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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집

: 불을 켜면 빵처럼 부풀고 종처럼 울리는 말들

리뷰 총점9.5 리뷰 22건 | 판매지수 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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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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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21년 11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344g | 120*200*15mm
ISBN13 9791160406818
ISBN10 1160406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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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상품 이미지를 확대해서 볼 수 있습니다. 원본 이미지
가장 비문학적인 단어들에서
가장 문학적인 순간을 길어 올리는
‘단어 생활자’ 안희연의 따뜻한 허밍


시인은 단어를 ‘산다(live)’고들 말한다.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한 첫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부터 2020년 펴낸 세 번째 시집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까지 맑고 세밀한 언어로 사랑받아온 안희연도 날마다 수많은 단어들의 안팎을 ‘살아간다.’ 그에게 머무는 단어들은 얼핏 보기엔 시인의 노트에 그다지 어울릴 것 같지 않다. 적산온도, 내력벽, 탕종, 잔나비걸상, 선망선, 플뢰레, 파밍, 모탕…. 8시 뉴스나 신문의 과학·기술 섹션에서 본 듯한, 혹은 학술·전문 콘텐츠에 나올 법한 단어들. 평소 잘 쓰이지 않아 그 뜻이 한 번에 떠오르지 않는 단어들. 신간 『단어의 집』은 이렇게 비(非)시적인, 건조한, 테크니컬한, 아카데믹한 단어들이 시인의 일상에 기습적으로 끼어들어 ‘가장 문학적인’ 사유의 통로를 여는 장면들로 가득하다. 안희연은 “모든 단어들은 알을 닮아 있고 안쪽에서부터 스스로를 깨뜨리는 힘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45편의 글을 통해 “하나하나의 단어들이 발산하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기운을 목격”한다.

“저에게 세상은 양초로 쓰인 글자 같습니다. 이 세상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촛불을 들고 단어의 집으로 들어서면 감춰져 있던 장면이 서서히 나타나기도 해요. 그곳엔 빵처럼 부풀고 종처럼 울리는 무언가가 있어요. 파닥임과 반짝임이 있어요. 그 마주침의 순간이 좋아서 저는 계속 글을 씁니다.”_프롤로그 중에서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프롤로그: 촛불을 들고 다가서면

1. 성냥갑에 딱 하나 남은 성냥 같은 말
길항
규모
적산온도
주악
삽수
라페
몰드
버저 비터
휘도
잔나비걸상
버력
피막
블라이기센

2. 홀로 짓는 표정 같은 말
모루
유루
내력벽
루어
흑건
오고오고
가시손
빈야드
구득
홈질
선망선
출몰성
플뢰레
덧장
탕종
꼭두

3. 나의 작은 말들의 놀이터
안료
탁성
벼락닫이
적화
밀코메다
묘실
파밍
기저선
네온
불리언
덖음
시드볼트
모탕
페어리 서클
도량형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나의 책 읽기는 매번 이런 식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생각들을 붙들고 살다 보니 책이든 삶이든 페이지가 쉽게 넘어갈 리 없다. 소설을 읽을 땐 소설을 읽어야 하는데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에 머무느라 방금 전까지 읽은 건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 그래도 오늘은 소망이라는 단어에서 출발해 길항이라는 단어에까지 다다른 하루였으니 이를 생산적 난독이라 말해도 될까.
--- p.18

그런 의미에서 시는 내가 아는 가장 간결한 형태의 다반이다. 말과 침묵이 비등한 무게를 지닐 때가 많고 때로는 침묵이 말보다 더 큰 무게를 가질 때도 있다. 글을 퇴고할 때도 무언가를 자꾸 덧붙이려는 나를 가장 경계하곤 한다. 그건 불안이니까. 사족이니까.
--- p.32

독일에는 ‘블라이기센(Bleigießen)’이라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12월 31일 밤이 되면, 납을 녹여 그림자의 형태나 굳은 모양을 보고 한 해의 운을 점치는 것이다. 마트에 가면 블라이기센 키트(kit)를 팔기도 하는데 1~2유로면 구입이 가능하단다. 내가 녹인 납이 권총, 칼, 토끼, 그 밖에 어떤 모양을 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모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해석하기 나름일 것이다. 다만 그 작은 의식을 통해 각자가 살아낼 일 년의 모양을 예감해보는 것이겠다. 그 순간 무형의 삶은 깜빡, 하고 빛난다. 얘야, 삶이란 흘러가버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손에 잡히기도 한단다. 지금 여기 네 손안에 분명하게 들려 있잖니, 하고.
--- p.83

