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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열대

[ 양장 ] 한길그레이트북스-031이동
리뷰 총점8.1 리뷰 33건 | 판매지수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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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1998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765쪽 | 1222g | 160*230*40mm
ISBN13 9788935651740
ISBN10 8935651745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이 책은 인류학자의 서양인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서로 역사상 문명인임을 자처하며 이른바 미개사회를 마음대로 짓밟고 황폐화시킨 데 대해 비난하고 있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1.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사유에 대한 비판
2. 여행의 마감
3. 여로에서
4. 신세계
5. 대지와 인간
6. 카두베오족
7. 보로로족
8. 남비콰라족
9. 투피 카와이브족
10. 귀로
11. 레비-스트로스의 연보
12. 참고문헌
13. 찾아보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세계는 인간 없이 시작되었고, 또 인간 없이 끝날 것이다. 내가 일생을 바쳐서 목록을 작성하고, 또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될 제도나 풍습 또는 관습들은 만약 이것들이 인간성으로 하여금 그것의 운명지어진 역할을 수행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면, 전혀 무의미해지고 마는 어떤 창조적 과정에서의 일시적인 개화이다. 그러나 그 역할은 우리 인간에게 어떤 독립적인 위치를 배당하지는 않는다. 또한 인간 자신이 저주받을지라도 그의 헛된 노력들은 하나의 보편적인 몰락과정을 저지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 p.742
그리고 썩어가는 나무들의 몇몇 줄기에서 우글거리고 있는 희끄무레한 애벌레 코루(koro)에 관해서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백인들의 조롱에 기분이 상한 인디언들은 자기네한테 그 곤충이 맛있다는 것을 이제는 고백하지 않으려 들고, 또 그것을 먹고 있다는 것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폭풍우로 쓰러진 커다란 피녜이루나무(pinheiro)가 코루를 즐겨 먹는 사람들에 의하여 산산조각이 난 처참한 모습을 땅바닥에서 보려면 숲속을 20-30미터만 돌아다녀도 충분하다.

그리고 어던 인디언의 집에 갑작스레 들어가게 되면-그들이 그것을 재발리 감추기 전에-애벌레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컵을 볼 수 있다. 할 수 없이 마지막 방편으로 우리는 그에게 우리 자신이 코루를 먹고 싶어한다는 것을 이야기하였다. 그 벌레의 몸으로부터 희끄무레한 기름이 흘러 나왔으며, 나는 그것을 망설이다가 맛보았다. 그것은 버터으 단단하고도 섬세한 느낌과 야자 열매의 과즙 같은 맛을 지니고 있었다.
--- p.325-326

회원리뷰 (33건) 리뷰 총점8.1

혜택 및 유의사항?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를 읽고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A****w | 2020.08.26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두꺼운 책이지만<김언호의 세계서점기행>을 읽고 한길사의 책이 왜 두꺼운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는 두꺼운 책 중에서도 손에 꼽는 아주 두꺼운 책이다. 무려 750쪽이 넘는 페이지 수를 자랑한다. 하지만 이런 소위 '벽돌 책'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읽는 기적은 자주 일어나지 않기에 이번 기회를 통해 도전해보고자 하였다.하지만,;
리뷰제목

두꺼운 책이지만

<김언호의 세계서점기행>을 읽고 한길사의 책이 왜 두꺼운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는 두꺼운 책 중에서도 손에 꼽는 아주 두꺼운 책이다. 무려 750쪽이 넘는 페이지 수를 자랑한다. 하지만 이런 소위 '벽돌 책'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읽는 기적은 자주 일어나지 않기에 이번 기회를 통해 도전해보고자 하였다.


하지만, 의외로 '책이 두껍다'는 말이 '어렵고 난해한 책'이라는 사실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책은 보여준다. 현학적이고 추상적인 언어로 읽는 사람 피곤하게 하는 글을 개인적으로 굉장히 싫어하는데, 다행히 이 책은 감상이 주를 이룬다 뿐이지 그런 부류의 책은 아니었다.


