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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알거나 무엇도 믿을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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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6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135*210*20mm
ISBN13 9791167373106
ISBN10 116737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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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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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실 분이 있으면 앞으로 나오십시오.”
이기한 목사의 목소리가 교회 안에 울려퍼졌다. 이장댁은 인용을 향해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 비극적인 사고가 있었을 때, 이장댁은 소문 하나를 들었다. 인용과 민경의 가족이 해인마을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고. 특히 인용이 그랬다고. 막내딸을 빼돌리고 싶어 했다고. 그러다가 그 사고를 당한 거라고 했다. 허황되고 근거 없을 뿐 아니라, 모욕적인 이야기였다.

이장댁은 소문을 믿지 않았다. 그래. 소문은 그저 소문일 뿐이니까. 하지만 아주 가끔, 이장댁은 인용을 보고 있으면 그 소문이 떠오르곤 했다. 마을을 떠나려 했던 자. 사라지려 했던 자.
감히 그것을 시도했던 자.
---「강화길_꿈속의 여인」중에서

새로운 밀레니엄의 도래로 세상이 떠들썩하던 무렵, 갖가지 디지털 제품 출시와 함께 영상 산업은 호황을 누렸고, 도시 곳곳에 무료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영상 자료실이 들어섰다. 3호선과 4호선을 잇는 환승역이자 한국 영화의 산실인 충무로에도 역사 지하 통로에 영상센터가 개관했다. 잡귀들은 센터의 벽장을 가득 채운 DVD 자료에 곤히 잠들어 있었다. 누군가 동그랗고 납작한 디스크를 기계에 넣고 재생하면 잡귀들은 알라딘의 램프 속 정령처럼 압축 파일에서 풀려나 지하철로 향했다

잡귀들의 생김새는 영화 속 배우들과 닮아 있었다. 그러나 겉모습만 따왔을 뿐 실제로 영화에 출연했던 사람이 죽어서 잡귀가 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진열대에 수북하게 쌓인 옷 중에서 하나를 고르듯 영화 속 이름 없는 단역의 형상을 뒤집어썼다고 할까. 영화에 출연한 수많은 엑스트라가 잡귀의 몸이 되었다. 주인공을 지나쳐가는 행인이나 멀리서 바라보는 구경꾼, 재난이 벌어지면 떼죽음을 당하는 익명의 무리, 우르르 등장했다가 좌르르 죽어가는 졸병, 한마디로 대사는커녕 배역 이름조차 없던 사람의 형상이 귀신 중에서도 서열이 낮은 디지털 잡귀가 되어 땅 밑을 떠돌았다.
---「김멜라_지하철은 왜 샛별인가」중에서

처음에 호정은 그것이 귀신이라고 믿었다. 시간이 흐른 다음에는 자신이 불필요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가 일종의 환각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어떤 사람들이 그것의 존재를 그렇게 설명해주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여자들만 임신 중지에 대해 상처를 받고 죄책감을 느끼기에 그것을, 그것과 비슷한 것을 여자들로 하여금 보고 듣고 느끼게 한다고.
---「서장원_소공」중에서

네 번째 마스크가 발견된 곳은 서울시 강동구 천호동에 위치한 꽃집이었다. 어떻게 읽는 건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인스타그램 계정의 소유주는 호들갑을 떨며 이렇게 썼다.

오늘 아침에 저희 #꽃집 에서 발견된 #빨간마스크! #코로나 시국에 #마스크 가 무슨 대수냐 싶으시겠지만 #어린시절 정말 유행했던 #도시괴담 생각이 나서요. 그때는 마냥 무섭기만 했는데 지금 보니까 웃기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네요. 요새 #서울 곳곳에서 이렇게 새빨간 마스크가 발견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강동구 #천호동 에서는 저희 가게가 처음이라고 합니다. 간밤에 정말 #귀신 이라도 다녀간 게 아닐지~?
#괴담 #귀짤 #라떼괴담 #라떼는말이야 #서울꽃집 #강동구꽃집 #천호동꽃집 #꽃다발 #프리저브드플라워 #반려식물 #플라워디자인
---「이원석_마스크 키즈」중에서