내게 가시손은 단순한 관용구가 아닌, 존재론적 슬픔을 함의한 광막한 단어다. 문득 가시손의 반대말이 궁금해진다. 아마도 쓸어 담고 쓰다듬고 치료하는 손이겠지? 다행히 세상엔 가슴팍에 청진기를 대고 숨소리를 듣거나 진맥을 짚어 영혼의 상태를 살피는 손도 존재한다. 내가 무수한 나들의 총합이듯이 나의 손안에도 무수한 손들이 자리해 있을 것이다.
--- p.121

그래서 꽃이 왔을 것이다. 꽃은 말이 아닌 것으로 출몰하는 존재다. 너는 나의 아름다움을 목격한 적이 있어. 그리고 그것을 버렸지. 그것도 쓰레기봉투에. 별 뜻 없이. 그런데 정말 그럴까. 그것이 꽃이기만 할까. 중요한 건 버림의 촉감을 네 손이 기억한다는 사실이야. 세상의 비극은 너무 멀리에 있어서 대신 꽃을 보냈단다.
--- p.147

어디서 그런 용기가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선생님, 전 왜 이렇게 무거운 걸까요. 저도 밝고 명랑하고 귀여운 거 하고 싶어요. 어리광을 빙자해 다른 목소리에 대한 갈망을 불쑥 내비친 것이다. 그땐 정말이지 시가 너무 아프고 무거웠다. (…) K 선생님은 단호하셨다. 그건 잘하는 사람이 따로 있겠지요. 하던 걸 하세요.
--- p.177~178

오늘의 나는 오늘 쓸 수 있는 문장을 쓰면서 이곳의 나를 찾아올 밀코메다의 시간을 기쁘게 맞이하고 싶다. 와야 할 시간은 기필코 오게 되어 있다. 그럴 때 나의 인사는 “왜 왔어?”가 아니라 “왜 이제야 왔어”이기를 바라며.
--- p.196

매일매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세상에 들볶이는 기분과 찻잎의 덖음 사이엔 어떤 유사성이 있을까. 어쩌면 세상도 우리를 들들 볶는, 아니 덖는 과정을 통해 우리를 보다 향기롭고 귀한 찻잎으로 만들려는 것은 아닐까. 물의 세계에 기필코 담겨야 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면, 물에게서 공포만 볼 것이 아니라 물이 가진 다정함, 안락함, 온화함, 고요함도 한번 믿어보는 것은 어떨까.
--- p.228

“넌 문학해서 손해 본 점이 뭔 것 같아?” 하루는 시인 친구와 밥을 먹다 대뜸 물었다. 친구는 어디 밥상머리에서 일 얘기냐며 핀잔을 놓았지만 이내 수저를 탁 내려놓으며 말했다. 네가 말하는 손해의 의미가 정확히 뭐야. 귀찮음이야 싫음이야 난처함이야. 문학하는 사람은 역시 이래서 안 되나 보다. 단어 하나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매 순간이 허들이다.
--- p.249~250

끝을 갈망하는 이에게 끗이라는 단어를 안겨주는 건 외발자전거를 탄 곡예사에게 저글링을 시키고 불붙은 훌라후프를 통과해보라는 명령일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두려울 것이다. 고독하고 힘겨울 것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 p.260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여기 실금 가득한 단어를 좀 보세요.
무언가 태어나려 하고 있어요.”
단어에서 단어로 미끄러지는, 무한의 도미노 놀이


안희연은 평소 자신을 ‘시 쓰는 누구누구입니다’라고 소개하지만 이 책에서만큼은 ‘단어 생활자’라 일컫는다. 그는 TV를 켜놓고 요리하다가, 길을 걸으며 간판을 보다가, 세탁물을 수거하러 온 기사님을 마주하다가, 갑자기 끼어들어 주변을 채색하는 단어들로 인해 멈칫한다. 그리고 단어들을 ‘파밍(게임에서 캐릭터의 능력을 상승시키기 위해 아이템을 모으는 행위)’한다. “구멍 뚫린 봇짐을 이고 지고 가느라 흘리고 놓치는 게 일상이어도, 내 영혼이 세상과 닿는 접촉면이 점점 더 넓어지기를 바라며”(p.205) 흩뿌려진 단어들을 줍는다. 뉴스의 날씨 코너에서, 작물의 생육에 필요한 열량을 나타내는 용어인 ‘적산온도’라는 단어를 접한 뒤 ‘온도를 저금한다는 말’에 관해 생각한다. “모든 존재가 꽃이라면, 나의 피어남에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할까.”(p.27) 아빠 없고 엄마 없는 친구들과 ‘부재’의 기억을 통해 쌓아온 우정의 내력(來歷)을, 건축 용어인 내력벽(耐力壁)으로 연결하기도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철거할 수 없는 최후의 보루인 내력벽에 빗대어 “팔을 들어 슬픔을 받치고 선 모양. 나란한 두 개의 기둥”(p.101)으로 친구를 정의한다. 나와 타인의 관계를 ‘휘도’와 ‘조도’라는 개념에 비추는 부분에서도 안희연 특유의 맑고 사려 깊은 시선을 엿볼 수 있다. 특정 면적에 직접 도달한 빛의 양을 말하는 조도와 그렇게 도달한 빛이 반사되어 우리 눈에 얼마나 들어오는지 측정하는 휘도를 분별한 다음, 사람과 사람은 ‘휘도’의 방식으로 관계 맺음을 통찰한다. “내가 여기 있어서 당신을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당신이 먼저 거기 있기에 이렇게 나도 당신 눈 속에 담길 수 있습니다.”(p.62) 당신을 통해 나를 보듯, 안희연은 그렇게 ‘단어’를 통해 ‘삶’을 본다. 단어에서 단어로 미끄러지는 도미노 놀이는 평범한 일상에 다채로운 무늬를 그리며 계속된다.