또 책들 중에는, 처음부터 굉장히 흥미롭게 읽히다가 점차 후반부로 갈수록 흥미가 식거나 하는 책이 있는 반면, 초반부의 지루함을 견뎌야 책 전체의 달콤한 과실을 따먹을 수 있는 책들도 있다. <슬픈 열대>는 바로 후자에 속하는 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책의 구성

이 책은 기본적으로 단순히 말하자면 기행문이고, 조금 특징적으로 말하자면 20세기 프랑스에서 유행한 '철학적 기행문'이라고 한다. 레비-스트로스는 '구조주의'로 유명한 학자이지만, 기행문의 형태를 띄는 이 책에서 그러한 사상적 측면을 명쾌하게 짚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오히려 이 책에서는 그가 민족학자로서 지닌 고민과 철학적 사유가 두드러진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이 책을 읽고 어떤 대단한 사유를 이끌어내어 독창적인 시각으로 서평을 쓴다기보다는, 결국 레비-스트로스가 기행과 관찰을 통해 느낀점을 공유하고 소개하는 것이 독자로서의 최소한의 도리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전반적인 책 내용 정리와 중간 중간 떠오른 나의 생각을 적어보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한길그레이트 북의 장점 중 하나는, 본 내용이 들어가기 전에 역자 등의 전문가가 해제를 한 사전 설명이 첨부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게 좋은 이유는 책에서 어떤 내용을 중점적으로 볼지,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 밑그림을 그려주기 때문이다.


책의 초반에는 레비-스트로스가 프랑스에서 지내다 최종적으로 브라질로 이동하는 공간의 이동에 따라 내용이 전개된다. 중간 중간 들르는 미 대륙에서의 경험, 배 안에서의 경험 등을 읽어볼 수 있다. 그런 후 책 중반이 되면 이 책의 가장 핵심이 되는 부족들에 관한 기술이 나온다. '카두베오족', '보로로족', '남비콰라족', '투피 카와이브족'의 순서로 각 부족을 관찰한 일지, 느낀 점 등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그가 이동하며 기술한 앞 부분보다 이 부족들을 관찰한 부분이 훨씬 흥미로웠다. 정말 현대에는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그런 인간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가 이 책을 갈무리하면서 최종적으로 하고싶은 말은 '38장 럼주 한잔' 부분에 잘 드러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는 묘미 중 하나는 레비-스트로스의 감상(관찰)과 평가를 잘 구분해 읽는 것이다. 특히 그가 기술한 평가 부분을 집중해 읽다 보면 이 두꺼운 책을 나름대로 소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서로 다른 사회, 서로 다른 인간,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생각

내게 레비-스트로스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말은 이것인 것 같다. "다른 삶에 대해 윤리적 도덕적 판단을 내릴 어떤 근거도 우리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문화 상대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문화 상대주의는 정말 힘든 개념인데(개념의 이해가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그 특성을 따지는 것에서의 어려움), 문화 상대주의가 극단적으로 가게 되는 것에 대한 가능성과 그 반대로 파시즘적인 통제의 가능성 이 두 극단 사이에 놓인 개념이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싶다.


하지만 레비-스트로스는 '더 우월한 사회'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명확히 말하며, 문화 역시도 우열을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한다. 그가 가장 대표적인 예로 든 것이 식인 문화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식인'의 행위를 윤리와 도덕의 영역에서 접근하지 않고 종교와 의식의 영역에서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음식 대신 사람을 먹는 행위로써 식인 풍습이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신성한 종교의식으로써 그 풍습이 전해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는 판결을 내려서는 안된다(p.692)."고 명시한다.


내가 요즘 한창 고민하고 있던 부분에 대해서도 짚는 부분이 있어 공유하자면, 그는

다른 사회들이 우리들 자신의 사회보다 더 낫지 않을 수도 있다. 비록 우리가 그렇게 믿을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증명할 방도가 없다. 그러나 다른 사회들이 우리들 자신의 사회보다 더 낫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사회로부터 소원해질 수가 있다. 이 사실은 우리의 사회가 절대적으로 악하다거나 또는 다른 사회가 악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우리의 사회는 우리가 뛰어넘어야 하는 유일한 사회라는 점을 나타낼 뿐이다.

