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은 티베트 불교의 ‘배고픈 유령’처럼 결국에는 절대 만족할 수 없는 것들을 좇게 만든다. 다시 말해 커다랗고 텅 빈 위와 바늘구멍만 한 입을 가진 사람처럼 아무리 먹어도 성에 차지 않는 것이다. (…) 우리는 누구나 중독적 행동으로 발전할 소지를 가진다. 그리고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환경의 특정 요소들로 인해 살아가는 동안 각기 다른 시점에 중독 가능성이 발현하게 된다. 중독에서 회복되는 것(대부분은 치료를 받지 않아도 온갖 종류의 중독적 행동에서 회복한다)은 그러한 뇌의 까다로운 여러 과정을 제어해 이용하는 법을 배우고, 욕구 충족에 있어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신이 이해받고, 받아들여진다는 느낌과, 안전하고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관계 형성이 포함된다. 해묵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공감적 접근법을 취해 회복 가능하도록 도와야 하며, 우리 내부의 배고픈 유령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중독에 대한 일반적 생각, 그리고 진실」중에서

‘중독자’를 생각할 때 무엇을 떠올리게 되는가? 우리는 중독, 특히 약물과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들을 낙인찍고 비인간화하는 여러 이야기와 이미지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이런 인식은 중독과 싸우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자극적인 가십 거리를 주로 다루는 타블로이드 언론은 중독자들을 심약하고, 남을 이용하거나, 화려하고 비극적인 일탈자로 그려 낸다. 즉 그들이 선택하여 중독자가 되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참을 수 없는 습관을 잠재우기 위해 거짓말하고 훔친다’, ‘노숙자 신세이고, 스스로 몸을 팔며, 마약을 구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한다’, ‘그들은 우리와는 다르다.’ 이러한 메시지들이 우리의 사회의식 속에 ‘중독자’와 ‘알코올 중독자’에 대한 선명한 고정 관념을 형성한다.
---「01 중독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중에서

일반적으로 무의식적 습관을 갖는 것은 매우 유용하다. 습관이 되면 처리하는 데 힘이 들지 않고, 자주 반복되었던 행동 패턴은 매번 의식적으로 계획하거나 행동할 필요가 없어진다. 신호를 받으면 계획이 자동적으로 실행된다. (…) 우리가 사랑과 의무감으로 기저귀를 갈고 화내며 울어 대는 아기를 달래고 잠 못 자는 밤을 참아 내지 않는다면, 결코 부모가 될 결심을 못했을 것이다. 사실 동기 부여와 보상과 관련된 동일한 뇌 영역은 유대감, 관계, 사랑과도 연관되어 있다. 집착, 심사숙고, 삶의 다른 부분은 무시하는 성향, 특정 경로만 고집하려는 열망은 중독뿐만이 아니라 사랑의 표지일 수도 있다.
---「02 중독은 선택인가?」중에서

음식 섭취, 섹스, 내기, 운동이 항상 강박적이 되지는 않는 것처럼, 마약을 사용한다고 항상 중독에 이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은 중독이 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게 만드는 원인은 무엇일까? 중독은 여러 요인이 특정한 조합을 이룰 때 나타난다. 발달 단계의 특히 예민한 시점에 취약한 개인이 중요한 경험을 하는 것과 관련이 있고, 중독을 유지하게 하는 특수한 맥락에서 발전한다. 개인적 취약성은 우리의 기질이나 유전적 잠재성, 우리가 태어난 감정적이고 문화적 환경과 우리가 이것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관한 관계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특정 경험이 우리를 좀 더 혹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는 특성을 지니기는 했지만 결코 이것이 다는 아니다.
---「03 모두 중독되지는 않는다, 왜?」중에서

(…) 아동기에 상처를 받은 아이들 모두가 성인이 되어 중독 행동이나 정신 건강 장애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부정적 경험, 빈곤, 폭력, 트라우마는 중독 위험을 증가시키지만 이런 일을 겪고도 건강하고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위험과 취약함은 변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경험에 따라 변화한다. 많은 요인들이 부정적 경험의 영향력을 경감시킬 수 있지만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은 견고하고 애정 어린 관계이다. 아이의 인생에 안전하게 보살핌을 주는 안정된 어른 한 명만 있어도, 아이는 넘어져도 잡아 줄 안전망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떤 장애라도 이겨 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부모 또한 지원을 받고 안정적일 때 아이에게 이러한 관계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03 모두 중독되지는 않는다, 왜?」중에서

심리학적 개입은 진단을 내리기보다는 각 개인이 가진 문제의 체계화된 분석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신체, 감정, 생각, 개인 경험의 사회적 측면들 같은 정보를 통합하여 문제가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무엇으로 인해 문제가 지속되는지를 설명한다. 또한 치료 담당자의 심리학적 이론이나 증거에 대한 지식과 현재 상황이나 이러한 문제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개인이나 가족의 생각과 이해를 결합한다. 마치 현재 진행 중인 상황에 대한 큰 그림을 보여 주기 위해 퍼즐을 합동으로 맞추는 과정과 비슷하다. 서술된 내용에 대해 토론하고 동의하는 과정에서 개인이 이해받는다고 느낄 수 있고, 어떤 문제가 서로 관련되어 있는지 아는 기회가 될 수도 있으므로 토론과 동의 과정 자체가 개입이 될 수 있다.
---「04 해묵은 습관도 바꿀 수 있다」중에서