삶에 대한 충실성만으로도 예술에 이를 수 있다
나의 작은 말들의 놀이터에서


『단어의 집』에 사는 안희연은 ‘문학하는 사람’이기 전에 당장 오늘 저녁 메뉴를 고민하기 벅찬 생활인이다. 대파 한 단에 7천 원이라니 말세도 이런 말세가 없다 중얼거리고, 단추 하나를 다는 데 6천 원이라는 말에 무거운 겨울 점퍼를 도로 들고 세탁소에서 집으로 되돌아온다. 만지기만 해도 물건을 고장 내는 재주(?)가 있으며 어떤 사양의 노트북이 필요하냐는 점원의 물음에 한글 작업과 인터넷이 필요하다고 대답하는 기계치이기도 하다. 삶이라는 매일의 과업 속에 복닥거리는 시인의 하루를 그는 담백하고 진솔하게 보여준다. 제빵 용어인 ‘탕종’이라는 말을 알고 나서, 탕종법으로 만들어진 빵이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모습을 닮았음을 깨닫는 부분은 그야말로 탕종빵의 식감처럼 찰지고 촉촉하다.

“탕종 기법으로 만들어진 빵은 유달리 식감이 훌륭하고 결대로 부드럽게 찢어지며 손가락으로 꾹 눌러도 천천히 원상태로 돌아온다고 한다. 이 문장들은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찢어지더라도 결대로 부드럽게 찢어질 수 있는 유연함, 그리고 충분한 회복력을 지닌 삶.”_161~162쪽

눈이 온다고 환호하며 모자와 장갑을 챙겨 밖으로 달려 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창문을 걸어 잠그고 커튼을 치는 이유,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들이 온통 책망의 눈이 되어 자신을 혼내는 듯했던 밤의 기억들은 저마다의 상실과 후회를 이고 사는 ‘평범한 우리’의 슬픔과 맞닿으며 고요한 위로를 건넨다. 동시에 이 ‘사사로운’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드라마나 신화 없이도, 삶에 대한 건강한 충실성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든 예술의 세계에 이를 수 있다”(p.140)는 저자의 철학을 보여준다. 건강한 충실성 속에 틈틈이 자신을 위로하는 ‘놀이’ 같은 단어들이 있을 뿐이다. 어떤 단어는 기울기가 상당한 미끄럼틀이었고 어떤 단어는 혼자 탈 수 없는 시소였다. 그 놀이터의 모래 속에 시가 있고 문학이 있음을 『단어의 집』을 들여다본 독자는 자연스레 알게 된다. 그것이 문턱도 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것 또한.


쓰고, 가르치고, 다짐하는 삶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단어의 문을 열어보는 쪽으로


2018년 온라인서점 예스24가 시행한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투표에서 시 부문 1위를 차지했던 저자는 202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교수로 임용되어 동시대의 고민과 감각으로 문화예술인을 양성하고 있다. 그는 새 학기 첫 시간, 자기소개를 대신해 단어 세 개를 건넨다. ‘녹는점, 어는점, 끓는점.’(p.171) 선생과 학생들은 세 단어를 돌다리 삼아 자신의 온도와 색깔을 나눈다. 사는 곳, 나이, 학벌 따위가 아니라. 과학에 쓰이는 용어지만 이 시간만큼은 그 무엇보다 문학적인 영혼이 드나들 길을 열어주는 단어들이다.