p.705

이렇게 말한다. 나도 요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그 국가가 지닌 사회적 공간, 그 공간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또 우리 공동체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곤 한다. 특히 미국에 다녀온 이후로 그 생각의 깊이나 정도가 조금 더 심해졌는데, 이 부분을 읽으며 한편의 삼삼한 위로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그는 단순히 민족, 지역 간의 공시적 위치에서의 비교 뿐 아니라, 시간의 축에서 통시적으로, 즉 역사 속에서의 비교도 한다. 그러면서 최종적으로 유럽이 전 세계를 들 쑤셔놓은 '죄과에 대한 반성의 표현이 있다는 점이 나름 신선하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그가 온갖 위험을 무릎쓰고도 연구를 위해, 또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뛰어드는 열정이 대단해 보였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진행된 대상화, 그리고 소소한 생각들

나는 1940년대를 살아간 사람이 쓴 책에 2020년이 공유하는 사상과 감성을 지니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난을 퍼붓는 것은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논쟁이라고 생각한다. 즉 모두가 a라고 말할 때 b를 외치는 것은 용기가 있고 박수쳐줄 만한 일인 것은 맞지만, 모두가 a를 말하고 있는데 특정 사람이 b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를 비난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들은 시대의 구속을 받게 마련이고, 현재의 시각으로 당시의 사람들을 제멋대로 재단하는 것은 역사적 사고를 결여한 잘못 중 하나이다.


그는 남아메리카의 '미개사회' 속 '야만인'을 대상화해 기술한다. 이렇게 타자의 시선으로 학문적 접근을 하는 그의 눈에는 어쩔 수 없이 제국의 시선이 가미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것은 레비-스트로스는 앞서 말했듯이 사회 간 우열을 논하지 않으며 인간 생활방식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태도를 견지한다는 것이었다. 타자를 대상화해 지식으로 승화하는 과정은 권력작용에 맞먹는 것이거늘, 레비-스트로스는 그나마 이를 경계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또 하나 읽으며 상상을 해본 것이 있다. 개인적으로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인간 사회의 모든 것은 구성된 것이고 상대적인 것이라는 구성주의적 시각을 가지게 됨을 학습 초기에 느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이 역사적 '구성물'에 대한 생각을 또 한 번 하게 되었다. 특히 보로로족, 남부콰라족 부분을 읽으며, 20세기에 이렇게 원시성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부족이 있는데, 이들이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적 영향을 미치는 중세 기독교의 영향과 같은 세속적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보니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족들의 젠더와 섹슈얼리티적 관점은 현대 서양의 그것과 달랐고, 말 그대로 그들만의 독자적이고 독창적인 문화적 구성물로써 존재하고 있었다. 가령, 자신의 성기가 드러나는 것을 '부끄럽다'고 생각하도록 길러진 서양의 성 인식과 달리 이들은 전혀 다른 인식을 가지고 있다.


또 이제는 세계 공용어가 된 '영어'로도 그들과 소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20세기 이후 얼마나 우리는 '서양'이라는 동질한 문명권 아래 공통성을 공유하며 지내왔는지를 새삼 느끼게 해준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베링해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와 남아메리카까지 인디언(Indigenous)들이 퍼지게 되었는지 등도 짚고 있고, 원주민 부족의 권력 관계를 통해 사회 정치학적 고찰을 드러내는 부분도 있다. 루소에 대한 찬양도 재미있고, 이슬람 종교에 대한 이야기도 다룬다. 이런 세부 내용을 차치하고서 크게 보면, 그는 "나는 (내가 접하고 있는) 시대가 옛적으로부터 현대로 이행하고 있다는 이 사실에서부터 우선 내 여행의 끝이 임박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p.670)."고 말하며 여행기의 마지막을 정리해나간다.

특히나 인상적인 부분 중에는 민족학자로서의 고민과 고찰이 엿보인 장면이 있었다.


만약 그(민족학자)가 그 자신의 사회체계의 개선에 이바지하려고 원한다면, 그는 어느 사회에 가든지 그가 그 자신의 사회에서 통탄하는 것들과 유사한 조건들을 경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면 그는 객관적이고도 공정한 입장을 잃고 마는 셈이다.