AA의 설립 취지는 금주를 원하는 사람들을 함께 모아 서로 협력하고, 경험을 공유하고, 정직하게 행동하고, 단계를 밟아 치유함으로써 이런 협력을 고무하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해서는 자신이 제일 잘 알기 때문에 여기서 해야 할 일은 모임에 출석하는 것뿐이다. AA가 획기적인 이유는 알코올 중독자들을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또한 알코올 중독을 회복 가능한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회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그저 인정하기만 하면 된다. 즉 중독 앞에 자신이 근본적으로 무력하다는 것을 먼저 인정한다. 또 알코올에 대한 개인적 취약성 때문에 평생 안고 가야 하는 질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알코올을 끊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을 알기만 하면 된다.
---「05 배고픈 유령에게 영양 공급하기」중에서

중독은 나약함이나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고난, 고립, 방향 감각 상실에 적응하는 방법을 학습한 결과이다. 그리고 자신의 상황이 특정 방식으로 기울어져 있다면 누구나 중독을 직면했을지도 모른다. (…) 우리가 태어난 당시의 삶을 바꿀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까다로운 뇌와 종종 파괴적으로 변하는 뇌의 성향을 조절하는 법은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자신과 자신의 결점에 대한 연민, 타인과의 유대, 잠재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게 이끌어 주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헌신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B>중독, 벗어던질 수 있는 굴레</B><br/><br/>영화와 소설을 비롯한 각종 미디어와 언론 속 중독자들의 모습은 한결같다. 술 없이 한 순간도 버티지 못하고 약을 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도박에 빠져 패가망신하고 나서도 쉬이 헤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중독’이라는 단어로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는 가족과 친구를 실망시키는 구제불능이다. 중독자들에게는 정말 이러한 결말뿐인 걸까? 중독의 사슬을 끊고 일상을 되찾은 사람들은 진정 존재하지 않을까?<br/><br/>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러한 이미지는 고정 관념일 뿐 잘못된 생각이다. 정치 논리와 편견이 합작해 만들어 낸 환상인 것이다. 오랜 시간 알코올과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을 상담해 온 저자는 현장에서 여러 사례를 직접 겪으며 그동안 알고 있던 지식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독』은 중독으로부터 회복하는 데 있어 문제를 직시하는 것만큼이나 ‘관계’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개인과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변화와 지속적 성장에 대해 이야기한다.<br/><br/><B>『중독』에서는…</b><br/><br/>서문에서는 중독에 대한 세간의 ‘상식’과 중독의 ‘진실’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한다. 중독은 특별히 나태하고, 의지가 박약한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중독적 행동으로 발전하게 될 소지가 있다. 그리고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환경의 특정 요소에 의해 살아가는 동안 각기 다른 시점에 중독 가능성이 발현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접근하면 중독에서 벗어날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br/><br/>1장에서는 중독의 도덕적, 의학적 모델이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살펴보고 몇 가지 심리적, 사회적 모델을 간략히 다룬다. 중독을 질병으로 바라보는 기존의 모델은 중독을 효과적으로 이해하거나 치료하는 데 충분하지 않으며, 중독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물학, 심리학, 사회적 환경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 고려해야 한다.<br/><br/>2장에서는 중독적 행동의 근본이 되는 뇌 신경학에 관해 알아본다. 뇌는 학습을 통해 행동을 습관으로 만들고 습관이 강박으로 변하는 순간 중독된다. 학습과 관련된 뇌의 변화는 강렬한 감정이 바탕이 되면 더욱 빠르고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영아기, 청소년기, 20대 초반처럼 인간 발달 단계에서 취약한 시점에 중독이 특히 나타나기 쉽다. 동기와 보상, 학습을 관장하는 뇌의 체계를 이해하면 중독의 시작과 발전 양상에 대해서 알 수 있다. <br/><br/>3장에서는 사람과 환경의 상호 작용이 중독을 만드는 과정과 이에 대처하기 위한 전략을 살펴본다. 중독의 본질은 우리의 행동, 관계, 감정, 욕망의 관리를 돕도록 설계된 견제와 균형의 메커니즘 실패이다. 이는 약물이나 알코올 자체보다는 우리가 중독의 대상에 부여하는 의미가 더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가족과 지역 사회의 기대, 혹은 사회 규범에 영향을 미치고 중독 경험에 노출되는 정도를 결정짓는 사회적 환경 또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br/><br/>4장과 5장에서는 중독의 회복을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범세계적 회복 운동을 기반으로, 중독을 좀 더 따뜻한 시각에서 이해하고 치료하기 위한 심리학적 로드 맵을 구상한다. 중독에서 회복된다는 것은 중독 행동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이전과 다르게 사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중독 행동 교정은 정체성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으므로 중독 행동이 어린 시절에 시작되었다면 더 심도 있는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이를 위해 마음 챙김과 같은 심리학적 개입이나 행동과 환경에 초점을 맞춘 실질적 개입 등의 전략을 제시한다. 중독을 줄이고 예방하기 위해서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변화가 요구되며 특히 ‘관계’는 중독 회복의 핵심이다. <br/><br/>마지막 6장에서는 기존의 ‘마약과의 전쟁’의 실패 원인을 살펴보고 여러 국가에서 시행 중인 치료와 재활 장려, 마약을 범죄에서 제외시키는 실험 등을 통해 중독 예방을 위한 방안을 제시한다.