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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르트르 유서

몽마르트르 유서

: 蒙馬特遺書, Last Words from Montmartre

구묘진 저 / 방철환 | 움직씨 | 2021년 04월 06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8 리뷰 32건 | 판매지수 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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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4월 06일
쪽수, 무게, 크기 292쪽 | 318g | 122*188*21mm
ISBN13 9791190539098
ISBN10 1190539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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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내 모든 것을 바친 단 한 사람이 날 버렸다. 솜이라는 여자다. 삼 년 남짓한 우리 결혼 생활의 결정체인 토끼 토토. 솜이 파리에 남겨 놓은 토토마저 잇따라 세상을 떠났다. 모두 45일 안에 일어난 일이다. 차디찬 토토의 시신은 지금 내 베개 옆에 누웠고, 솜이 보낸 아기 돼지 인형은 토토에게 기대었다. 지난밤 내내 나는 토토의 새하얀 시신을 안고, 이불 속에서 소리 죽여 울었다.
--- p.15 「증인」

토토가 헛되이 죽게 두지 말고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난 토토가 죽었다는 현실에 적응할 수 없고, 죽음을 받아들일 수도 없으며, 결국 계속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스스로 되뇐다. 토토를 위해 책을 한 권 쓰면서, 다시는 네게 말하지 않고 이 편지에 사랑을 묻어 버릴 것이다. 아니면 토토를 위해 계속 널 사랑하고, 조건 없이 너를 사랑하면서, 그해 연말에 바치는 완전히 자유분방한 한 세트의 편지, 뜨거운 사랑의 글을 쓰자고.
--- p.24 「첫 번째 편지」

아직 필요한 것이 남았는지 모르겠어. 사막을 걷는 네가 안타깝다. 네가 밟을 단단하고 작은 땅을, 네가 먼 곳에서나마 바라볼 수 있는 작고 푸른 오아시스를 주고 싶어. 네가 현실에서 다시 떠돌지 않고, 다시 마음속으로 도망가지 않길 바라. 모두 내 잘못이야! 난 기회를 잃었지. 하지만 가만있자, 만일 이 단어들을 땅의 작은 플롯으로 삼고 내 인생을 주춧돌로 한다면 네게 중심점을 만들어 줄 수 있어. 그래도 될까?
--- p.30 「첫 번째 편지」

조금씩 회복 중이었던 나는 토토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손써 볼 수 없이 고독한 감정에 빠져들었다. 마치 방금 전 다리 하나를 겨우 세워 평형을 회복한 삼각 의자에서 다리 하나가 또 갑작스레 잘려 나간 것처럼. 또다시 온종일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우울 상태였고, 죽음의 기운이 내 주위를 빙빙 돌았다. 네가 말했듯이, 난 왜 또 이토록 고통스러워하나, 왜 조금의 면역도 없나. 모르겠어. 내 감수성은 지나치게 열려 있다. 민감한Susceptible, 바로 이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이염易染이다. 이런 기질이 바로 내 병이고 내 천성이며, 내 보물이고 또한 내 치명적 결함이기도 하다.
--- pp.33~34 「두 번째 편지」

궁극적으로 열정과 성은 신체로만 발동되는 것이 아니라 두 영혼 사이의 진심 어린 연대에서 발동되는 것이다.
--- p.48 「세 번째 편지」

J’arrive pas. 못 가. 아름다운 표현 아닌가! 이 프랑스어 표현은 요즘 내 입에서 번번이 튀어나오는 것이기도 했다. 중국어로 ‘갈 수 없어.’를 뜻하지만, 이렇게만 말하면 너무 평이하게 들린다. 더 포괄하자면 ‘난 도달할 수 없어.’, ‘난 기준에 못 미쳐.’, ‘난 실패했어.’ 이런 말이기도 하다. 언젠가 아원이 신문 한 면을 잘라 보여 준 ‘모자라야 좋다.’라는 말도 생각났다. 임청현도 스승인 홍일의 말을 인용해 인상 깊은 말을 남긴 적이 있다. ‘난 내 시도들이 실패하길 바라. 완전무결하지 않아야 부끄러움을 알게 되고 자신의 부덕을 알게 된다. 성공이 나를 현실에 안주하게 만든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냐!’
--- p.58 「네 번째 편지」

3월 13일 저녁에 나는 울면서 언니한테 말했다. 언니, 그동안 사람들이 내게 상처를 줬어.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내 정신은 파괴되는 중이야. 언니, 난 너무 외로워. 남들이 원하는 대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이번에는 너무 심각하다. 어쩌면 내가 언제고 죽을지도 모르겠어. 그래서 전화했어. 만약 내가 무슨 위험에 빠진다면 대신 엄마, 아빠를 부탁해. 언니는 울음을 삼키며 말하더라. 넌 절대 혼자가 아니야. 사람들이 네게 상처를 주고 널 버리면 넌 아무 때고 우리에게 돌아오면 돼. 너한테는 아직 우리가 있잖아.
--- p.64 「여섯 번째 편지」

