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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은 누구인가?_13
기도_27 프롤로그_28 chapter 1 가난의 염려_45 chapter 2 풍요의 염려_75 chapter 3 비천의 염려_113 chapter 4 고귀의 염려_147 chapter 5 교만의 염려_181 chapter 6 우리가 발명한 염려_209 chapter 7 두 마음을 품은 염려_243 역사적 해설_275 |
Soren Aabye Kierkega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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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해제
『이방인의 염려』는 그 당시 기독교를 비판한 작품이다. 그냥 읽는다면 특별히 비판적인 요소를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시대적 배경을 알고 나면 이해하는 데 조금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그 당시에 덴마크는 기독교 국가였다. 국가로부터 핍박을 받아야 했던 초대 교회 당시 상황에서 완전히 역전된 것으로, 전체 사회가, 전체 국가가 “기독교화”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기독교 세계 에서 이방인의 염려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들어가는 말]에 보면, “이 나라에서 사람들 사이에 이런 이방인의 염려들이 발견된다. 따라서 이 기독교의 나라는 이방인의 나라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이방인은 누구인가? 이방인은 기독교 세계 밖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기독교 세계 안에 사는 그리스도인”을 일컫는다. 다시 말해, 교회 안에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보이는 이방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이방인의 특징은 자칭 그리스도인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키르케고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 있는 이방인들을 각성시키고자 기획된 것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계에서 가장 불쌍한 자는 누구인가? 이 강화에 따르면, 하나님의 나라에 살면서 이방인의 염려를 구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모르고 살아가는 저 기독교 밖에 있는 이방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가능성이 있는 반면, 기독교 세계에 사는 이방인은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구원의 가능성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키르케고르는 이 사람들을 각성시켜야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각성시킬 것인가? 드디어 가장 어려운 주제에 들어왔다. 사실, 사람들의 마음에 갖고 있는 근본적인 신념 혹은 이념을 바꾼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세상에서 사람들과 이야기 할 때, 다투지 않기 위해서는 정치 이야기, 종교 이야기 하지 말라고 충고하지 않던가!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정신과 의사도 다룰 수 없고, 심지어는 부모도 불가능하다. 인간이야 단지 기도하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키르케고르는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복음의 명령대로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를 보라는 것이다. 도대체 왜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하는가? 거기에서만, 오직 그곳에서만 자신의 존재가 무엇인지 “투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런 투명성의 문제는 이미 1847년 『다양한 정신의 건덕적 강화』 2 부의 작품인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에게서 우리가 무엇을 배우는가?”에서 언급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병』 2부에서도 인간이 오직 “하나님 앞에 서” 투명해질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세상은 너무 혼탁하다.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특별한 존재인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하게 하고 타인과 비교하게 함으로써 혼란에 빠지게 한다.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방인 을 각성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전(全) 존재가 투명하게 드러나는 곳으로 인도해야 한다. 바로 이 곳이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가 있는 곳이다. 이곳은, 인간의 비교의식이 접근할 수 없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타인과 비교함으로 혼란에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새와 백합에 비교함으로써 “존재하기”를 진정으로 시작하게 된다. 나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키르케고르가 말한 이런 경건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대에 이르렀다고 생각 한다. 우리는 지금 “초연결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과 사람뿐만 아니라, 사물과 사물, 사물과 사람도 연결하는 시대가 되었다. 모든 것을 연결하는 이런 시대에 오직 단 한 분, 하나님만은 예외다.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과 함께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 시대에 인간의 존재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명쾌하게 제시하기가 더 힘들다. 인간은 관계하는 존재라고 규정을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하나님 앞에서만 나의 전 존재가 드러나는 것이 맞다면, 하나님 을 제외한 이런 연결, 이런 교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직 존재가 규정되지 않은, “존재하기”를 시작조차 하지 못한 상태다. 새와 백합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 존재하는 것에 어떤 어려움도 없다. 새와 백합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재하기를 시작한다. 시작하기 위한 예비적 단계도 필요 없다. 하지만 사람은 어떠한가? 시작의 어려움이 존재 한다. 존재하기를 시작하는 지점부터 인간은 시험을 받는다는 점에서 새의 존재와 다르다. 이 문제는 “비교”에 있다. 가난한 것과 부한 것, 비천한 것과 고귀한 것과 같은 비교 때문에 존재하기가 힘들다.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기도 전에 내가 얼마나 비천한지 혹은 고귀한지, 내가 얼마나 부한지 혹은 가난한지를 먼저 배운다. 이것이 시작의 어려움이다. 존재하기, 태어나자마자 존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가난한 사람, 비천한 사람은 마치 부한 자, 고귀한 자가 얼마나 부자이고 고귀한지를 입증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그들의 인생은 이런 자들을 위해 이용되어야 할 것처럼 보인다. 반면, 부한 자, 고귀한 자는 가난한 자와 비천한 자들의 존재로 인해 그들의 가치, 그들의 명성과 명예가 더욱 높아질 것처럼 보인다. 간단히 언급했지만,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기도 전에 우리는 이런 인간적인 비교의 늪에 빠져 좀처럼 헤쳐 나오기가 힘든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이것을 먼저 깨닫기 위해서 우리가 저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가 있는 곳으로 가보자. 그 곳에는 어떤 인간적인 비교도 들어올 수 없다. 복음의 명령대로,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를 보자. 그리하여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바로 알 수 있도록 새와 백합과 우리 자신을 비교해보자. 역자로서 『이방인의 염려』에서 제시한 모든 것을 다 말할 수는 없다. 이 해제는 이 강화의 특징을 다만 역자의 관점에서 서술했을 뿐이다. 이 강화는 얼마든지 다른 관점에서도 해석될 수 있다. 독자 여러분 나름대로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면 더욱 좋다. 기독교 출판 시장이 어렵다. 아마 갈수록 더 어려워질 것으로 판단된다. 책을 내고 싶어도 선뜻 나서는 출판사가 없었기에 직접 1인 출판에 도전했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이라 출판비용이 얼마 들지 않는 전자책 먼저 출간을 했고, 이제야 종이책으로 출간한다. 아직 출판에 대한 경험이 없는 초보 출판이라 부족한 점이 많더라도 독자들의 많은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독자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 기도를 부탁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