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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련한 지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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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와 딸, 엄마 됨에 관한 원망과 이해의 사적인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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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2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260쪽 | 334g | 140*200*15mm
ISBN13 9791188605163
ISBN10 118860516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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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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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야기를 쓰는 동안 엄마의 삶이 내 삶과 겹쳐졌다. 미숙하고 어린 양육자였던 엄마의 경험과 두 아이를 키운 엄마로서의 내 경험이 섞였다. 엄마의 한계와 불완전했던 내 양육 과정이 포개지면서 세대 차이나 시대 때문에 달라 보일망정 본질적으로는 같은 여자들의 삶이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냈다. 엄마 세대 여성들은 누군가의 딸로만, 아내로만, 엄마로만 살 수 있었던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자 오래 묵혀둔 마음 깊은 곳 원망의 이야기가 이해의 드라마로 변해갔다.
--- p.14

딸들의 세계는 엄마가 갖고 있었던 세계만큼의 크기에 시대 변화와 간접 경험으로 자각하게 된 새로운 가능성이 보태진, 조금 더 큰 원이 겹쳐진 세계가 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내가 그릴 수 있고 나아갈 수 있는 세계의 크기이자 경계였다. 이 세계는 새로 생긴 여분의 면적보다 엄마의 세계와 포개진 교집합의 면적이 언제나 훨씬 크다. 그래서 우리 세대가 넓힌 세계와 엄마가 물려준 세계는 종종 모순을 일으켰다. 그 모순은 도약이 필요한 순간마다 제약이 되었다. 나는 엄마가 기대했던 딸로 살지 못해 엄마를 실망시킨 일에 미안해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살고 싶었던 나로도 살지 못했다.
--- p.35

나는 엄마가 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게 엄마 삶의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끝내 알 수 없는 것처럼 엄마는 자신이 원하는 딸이 어떤 모습인지 정확히 몰랐다.
--- p.57

엄마를 돌볼 실질적인 힘이 없을 때 우리는 엄마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절대적인 엄마 편이 될 수밖에 없다. 엄마는 자식이라는, 아니 딸이라는 든든한 지지자에 둘러싸여 절대 권력을 누린다. 힘이 없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엄마 말을 잘 듣는 것밖에 없다. 엄마 말이 혹시 틀렸더라도 우리는 반박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순응했다. 엄마 기분이 안 좋을까 걱정했고, 엄마가 화를 내면 숨을 죽였다.
--- p.63

나는 엄마를 떠올릴 때마다 그렇게 안이 텅 빈 사람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모습은 때로 내 미래와 암울하게 겹쳐졌다. 엄마처럼 되지 않으려고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도 나로 남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막상 해보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보다 훨씬 뛰어난 여자들도 결혼과 임신과 육아에 부러지고 부러지고 또 부러졌다. 대단한 재능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이 작게나마 자부심을 가질 정도로 세상의 인정을 얻으려면 어떤 일이든 지속할 시간과 몰입의 깊이가 필요했다.
--- p.112

엄마는 결코 무능하지 않았다, 아니 무능할 수 없었다. 엄마의 세계를 가족 안에 지었을 뿐이다. 그 세계는 견고하지 않았고 자식들이나 남편의 상황, 세간의 평가에 따라 쉽게 흔들렸다. 엄마가 얼마나 훌륭한 엄마고 아내였던가를 시시때때로 증거해야 해서 우리는 고통스러웠다.
--- p.117~118

‘나처럼’ 살지 말라던 엄마는 한 손으로는 내가 안전할 수 있도록 제도 안으로 잡아끌었고,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나를 엄마는 다른 한 손으로 여기서 나가라고 떠밀었다. 엄마에게서 딸로 이어지는 여자들의 세계에서 나뿐 아니라 모든 여자들은 양쪽으로 끊임없이 분열되고 찢어진다.
--- p.163

나는 세상이 인정할 만한 성취를 이룬 여성들이 아이들과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과거를 반성하며 중요하고 소중한 걸 놓쳤다고 이야기할 때마다 어쩐지 배신당한 기분과 안도하는 마음이 함께 들었다. 돌봐야 할 가족과 가정은 여성들의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이 부분에 희생을 감수해야 할 때, 여성들은 갈등한다.
--- p.202

아이의 성격이 본성이냐 양육이냐를 놓고 과학적으로 오래 격돌해왔지만 엄마의 양육은 또래 집단과의 교류에 비하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결론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엄마들은 아이들의 성취에 전적인 책임을 진다. 발화자로서 엄마들에게 허락된 목소리는 오로지 아이들의 성취 혹은 실패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만이다. 아이들이 이른바 명문대에 가거나 사회적 성공을 거두었을 때, 그 양육의 비법을 말할 자격, 아이들이 실패했을 때 반성문을 쓸 자격, 오로지 두 가지만을 허용한다. 아빠들은 아이들과 함께 놀아준 것만으로도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지만 말이다.
--- p.220~221

‘상처 받은 내 안의 아이’라는 구도로 엄마와 딸의 문제에 접근하는 이상, 양육자로서 더 큰 지배력과 영향력을 가진 엄마는 가해자가 된다. 한 인간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는 많은 사람이 관여하고 수많은 요소가 작용한다. 한 인간에게는 많은 결핍과 상처가 있고, 그만큼 충만한 사랑의 순간이 함께한다. 모든 문제를 엄마와의 문제로 환원할 때 이 수많은 요소가 간과된다. 그 가운데서도 딸로 태어나 여성으로 자라 엄마가 되는 대개 여성의 삶에 사회가 가하는 ‘어쩔 수 없음’에 마음이 갔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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