“사각거리는 연필소리. 손등에 돋아나는 힘줄. 집중하는 입. 나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하고 있다. 문학의 자장 안에 놓여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단단한 결속력을 느낄 때가 많다. 왜 하필 문학인가요. 세상에 재미난 게 얼마나 많은데.”_172쪽

시 쓰는 일을 업으로 삼다 보면 단어가 그저 단어가 아니라 자신을 이루는 피와 살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고 저자는 말한다. 시 쓰는 일을 업으로 삼겠다며 자신을 찾아온 이들과 그러한 감각을 나누는 것도 『단어의 집』에 사는 큰 기쁨이다. 그는 쓸 것이 고갈되어 못 쓰겠다는 학생들에게 “만일 네가 충분한 시인이라면 그런 보잘것없음에서도 시를 불러낼 것”(p.204)이라 말하는 동시에, 정작 자신은 녹화된 영상을 반복 재생한 것처럼 관성적으로 살고 있는 건 아닐지 수시로 얼굴을 들여다보는 선생이다. 선생이라는 호칭이 종이호랑이처럼 여겨질 때마다 자신을 ‘시인’으로 살게 했던 선생님들의 말씀, 그 말씀으로 백지를 채우며 나아갔던 순간들을 되새기는 마음도 깊고 미덥다.

“장수(將帥)는 태생이 장수인 것이 아니라 매 순간 결심하기에 장수인 것이라는 나의 시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한다. 나는 그 말을, 자신감은 영원히 생기지 않을 것 같으니 대신 믿음의 크기를 키워보자는 말로 바꿔 읽는다.”_167쪽

안희연은 〈빚진 마음의 문장〉(『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 수록)이라는 시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단어의 문을 열어보는 쪽으로 나의 시가 움직였으면 좋겠다”라고 썼었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발견되고 발명되어 자신만의 사전에 등재되는 단어들의 목록을 늘리는 것을, 그는 여전히 목표로 한다. 목록이 늘어날수록 세계의 비밀은 드러나며 우주는 넓어진다. ‘아름다움 쪽으로’ 유영할 가능성이 커진다. 자신이 목격한 세계의 배면이 담긴 『단어의 집』에 안희연이 독자를 초대하는 이유다.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안희연은 누군가 말을 하기도 전에 귀를 먼저 내미는 사람이다. 그는 잘 듣는 사람, 열린 사람, 그리하여 ‘다르게’ 보는 사람이다. 그게 시에 관한 거라면, 이것인지 저것인지 헷갈린다면, 산뜻한 대답이 필요하다면, 나는 항상 안희연을 찾는다(그도 잘 알 것이다). 그의 눈과 귀, 입과 ‘쓰는 손’을 믿기 때문이다. 이 책엔 “단어 생활자” 안희연의 일상과 걸음, 시선과 사유, 다정한 태도가 담겨 있다. 이야기는 단어에서 시작해 생활의 복판에서 끝난다. 문장은 쉽고 따뜻하며 빛난다. 언어를 오래 살피는 사람이 종국에 어디에 도착하는지, 그를 따라가다 보면 이상하게도 잘 살고 싶다는 의욕이 솟아난다. 읽는 내내 귀가 활짝 펼쳐져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가 내는 소리라면 허밍이라도, 단 한 박자도 놓치고 싶지 않다.
- 박연준 (시인, 『쓰는 기분』 저자)

회원리뷰 (22건) 리뷰 총점9.5

혜택 및 유의사항?
단어의 집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싱* | 2022.04.04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안희연이라는 이름이 나한테도 전해지는 걸 보니 대세 시인인 듯하다. 알아보긴 해야겠는데 시알못은 산문집으로 타협한다. 책이 어땠냐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너무너무 좋았더라는 한마디”로 정리하고 싶다. 시인의 언어사전이 이렇게 알찬 에세이(어원이 시도)가 되다니, 읽는 도중 언뜻언뜻 박연준 시인이 지나갔다. 왜? 아빠와 할머니를 품고.. 씩씩하게 시와 한남자를 사랑;
리뷰제목

 안희연이라는 이름이 나한테도 전해지는 걸 보니 대세 시인인 듯하다. 알아보긴 해야겠는데 시알못은 산문집으로 타협한다. 책이 어땠냐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너무너무 좋았더라는 한마디로 정리하고 싶다. 시인의 언어사전이 이렇게 알찬 에세이(어원이 시도)가 되다니, 읽는 도중 언뜻언뜻 박연준 시인이 지나갔다. ? 아빠와 할머니를 품고.. 씩씩하게 시와 한남자를 사랑하는 유연한 기픈(깊은, 기쁜 조합ㅎㅎ) 성장을 보여주는 까닭이다. 벽돌 같고 장벽 같은 에고와 문학 사랑이 아니라 생활과 생명들과 밤의 침묵을 세심히 주물럭거린다(갈변한 사과에게 울었냐고 묻는데 찡했자나~ 눈사람의 마지막 밤은 또 어떻고, 주먹 불끈 쥐게 하자나~).

