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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아빠의 받아쓰기
말을 해! 말을! / 행복이 가득한 집 / 자꾸 힘이 더 생겨 / 꿈들은 어디에? / 초록색 옷을 입은 귀여운 아저씨 / ‘영유아 양육을 위한 아버지의 스트레스’에 관한 설문 / 6살 애지니의 남성관 / 놀라운 발견 / 아빠의 아빠 / 끈적이 / 불리하다와 안 유리하다 / 다이어트와 스트레스 / 어린 왕자의 소원수첩 도대체 / BIG FISH / 내가 겁나는 것 / 무한대로 사는 법 / 그리스의 붉은 노을 / 민달팽이 / 런닝맨1: 유재석, 아빠 그리고 김종국 / 개그콘서트 / 현대미술 / 로미오와 줄리엣, 정신차려! / 울려 퍼지는 것 / 크리스마스에 해야 하는 일 / 산타의 비밀 / 우리 것은 좋은 것 / 아빠, 빨리 커! 아빠는 애지니 스타일 / 좋아하는 남자친구/ 애지니는 고3 / 우문현답 / 길을 걸었지 / 피아노곡의 해석 / 여자가 원하는 것 / 그녀가 누구야? / 생각주머니 / 참아서 얻는 것 / 뽀로로의 삼각관계 / 리어왕 / 런닝맨2: 아빠·엄마 vs 강개리·송지효 / 비도 힘든 날 내 맘도 몰라 / 시네마천국 / 누가 가슴을 더 뛰게 할까? / 엄마는 자라 / 설거지 / Botero에 대한 감상 / 반항이란 무엇인가? / 아빠 많이 짜증 나? / 아빠와 만유인력/ 콩쥐, 팥쥐 그리고 돼쥐 / 건축학개론 / 겨울 냄새 / 마지막 질문,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에필로그-애지니의 사춘기를 기다리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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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소리가 잦아든 한여름의 밤. 약하게 틀어 놓은 선풍기 바람이 더운 기운을 곁으로 날려버린다. 배가 불룩하도록 수박을 잔뜩 먹고 애지니는 잠자리에 누웠다. 먼저 누운 엄마를 껴안는다. 엄마는 미동도 없다. 눕자마자 바로 잠들어 버리는 놀라운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잠든 엄마를 끌어안고 기분이 좋아 애지니는 혼자 중얼거린다. “아, 좋다. 눈 오는 날 집에 있는 느낌이야.” 눈 오는 날, 눈을 맞는 느낌이 아니라 집에 있는 느낌은 뭘까? 그것도 한여름에…….
--- p.14, 「행복이 가득한 집」 중에서 프랑스 엄마들은 아이와 타협하거나 협상을 하지 않고 항상 원칙대로 아이를 키운다는 이야기가 TV에서 나온다. 아이를 키우는 아빠이기에 자연스럽게 여기에 관심이 가서 TV 볼륨을 높이고 듣다가 애지니의 생각이 궁금해서 물어봤다. “애지나. 프랑스에서는 아이가 만화를 30분 보기로 했는데, 다 보고 10분만 더 보겠다고 조르면, 아빠가 절대 안 들어준대. 넌 어떻게 생각해? 아빠도 그래야 할까?” 애지니는 손사래를 치면서 아니라고 한다. “아빠! 그러지 마, 아빠는. 그러면 나 ‘다이어트’ 받아.” 어리둥절한 아빠를 바라보며 애지니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표정으로 더듬더듬 새 말을 찾는다. “……스……트……레……스.” 애지나. 부끄러워하지 마. 넌 벌써 알아차린 거지. 이미 알고 있는 거야. 다이어트와 스트레스가 사실 같은 뜻이라는 걸. --- p.32~34, 「다이어트와 스트레스」 중에서 애지니는 흥미롭게 영화를 따라갔다. 로미오가 나무를 타고 발코니로 올라가 줄리엣에게 키스하는 장면에서 긴장하고 부끄러워하면서도 눈을 돌리지 않는다. 그런데 땅으로 내려갔던 로미오가 나무를 타고 다시 올라왔다. 그리고 누군가 나타날 것 같은 긴박함 속에서도 이제 누가 보는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두 사람은 키스에 열중한다. 조바심이 난 것은 애지니였다. “저것들이 제정신이야!” 일어서서 안절부절못한다. 눈을 가렸다가 귀를 막았다가 소파 위에서 펄쩍 뛰고 이리저리 서성이더니 마침내 소리쳐 외친다. “그만해. 그만해!” 오늘의 인문학 교육은 급작스러운 관객난입으로 중단되었다. --- p.60, 「로미오와 줄리엣, 정신차려!」 중에서 오늘은 인문학 미술교육을 위해 거실 책장에서 보테로Botero 화집을 꺼내 동화책인 척 슬쩍 애지니 앞에 놓았다. 두터운 보테로 화집을 보더니 애지니는 아빠가 놓은 그 떡밥을 집어 들고, 한참을 들여다본다. 살짝 미소지었다가 눈썹을 찌푸리다가를 반복하면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책장을 넘긴다. 애지니가 화집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빠는 미술작품을 본 애지니의 감상평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다. 드디어 마지막 책장을 넘겼다. 아까부터 앞에 앉아 감상평을 기다리는 아빠의 심정을 알고 있는지 눈을 들어 아빠와 눈을 맞추고는 그렇게 기다리던 한마디를 던진다. “다들 몸매 관리를 너무 안 해!” --- p.112, 「Botero에 대한 감상」 중에서 |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까 하고 깜짝 놀라기도 하고 때로는 배꼽을 잡고 웃기도 한다. SNS에도 아이들의 엉뚱하고 창조적인 말들을 대견해 하는 부모님들의 글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아이들의 말들은 우리가 잡아 놓지 않으면 모두 사라진다. 아이의 그 귀엽던 미소와 웃음소리가 시간과 함께 다 사라져버리듯이. 그리하여 어느 날부터 아이들은 어른들과 똑같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를 무서운 중2라고 부른다.
애지니는 아직은 재미있는 말을 하는 유쾌한 아이이다. 애지니 아빠는 딸아이의 말들이 사라지기 전에 그 말을 종이 위로 옮겨 놓았다. 그리하여 3살부터 11살까지 55개의 짧은 에피소드 속에서 애지니의 말들은 여전히 살아있다. 애지니가 태어나게 하고, 애지니 아빠가 키워낸 말들이 책 속에서 웅성대고 있다. 그림작가 이강훈은 이 말이 태어날 때의 기쁨과 웃음을 독자 앞에 무대처럼 펼쳐 놓는다. 말들이 그림이 되는 순간, 독자들은 애지니 아빠가 딸의 이야기를 받아적던 그 순간의 웃음을 함께 웃을 수 있다. 그리고 이강훈의 그림 속에서 애지니 아빠가 단지 아이 말의 관찰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항상 아이 옆에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이의 창조적인 순간은 아이 옆에 부모가 함께한다면, 매일 일어나는 기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