반대로 모든 사회를 두루 알고자 하는 이는 아무 사회도 비평하려 들지 않는 법이므로, 도덕적 책임감이나 과학적 엄정성이 명령하는 바에 따라 초연한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그로서는, 자신의 사회를 비평할 수가 없게 된다.

자신의 나라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외부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는 법이다. 반면에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이는 사회 개선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p.693


개인적으로 흥미로우면서도 공감가는 이 인용문을 끝으로 <슬픈 열대>에 대한 감상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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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열대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g*******d | 2020.08.26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우선, 2020년 여름 방 안에서 1930년대 브라질 원주민의 모습을 이리 생생하게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경의를 표한다. 과거에는 책이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는데, 지금은 손가락만 까딱하면 양질의 도서를 바로 읽어볼 수 있고, 세계 각지의 사람들과 생각도 나눌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특히나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집에 읽을 수 있는 책이 가득하다는 사실이 더욱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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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2020년 여름 방 안에서 1930년대 브라질 원주민의 모습을 이리 생생하게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경의를 표한다. 과거에는 책이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는데, 지금은 손가락만 까딱하면 양질의 도서를 바로 읽어볼 수 있고, 세계 각지의 사람들과 생각도 나눌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특히나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집에 읽을 수 있는 책이 가득하다는 사실이 더욱 감사하게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논란이 되는 도서정가제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나도 서점에서 책 몇 권을 집어 들었을 때 10만원을 겉돌면 쉽게 어우 비싸하고 말하지만 사실은 알고 있다. 책 안에 들어간 내용과 그 책을 만들어내기 위한 노고, 그리고 알리고 판매하는 사람들의 시간을 생각하면 결코 비싼 가격이 아니라는 것을. 책을 사랑하고 책 파는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책의 가치가 너무 가볍게 여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슬픈 열대는 인류학자인 레비 스트로스가 1930년대에 브라질에서 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원주민을 연구하던 때를 회상하며 1950년대에 집필한 책이다. 800페이지에 육박하는 두꺼운 책이며 이것을 보고서라고 해야 할지, 일기장이라고 해야 할지 분류하기가 모호하지만 딱딱한 학술 보고서라고 하기에는 서정적인 문장들도 더러 있고 대중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원래 철학을 전공하던 자신이 인류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 브라질로 향하는 여로에 대해 세세하게 말하고 후반부부터 본격적으로 브라질에 거주하는 원주민의 삶에 대해 풀어간다. 모험을 하며 애벌레를 먹기도 하고, 더러운 물은 예사로 먹는 등 레비 스트로스가 갖은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학문에 대한 그의 열정이 참 대단하구나 싶었다. 또한 (책의 분량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속내와 풍경의 모습을 굉장히 자세하게 서술해놓은 걸 보면 마치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읽는 듯한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레비 스트로스는 문화 구조주의를 주장한다. 구조주의란 언어학, 정신분석학, 미학 등 폭넓은 학문을 포괄하는데 레비 스트로스가 말하는 인류학에서의 문화 구조주의란 쉽게 말하자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대립하는 두 개의 요소로 세상을 보는 이항대립적특성을 가지며, 모든 문화 속에는 이러한 이항대립적 요소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레비 스트로스는 현재 서구인들의 사회처럼 진보적이며, 발명과 업적을 중요시하는 사회를 과열된 혹은 동적 사회’ (hot or mabile society)라고 부르며, 종합의 재능과 인간적 교환의 가능성이 반복적으로 지속되는 사회를 냉강된 혹은 정적 사회’ (cold or static society)라고 불렀다.(p.86) 즉 그는 문명화된 사회를 무조건 우월한 사회라고 보지 않았으며 미개해 보이는 원주민들의 삶 속에도 그들만의 합리성이 있음을 인정했다. 동시에 문명화라는 이름 아래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착취하는 서구인들의 행태를 비판하였다.