솜, 넌 어렴풋이 내가 속한 예술적 운명을 이해했고 또 때때로 도움도 줬을 거야. 하지만 솔직해지자, 문화 예술이나 예술적 운명이란 네게 있어 큰 의미가 없잖아. 네가 성장해 온 환경은 내가 사랑하는 이런 것들과 전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지. 하지만 기이하게도, 네가 속한 사회 계층은 문화 예술을 소비하면서 권태를 해소하고 자기 명망을 꾸미는 고급 장식으로 삼는다. 일찌감치 내가 말했잖아, 어쩌면 나는 네 컬렉션 속 남다른 장식품에 불과하다고. 아마 넌 바로 지금도 수집가의 분별력으로 날 분석할지 몰라. 하지만 네 가족과 친구들은 날 이해할 리 없고 네게 바친 희생과 내 작은 가치를 결코 알 리 없다. 우리는 완전히 다른 두 세계에 속해 있지. 그러니까 다시는 그들이 내 편지를 가로채서 열어 보는 일이 없도록 해 주길 부탁한다.
--- p.77 「일곱 번째 편지」

한번은 타이완에 있을 때 동생에게 이런 사실을 털어 놓았다. 내가 파리에 있는 다섯 개 연구 기관에 현재의 과학 기술을 통해 난자와 난자 결합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는지를 문의해 봤다고. 그 애는 대학 자연과학원 건물 앞에서 요란하게 웃으면서 나를 위해 ‘새로운 과학 기술 개발’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 p.100 「아홉 번째 편지」

안티노우스는 죽음으로 하드리아누스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완성했다. 유르스나르 또한 소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을 북대서양 연안의 마운트데저트섬에서 사십 년 동안 함께 지낸 동성 연인 그레이스 프릭Grace Frick에게 헌정했다. 1975년에 유르스나르는 프릭을 화장한 뒤, 프릭이 자주 걸치고 다니던 숄에 유골의 재를 싸서 생전에 좋아했던 인디언 바구니에 넣고 땅속에 묻었다. 평생을 같이한 반려를 자기가 직접 안장한 것이다. 이 또한 그녀가 그레이스 프릭을 향한 영원한 사랑을 완성한 한 방법이다.
--- p.112~113 「아홉 번째 편지」

몇 차례 여자들과의 애정 관계에서 성 정체성에 관한 것은 내게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내내 여자들에게 끌렸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성적 교류가 필요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분명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 p.160 「열한 번째 편지」

세속, 공리성功利性, 점유, 이기심, 공격성, 파괴력, 지배. 이런 것들은 모두 타인에게서 보이는 내가 혐오하는 성질들이며, 나 역시 사회 속에 만연한 이런 성질 때문에 병들고, 상처받고, 도피하게 되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런 나의‘타인성他人性’으로 인해 내 삶은 타인들 앞에서 진실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없고, 이 괴로움이 나를 뒤틀리게 한다. 이 ‘타인성’으로 인해 인류는 한 사람의 진정한 자아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이 수용하지 않음으로 인해 자신들도 진실한 생활 속에서 살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내가 사회생활에서 극렬한 상처를 받고, 갈망하는 진실과 존엄 속에서 살 수 없는 이유다.
--- p.169 「열두 번째 편지」

죽지 마. 죽음을 말하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다. 하지만 항의하기 위해선 죽지 마. 그런 고독과 아픔은 나에게 고통을 주며 살고 싶지 않게 해. 살아 있는 사람들이 어찌 감당하겠니? 지금도 네 고통을 생각하면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데, 하물며 매일 밤마다 사라진 네 외침과 원한이 떠오르는 상황을 내가 어떻게 직면할 수 있겠어……. 나는 아무리 해도 그런 고통을 마주할 수 없겠다. 하지만 나 자신의 고통이 두려워서, 너에 대한 이해 없이 죽음을 저지하는 것은 아냐. 나는 네 삶을 이해하고 있어. 네가 정말 네 삶을 죽인다면, 그런 의미의 파괴는 사람들에게 철저한 불의를 느끼게 할 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아. 만일 너조차 삶을 버린다면,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니?
--- p.179 「열세 번째 편지」

두 명의 경관이 나를 공중전화 부스 밖으로 끌어내려 했고, 나는 죽을힘을 다해 몸부림치며 수화기를 다시 잡으려 했다. 나는 결국 프랑스 경찰서로 끌려갔다. 내 뇌는 이미 실신한 듯했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마비되었다. 수많은 발들이 나를 걷어차는데 아픈 느낌만 있을 뿐, 심한 통증은 못 느꼈다. 내가 어떻게 일어나서 어떻게 경찰서 밖으로 나왔는지,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다 잊어버렸다.
--- p.195 「열네 번째 편지」

희미한 어둠 속, 나는 로렌스가 센강에서 머리를 유혹하듯 흔드는 것을 보았다. 평소 그녀가 말을 하다 격해지면 이마에 흘러내린 앞머리를 양쪽으로 들어 올리는 습관과 닮아 보였다. 로렌스는 물속에서나 땅에서나 똑같이 자신을 위해 쉼표를 찍었다……. 로렌스의 피부는 햇볕에 고르게 탄 옅은 커피색으로, 갈색 머리카락보다 밝고 더 부드러우며 윤기가 흘렀다. 빛나는 초록이 나무에 온통 물든 봄날, 나뭇잎이 풍요롭게 춤추는 센강 양안, 인류 문화의 최고작인 파리의 조명 예술 아래 로렌스는 마치 천만 조각으로 떨리는 황금 나뭇잎 사이에서 도약하듯 빛을 찾아 역주행하는 물고기와 같았다.
--- p.218 「열여섯 번째 편지」

우리는 똑같이 이름이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때는 꼭 이름 하나를 빌려야 하겠지요. 당신이 내게 멀리 바라볼 곳을 마련해 주오. 나를 해변에서 잊어 주오. 나는 당신이 행복하고 건강하길 바랍니다.
--- p.280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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