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말들을 살고 있다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우리말 열 개를 꼽아본 적이 있다. 그때는 되는대로 즉흥적으로 꼽기만 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나는 그 말들을 살고 있었다. 의식했든, 의식하지 않았든……. 그래서 글을 쓰고 산다는 건 어쩌면 자신이 좋아하는 말을 여기저기에 갖다 놓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략)
맬겁시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냥이다. 나는 그대가 맬겁시 좋다. 동백은 맬겁시 겨울에 꽃을 피운다. 그러다가 맬겁시 툭 떨어져 진다. 이유 없다. 매사에 이유 달고 살면 머리가 터진다. 맬겁시 산다. (중략)
말은 이야기를 부른다. 눈빛과 표정만으로 이야기를 나누기는 어렵다. 말로 하는 이야기를 통해 인류의 삶은 존재했고 이어졌다. 나는 글이 된 말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누구의 삶이든 그 자신을 벗어나 다른 사람에 이르기를 바라기에.
--- 「작가의 말」 중에서
고향 땅의 하늘, 추녀 끝에서 떨어지는 빗소리, 형형한 눈빛을 머금은 헌책더미……
아름다운 것들은 사라지지만 가슴속에 남아 자국을 남긴다
어느 순간, 나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무릎이 깨지는 아픔을 참느라 잠시 숨을 고르며 고개를 돌리는 그 순간, 나는 온몸이 떨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야말로 ‘톡’ 건드리기만 하면 금방이라도 뭉텅이로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별들이 바로 내 품에 안겨 들어왔기 때문이다. 사방으로 한 뼘씩이나밖에 바라보이지 않는 까만 하늘에 빽빽하게 들어박힌 별들.
--- 3장 「글을 쓰다 불쑥 떠나다」 중에서
그리움에 목마른 사람은 그 섬에 가서 한 십 리쯤 아무 쪽으로나 걸어보라. 발부리에 차이는 돌멩이 하나, 여름 햇살에 졸고 있는 풀잎 하나에도 그리움이 서려 있을 것이다. 천 년을 넘게 그 자리에서 그렇게 아무렇게나 있으면서 자고 깨는 그리움이 거기 있을 것이다.
--- 1장 「진도는 오늘도 구슬픈 가락으로 일렁이고」 중에서
향 한 대를 피운다. 그리고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본다. 흩어지는 연기를 따라 낮 동안 찌들고 얽혔던 마음이 조금씩 눅어져 간다. 내가 어지러운 이 세상에서 쓰러지지 않고 두 발로 이만큼이나마 서 있을 수 있게 해주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다.
산다는 것, 그것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일이다. 세상일에 시달리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상처받고 자기 자신한테마저 혐오의 염(念)이 일어나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흔들릴 때, 그때마다 우리는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 2장 「향 한 대에 삼독을 태우며」 중에서
나는 밥상 잘 받는 게 목표라고 말한다. 나는 ‘상’ 자 붙은 건 밥상 말고는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신인 때 등단하기 위해 신인상이나 공모상에 응모한 것 말고는. 살아 보니 밥상 잘 받는 게 가장 큰 일이더라! 그런데 대다수 현대인은 밥상을 잘 받지 못한다. 그래서 더 상에 목매다는지 모른다. 내가 ‘박상률’이 아니라 ‘밥상률’이었으면 밥상을 더 잘 받았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 3장 「노벨‘문화상’이 어때서?」 중에서
바람이 분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람이 분다. 요 며칠 동안 분 바람은 꽃샘추위 바람이었다. 그러더니 이제는 훈훈한 봄바람이 분다. 그 봄바람에 앞집 담장 너머의 백목련이 살포시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다. 이 밤 자고 난 뒤, 봄바람 한 자락 더 불어오면 그 백목련은 끝내 꽃망울을 터뜨리고 말 것이다. 봄바람에 터지는 꽃망울, 그 꽃망울은 결코 겨울엔 터지지 않는다. 봄바람이라야만 꽃망울을 터뜨려 속살을 드러내게 할 수 있다. 그래서 봄바람은 겨울바람보다 강하다.
--- 4장 「바람, 바람, 바람이 분다!」 중에서
우리는 늘 죽음 앞에 거의 무방비 상태로 서 있다. 아니 어쩌면 자기만큼은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며 오만을 부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불합리한 세상에서 그래도 가장 확실하고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다. 죽음만은 잘살든 못살든 권세가 있든 없든 모두에게 똑같은 무게로 안겨든다. 잘산다고 가볍고 못산다고 무거운 죽음은 없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피하고 싶고 두렵고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다. 그렇지만 그 생물학적 죽음이라는 불청객 때문에 우리는 삶을 더 확실하게 살 수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생물학적으로 수명이 다하며 죽어야 한다는 사실, 혹은 사고가 나서 뜻밖에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삶을 죽음보다 더 무게 있게 만든다.
--- 5장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고 하나인 바에야」 중에서
살아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사는 값을 충분히 다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관념이 아닌, 온몸 그 자체의 삶을 지탱한다는 그것만으로도 무척 어려운 일이니까! 오늘도 우리는 수많은 삶을 산다. 현실의 삶은 부대끼며 사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결국 꿰어질 수 있는 줄은 하나다. 그러나 그 하나의 줄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또 방황하고 회의한다. 자기 삶의 밑자리가, 자기 삶의 종착역이 어딘지 모르기 때문에. 지나왔든, 서 있든, 앞으로 찾아갈 곳이든, 삶은 계속되고 있을 뿐이다.
--- 5장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사는 값을 하고 있다」 중에서
자식이 전쟁터에 나가 있어도, 자식이 감옥에 들어가 있어도, 자식이 타향에서 떠돌 때에도 이 땅의 어머니는 결코 함부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달 밝은 새벽녘 맑은 샘물 받아놓고 자식을 위해 빌고 빌며, 그러는 사이 자신도 더욱 강해지기를 다짐한다. 그런 어머니기에 이 땅의 자식들은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가장 먼저 어머니를 떠올린다. 큰 운동 경기 같은 것에서 승리하거나, 어떤 일에서 성공했을 때 자신의 영광을 어머니에게 돌리는 것은 물론이요, 인질극을 벌이다가도 어머니가 와서 설득하면 눈물을 보일 수밖에 없고, 아무리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형수라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엔 가장 절박하게 어머니를 부른다.
--- 1장 「모정의 세월」 중에서
며칠 뒤, 할머니의 장례식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할머니가 없는 집에서도 여름 동안은 꽃이 피어 있었다. 우리 집 화분에선 분홍과 주황 봉숭아꽃이 섞여 피어났다. 아들 녀석과 나는 봉숭아 꽃잎을 따서 백반과 함께 버무려 손가락에 동여맸다. 생전 처음으로 하는 봉숭아 물들이기였다. 할머니의 저승길이 밝아지기를 바라고 바랐다. 참으로 긴 여름이었다.
--- 1장 「봉숭아 물들이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