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3년 08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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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88쪽 | 570g | 130*187*30mm |
ISBN13 | 9791195026128 |
ISBN10 | 1195026129 |
발행일 | 2013년 08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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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88쪽 | 570g | 130*187*30mm |
ISBN13 | 9791195026128 |
ISBN10 | 1195026129 |
지금,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_ 류시화 1 인간 의식의 꽃피어남 ? 우리는 지금 진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수단 인간에게 상속된 기능장애 새로운 의식의 등장 영성과 종교 변화의 절박함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 2 에고, 인류의 현재 상태 ? 내 안의 인류로부터의 자유 환상의 자아 머릿속 목소리 에고의 내용물과 구조 물질과의 동일화 잃어버린 반지 소유라는 환상 욕망?‘더 많이’를 향한 욕구 육체와의 동일화 내부의 몸 느끼기 존재의 망각 데카르트의 오류에서 사르트르의 통찰까지 모든 이해를 넘어서는 평화 3 마음이 만드는 드라마 ? 에고를 초월하기 위해 이해해야 하는 것들 불만과 분함 맞대응과 원한 자신은 옳고 상대방은 틀리게 만들기 환상이 자신을 방어한다 진리?상대적인가 절대적인가? 에고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전쟁은 마음의 방식 평화와 드라마 중 어느 것을 원하는가 에고를 넘어?진정한 정체성 모든 구조물은 불안정하다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에고의 욕구 에고와 명성 4 역할 연기 ? 에고의 여러 가지 얼굴들 나쁜 사람, 피해자, 연인 자기규정 내려놓기 미리 정해진 역할들 일시적인 역할들 손에 땀이 난 선승 역할로서의 행복과 진정한 행복 부모?역할인가 기능인가 의식적인 고통 의식이 깨어 있는 부모 아이의 존재를 알아보기 역할 연기의 포기 병적인 에고 배경에 있는 불행 행복의 비밀 에고의 병적인 형태들 에고를 가지고 일하기와 에고 없이 일하기 병과 에고 집단적인 에고 불멸의 결정적 증거 5 고통체 ? 최고의 예술은 과거를 내려놓는 것 감정의 탄생 감정과 에고 오리에게 인간의 마음이 있다면 과거를 업고 다니기 개인적인 것과 집단적인 것 고통체가 자신을 재생시키는 방법 생각을 먹고 사는 고통체 드라마를 좋아하는 고통체 단단한 고통체 오락과 언론과 고통체 여성의 집단적인 고통체 국가와 인종의 고통체 6 감옥으로부터의 탈출 ? 고통체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들 이 순간에 존재함 고통체의 돌아옴 아이들의 고통체 불행 고통체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기 고통체를 촉발시키는 것들 나를 깨우는 고통체 고통체로부터의 자유 7 형상의 꿈에서 깨어나기 ?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기 위하여 당신이 생각하는 자기 자신 풍요로움 자신을 아는 것과 자신에 대해 아는 것 무질서와 더 높은 질서 좋은 것과 나쁜 것 무슨 일이 일어나든 걱정하지 않는다 그런가? 에고와 현재의 순간 시간의 역설 시간의 제거 꿈꾸는 자와 꿈 한계를 넘어 ‘있음’의 기쁨 에고의 작아짐 겉에서도 안에서도 8 내면 공간의 발견 ? 이 세상의 것이 아닌 평화 대상 의식과 공간 의식 생각 아래로의 추락, 생각 위로의 올라감 텔레비전과 의식 내적 공간의 인식 개울물 소리가 들리는가 올바른 행동 이름 붙이지 않고 인식하기 ‘경험하는 자’는 누구인가 호흡 중독 내부의 몸 알아차리기 내적 공간과 우주 공간 틈 알아차리기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자신을 버리기 고요 9 삶의 목적에 깨어나기 ?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누구인가 깨어남 내면의 목적에 관한 대화 10 새로운 지구 ? 행성의 미래를 상상하는 사람들에게 당신 삶의 간단한 역사 깨어남과 회귀 운동 깨어남과 외부로 향하는 운동 의식 깨어 있는 행동 깨어 있는 행동의 세 가지 방식 받아들임 즐거움 열정 새로운 의식의 담당자 새로운 지구는 이상향이 아니다 |
3주 정도 지난 듯하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너 이 책 읽어봤어?"라고 묻는다. 책상을 보아하니, 본인도 50페이지를 넘지 않았다. 이런 책도 안 읽는다는 잔소리를 들었다. '재미는 참 없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과 호기심이 생겼다. 지금 돌아보면 재미없을 것이란 생각은 경험적이며 피상적인 생각이고, 호기심은 당시 내가 느낀 순수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은 후자를 따른 것이 훨씬 도움이 된 셈이다. 그렇다고 호기심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갖는가? 이건 알 수 없다.
