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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5
제1부 본질 11 투쟁 12 야산에 누운 무덤들 13 지리산 14 민들레 피었네 16 해갈 18 호수 20 동면 22 맹그로브 나무 24 배설 26 매미 28 치욕의 시 29 보이지 않는 것 30 제2부 ‘예수’의 꿈 33 모형 십자가 34 내 마음에 산사 하나 지어놓고 36 마음을 담는다 38 어머니 40 사랑 41 부활초 42 누군가의 얼굴 44 혹한에 얼어붙은 강 46 포옹 48 만추 50 엄동설한 폭설을 배경으로 51 제3부 저물녘 57 가을아침 58 그해 첫눈 60 아가야 62 고풍 64 심야 66 터널 68 찔레꽃 69 지금 70 장마 71 내 이름은 정세훈 78 단풍 들 때 80 제4부 불면의 노동 83 울 아버지 밤대거리 가시던 길 85 진짜 술맛 91 아가의 장난감 92 심호흡하는 언덕마루 94 꽃구경 95 아기 개나리 98 어머니의 재봉틀 100 팔푼이 102 밥 103 가을 길 104 대중이가 울었단다 106 우리들의 못난이 108 해설 이성혁 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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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역엔 함박눈 대신 스산한 겨울비가 내린다
이른 아침 출근길을 적시었던 때아닌 겨울비가 깊은 밤 뒤늦은 귀갓길 광장에 번들번들 스며들고 있다 가까스로 빗방울을 털어낸 고단한 발길들 승산 없는 생의 승부수를 걸어놓고 총총히 빠져나간 불빛 흐린 전철역사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하듯 방울방울 떨어지는 낙숫물이 얼어붙은 노숙자의 잠자리를 실금실금 파고들고 정해진 궤도를 따라 달려온 마지막 전동차 비 젖은 머리통을 숨 가쁘게 들이밀고 들어온 야심한 밤 생이 무언지 제대로 젖어보지 못한 우리들의 겨울날은 때아닌 겨울비와 통정을 하며 또다시 하룻밤 동면에 들어가고 있다 ---「동면」중에서 나의 생이여 즐거운가 그렇다면 그 즐거움은 단풍 들 때 동맥 끊듯 끊어지거라 행여 도적같이 지나온 전생이었든 혹여 찰나같이 닥쳐올 내세이던 차마 하지 못하고, 못 할 사랑 엉겁결에 저질러놓고 행복에 겨워 있다면 그 행복 단풍 들 때 가을볕 수수 모가지 잘라지듯 잘라지거라 천상의 고통이 지상으로 내려오고 지상의 고통이 천상으로 올라가는 그리하여 머지않아 발가벗겨질 온 천지가 울긋불긋 울긋불긋 단풍 들 때 나의 생이여 아름다운가 그렇다면 그 아름다움은 단풍 들 때 마른 지상에 물 번지듯 지워지거라 ---「단풍 들 때」중에서 지상의 새 떼가 다급히 어디론가 날아간다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와 뱀들이 떼를 지어 밖으로 기어 나온다 잉어들이 자꾸만 물 위로 뛰어오른다 개들이 한꺼번에 마구 짖어댄다 그 순간 보이지 않는 깊숙한 지구 내부에서 험한 지진과 해일의 전조현상이 꾸물꾸물 일어나고 있다 ---「본질」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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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전통적 농경사회였던 우리 사회는 1960년대 말 전국에 산업공단이 조성되기 시작하면서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어왔다. 이에 편승해 자본화도 급속도로 이루어졌다. 4차 산업으로 이행되어 가는 현재 그 상황은 더욱더 심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인간의 삶의 본질이 최우선시되어야 할 우리 사회는 산업화와 자본이 그 자리를 침략해 차지해 버렸다. 이제 우리의 문학은 산업화와 자본으로부터 점령당한 인간의 삶의 본질을 찾아 제자리로 복귀시켜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됐다. 그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여 우리 사회를 진정한 인간의 삶을 위한 장으로 구축해가야 한다. 그러한 노정으로 임한 이번 졸시 작업을 통해 우리 삶의 본질을 인간에만 국한하지 않고 자연과 생물, 무생물 등 우주 종교적 차원에서 찾고자 한 것에 의미를 두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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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전복. 시인에 따르면 이 잠재적으로 일어나는 전복이 바로 ‘본질’이다. 전복의 잠재성은 보이지 않지만 새 떼나 잉어들, 개들은 이를 감지한다. 특히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와 뱀들”은 이를 감지하고는 동면에서 깨어나 “떼를 지어 밖으로 기어나”오고 있다. 동면에서 깨어나 새로이 산다는 것, 다시 말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면서 어떤 악조건도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열매를 맺으며 숲을 이룬다는 것은 사막과 같은 세상을 전복할 세계 내부의 잠재성이 땅 위로 현실화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것은 또한 세계의 ‘본질’이 실현되는 과정인 것이다. - 이성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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