레비 스트로스는 인간과 자연 사이에 어떤 균형과 조화가 유지될 수 있었던 시점’(p.87), ‘인간이 자기 세계와 호흡을 같이하던 시대의 영상, 즉 자유의 행사와 자유의 표상 사이에 적절한 관계가 존재하던 시대의 영상’(p.311)을 동경하며 그리워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에게 현대 사회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조직적인 가치 박탈이 만연한세계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 균형’, ‘조화’, ‘적절등의 단어가 사라진지가 얼마나 오래인가. 모든 것이 과잉 혹은 결핍되어 있는 세상에서 레비 스트로스가 보여주는 브라질 원주민들의 삶은 미개하다기보다는 그 자체로 충만하고 오히려 이상적으로 보인다. 실제로 레비 스트로스는 남비콰라족이 황야에서 야영을 하는 것을 보고 서글픔보다는 인간적인 애정의 가장 감동적이며 가장 진실된 표현 같은 무엇을 느꼈다고 한다. 레비 스트로스가 브라질을 탐방하던 1930년대 당시에도 많은 원주민들이 토벌되고 사라진 상태였다고 한다. 100여년이 더 흐른 지금은 그들의 터전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며 인간은 문명의 발전과 함께 모든 것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쉽게 확신하지만 나는 자꾸만 그런 것에 회의가 든다. 많은 사람들이 적절한 질의 삶을 누리지 못하는 시대에 수명만 자꾸만 연장되는 것이 과연 자랑스러운 일인지, 홍수 때 물도 흡수하지 못하는 평평한 아스팔트가 울퉁불퉁한 미포장의 그것보다 나은지, 무자비하게 동물을 살상하는 현대인들이 브라질의 원주민보다 덜 미개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지. 식량이 모자라는 시기에도 가축 몫의 먹이는 꼭 남겨주고, 이동할 때는 원숭이를 머리에 지고 양팔에 애완동물들을 안고 간다는 남비콰라족의 모습을 보고 숙연한 마음이 들 뿐이다. 문명이 가장 먼저 발생한 곳은 동양의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황허 등이지만 전쟁과 식민지 개척 등으로 현재 힘들 갖고 있는 건 서양인들이다. 세계사를 보다 보면 문명이라는 것은 사실 잔혹성과 파렴치를 가장 많이 가진 자들의 불명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명으로 인해 인간이 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무조건적인 선으로 여겨지는 것은 위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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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열대(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사람들은 보통 여행을 공간의 이동이라는 면에서 생각한다.l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j*****2 | 2020.08.26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존경하는 교수님의 페이스북을 통해 클로 레비-스트로스와 슬픈 연대를 알게 됐다. ‘다름/차이’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라 교수님께서 페이스북에서 언급한 문장이 마음에 꽂혔었다. “나는 표면적인 대조나 외면상의 특이성을 경계한다. 그런 것은 단시간 동안 밖에 효력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구별할 때 인간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적극 활용한다. 겉으로 드러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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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교수님의 페이스북을 통해 클로 레비-스트로스와 슬픈 연대를 알게 됐다. ‘다름/차이’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라 교수님께서 페이스북에서 언급한 문장이 마음에 꽂혔었다. “나는 표면적인 대조나 외면상의 특이성을 경계한다. 그런 것은 단시간 동안 밖에 효력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구별할 때 인간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적극 활용한다. 겉으로 드러난 것이 전부가 아니란 것을 알지만, 외관이 눈에 가장 잘 띄기에 이러한 사실을 망각해버린다. 이는 인간으로 하여금 외관에 집착하게 하고, 차이를 인정하기보단 동화를 이끌어낸다. 하지만.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것처럼 실제로 외관의 독특성/ 대조는 단기간밖에 효력이 없다. 우리가 외관에 이끌려 타인과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지만, 내면의 결이 맞지 않으면 이 인간관계는 유지되기 어렵다.

