리가 여태 쌓아온 것은 무엇일까? 그런데 그녀는 왜 함께 쌓기를 포기한 것일까?
--- p.103

명은 가방 속에 손을 넣어 루비 목걸이를 꺼내 들었다. 홍옥의 붉은빛이 매혹적이었다. 퍼머넌트 레드. 그녀와 보냈던 행복했던 시간만을 낱낱이 오려서 모아 녹이면 이런 빛깔일까, 한 사람을 향해 뛰는 심장이 영원히 뜨겁고 붉을 수 있을까?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당장 직접 걸어주기는 어렵겠지만 그 마음의 순간들은 모두 진실이었다고, 어쩔 수 없이 내게 벌어진 아름다운 일이었다고, 미완으로 남았지만 또한 무너뜨릴 수 없는 풍경이라고…….
--- p.104~105

저만치 공항이 보이자 명은 생각했다. 어쨌든 하루가 지났으니 그 전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거라고. 어제의 나와는 분명히 다를 거라고. 명은 자신이 지금 닿은 그 지점에서 또 다른 길이 이어지고 열릴 것을 예감했다. 명은 멀어지는 풍경들을 향해 인사를 했다. “나웅 마 뚜이메!”
--- p.153

“늘 그 사람과 함께하는 게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있지. 상대의 행복을 위해 잠시 잊는 것도 사랑하는 일이오. 의연한 단념이랄까.” “의연한 단념이요?” “그렇소. 의연한 단념.” (……) 명은 그의 얼굴이 일반적인 중년의 얼굴과는 약간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르는 외로움에 늙어간 자와 사람을 사랑해서 겪는 서글픔으로 늙어간 자는 얼굴의 주름과 표정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 p.169~170

나는 그저 사랑이 지나가는 통로일 뿐이라고. 그것이 내 것이 아니기에 오는 것도 가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떠나보내고 싶을 때 마음대로 보낼 수 있는 게 아니라 들어온 사랑이 빠져나갈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나가는 것이라고. 심지어 어딘가에 이미 쓰인 책의 내용에 따라 자신이 살아왔고 사랑을 앓았으며 곧 죽을 것이라는 예감마저 들었다.

--- p.185

출판사 리뷰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르는 외로움에 늙어간 자와
사람을 사랑해서 겪는 서글픔으로 늙어간 자의 얼굴”
낯선 감각으로 새겨지는 고백의 언어


『탑의 시간』이 간직하고 있는 비밀은 저마다의 이야기이다. 세상을 떠난 연인이 이십 년 전 보낸 편지에 적힌 대로 바간의 탑에 숨겨놓은 루비 목걸이를 찾기 위해 무작정 떠나온 ‘연’과 약혼녀와 파혼하면서까지 선택한 사랑이지만 결국 그 사람과도 헤어지게 된 ‘명’과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서 떠난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서로의 마음을 잃게 된 ‘최’와 ‘희’. 우연히 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나게 된 네 사람은 일상을 벗어난 공간에서 자신의 비밀을 누설하기도 하고, 또 다른 비밀을 만들기도 한다.

지나치는 탑 하나하나가 문득 밀봉된 비밀 상자처럼 보였다. 그곳에 담긴 비밀과 사연이 한꺼번에 전부 풀어헤쳐지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희는 소민지 수도원에서 빌었던 소원을 떠올리며 그곳을 자신만의 타임캡슐로 기억했다. (143쪽)

그곳에서는 과거의 비밀과 현재의 비밀이 교차한다. 이십 년 전 연인에게 부치지 못한 ‘연’의 답장은 서로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던 ‘명’에게 전해지고, 소민지 사원에 숨겨져 있던 ‘연’의 목걸이는 우연히 그것을 찾아낸 ‘희’의 목에 걸리게 되고, 또 ‘명’에게 끌리게 된 ‘희’는 ‘명’이 헤어진 연인을 위해 산 루비 목걸이를 자신의 목에 건 후 ‘연’의 목걸이를 다시 사원에 숨겨놓는다. 명은 바간에서 양곤으로 떠나는 비행기에서 현실인 듯 꿈인 듯 어떤 중년의 사내와 만나게 된다.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가슴속에 비밀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이 탑에 숨겨둘 아무런 비밀이 없는 사람들 말이오”(170쪽)라는 그 사내의 말에 세월을 따라 늙어간 자와 사랑의 통증으로 늙어간 자의 얼굴에는 서로 다른 종류의 나이테가 새겨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처럼 『탑의 시간』은 시간이 ‘기억’되고, 기억이 ‘간직’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탑의 시간에는 2000개라고 했다가 2200개라고도 했다가 2500개라고도 말해지는 바간의 탑들처럼 은유와 상징과 이야기들이 솟아 있다"는 한은형 소설가(발문: ‘탑의 시간을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일 뻔했던 글)의 말처럼 이 소설은 기억에 관한 수많은 은유와 상징 사이를 여행하고 있다.

작가의 말

작가로 살아온 지 스무 해가 되었다. 한마디로 꿈같은 시간이었다. 꿈에서는 그리 서럽지 않아도 서럽게 울고 그리 대단찮은 일에도 대단한 듯 웃기 마련이다. 두려움도 견딜 만하고 배고픔도 견딜 만하다. 무엇보다 어떤 배역과 역할을 맡아도 억울하지 않고 다시 꿈을 꿀 수 있다는 것도 안다. 확실한 한 가지는 스무 해 동안 멀리 도망치지 않고 이곳에서 지냈다는 점이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이해와 격려를 아끼지 않은 분들 덕분이다. 나의 길은 탑에 있지 않다. 나의 길은 사람들 사이로 뻗어 있다. 누가 뭐래도 그것이 나의 꽃길이다.

발문

『탑의 시간』에는 2000개라고 했다가 2200개라고도 했다가 2500개라고도 말해지는 바간의 탑들처럼 은유와 상징과 이야기들이 솟아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은유와 상징을 여행하는 이야기로도 읽었다. 어쩌면 바간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바간의 탑과 그 탑에 쌓인 천 년이라는 시간, 바로 그 쌓이고 쌓인 은유를 여행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던 것이다. 공간을 여행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여행하는 거라고. 그것도 천 년의 시간을. 그렇게 생각하자 그것들을 안내하는 일에 묘한 의미가 부여되는 것 같았다. _한은형(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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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탑의 시간] 시간을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
    [탑의 시간] 시간을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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