 이번 대선은 내게 나에 관한 많은 걸 알려주는 건널목이었다. 졌잘싸, 라면서 왜 혈압이 치솟고 분개하는지 들여다봐야했다. 내 안에서 이기지 못해도 적어도 비기는 승부로 자리해야했다. 그래야 본래 자리로 돌아와 일상에 몰입할 수 있으니까. 당선인은 사람과 눈을 맞추고 진실로 대화할 줄 모른다. 그리고 그 주변인들과 옹호자들도 비슷하다. 예외 없이 자기들에게 속하는 더러운 습성을 상대에게 뒤집어씌운다. 배우자의 은 올해 내가 품은 물음표 중 하나다. ‘대체 뭐지?’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대답은 내가 아는 모든 죄악foul의 총체라는 사실이다. 쇼통부부 모두 뇌과학 느낌적으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

 이런 견디기 힘든, 믿고 맡길 수 없는 상태를 단어의 집이 열고 들어와 적절한 햇살과 바람을 드리운다. 원래 내 호흡과 평정을 되찾도록, 언제나 네 마음이 옳으니 믿고 가보라고 독려한다. 한참 동생인데 인생친구를 얻은 듯 든든하다. 이야기를 줍고 모아 되살리는 단어생활자와 나란히 오래 걷고 싶은 아름다운fair 마음 다 알자나~~

 


 

 버티어 대항하는 힘은 어디에나 반드시 있어. (17)

 

 우리 모두가 잔의 외형이나 크기로 인해 차별당하거나 파괴당하지 않도록 서로가 서로의 규모를 존중하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25)

 

 버저 비터가 운 좋게 골대를 통과한들 득점으로 인정될지 아닐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일단은 던져보는 태도.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공으로부터 끝까지 시선을 거두지 않는 집중력... 다른 선수 과실일 땐 괜찮아!” “할 수 있어!” 어깨든 팔뚝이든 꼭 한번 두드려 독려하며 공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저 너른 품. (57)

 

 내가 당신을 통해서존재한다는 발상은 우리의 삶을, 관계를, 미래를, 어떻게 회전시킬 수 있을까. (61)

 

 그렇게 가능했다. 내가 지금 탁하구나. 어리석구나.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도 문제지만 보이는 것만 보는 것도 문제구나. 보여줬는데 못 보는 건 더 심각한 문제구나. (104-105)

 

 아마도 악마는 내 맞은편에서 밥을 먹고 있다. 악마 주제에 반찬투정을 하면서... 녀석은 뻔뻔하게 내 앞으로 빈 밥공기를 내민다. 허기로 가득한 눈. (116)

 

 오늘 당신은 어떤 손을 가졌습니까. 그 손안에 무엇이 있습니까. 따뜻합니까. (121)

 

 우리는 모두 정성과 사랑으로, 기도로 길러진 존재들이다. 포도밭의 태양, 포도밭의 평화를 떠올리면 삶에 찢기고 벌려진 상처가 소독되는 기분이다. 슬픈 말이지만, 우리는 모두 그 시간으로부터 와 여기에 있다... 당신의 삶이 완전히 망가져버렸다고 생각될 때에도 당신과 보이지 않는 실로 묶여 끝끝내 반짝이는 세계, 당신의 빈야드가. (124-125)

 

 내가 갖고 싶은 무기도 그런 무기인 것 같다. 날카롭되, 폭력에 가담하지 않는. 이왕이면 가장 깊고 캄캄한 고독을 찌를 수 있는. (152)

 

 이기는 경우? 물론 없다. 애초에 삶과의 싸움이란 이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지는 순간과 비기는 순간을 적절히 뒤섞으며 살 수 있다면 그 하루하루를, 그럭저럭 견딜만한 인생 아닐까. (156-157)

 

나는 단어 하나로도 나를 지킬 수 있다. 단어가 빵처럼 부풀고 종처럼 울려 한 사람의 집이자 우주가 된다는 것. 참 따뜻한 움막이다. 뜻밖의 신비다. (163)

 

 당신은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의심합니까. 가장 깊이 찔린 기억과 가장 높이 뛰어올랐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어떨 때 흩어지거나 맺힙니까. 그러니까 당신의 온도, 색깔, 질감, 경도는 어떠합니까. 묻고 싶고 듣고 싶은 당신이 거기 있다. (172)

 

내가 쓴 문장들이 징검다리가 될 때가 있다. 과거의 문장을 딛고 현재의 문장을 내려놓는다. 현재의 문장을 딛고 미래의 문장을 내려놓는다. 그렇게 간신히 한 걸음씩 나아간다. 망망대해 같은 바다를. 말과 사람이 함께, 느리더라도 함께.