어쩌면 명상에 관한 책 같아 보이지만 책의 분류는 에세이와 삶의 자세 또는 처세로 분류되어 있다. 책을 읽는 동안 내 머릿속을 스쳐간 생각은 '외계인 인터뷰(부처, 노자에 관한 내용', '외계+인 1' 영화, 막연하게 '도덕경'이란 책이 떠오른다. 이유는 알 수가 없지만 자연적 지능이 떠올리는 것을 알 수가 없다.
책의 내용을 이해했는지 알 수가 없다. 또한 말로 그것을 잘 설명할 재주도 부족하다. 잘 모르는 것을 두루뭉술하게 길게 써 보는 것을 시도하는 중이다. 책은 스스로를 찾아가는 것이 삶의 중요한 존재 이유라고 설명한다.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어떤 목적에 부합하는 생각의 욕망이 '나는 누구인가?'를 설명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길게 한다. 그 생각을 에고라고 지칭하며, 이 에고가 정말 나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에고, 이드, 슈퍼에고의 설명을 곁들여야 할까?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그 생각의 근원에 무엇이 있는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 나의 존재가 있다는 말이다. 이 글의 제목을 이렇게 쓴 이유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하나의 착각이라는 말이 원인과 결과의 측면에서 오류란 생각에 동의한다. 존재하지 않는다면 생각(책에서는 에고)이란 애당초 존재할 수 없다. 그럼 나는 뭐지? 나는 어떻게 깨달아야 하지?
집합 A를 규정하고 이것을 깊이 익히며 파고들고 정의하는 행위가 학습, 지적고도화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세상엔 이렇게 규정하고 정의해도 알 수 없는 너무 많은 일들이 연결되면 그 정의가 항상 참인 경우를 보기 힘들다. 다른 접근법은 내가 '여집합의 지혜'라고 부르는 방식이다. A가 아닌 것을 지우는 방식으로 집합 A를 빌드업처럼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나를 찾아가는 방식에 후자의 방식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런 과정을 위해서 내가 아닌 욕망, 비교의 중심에 있는 에고, 내가 아닌 생각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 나의 존재와 관념을 완전히 분리하기는 어렵다. 그런 순간이 존재할 뿐이다. 책에서 이 순간을 현재, 현실이라고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고로 순수한 나의 존재로 돌아와 현실의 평온과 만족을 받아들이는 상태가 되는 것은 일종의 탈옥이다. 외계인 인터뷰와 인계+1에서 인간을 하나의 감옥이라고 지칭하는 의미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해탈인지 깨달음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과정이 받아들임, 즐거움, 열정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말을 한다.
사실 머릿속에서는 더 많은 생각이 일어난다. 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면 생각하는 것을 인지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 미묘한 차이를 통해서 존재와 생각을 바라보면, 공과 색, 존재와 형상을 애매하게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그것이 끊임없어 변화하면 자리를 바꾸고 또 그 속에서 나란 존재는 이리저리 휘둘린다.
그러다 도가도 비상도로 시작하는 도덕경 문구들이 자꾸 떠오른다. 동시에 인간은 집합 A를 배우는 유교와 같은 과정과 다시 A의 여집합을 이해하기 위해 집합 A를 내려놓는 노자의 과정이 시간순으로 이어지며 균형과 깊이가 더해진다는 생각을 한다. 극단과 치우침은 빛과 그림자를 더욱 깊게 할 뿐이다. 무심코 읽던 도덕경의 구절이 더 잘 이해가 될 것 같은 생각, 그 생각을 인지하는 나의 존재가 조금 느껴졌다고 할까?
집에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 최진석의 도덕경, 남희근의 노자타설과 같은 책들이 있다. 최진석의 다양한 노자에 관한 책은 몇 권이 더 있다. 도서관에서 김원중의 노자 도덕경을 뽑아서 몇 줄을 읽어봤다. 그런데 읽던 책이 예전에 보던 책과 조금 다르게 보인다. 내게도 근본으로 돌아갈 기회가 될 수 있을까?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욕망의 생각이 흐른다. 책을 빌리고 도서관을 나서는데 갈 때보다 한결 가볍다. 이유는 알 수가 없다.
#The_Earch #에크하르트_톨레 #삶으로_다시_떠오르기 #류시화 #인문 #khori
주말에 몸살을 앓았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자가 키트로 이틀 간 이어서 검사할 땐 괜찮다가 월요일 출근해서 다시 검사해보니 그때서야 양성 반응이 나옵니다. 큰일이다 싶었습니다. 연말 마무리할 업무로 한창 바쁠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을 팀원들에게 맡기고 자가 격리에 들어갔습니다. 나보다 팀원들이 더 당혹스러웠을 겁니다. 큰 일들을 앞두고 진두지휘해야 할 팀장이 자리를 비우게 됐으니 말입니다.
