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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 발행일 | 2021년 05월 07일 |
|---|---|
| 쪽수, 무게, 크기 | 168쪽 | 180*245*20mm |
| ISBN13 | 2510163879507 |
잡지
우먼카인드 womankind (계간) : 15호 [2021]
: 딸에 대하여
편집부 편
|
바다출판사
|
2021년 05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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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중반 페미니즘을 접하게 되면서 내 생각은 개벽을 맞았다. 부모의 인생, 나와는 또 다른 두 동생의 고민, 엄마의 고통…… 나는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석할 수 있었다. 특히 엄마에 대한 모든 의문이 풀렸다. 초등학생 이전부터 나를 지배했던 어두움과 심란함이 젠더 문제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엄마가 불쌍했고, 그녀에 대한 죄책감에 살았다. 나는 엄마보다 ‘잘나지’ 않았다. 엄마와 나의 차이는, 단지 생년에 있다.
--- pp. 24-25
딸을 낳는 순간 어머니의 어떤 부분이 산산이 깨져버렸고 그 교차의 순간 어머니의 깨진 조각 하나가 내게로 흘러들어와 단단히 박혔다. 유리알 같았을 그 조각은 내 안에서 상처를 자양분 삼아 무럭무럭 자랐고, 죄책감과 분노를 반반 섞은 날카로운 결정이 되었다. 살면서 밖을 향하기보다 안을 찌를 때가 훨씬 많았던 그 조각이 제법 단단한 송곳니가 되어 반짝인다면, 이제 나는 자랑스럽게 그 이빨을 드러내며 말하고 싶다. “어머니는 내 몸에 송곳니를 심어주었어요.”
--- pp. 32-33
엄마에 대해서 이제 나는 거짓말처럼 아무 생각이 없다. 가끔 그립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엄마의 무엇을 그리워하는 것인지 자문하면, 그 무엇인가는 텅 비어 있는 느낌이다. 이유가 텅 빈 그리움에 대해서 나는 잘 알고 있다. 그저 그리움일 뿐이다. 그런 그리움을 엄마를 향해 느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이럴 수도 있구나 한다.
--- p. 39
내게 쓰는 작업은 치유의 과정은 아니다. 한 번도 쓰고 나서 괜찮아진 적은 없었다. 내재화한 수많은 타자의 목소리를 다 뿌리치고 이번만, 마침내 이번 기회에 할 말 다 해버리자고 마음먹은 책이 출간되었고 이런 글을 써주어 고맙다는 후기를 수없이 읽고 나서도 그 기억의 어떤 부분도 말끔하게 정리되지는 않았다. 나는 그래서 글을 쓰는지도 모른다. 나의 경험이 형태를 만들어 이야기 안에 들어가 앉은 후에도 고통은 여전하다는 것, 삶이 그렇게 강력하고 요지부동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 p. 47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한국 영화계에도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들이 여럿 선을 보였다. 한국 감독의 영화, 여성이 주인공인 이야기. 이 영화들을 중심으로 딸이 자신의 가족 내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을 살펴볼까 한다. 어린 나이부터 동생을 책임지는 유사 어머니의 역할을 떠맡는 딸이 있는가 하면, 결혼한 뒤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세상을 떠난 어머니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딸도 있다. 딸은 언제 딸의 역할을 마치고 독립된 개인으로 존재하게 되는가. 그런 날이 온다고 감히 상상할 수 있기는 한가.
--- pp. 50-51
“저의 최근 관심사가 1세대부터 3세대까지의 관계예요. 나에겐 처음부터 노인에 가까운 존재였던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고, 어떤 이유로 결혼해서 나의 부모를 낳았을 텐데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저는 할머니들과의 기억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도 어느 순간 제가 외할머니를 꼭 닮은 면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란 적이 있거든요. 〈음복〉을 쓰면서도 많이 생각했어요. 엄마와 딸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사실 그 엄마의 엄마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걸요.”
--- pp. 24-25
딸을 낳는 순간 어머니의 어떤 부분이 산산이 깨져버렸고 그 교차의 순간 어머니의 깨진 조각 하나가 내게로 흘러들어와 단단히 박혔다. 유리알 같았을 그 조각은 내 안에서 상처를 자양분 삼아 무럭무럭 자랐고, 죄책감과 분노를 반반 섞은 날카로운 결정이 되었다. 살면서 밖을 향하기보다 안을 찌를 때가 훨씬 많았던 그 조각이 제법 단단한 송곳니가 되어 반짝인다면, 이제 나는 자랑스럽게 그 이빨을 드러내며 말하고 싶다. “어머니는 내 몸에 송곳니를 심어주었어요.”
--- pp. 32-33
엄마에 대해서 이제 나는 거짓말처럼 아무 생각이 없다. 가끔 그립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엄마의 무엇을 그리워하는 것인지 자문하면, 그 무엇인가는 텅 비어 있는 느낌이다. 이유가 텅 빈 그리움에 대해서 나는 잘 알고 있다. 그저 그리움일 뿐이다. 그런 그리움을 엄마를 향해 느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이럴 수도 있구나 한다.
--- p. 39
내게 쓰는 작업은 치유의 과정은 아니다. 한 번도 쓰고 나서 괜찮아진 적은 없었다. 내재화한 수많은 타자의 목소리를 다 뿌리치고 이번만, 마침내 이번 기회에 할 말 다 해버리자고 마음먹은 책이 출간되었고 이런 글을 써주어 고맙다는 후기를 수없이 읽고 나서도 그 기억의 어떤 부분도 말끔하게 정리되지는 않았다. 나는 그래서 글을 쓰는지도 모른다. 나의 경험이 형태를 만들어 이야기 안에 들어가 앉은 후에도 고통은 여전하다는 것, 삶이 그렇게 강력하고 요지부동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 p. 47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한국 영화계에도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들이 여럿 선을 보였다. 한국 감독의 영화, 여성이 주인공인 이야기. 이 영화들을 중심으로 딸이 자신의 가족 내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을 살펴볼까 한다. 어린 나이부터 동생을 책임지는 유사 어머니의 역할을 떠맡는 딸이 있는가 하면, 결혼한 뒤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세상을 떠난 어머니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딸도 있다. 딸은 언제 딸의 역할을 마치고 독립된 개인으로 존재하게 되는가. 그런 날이 온다고 감히 상상할 수 있기는 한가.
--- pp. 50-51
“저의 최근 관심사가 1세대부터 3세대까지의 관계예요. 나에겐 처음부터 노인에 가까운 존재였던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고, 어떤 이유로 결혼해서 나의 부모를 낳았을 텐데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저는 할머니들과의 기억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도 어느 순간 제가 외할머니를 꼭 닮은 면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란 적이 있거든요. 〈음복〉을 쓰면서도 많이 생각했어요. 엄마와 딸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사실 그 엄마의 엄마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걸요.”
--- p.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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