외면의 동화 현상은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 사실은 독일에서 만난 4명의 미국 친구를 통해 깨달았다. 그 친구들의 옷, 머리 스타일은 모두 가지각색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그들은 서로 비슷할 법도 한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각자 다른 일을 하는 모습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 남자들은 대부분 투블록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또한 나의 경험에 비춰봤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함께 하는 것’은 똑같이 무언가 하는 걸 의미한다. 예컨대 여행에 함께 간다면, 여행지를 반드시 함께 가야 하고,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어야 한다. 즉 같은 시간을 같은 일로 채워나가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러한 외적인 것에 개의치 않았다. 이는 한국인의 동질성 문화를 깨달을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교수님께선 ’슬픈 열대‘를 마치 긴 영행을 하는 느낌의 책이라고 소개해 주셨다. 책이 두꺼워서 무게가 있지만 쉽고 재미있게 읽힐 것이라 말씀하셨다. 교수님 덕분에 레비스트로스를 처음 알았기에 서점에서 한번 검색을 해봤다. 라캉, 푸코 등 이름만 들어도 묵직한 학자들이 함께 언급되고 있었다. 푸코의 책을 한 권 읽었을 때, 나의 학문적 역량의 부족함을 절실히 깨달았기에 레비스트로스의 책을 읽기가 겁이 났다. 또한 그가 이뤄낸 학문적 성과는 나에게 너무 높아만 보였다. 그래도 교수님께서 나라면 읽을 수 있을 것이란 말에 한번 도전해봤다. 이와 함께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강의‘와 첫 단추 시리지 ’문화 인류학‘을 병행 독서를 했다.

한 달간 틈틈이 슬픈 열대를 읽었다. 짧은 시간 내에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이 책엔 레비스트로스의 경험과 생각이 농도 짙게 담겨있다. 사실 한 달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레비스트로스가 원주민들의 삶, 문화, 생활 방식 등을 묘사한 부분을 머리로 그리며 충분한 시간을 갖고 독서를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무언가를 상세히 묘사한 책을 접한 경험이 없어, 머릿속에서 그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레비스트로스가 만난 원주민들의 삶을 담은 영상 자료가 있는지도 살펴봤지만, 아쉽게도 찾을 수 없었다. 구체적인 부분 역시 소화하면 좋았겠지만, 이번엔 레비스트로스의 생각 위주로 독서를 했다.

슬픈 열대는 레비스트로스가 원주민과의 삶을 샅샅이 기록한 후의 해석을 담은 여행기다. 나에게 마치 현대 미술 감상문과 같았다. 현대 미술은 작가의 의도만큼이나 감상자의 해석이 중요하다. 작가의 곁을 떠난 작품은 감상자의 해석을 통해 새롭게 탄생한다. 감상자마다 작품을 다르게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관점에 따라 이를 해석한다. 그래서 나는 현대 미술을 좋아한다. 다른 예술 작품을 보면 감상자인 내가 끼어들을 틈이 없는데, 현대 미술은 나에게 참여 공간을 마련해 준다. 레비스트로스가 마주한 원주민들의 삶, 문화, 생활 방식의 의도가 그의 해석과 다를 수 있다. 책의 한 부분에서 언급된 것처럼 레비스트로스의 해석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레비스트로스의 해석은 원주민들의 삶을 다른 차원으로 이끌어낸다. 이것이 이 책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책을 독서하면서, 원주민들의 삶보다 그의 생각과 해석에 주목한 이유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슬픈 열대를 읽으면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On Liberty)’과 타라 웨스트오버의 ‘배움의 발견(Educated)’이 떠올랐다. 밀은 자유론에서 개인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자유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아니다. 다른 사람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우리는 우리의 뜻대로 그들을 억압할 수 없다. 아무리 그의 행동 사고방식이 자신의 관점에서 비정상적으로 보이더라도, 이를 용인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의 자유 역시 누군가에 의해 빼앗길 수 있다. ‘자유론’과 ‘배움의 발견’에서 모르몬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이 종교를 사이비, 이단이라고 칭하며 비정상적인 집단이라고 비판을 한다. 그들의 생활 방식을 이해하지 않으며, 그 종교를 존중하지 않는다.