 그러니 하던 걸 하자. (179)

 

 이제 더 이상 다른 세계로의 탈출을 꿈꾸지 않고 그냥 거기, 그 방의 흰 벽에 빛이 가득한 창문을 그리기로, 갇혀 있어도, 천국이 아니어도, 지워지면 그만일 창문이더라도, 내가 분명히 그렸고 그 과정이 진실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 (185)

 

 미래의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복숭아나 마 아닌 무엇이 언제 또 나의 손을 부풀게 할지 알 길 없지만... 그 시간을 통과해왔기 때문에 마를 만질 땐 꼭 장갑을 끼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러니 오늘의 나는 오늘 쓸 수 있는 문장을 쓰면서 이곳의 나를 찾아올 밀코메다의 시간을 기쁘게 맞이하고 싶다. (192; 196)

 

 시드볼트에 담긴 진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슬픔 대신 복숭아라고 말할 것이다. 언젠가는 복숭아의 외피를 두르지 않은, 슬픔의 맨살을 누설하기 위한 준비를. (235)

 

한 줄의 문장에는 그 문장을 쓴 이의 가치관, 세계에 대한 이해, 감정, 습관과 한계, 그 모든 것이 담기니까. (239)

 

 마음이 건너오는 순간엔 영락없이 녹는구나. 나는. (255)

 

 끗은 타협하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끝이 아닌 끗의 자리에서, 끗과 함께 한 끗 차이로도 완전히 뒤집히는 세계의 비밀을 예민하게 목격하는 자로 살아가고 싶다. (260)

댓글 0 1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
구매 거기에 이르기 위해서는 누구든 적당한 단어의 호위를 받아야... 안희연, 단어의 집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k******i | 2022.03.30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문학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슬픔이라고 말하는 대신 복숭아라고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슬픔은 안으로 감추고 복숭아 이야기만 실컷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전해진다... 오늘도 나는 슬픔 대신 복숭아라고 말할 것이다. 언젠가는 복숭아의 외피를 두르지 않은, 슬픔의 맨살을 누설하기 위한 준비를.” (pp.234~235)     한밤중 나는 고양이 들풀을 향해 소리를 지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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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슬픔이라고 말하는 대신 복숭아라고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슬픔은 안으로 감추고 복숭아 이야기만 실컷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전해진다... 오늘도 나는 슬픔 대신 복숭아라고 말할 것이다. 언젠가는 복숭아의 외피를 두르지 않은, 슬픔의 맨살을 누설하기 위한 준비를.” (pp.234~235)

 

  한밤중 나는 고양이 들풀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이리로 와, 거기로 들어가지 마, 그거 물어 뜯지마... 잠시 멈춘 고양이 들풀은 거기서 나를 가만히 쳐다본다. 정말 가만히 쳐다본다. 미동도 하지 않는다. 내가 고개를 모니터로 가져오는 척하였다가 휙 돌아보면 좀전의 그 자세 그대로이다. 그러나 모니터를 향한 채 한 문단 정도를 쓰다가 고개를 휙 돌리면 어느새 또 다른 말썽거리를 찾아낸 뒤이다. 나는 다시 맨살 같은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튤립의 비밀을 말해줄게. 튤립을 사다 꽃병에 꽂으면 꽃송이가 테이블에 닿을 지경으로 축 늘어져버린다? 사람 손이 닿으면 그래(임상 실험으로 몇 번 확인). 최대한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면 물을 머금고 어느새 꼿꼿하게 선다. 그때 예쁘다고 줄기에 손을 대면? 그대로 콱 죽어버리겠다고 결심한 듯 금방 푹 고꾸라져. 겨울 냉기로 스스로를 지키고, 꺾인 후에도 아무 도움도 필요 없다는 듯이 구는 튤립을 보면서 혼자 오래 감상에 젖었더래지. 그래. 너는 그렇게 살고, 그렇게 꽃피우고, 그렇게 시들거라. 응원하게 되더라. 같은 마음으로 네게도 또 한번 응원을 보낼게.” (pp.51~52, <월간 여름> 2021년 3월 호에서)

 

  어느 때 나는 복숭아라고 말해진 것을 좋아하고, 다른 때 나는 슬픔의 맨살을 좋아한다. 과거에는 복숭아라고 말해진 것을 더 좋아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맨살 쪽을 더욱 좋아하는 것 같다. 어쩌면 《단어의 집》을 쓴 작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매달 ‘월간 여름’이라는 제목으로 보내는 독일에 사는 친구의 손편지를 향하여 진실 가득한 찬사를 보낸다. 나라도 그럴 것 같다.