'한창 바쁠 시기에 자리를 비워 죄송합니다.' 회사 윗분들에게 대면이 아닌 문자 보고를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쉬면서 몸관리, 건강관리 잘하라는 회신과 '너무 바쁘니 쉬라는 징조'라며 오히려 안심하고 쉬라는 배려의 글 덕분에 더 죄송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회사 업무는 팀원들과 카톡으로 공유하고, 외부 전화는 평소처럼 받고 있습니다. 직접 대처하기 힘든 경우에만 자가격리 중이니 회사로 연락 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회사에 있는 것만큼 바쁠 리가 없습니다. 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 한가득 안고 일주일간 격리에 들어갑니다. 자가 격리 하는 동안 방안에서 꼼짝 못하고 지내게 됩니다.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고민했습니다. 어차피 이렇게 밖에 안 되는 거, 평소에 바쁘다는 핑계로 못했던 일을 챙겨서 해보기로 합니다. 부서져 흩어졌던 마음, 방향을 잃고 방황하듯 흘러다닌 생각들을 조용히 정리하기로 한 겁니다.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원제는 <A New Earth : Awakening to Your Life's Purpose> 입니다. 깨어남, 깨달음을 이야기하는 책 중 한 권 입니다. 요즘 집중해서 반복해 보려는 책들이 이런 책들입니다. 나를 깨어나게 하는 책, 깨달음을 주는 책. 그런데 마음이 부산한 상태에서 이런 책들을 읽으면 피상적으로 문자를 따라 읽고 넘어가게 됩니다. 그 이면에 저자가 심어둔 깊은 통찰에 가 닿지 못하는 겁니다. 의미를 내 안에 남기지도 못합니다.
그걸 알고 나서는 읽은 부분을 읽도 또 읽으면서 반복의 힘에 의지합니다. 익숙해지면 그래도 깨닫는 게 있겠지. 덕분에 깨어서 생활할 수 있겠지. 그런데 일상이 바쁘면 이런 노력이 쉽게 무산됩니다. 유리로 된 갑옷을 두르고 있다고 해야할까요? 뭔가 깨달음을 얻는 듯 하다가도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는 제 자신을 자꾸 발견하게 됩니다. 몸이 묶여 있으면 마음도 그렇겠구나. 몸을 옮겨 놓지 않으면 마음이 벗어나기 힘들겠구나.하고 깨닫습니다.
이 책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를 읽고 있는 동안에는 중요한 깨달음이 옵니다. 문장 하나하나가 그 길로 연결시켜주기 때문입니다. 내가 정신 없이 살고 있구나, 제 정신이 아니구나. 이런 생각에 닿을 때 무척 즐겁습니다. 왠지 모를 정신적 탈출구를 찾은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책을 놓는 순간, 다시 생각이나 느낌은 자석에 이끌리듯 원래 자리로 돌아갑니다. 그랬다가 책을 드는 순간, 다시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구요.
'그노티 세아우톤 Gnothi Seauton - 너 자신을 알라.'
신의 예언을 받는 장소인 델포이의 아폴로 신전 입구 위에 새겨진 말이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자신에게 어떤 운명이 준비되어 있는지, 특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서 예언을 들으러 신전을 방문했다. 아마도 방문자의 대부분은 신전에 들어갈 때 이 문장을 읽었겠지만, 이것이 어떤 예언보다도 깊은 진리를 가리키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 것이 아닐까. (240쪽)
이 책의 핵심도 한 문장으로 얘기하라면 이것 같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Know thyself)'. 여러번 반복해 들었던 이 말은 우리가 농담할 때 쓸 정도로 익숙하지만 이 말이 가진 깊은 진리를 아는 사람은 신전이 지어진 그 당시나 지금이나 많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나를 아는 것? 중요하지! 이 정도 생각하고 끝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탐구로 이어져야 하는데, 바깥에 신경 쓰느라 안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는 겁니다.
'너무 바쁘니 쉬라는 징조'라고 해주신 분의 말씀이 각별하게 와닿았던 건 이런 이유 같습니다. 덕분에 쉬면서 해야 할 일이 무언지 정리가 됩니다. 업무에 거리를 둘 수 있는 이 시간,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이 시간에 조금은 자유로워진 마음으로 나와 내 삶에 대해 탐구하는 것입니다. 나를 깊이 이해할 때, 내가 가진 고통의 원인이 무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알아야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면 좀더 자유로워질 거라 기대합니다.
또한 아무리 위대한 계시와 정확한 정보를 받는다 해도 '너 자신을 알라'라는 명령문 속에 숨겨진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는 한 궁극적으로는 아무 소용 없는 것으로 밝혀지고, 앞으로의 불행과 자신이 창조한 고통으로부터 그들을 구원해 주지 못하리라는 것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 문장이 암시하는 것은 이것이었다.
"다른 어떤 질문을 하기 전에 먼저 너의 삶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누구인가?'하고." (240-241쪽)
Before you ask any other question, first ask the most fundamental question of your life: Who am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