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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지만 매일 씁니다

: 사소하지만 꾸준히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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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7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452쪽 | 128*188*30mm
ISBN13 9791197606953
ISBN10 1197606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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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MD 한마디

[평범한 매일이 모여 특별한 사람으로] 귀찮 작가의 매일이 담긴 에세이. 그가 1년 365일을 자신을 들여다보며 쓴 매일 하루치의 발견들은 하루씩 더 나은 자신을 만들어가는 길이 되었다. 평범한 일상이 특별해지는 방법은 꾸준한 것임을 알게 된 귀찮의 가장 나다운 나를 찾는 1년의 기록이 담긴 책. - 에세이 PD 이나영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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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돈 버는 일, 각박한 세상 어딘가에 내 자리를 잡고 사는 일이 제일 중요했는데, 요즘은 싱크대 거름망을 씻거나 나물을 먹기 좋게 다듬는 것과 같이 내 살림을 가꾸는 일이 돈 버는 일만큼이나 중요해졌다. 언젠가는 잘나가는 사람이 되어 곳곳을 누비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며 끊임없이 영감을 받고, 그리고 쓰고…. 이게 꿈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냥 이렇게 살림살이, 세간살이를 구석구석 보살피고 사용하고 정리하고 신선한 먹거리를 정성껏 요리해 든든히 먹고 사는 게 좋은 것 같다. 오히려 이런 여유를 잃으면 더 슬플 정도로.
--- p.16

좋은 생각이 떠올랐을 때, 그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선 반드시 평소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어야 한다. 그게 아무리 형편없는 글과 그림이래도 매일 그리고 쓰고 있어야 진짜 좋은 생각이 났을 때 그 생각을 놓치지 않고 표현할 수 있다. 아홉 번의 형편없는 글 없이 열 번째의 좋은 글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부족하고 엉망일지라도 매일 그리고 쓰기 위해 나 스스로 하는 다짐. 그러니 오늘도 이토록 형편없는 일상을 기록하자.
--- p.35

언젠가 ‘죽음’ 하면 무슨 색이 떠오르냐는 질문에 나는 검은색을 떠올렸는데 아빠는 갈색이라고 했다.
“나무가 처음부터 갈색인 건 아냐. 살아 있는 나무를 베어보면 흰색이 나오거든. 죽어가면서 서서히 갈색이 되는 거지. 사과도 마찬가지야. 금방 쪼갰을 땐 흰색인데 죽어갈수록 갈색으로 변하지. 그걸 갈변이라고 하고….”
지난주만 해도 우중충한 갈색이던 앞산에 조금씩 연둣빛이 감돌고 있다.
--- p.201

오후 8시 무렵 마을 전체에 정전이 되었다. 불도 인터넷도 전화도 안 된다. 옆집 할머니가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며 바꿔주셨다. LTE인 동생과 내 폰은 안 되고 할머니의 2G폰은 되는 것이다. 다행히 물은 나온다. 라디오도 된다. 라디오에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아이유의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가 나온다. 동생은 심각한데 나는 뭔가 웃기다. 이 노래가 이렇게 달달했나. 손전등을 켜놓고 설거지를 했다. 6시에 광고 콘텐츠를 올려놓고 효율이 잘 안 나와 심란하던 차였는데 확인할 수도 없다. 가만히 나무 심지로 된 초가 타닥타닥 타는 소리만 듣고 있다. 이대로 계속 안 되면 냉장고 속 음식이 다 상할 테고, 온수가 안 나와 샤워도 제대로 못 할 텐데 왠지 자꾸 미소가 지어진다.
--- p.274

할머니의 88번째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집업실로 모시고 왔는데 도리어 내 생일처럼 할머니가 곳곳을 돌봐주고 있다. 다부진 표정으로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목장갑을 끼고 장화를 신은 할머니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잡초를 뽑고 메마른 겉흙을 파서 보드랍게 일구셨다. 그리고 지난해 뿌리째 뽑아 말린 뒤 그대로 창고에 넣어두었던 조선배추와 삼동초를 손으로 슥슥 문질러 까만 씨를 받아내고, 후 불어 지저분한 겨를 정리하고, 동생과 내가 심어둔 가지와 고추의 지저분한 가지들을 잘라내셨다. 서른셋의 내가 하루 종일 해도 티 안 나던 밭이 여든여덟 할머니의 손에 반나절 만에 번듯해졌다. 오랜 시간 흙과 친하게 지냈던 사람의 몸에 밴 지혜와 습관은 따라갈 수가 없다.
--- p.305

집업실에 오니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목포와 서울에서 지내는 동안 떠오른 생각과 영감을 정리하게 된다. 설거지를 하며, 가지와 토마토를 따며 ‘이렇게 해봐야지, 저렇게 해봐야지’ 하면서 말이다. 시골에 살아서 좋은 점은 이거다. 반짝거리는 곳에서 계속 머물렀다면 휩쓸리다 끝났을 텐데 여기선 물리적으로 고립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반짝임을 정리할 시간이 있다. 좋은 것들을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 p.318

나는 언제나 당장을 바랐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당장 성공하길, 오늘 심었으니 내일모레 싹이 트고 하루가 다르게 자라길 바랐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라 여겼다. 하지만 이 작은 삼동초조차 때가 맞아야 싹이 튼다. 지금의 나는 어느 계절을 지나고 있을까? 모르겠다. 그래서 어쩌면 이번 책이 때를 놓친 삼동초 씨가 될 수도 있겠다. 그래도 실패라 여기지 말자. 할머니 말처럼 계절은 돌고 도니까. 지금 안 나면 늦게라도 날 것이다. 그때까지 낙담하지 말고 실망하지 않고 계속, 그리고 쓰자.
--- p.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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