독서 모임에서 모르몬교 구성원에 대한 다른 집단의 간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우리와 살아가는 방식 및 생각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은 비정적으로 보인다. 우리가 다름을 인정한다고 하지만 우리의 눈에 종종 이 집단의 행위는 틀린 것으로 비치기도 한다. 어떤 친구는 이 의견을 고수하며, 그들의 잘못된 행위를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이 의견에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나의 사고와 행위가 비정상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그들의 입장에서 옳지 못하기 때문에 교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밀은 당사자게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거나 더 행복하게 만든다고, 또는 다른 사람이 볼 때 그렇게 하는 것이 현명하거나 옳은 일이라는 이유에서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무슨 일을 시키거나 금지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이 슬픈 열대에서 레비스트로스가 말하려는 것과 일맥상통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진보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진보적이지 않은 것들은 진보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현재 상태의 가치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문명화된 사회와 원주민들의 사회를 바라보면 쉽다. 또는 우리가 가치를 높이 두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에 대한 시선의 차이를 보면 이를 극명히 느낄 수 있다. TV에서 원주민이나 아프리카인들을 다룰 때, 항상 그들은 불쌍하게 다뤄졌다. 그들이 꾸려나가는 삶에 주목하지 않고, 오로지 미개한 사회라는 틀에서 그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현대 문명의 특권을 누리지 못하기에 행복하지 않고 그들에게 우리가 쌓아온 문명의 혜택을 나눠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불행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들의 삶에 간섭해 변화를 꾀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슬픈 열대는 이러한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원주민들은 그들 나름의 삶, 문화를 지니고 있다. 이는 우리와 다른 삶의 방식으로 우리의 관점에서만 그들을 바라봐선 안 된다. 진보의 관점에서 그들은 많이 부족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관점에선 우리의 삶이 부족해 보일 수 있다. 우리가 만성적으로 느끼는 사회 문제들을 그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과연 우리는 진보의 이름으로 생겨난 이러한 문제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우리는 다름을 인정한다고 하지만, 종종 다름은 급을 나누는 기준으로 작동된다. 우리는 원주민들의 다름을 그대로 인정하고 있는가 아니면 열등한 존재로서 가치 평가를 하고 있는가.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는 진보의 관점에서 그들의 삶에 간섭하고, 그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기보다 개선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오만한 행태를 비판한다. 그들의 삶은 진보적 관점에 취한 사람들에 의해 파괴되고 있다. 그러나 원주민들 역시 그들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주체로 그들의 자유를 누구도 해칠 수 없다.

슬픈 열대는 원주민에 대한 레비 스트로의 해석을 담지만, 이 해석은 원주민의 그의 틀에 가두지 않는다. 해석이 원주민에게 향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적 관점을 취하는 사회에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원주민에게 향했다면, 레비스트로스는 자신이 지금껏 은연중에 획득한 사고방식을 원주민들에게 주입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레비스트로스는 경험과 해석을 통해 자신의 삶 및 사고방식의 절대성에 의문을 던진다. 이 의문은 현대 문명에 대한 원숙한 통찰과도 같다. 그는 원주민의 사회에서 현대 문명이 당연하고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반하는 사례를 발견한다. 이는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믿는 대상에 대해 의문을 던질 여지를 마련해 준다. 인간은 절대성의 이름으로 자신을 가둘 필요가 없으며, 끊임없이 이를 의심하고 성찰해나가야 한다.

사람들은 보통 여행을 공간의 이동이라는 면에서 생각한다. 그러나 장기 간의 여행은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 사회적 서열에서의 변화도 수반한다. 우리가 받은 인상들을 적절히 정의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각각의 세 가지 요소를 서로 관련시켜야만 한다. 공간 하나만 하더라도 세 개의 국면을 지 니고 있으므로, 여행에 대한 적절한 개념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섯 가지의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나는 브라질의 해변을 거닐자마자 이 같 은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대서양과 적도를 건너서 열대 부근에 왔다는 사 실을 이 몇몇 확실한 징표로써 알 수 있었다. 이 징표 가운데서 후럽지근 한 열기는 내가 보통 때 입고 있던 모직물의 옷을 벗게 하였고, ‘집 안과 ‘집 바깥,이라는 구별(우리들 문명의 징표 가운데 하나라고 인식할 수 있다)을 없애버렸다. 반면에 완전히 인간화해버린 우리네 풍경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과 미개척 자연과의 대립이 이곳에는 있음을 나는 곧 알 수 있었다. 이곳에는 도처에 종려나무나 낯선 꽃들이 있으며, 또한 꼭지를 떼어내면 술 냄새가 물씬 나는 달콤하고 시원한 즙을 마실 수 있는 푸른 야 잣나무 열매가 살롱 앞마다 수북이 쌓여 있다.