선생님.
네.
위험이 제로인 건 아니잖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러니까, 우리가 아직 모르는 위험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거잖아요. 선생님 말씀처럼 얼마 전만 해도 RNA 백신이 불가능하다고 했다면서요? 지금이야 다들 괜찮다고 하지만 나중엔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거 아닌가요?
나를 빤히 보며 묻는 혜린을 힐긋 보는데 언젠가 서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참, 디피컬트하군.
난처했다. ‘빨리 나왔다’와 ‘검증이 부족했다’라는 명제가 상호 독립적이라는 사실부터 못 박아야 할지, 예전에 틀렸던 사례를 안다는 것이 지금 내가 옳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준칙부터 설명해야 할지, 과학의 불완전성이나 집단면역의 원리에 대해 개괄적인 강의라도 해야 할지 머리를 굴려보았으나 어떻게 답하더라도 도돌이표를 돌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세상 무해하게 활짝 웃어 보였다.
그럼요, 당연하죠!
---「이현석_조금 불편한 사람들」중에서

그녀가 베란다 창문에 이마를 대고 화단을 내려다봤다.
안녕. 그녀가 말했다. 너 좀 무섭게 생겼다.채원보다 머리 하나가 작은 형체가 그녀를 올려다봤다. 끈적한 액체를 쏟아부은 것처럼 이목구비와 몸이 흐릿했다.
이름이 뭐야? 채원이 묻고는 낮고 희미한 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왜 여기 있어?
거실 창을 잡고 그녀를 거실로 끌어당길 채비를 했다.
눈이 내려서…… 사방에 혼이 너무 많대. 채원이 나를 돌아봤다. 누굴 기다리는 중인데 밖은 무섭다고 하네.
기다리든 말든. 못 들은 척해. 내가 말했다.
눈에……. 채원이 말을 계속했다. 내가 가져온 눈이 녹아서…… 그렇다고? 그래서 보이는 거래.
태연한 그녀의 얼굴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채원이 몸을 숙이고 무어라 중얼거렸다. 흐릿한 형체가 웅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허락해줘야 들어올 수 있대. 그녀가 말을 전했다
---「전예진_베란다로 들어온」중에서

피터 사사키가 그날 잉카 보로메오를 통해 알게 된 건 “이름 붙일 수 없는 소사이어티”라는 집단이었다. 이들은 말 그대로 이름 붙일 수 없고 붙여서도 안 됐는데 그것은 그들이 고대로부터 무한을 다룬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무한은 인간이 그것을 인지한 순간부터 절대악과 동등한 취급을 받았다. 나쁘거나 사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형용할 수 없고 사유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논리학에 흑사병이 있다면 그건 바로 무한이라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말했다. 무한은 신을 위협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그것을 존재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중략) 피터 사사키는 진양에게 경험가능한무한을 촬영해줄 것을 의뢰했다.
---「정지돈_무한의 상태」중에서

“SC-8816? 이게 뭔데요?”
미연이 인터넷 포털 사이트로 화면을 바꾼 뒤, 검색창에 영수증에 찍힌 사업장 이름을 입력했다.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웹사이트가 떴다. 상품 코드 SC-8816. 그건 실시간 와이파이 연결이 가능한 초소형 카메라였다. 방범용 CCTV로 활용하라는 설명이 있었지만 주로 어디에 쓰이는지는 뻔했다.
“몰카예요.”
혜영이 말했다. 그 영수증은 지난주 시스템 결재 내역을 모니터링하던 미연이 발견했다. 결재가 요청된 내용은 출장 식비였고, 금액은 2만 원이었다. 그런데 전혀 다른 4만 원짜리 영수증이 첨부되어 있었다. 결재를 올린 사람이 영수증을 스캔하면서 실수를 한 게 분명했다. 흔한 일이었다.
---「조우리_모르는 척 하면서」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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