 

  “매년 12월 31일에만 펼치는 노트가 있다. 무늬 없이 샛노랗고 크기는 손바닥보다 약간 작으며 겉면에는 ‘NOT TOO LATE’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한 해의 마지막 날에만 펼칠 수 있는 건 그것이 내 새해 소망을 모아둔 금고이기 때문이다. 새해 소망을 구구절절하게 적는 것도 금지된다... 딱 한 줄일 것.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일 것. 진심일 것... 새해 소망을 아예 쓰지 않겠노라 작정한 시간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의 백지는 어딘가 무책임해 보였다. 말뚝에 묶인 양을 풀어주되 초원을 떠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여기는 내 집, 내 삶의 장소이니까... 노트는 그렇게 탄생했다. ‘까다로운 작은 소망들’을 늦지 않게 채집하기 위함이었다.” (pp.80~81)

 

  산문집의 제목은 ‘단어의 집’이지만 실린 글들이 단어에 천착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삶 전체를 아우르는데 그렇게 아우르는 주체가 시인이다보니 저절로 단어들에 보다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정도로 이해하며 읽을 수 있다. 생각해보면 사물을 보든 상황을 보든 사람을 보든 단어를 통하지 않고 거기에 가서 닿을 수는 없다. 거기에 이르는 적당한 길을 걷기 위해서는 누구든 단어의 호위를 받아야 한다.

 

  “... 나에겐 예술가의 탄생을 그린 서사가 불편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예술가를 불우하거나 광기 어린 존재, 사랑에 갈급한 존재로 묘사하는 등의 서사에서. 왜 꼭 무언가를 관통해야만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다는 듯이 말하는 걸까. 드라마나 신화 없이도, 삶에 대한 건강한 충실성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든 예술의 세계에 이를 수 있고 개성 있는 예술가로 살아갈 수 있는데(언제나 나는 예술가는 절대적으로 제정신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p.140)

 

  적절하게 단어의 호위를 받다 보면 제대로 된 목적지에 도달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문필을 업으로 삼고 있든 그렇지 않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적절한 단어의 호위를 받기 위해서는 그만큼 ‘절대적으로 제정신’을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작가는 잘 알고 있다. 모든 성장에는 광기라는 에너지가 포함되어 있다. 광기가 없는 성장은 없다. 과장된 광기와 포장된 성장이 좀더 눈에 띌 뿐이다. 

 

  “내가 쓸 수 있는 건 죽음 이후가 아니라 죽음 같은 삶으로부터 기인한 문장이다. 이 거대하고도 비좁은 묘실에서 보물인 줄도 모르는 보물들과 종종거리며 살아가는 이야기. 헛되고 헛되다는 말을 반찬 삼아 갓 지은 밥 앞에서는 주먹을 불끈 쥐는 이야기. 고고학자나 철학자의 사유보다는 허무맹랑하겠지만 그래도 이따금 정해진 선로를 이탈해 우주 바깥으로 상상적 여행을 떠나게 하는 시의 이야기.” (p.201)

 

  결국 말썽을 멈추지 않는 고양이 들풀을 향하여 분무기 공격을 감행했다. 고양이는 물을 싫어하고, 아내는 고양이에게 물을 뿌리는 나를 나무라지만 어쩔 수 없다. 정수리와 등에 물을 맞은 들풀은 잠시 나를 피해 도망쳤다가 다시 내게 다가오며 운다.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어 몇 번 더 꾸짖으면 풀이 죽은 채로 내 옆에 와서 앉는다. 그루밍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나는 그 사이에 얼른 리뷰를 마무리 짓는다. 


안희연 / 단어의 집 / 한겨레출판 / 260쪽 /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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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포토리뷰 단어의 집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컬**드 | 2022.03.17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날마다 좋은 날, 날마다 생일이라는 마음으로. / p. 131   가끔 단어를 몇 번 반복하면서 중얼거리다 보면 갑자기 그 단어가 낯설어지는 순간이 온다.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될까. 그냥 단어만 말할 뿐인데, 묘하게 그런 느낌을 받는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던 단어가 나와 손절을 치는 기분. 그럴 때마다 내가 뭔가 이상해지는 것 같다.   이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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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좋은 날, 날마다 생일이라는 마음으로. / p. 131

 

가끔 단어를 몇 번 반복하면서 중얼거리다 보면 갑자기 그 단어가 낯설어지는 순간이 온다.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될까. 그냥 단어만 말할 뿐인데, 묘하게 그런 느낌을 받는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던 단어가 나와 손절을 치는 기분. 그럴 때마다 내가 뭔가 이상해지는 것 같다.