자신의 생각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기란 쉽지 않다. 문명화되지 않은 사회에서 어떤 문화와 삶을 이끌어나가는지 매번 인류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살필 수도 없다. 어떻게 사고의 사각지대를 극복할 수 있을까? 레비스트로스의 생각을 빌려 공시적이고 통시적인 시각을 의식적으로 견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의 관점을 전부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시작으로 해석하는 자세다.’ 나를 시작으로 관점을 주변 세계로 넓히는 것이다. 내가 속한 공간의 과거와 내가 속한 시간의 다른 공간들이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 끊임없이 살피는 것이다. 그들은 왜 나와 다른 생각과 삶의 방식을 갖는 걸까?

아빠와 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이러한 시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아빠는 학교 교육의 절대성을 신봉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학교 교육과 다른 나라의 학교 교육이 다른 이유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또한 과거와 우리나라의 교육이 달라진 것 역시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다. 학교교육이 절대적이라면, 과거나 지금이나 같은 내용과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문화마다 학교교육이 다를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 아빠처럼 학교 교육을 절대적이라고 믿는 사람이 정말 많다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가 절대성이라는 이름하에 타협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많은 사람들이 레비스트로스의 학문을 문화적 상대주의라며 비판한다고 한다. “너의 문화도 맞고 나의 문화도 맞아.” 이러한 생각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원주민 문화에 대한 존중이 이러한 가벼운 결론을 도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 레비스트로스의 생각은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믿는 것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 준다. 이는 나와 다른 것들을 틀린 것이라 규정하는 것을 막고,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해결해 준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는 너도 맞고 나도 맞는다는 결론을 결코 도출하지 않는다. 그가 인류학을 대하는 자세를 보면, 그가 연구와 학문에 얼마나 진심을 다하는지 알 수 있다. 그는 끊임없이 관찰하고 기록한다. 이 과정은 “좋은 것은 좋은 거다.”라는 식으로 결론을 도출하지 않는다. 자신의 문화와 타문화를 비교하고, 그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차이의 뿌리를 끝까지 찾아내려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에 연구자들이 내는 결론은 문화 상대주의로만 설명될 수 없다.

레비스트로스는 내 공부 인생에 끊임없이 등장할 것 같다. 특히 독일에서 공부할 예정인 나에게 그의 학문적 태도는 반드시 익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국의 교육을 배우는 이유는 이를 절대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절대화와 정반대의 과정을 거치기 위해 외국 교육을 공부한다. 대상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할 때, 그 대상을 절대화하고 신성시하기 쉽다. 하지만 그 대상을 공부할수록, 그가 가진 특징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눈을 갖게 된다. 더욱이 내가 기존에 겪은 경험과 비교함으로써 이 특징을 명확히 볼 수 있다. 요즘 독일 교육을 신성시하며, 우리나라 교육을 반교육이라 비판하는 학자가 눈에 띈다. 나의 1차적 독일에서의 유학 목표는 이러한 이상화 과정에 반론을 제기하는 것이다.

한 종족이 지닌 관습들의 전체적 집결에는 언제나 어떤 특정한 양식이 존재한다. 관습들이 체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체계들이 수적으로 제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또 개별적인 인간존재들과 마찬가지로 인간 사회도 一그들의 놀이와 꿈 또는 정신착란의 상태에서??결코 절대적인 방식을 창조해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인간 사회란 재구성이 가능한 관념의 저장고로부터 어떤 결합들을 선택해낸다. 신화, 어린이와 어른들의 놀이, 건강한 사람이나 병든 사람의 꿈, 또는 심리학적 ? 병리학적 행위 가운데 표 현되어 있는 것과 같은 모든 관찰된 관습들의 목록을 작성하기 위해 서는 우리들은 화학원소의 주기표와 유사한 일종의 주기표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현실적인 것이든 또는 단지 가능할 뿐이든 모 든 관습들이 이 주기표 내에서 가족으로서 집단을 이루게 되고, 우리 들은 사회가 실제로 어떤 것을 채택하느냐를 단지 식별하기만 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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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10건) 한줄평 총점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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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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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 | 2019.06.18
구매 평점5점
구조주의의 시작. 이분법적인 사고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1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
h*******6 | 2017.12.14
평점5점
좋은 번역으로 만나는 레비스트로스의 대표작.
2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2
o****7 | 201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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