 

이 책은 안희연 시인님의 산문집이다. 요즈음 독서를 하면서 모르는 단어들을 검색할 기회가 많아졌다. 단어의 뜻을 검색해 머리에 채우는 나름의 쾌감도 있는데, 제목에서부터 큰 관심이 생겼다. 저자가 시인이기 때문에 소설에서 보지 못했던 또 다른 단어의 세계로 나를 이끌 것 같았다. 마치 나에게 오라고 손짓을 하는 느낌. 목차를 보니 아는 단어들도 있지만, 모르는 단어들도 많아서 냉큼 구매를 했으나,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저자는 스스로를 시인이 아닌 '단어생활자'라고 소개한다. 그 이유는 책의 주인이 말의 최소 단위인 단어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단어가 저자를 이루는 피와 살처럼 느껴질 때가 많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읽다 보니 맞는 말이었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생활속에서 나오는 단어를 생산적으로 소비하는 사람. 시인, 소설가 등 보편적으로 일컫는 직업과 다른 의미로 느껴졌다. 그런 의미로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저자의 일 년간의 기록. 일상생활을 하는 중간에 툭 튀어나오는 단어로 추억에 빠지거나 상상력을 펼치거나, 또는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고자 하는 내용이었다. 모르는 단어는 내가 가지고 있는 단어의 이미지 자체가 없기 때문에 별 생각이 안 들었으나, 내가 알고 있는 단어들은 문학과 거리가 멀다고 느껴졌다. 플레뢰와 비저비터는 체육에, 네온과 규모는 과학에 가까운 단어일 텐데 이러한 단어들이 어떻게 문학적으로 재탄생이 될까.

 

개인적으로 유루, 탕종, 덖음이라는 세 개의 단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유루는 눈물을 흘린다는 뜻인데, 책에서는 강아지의 유루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여기에서 유루증이 강아지의 눈물 자국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눈물은 공기와 결합하면 갈색으로 변한다고 하는데, 말티즈 견종에서 자주 발생하는 눈 아래 갈색 줄이 유루증으로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는 것도 좋았지만, 사과의 갈변은 사과가 운 흔적일까? 라는 저자의 표현이 이 단어를 문학적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머리에 각인이 되는 말이었다.

 

탕종이라는 단어는 효모의 힘을 빌리지 않고 반죽 단계에서 따뜻한 물을 넣어 빵을 만드는 방법이다. 책에서는 단호박크림치즈 탕종식빵을 구입하는데, 여기에서 탕종은 마법의 주문이 되었다. 저자는 단어를 잘못 말하거나 적을 때에 아멘처럼 탕종이라고 외쳤다. 두렵거나 슬픈 일이 생길 때마다 탕종, 탕종,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했다고 하는데, 나는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탕종, 탕종, 똑같이 말하고 있었다. 나에게도 안전한 막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덖음이라는 단어는 찻잎의 공정 중 하나로 불에 볶는 과정을 말한다. 덖음과 유념이 사람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매일 들볶이는 과정을 덖음에, 매일 여기저기 치이는 과정을 유념에 비유해 이러한 과정이 향기롭고 귀한 찻잎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한다. 찻잎이 사람이고, 물이 세상이라면 그리고 어차피 담겨야 하는 과정이라면 그것을 믿고 안겨보자는 것. 이는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던 나에게 뜻하는 바가 큰 메시지였다.

 

읽으면서 많은 단어들과 저자의 다정한 이야기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았다. 처음에는 저자의 이야기에 울컥하는 부분도 있었으나, 대부분 많이 웃었다. 겨울왕국의 엘사와 가위손의 에드워드를 보면서 공감하거나, 예의를 갖춰야 하는 자리에서 베지밀 이야기를 꺼내는 과거를 반성하는 등 흔히 시인이라고 생각했을 때의 이미지와 다른 소탈한 모습에 웃게 되었다. 시인이라는 모습 자체가 내가 가진 또 하나의 편견이겠지만 말이다.

 

문학적인 표현과 삶의 의미로 재탄생된 단어의 변신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이 역시도 단어생활자 선생님의 능력이지 않을까. 일상이나 생각들을 독자들에게 아낌없이 전달해 주셨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독서하면서 단어들을 정리해 그 중 하나를 골라 한 문장 짓기 라는 작은 퀘스트를 떠올렸다. 이렇게 하나씩 하다보면 나도 저자처럼 단어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단어생활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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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4건) 한줄평 총점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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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평점4점
그냥 지나쳤던 단어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져보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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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로얄 책**꽃 | 2022.02.07
구매 평점4점
모든 글의 시작은 단어 하나로부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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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로얄 쿠*칸 | 2021.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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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표현은 무궁무진하다. 짧은 앎으로는 아름답다는 표현외 할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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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골드 c*****g | 2021.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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